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트 체임벌린의 신화
출처:hoochoo.com
윌트 체임벌린은 이렇게 거대한 몸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믿기지 않을만큼 뛰어난 운동능력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체임벌린의 운동능력은 시대를 크게 앞서가는 것인데, 특히 그의 힘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죠.
이 일화들은 너무 많아서 따로 하나의 글을 쓰기로 하고 여기선 다른 운동능력에 관해서 얘기해보죠.
체임벌린은 간단히 말해서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와 점프력과 지구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런 특출난 운동능력은 당연히 일찍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1955년 '스포츠 매거진'지의 어브 굳맨은 '당장 프로농구에서 뛸수 있는 고등학생 꼬마'라는 기사에서 쓰기를
"아마도 이 놀라운 선수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스태미나일 것이다. 대개 거인들은 팀에서 가장 먼저 휴식을 위해 앉는게 보통이지만 그는 언제나 마지막으로, 그것도 코치가 하라고 해야만 휴식을 취한다."
지구력에 관해서라면 체임벌린은 NBA 역사상 적수가 없는 선수입니다. 일단 기록을 몇개 살펴보죠.
1. 윌트 체임벌린 1045 45.8 2. 빌 러셀 963 42.3 3. 오스카 로버트슨 1040 42.2 4. 앨런 아이버슨 610 41.5 5. 르브론 제임스 159 40.9 6. 엘진 베일러 846 40.0 7. 스티브 프랜시스 452 39.4 8. 마이클 핀리 735 39.3 9. 제리 웨스트 932 39.2 10. 제리 루카스 829 38.8
위의 순위는 NBA 역대 통산 평균 경기당 출장시간 1위에서 10위입니다. 앞의 숫자는 통산 출전 경기수이고 뒤의 숫자가 출장시간인데 체임벌린은 2위와 차이가 큰 1위죠.
1. 윌트 체임벌린 1961 80 48.5 2. 윌트 체임벌린 1960 79 47.8 3. 윌트 체임벌린 1962 80 47.6 4. 윌트 체임벌린 1965 79 47.3 5. 윌트 체임벌린 1967 82 46.8 6. 윌트 체임벌린 1959 72 46.4 7. 윌트 체임벌린 1963 80 46.1 8. 네이트 아치볼드 1972 80 46.0 9. 오스카 로버트슨 1965 76 46.0 10. 네일 존스턴 1953 72 45.8 11. 오스카 로버트슨 1964 75 45.6 12. 윌트 체임벌린 1966 81 45.5 13. 존 하블리첵 1970 81 45.4 14. 윌트 체임벌린 1968 81 45.3 15. 네일 존스턴 1952 70 45.2 16. 윌트 체임벌린 1964 73 45.2 17. 네이트 서몬드 1968 71 45.2 18. 빌 러셀 1961 76 45.2 19. 존 하블리첵 1971 82 45.1 20. 엘빈 헤이즈 1968 82 45.1
위의 순위는 한 시즌 평균 출장시간 1위에서 20위까지의 기록인데 첫번째 숫자가 해당시즌연도, 두번째가 출전경기수, 세번째가 평균출전시간입니다.
체임벌린이나 다른 선수들이 82경기를 다 뛴 경우가 많지 많은건 NBA가 시즌 경기수를 82경기로 늘린게 67~68시즌이기 때문입니다.
한눈에 알수 있듯이 체임벌린의 출장시간은 압도적입니다. 20번중 혼자 열번을 차지하고 있고, 뭐니뭐니해도 1위 기록인 48.5분 출장이란건 정말 경이적인 기록입니다.
NBA의 경기시간이 48분이란걸 생각하면 납득하기가 힘든 기록이죠. 이 시즌 체임벌린은 정규 시즌에서 테크니컬 파울로 퇴장당한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를 풀타임 출장했고 몇번 있었던 연장전까지 모두 풀타임으로 뛰어서 48.5분이라는 출장시간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기록은 체임벌린이 자신의 수많은 경이로운 기록들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기록으로 꼽았던 두 개중 하나죠(다른 하나는 한경기 55리바운드 기록).
