성삼문선생유허지
(成三問先生遺墟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성삼문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그가 태어난 집터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성삼문 선생 유허는 성삼문이 출생한 집터이며, 그의 사후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서원이 건립된 곳이다. 입구 길가에 두 개의
비가 세워있는데, 하나는 유허비로 비각으로 보호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노은서원 유허비이다. 유허 안에는 사당인 충문사(忠文祠)
가 있고, 왼쪽 언덕에 노은단이 있다. 1973년 12월 24일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성삼문(成三問)의 외조부 박담(朴膽)의 고택이 있던 곳이며,
성삼문이 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676년(숙종 2) 사인(舍人)
이량(李?)과 유생들이 성삼문 등 사육신의 절의와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성삼문의 탄생지에 사우를 건립하였다. 1685년(숙종 11)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
(兪應孚)를 추가 배향하였다.1692년(숙종 18)에 조정에서는 이 사우를
녹운서원(綠雲書院)이라 명칭하고 사액하였다가 1712년(숙종 38)
노은서원(魯恩書院)으로 개칭하였다. ‘노은’은 민진후(閔鎭厚, 인현왕후
오빠)와 송시열(宋時烈)이 노산(魯山)의 ‘노’자와 은의(恩義)의 ‘은’자를
따서 동네 이름을 노은이라 했던 데에 기인한다. 노은서원 옆에는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성승(成勝, 삼문의 아버지)의 위패를 1687년
(숙종 13)에 봉안하였다. 이후 1784년(정조 8)에 성승은 별운검
(別雲劒)으로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했던 점이 인정되어 신원된 후
제향되었다.그러나 노은서원은 1864년(고종 1)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었다. 당시 유생들은 사육신의 위패를 현 노은단 자리에 매안
하고 단을 모아 ‘노은단(魯恩檀)’이라 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향을
올렸다. 1945년 광복이 되자 홍성고적현창회에서 삼문을 개축하고
정화하였다.이전의 노은단 자리는 이곳에서 동북방 약 50m 지점이며
유허비는 남쪽 30m 거리의 마을 앞에 있고 비각이 있다. 마을에서 국도로
통하는 길 왼쪽 옆에 선생의 부인 묘소로 보이는 무덤이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전액은 유척기(兪拓基)가 썼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육신의 노래
金生(금생) 麗水(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금)이 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한들 뫼마다 玉(옥)이나랴
아모리 女必從夫(여필종부)ㅣ들 님마다 조차랴
朴彭年(박팽년)
가마귀 눈비마자 희는듯 검노매라
夜郞明月(야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이시랴
朴彭年(박팽년)
사육신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