체임벌린은 선수생활 말년까지도 놀라운 지구력을 유지했는데 NBA 마지막 시즌인 72~73 시즌 그는 우리식으로 37세의 나이에 전경기 출장해서 평균 43.2분을 뛰어 리그 2위의 출장시간을 기록했으며 NBA 마지막 경기인 닉스를 상대로 한 73년 챔피언시리즈 5차전에선 48분 풀로 출장해 23득점 21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체임벌린이 이렇게 워낙에 노익장을 과시하는 바람에 은퇴한 후에도 끊임없이 복귀에 관한 루머가 흘러나왔었죠. 심지어 그가 우리식으로 43살이었던 78년에 시카고 불스가 계약제의를 해오기도 했습니다.
윌트가 백업이란 위치를 받아들이려 하지않았기에 무산되었지만. 이번엔 체임벌린의 지구력에 대한 팀동료들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NBA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시절 팀동료였던 어니 벡 :
"그 때(체임벌린의 데뷔시즌)는 펜실베니아주 허쉬에 트레이닝 캠프가 있었는데, 하루에 두번 연습을 했죠.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우리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어요. 오전과 오후의 연습이 시작하기 전마다 반드시 러닝을 했는데 체육관을 열에서 스무바퀴정도 돌았습니다. 스태미너가 엄청났던 윌트가 항상 일등이었죠."
캔자스 대학시절 팀동료였던 몬티 존슨 :
"윌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가졌었고 러닝을 할때면 우리중 누구도 그를 쫓아갈 수 없었죠. 그는 트랙을 사슴처럼 우아하게 달렸습니다.
내가 코치에게 말하기를, '윌트를 따라가는게 우리한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저렇게 빠른 놈을 따라잡으라는건 죽으라는 거나 같다구요.' 연습이 끝나면 윌트만이 유일하게 지치지 않은 사람이었죠. 난 그가 지치는걸 한번도 보지 못했어요."
스피드 얘기가 나온김에 스피드에 관한 증언도 하나.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워리어스 구단주 에디 고틸렙이 프랜차이즈를 매각한후 다시 필라델피아에 농구팀을 만들고 이름을 세븐티식서스로 정했죠. 이 얘기도 윌트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팀동료였던 빌리 커닝햄 :
"내 생각엔 윌트는 자기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최초의 7피트대 선수였죠.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하게 빠른 선수조차 없었어요. 감히 말하건대 그정도로 큰 선수 중에서 윌트만큼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커닝햄의 말중에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다는 애기가 있죠. 그것도 압도적으로 빨랐다는. 7피트가 넘는 선수가 가드들보다 빨랐다는건 사실 언뜻 믿기가 어렵지만 커닝햄말고도 종종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윌트의 팀메이트들이 '그가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다'는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체임벌린 본인도 생전에 가장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경기중에서 영상으로 남은건 69년 선수생명을 위협했던 큰 무릎부상을 입고 스피드를 잃어버린 시절 이후의 경기들뿐이어서 후세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빨랐는지를 알수 없을거라는 점이었죠.
여기에 관해서도 일화가 하나있는데 90년대에 기자 한명이 체임벌린과 인터뷰를 하면서 '데이비드 로빈슨과 하킴 올라주원같은 선수들은 그 키에 가드처럼 달린다는게 참 신기하지요? 저런 선수들을 본적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자 체임벌린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당연히 있지. 바로 나!'라고 했답니다.
지구력과 스피드 얘기를 했으니 점프력에 관해서 언급을 하고 글을 맺겠습니다.
체임벌린은 농구보다 먼저 육상을 시작했고 키가 커지고 농구를 하게 되어 달리는 종목은 포기했지만 대학 때까지도 높이뛰기, 세단뛰기, 투포환던지기는 계속했습니다. 그가 대학을 캔자스로 간 이유 중 하나가 캔자스대가 대학 육상에 있어서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죠. 1학년때 체임벌린은 빅세븐 컨퍼런스 높이뛰기 1학년 신기록을 세웠고 투포환던지기에선 3위를 했습니다. 2학년때는 빅세븐 컨퍼런스 높이뛰기 우승을 차지했고 세단뛰기에서 3위를 했군요.
제대로 육상연습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걸 생각해볼때 체임벌린이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본인이 말한대로 올림픽에서 십종경기 금메달을 땄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학때까지 전문적인 높이뛰기 선수들과 경쟁해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체임벌린의 점프력은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겠지요.
역시 주변 사람들의 점프력에 관한 증언 세가지를 들어보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캔자스 대학시절 팀동료였던 몬티 존슨 :
"우리가 신입생이었을때 캔자스대 주변의 몇몇 작은 마을에선 농구 클리닉을 열게끔 선수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곤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엠포리아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습니다. 밥 빌링스, 린 킨드레드(엠포리아 출신이었죠), 나, 윌트 이렇게 네명이었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시범을 보였어요. 질문시간에 한 젊은이가 윌트에게 그가 제자리에서 한걸음만 밟고서 얼마나 높이 뛸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윌트는 한걸음, 아주 긴 걸음이었는데, 물러났다가 그대로 솟아올라서는 손가락으로 백보드 맨위쪽 평평한 면을 만지고는 내려왔습니다. 그건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우아한 몸동작이었죠."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트레이너였던 알 도메니코 :
"식서스 선수중 한명이 윌트에게 윌트가 25센트 동전을 백보드 상단에 올려놓을수 없다는데 5달러를 걸겠다고 했습니다. 윌트는 뛰어올라서는, 동전을 거기다 올려놓고서, 내려왔죠. 다시 뛰어올라서 동전을 잡고는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전을 내기를 건 상대에게 줬어요. 내가 직접 본 사실입니다."
ABA 산 디에고 칸퀴스터더스(윌트가 NBA에서 은퇴한 후 잠시 감독을 맡았던 팀) 선수였던 팀 바셋 :
"한번은 선수들이 슛연습을 하는데 공이 골대위 와이어에 걸렸습니다. 6피트 11인치(211센티)에 뛰어난 점프력을 가졌던 콜드웰 존스를 포함한 선수들 모두가 점프해서 공을 쳐내려고 했지만 실패했죠. 결국엔 누군가가 의자를 가져오려고 할 때였습니다. 윌트가 양복에 비싼 구두를 신고서 나타났죠. '무슨 일이야?' 윌트가 물었습니다. '공이 저기 걸려서 꺼낼려고요.' 누군가가 대답했죠. '너희들은 젊고 강하잖아. 왜 점프해서 꺼내지 않는거야?' '너무 높아서요.' 그러자 월트는 '길바닥에 돈을 그냥 버리는거나 마찬가지군.' 뭐 이런 비슷한 말을 하며 투덜거리더니 구두를 벗고는 맨발로 뛰어올라서 볼을 쳐냈고, 선수들은 모두 입이 딱 벌어졌었죠."
지구력, 스피드, 점프력에 관한 얘기들도 더 있지만 이만 줄이기로 하고, 다음 글엔 체임벌린의 힘에 관한 많은 일화들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워낙에 믿기 힘든 이야기가 많아서 아예 따로 정리하는게 좋을듯 하네요. 체임벌린의 운동능력을 다룬 저번 글에서 힘에 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건 화장실가서 큰거 보고는 손 안씻고 나온거랑 비슷한 일입니다. 그만큼 체임벌린하면 힘이고 힘하면 체임벌린이죠.
이 시리즈의 세번째 글-프롤로그를 번역한 글-에서 '그의 힘은 동료 프로스포츠선수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통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책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를 그대로 가져와보면 "하느님께서 NBA를 위해 해주신 일들중에 가장 좋은 일은 그분이 윌트를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일이다. 윌트는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 모두를 왼손 하나로 죽여버릴수도 있었다(could have killed us all with his left hand)."
이 말은 NBA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잭 맥마흔이 한 말인데 맥마흔 본인은 윌트의 데뷔시즌인 59~60 시즌이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어서 정작 윌트와 같이 뛴 기간은 한 시즌 밖에 안됩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한건 그만큼 윌트의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였을테지만 또한 제게는 리그에 데뷔한 루키 체임벌린에게 상당히 많은 신체적 견제가 행해졌을거라는 추측의 근거가 돼주기도 합니다.
NBA에 데뷔한 체임벌린에게는 과격한 파울과 신체척 위협에 가까운 접촉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의 감독이었던 닐 존스턴은 "난 머리를 쥐어뜯으며 심판들에게 고함을 질러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대팀 선수들은 윌트를 말 그대로 두들겨 패고 있었지만 심판들은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라고 했죠.
팀동료들은 윌트에게 그도 되받아치라고 했지만 윌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내게 코트에서 상대를 뭉개버리라고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난 그저 정상적인 경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일이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나도 어쩔수 없이 누군가의 입에 한방 날려줘야 할것 같다."
하지만 정작 앞니 두개가 나갈 정도로 입에 한방 크게 맞은건 체임벌린이었고 (60년 2월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의 클라이드 러블릿-윌트의 대학선배-이 팔꿈치로 가격했죠) 체임벌린은 선수생활 내내 코트위에서 누구에게도 고의적으로 위험한 플레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 체임벌린에겐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요소인 투쟁심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투쟁심이란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꼭 있어야 하는 거죠. 상대를 때려눕혀서라도 이기겠다는 전투의욕이 없이는 프로의 세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짚고 넘어가자면 체임벌린은 두번 우승을 했죠. 그것도 두번 다 역사상 최고의 팀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아마도 어쩌면 체임벌린에겐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일반인의 눈엔 다들 거인인 NBA선수들이라 해도 자기와 비교해선 너무 약해보였기 때문에 자기억제를 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순전한 제 억측이지만 이제부터 나열할 체임벌린의 힘에 관한 일화들을 훑어보면 조금은 제 억측이 이해가 가실겁니다.
그럼 갑니다.
윌트가 오버브룩 고등학생일때 윌트가 졸업한 와인필드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래리 아인혼 :
"윌트가 팀동료인 알랜 와인버그와 같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걸어왔죠. 전 거기서 그가 한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자기 용력을 보여주려고 결심하고 미식축구공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오른 다리를 들어올리고 공을 다리 아래로 던졌죠. 공은 운동장 반대편까지 날아갔어요."
1956년 오버브룩 고등학교 졸업생인 스티브 케인 :
"우리가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때 윌트는 돈을 좀 벌려고 했는데, 그는 항상 3,4인분을 먹었거든요.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가 백인애들과 팔씨름 내기를 하는 거였어요.
우리들중 두세명과 한꺼번에 겨루곤 했죠. 교과서를 쌓아서 윌트와 손높이를 맞추고 팔씨름을 했는데 우린 모두 돈을 걸었고 정말로 많은 도전자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윌트를 이기지 못했죠. 그는 전부 쓸어버렸어요."
1954년 NBA 홍보담당관이었던 해스킬 코헨 :
"하루는 여길(윌트가 제2의 가족처럼 생각했던 커셔 가문의 컨트리클럽) 올라가다가 제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데 잭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윌트는 겨우 17살이었는데, 맨손으로 차 뒤쪽을 잡더니 땅에서 들어올렸어요. 전 그러다 그에게 탈장이 생길까봐 그만두게 했죠."
캔자스 대학 팀동료이자 친구였던 밥 빌링스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윌트는 자기 차를 몰고 와서 체육관 앞에 세워뒀죠. 농구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거든요. 비가 내렸고 땅이 질퍽해졌어요. 행사가 끝나고 우리가 나와서 그의 차에 타니 진흙탕에 갇혀서 나올수가 없었죠. 차안엔 사람이 네명이 있었습니다. 두명, 또 세명이 나가서 차를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결국 윌트가 말했습니다. '빌링스, 핸들 좀 잡아.' 그는 차에서 내려서 앞쪽으로 갔어요. 그리고는 그 빌어먹을 놈의 차를 들어올려서 밖으로 밀어냈죠."
캔자스대 백업센터였던 몬티 존슨 :
"그와 연습하면서 배운것 중에 하나는 그가 덩크하려 할땐 절대 골밑에 있지 말라는 거였죠. 손가락이 나갈 확률이 99퍼센트였거든요. 우리는 곧 익숙해졌지만 시합에선 상대선수들은 종종 손가락이 나가곤 했답니다."
1956년 가을 캔자스대 학생이었던 존 나버트니가 윌트 체임벌린, 앨 오어터, 빌 나이더 세명이서 투포환을 누가 가장 멀리 던지는지 내기하는걸 본 장면.
나이더는 56년 멜버른 올림픽 투포환던지기 은메달리스트이며 오어터는 칼 루이스를 제외하면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에서 4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육상선수로서 이 이야기는 나버트니가 로렌스저널 월드지의 스포츠면 편집장인 척 우들링에게 말한 것입니다 :
"그 때 우리는 잔디가 우거진 둔덕위에 있었죠. 오어터가 제일 먼저 던졌고 그 다음에 나이더가 더 멀리 던졌어요. 윌트의 차례였죠. 그는 뒤로 돌아서서 허리를 숙이고 손가락을 깍지껴서 공을 올려놓고는 허리를 쭉 피면서 자기 머리위로 공을 던졌습니다. 공은 나이더가 던진 것보다 60센티 정도 더 멀리 떨어졌죠." (이런 식으로 던지는건 투포환던지기에선 금지되어 있지만 내기는 윌트가 이긴거죠.)
윌트의 평생의 친구이자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러시아 투어에서 팀닥터였던 스탠 로버 :
"글로브트로터스의 러시아 투어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레닌 스타디움에서 준비한 드레싱룸 안에 모여 있었죠. 선수들은 경기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젊은이들이었단걸 새겨둬야 합니다... 윌트는 23살이었죠. 다른이들도 그 또래였고요. 마치 아기고양이들이 모여있는것 같았습니다. 니가 나를 밀면 나도 너를 민다는 식이었죠.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두명이 윌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들은 장난스럽게 윌트를 밀고 잡아당기면서 놀았는데 결국엔 그들중 한명이 윌트를 조금 너무 세게 쳤어요. 윌트는 그들의 셔츠를 각각 움켜잡고서는, 동시에 두명을 땅에서 들어올렸습니다. 그 두명은 각자 몸무게가 적어도 200파운드(90.6킬로그램)는 됐어요. 그런데 윌트는 마치 두 조각의 과자 부스러기를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난 그가 두명의 머리를 부딪히게 할려나보다 생각했었죠. 그건 정말로 놀라운 힘의 과시 장면이었습니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센터였던 메도우락 레먼 :
"글로브트로터스에서 순회할때 윌트는 농구외에도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이 있었죠. 윌트는 나를 헝겊인형처럼 들어올려서는-난 그때 210파운드(95킬로) 정도였는데-공중으로 8에서 10피트(2.4미터에서 3미터)정도 집어던졌다가 떨어지는 날 잡곤 했죠.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얼마나 힘이 셌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는 역사상 가장 힘센 운동선수였을 거예요."
"...우린 저녁에 경기가 끝난 이후론 종종 할일이 없었습니다. 50년대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해주겠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여는 레스토랑도 없었고요. 호텔방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는게 고작이었죠. 하지만 젊고 장난기 넘치던 윌트는 오직 그만이 할수있는 오락을 즐겼죠.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서 산책을 할때 윌트는 작은 자동차의 앞부분을 들어올려서 옮겼다가, 다시 끝쪽을 들어올려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10에서 15대 정도의 자동차를 코너를 따라서 '산책'하게끔 했죠."
NBA 뉴욕 닉스 선수였던 '점핑' 자니 그린 :
"(윌트의 NBA데뷔전 경기에서)전반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였는데, 윌트가 그 특유의 페이드어웨이슛을 던졌죠. 전 솟아올라서 공을 백보드에 내리쳤습니다. 관중들은 열광했고, 윌트는 절 지그시 바라보았죠. 몇분 뒤에 윌트가 다시 슛을 던지자 전 또 블록했고, 우리가 코트를 넘어갈때 관중들은 미친듯이 괴성을 질러댔죠. 그 때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꼬마친구, 다시는 그러지 마.' 속으로 생각했죠. 이 녀석 무슨 소릴 하는거야? (윌트보다 그린이 세살 더 많았습니다.)
다음번에 그가 볼을 잡았을때, 그는 공중으로 10피트(3미터)정도 뛰어올라서 공과 저를 같이 림에 내리꽂기 시작했습니다. 글쎄, 어리석게도 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와 같이 떠서 제 손을 공의 아래부분에 갖다댔죠. 갑자기 윌트가 힘을 뺐습니다. 전 공을 철썩하고 쳐냈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가득 차올랐죠. 바로 그때 윌트가 절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공을 그냥 내리찍었다면 넌 림에 걸쳐서 손목 위쪽이 날아갔을거야. 다시는 나한테 집적대지 말라구.' 그리고 그후론 전 다시는 그러지 않았죠. 절대로 그러지 않았습니다."
27년간 NBA와 ABA에서 심판생활을 한 놈 드러커 :
"그건 보스턴에서 벌어진 63-64 컨퍼런스 파이널 시리즈의 일이었습니다. 러셀의 백업이었던 클라이드 러브릿(팔꿈치로 윌트의 앞니 두개를 나가게한 선수)이 들어왔죠. 그는 윌트를 계속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했습니다. 어느순간 둘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마주 섰고 윌트가 말했죠. '그만해' 또는 뭐 그런 비슷한 말이었죠.
그러자 클라이드는 두손을 들어올려서 파이팅 포즈를 취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때 윌트는 클라이드가 주먹을 날려올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윌트가 클라이드의 오른쪽 턱을 한대 쳤습니다. 클라이드는 마루위에 그대로 폭삭 무너졌고 벤치에 있던 조지 리는 이렇게 외쳤죠. '클라이드, 일어나지 마. 카운트를 다 쓰라구.'"
윌트의 팀동료로 위에서 언급한 싸움을 본 탐 미셔리 :
"그 펀치는 주먹이 10인치(25센티)도 안움직인 짧은 펀치였어요. 클라이드는 투우에서 죽은 소처럼 쓰러졌죠."
윌트와 55년 고등학교 올아메리칸으로서 처음 만나서 오랫동안 친구였던 칼 램세이 :
"윌트는 NBA시즌이 끝나고 나면 종종 L.A.까지 나라를 가로지르는 자동차여행을 하곤 했죠. 한번은 그가 말하길 여행중에 남서부 지방 어느 곳에서 자기에게 퓨마가 덤벼들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맨손으로 퓨마를 죽였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지는 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제게 그 퓨마의 발톱자국이라면서 팔의 흉터를 보여줬지요."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팀동료였던 빌리 커닝햄 :
"쥬이시 커뮤니티 센터에서 트레이닝 캠프를 열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연습이 끝난후 윌트와 루크 잭슨이 팔씨름을 하고 있었어요. 루크는 아마도 그 당시 NBA에서 두번째로 힘이 센 선수였을 겁니다. 그는 275에서 280파운드(124-7킬로)정도에 6피트 9인치(206센티)의 거한이었죠. 윌트는 루크가 자기 팔을 반쯤 꺾게 내버려뒀어요.
그러곤 물었죠. "준비됐냐?" 그리고 그는 루크의 팔을 한번에 넘겨버렸죠. 그걸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답니다. "말도 안돼."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팀동료였던 게리 와드 :
"윌트가 나나 빌리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그를 둘러싸고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어느날 밤 홈경기가 끝난 후 우리 셋은 필라델피아 중심가를 걷고 있었죠. 밤 11시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나처럼 해봐요' 놀이를 하면서 가고 있었죠. 다른 모든 세명의 젊은 독신남이 모이면 그렇듯 바보스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기둥 하나와 마주쳤는데, 마침 윌트의 차례가 되었었죠. 그는 두 팔을 벌려서 기둥을 끌어안더니 자기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려서 기둥과 45도의 각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공중에 자기 몸을 고정시킨 자세로 대략 1분 정도를 버티다가 내려왔죠. 빌리와 나도 시도해봤습니다. 우리는 공중으로 발을 박차고 올라갔지만 그 즉시 땅으로 떨어졌죠. 두명 다 단 1초도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트레이너였던 알 도메니코 :
"한번은 누군가가 윌트에게 윝트가 볼링공의 손가락 구멍을 쓰지 않고 볼링을 할수는 없다는데 내기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해냈죠. 내가 직접 봤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볼링공 두개를 들어서는 손바닥으로 잡았습니다. 구멍에 손가락을 넣지 않고 손등이 위에 오게 한 상태로 두개를 들어올렸죠."
"...거스 존슨과 윌트 사이에 있었던 사고는 제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거스 존슨은 괴물이었죠. 누구라도 그와 시비를 벌이는건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주 못된 친구였어요. 그 때 윌트는 우리측 골대 밑에 처져있었는데 이건 드물게 보는 상황이었죠. 윌트는 결코 어슬렁거리는 선수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수비리바운드를 잡아서 아웃렛 패스를 했습니다. 속공상황이었는데 거스가 패스를 가로챘어요. 여덟명은 코트 저쪽편에 있었고 거스와 윌트만이 이쪽 코트에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나갔죠.
거스는 코트 오른쪽 편에서 드리블해 들어오고 있었고 윌트는 왼쪽편에서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윌트가 한걸음 정도 앞서나가올때 거스가 파울라인 근처에서 솟아올랐어요. 마이클 조던 스타일의 원핸드 윈드밀 덩크를 시도했습니다. 림위로 한참 떠올라 있었죠. 그때 윌트의 손이 똑바로 솟아올라 왔습니다. 공과 거스의 팔이 윌트의 손바닥에 정확하게 부딪혔죠. 그리고는 쾅!- 거기서부턴 공이 더이상 앞으로 갈수가 없었죠.
그런 상황에선 윌트의 손도 뒤로 밀려날거라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똑똑히 볼 수 있었죠. 거스의 어깨는 즉시 튕겨져 나갔습니다. 거스가 윌트의 손에 가한 힘이 그대로 되돌아와서 그의 어깨를 탈구시킨거죠. 거스는 무릎을 꿇고 어깨를 감싸쥐고는 벤치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는 바로 병원에 갔다고 했었죠. 그 광경은 제 평생 농구코트위에서 본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주치의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스탠 로버 :
"우리는 어딘가에서, 아마도 그의 집에서인듯 한데, 저녁식사후에 티비로 팔씨름 전국대회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랭킹 1위와 2위 선수들간의 대결이 진행되고 있을 때 내가 물었죠. '윌트, 자네 저기 나가본적 있나?' '저기 방금 진 선수, 랭킹 2위 선수 보이시죠? 전 저 친구는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어요.' 윌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손을 아무 힘도 안들이고 내리눌렀다. '그런데 저 랭킹 1위 선수는 제가 만나본적이 없네요. 하지만 제가 하나 고백하죠. 절 팔씨름에서 이겨본 단 한명의 인간은 짐 브라운(NFL역사상 최고의 러닝백이며 아마도 전 포지션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미식축구선수)입니다."
윌트는 정말이지 어떤 일에서든 2등이 되는건 싫어했죠. 그 후 슬개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을때 그는 자기 집에 체육관을 만들었습니다. 부상은 가을에 일어났었고 몇개월 후에 그는 필라델피아로 돌아와서 전화를 해왔죠. '놀러와요.'
그의 호텔방에 들어섰을때 윌트는 방 건너편에서 팬티만 입은 차림이었는데, 저는 그의 신체에 관해선 모든 수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깨를 바라보며 물었죠. '어떻게 된건가?'
그는 특유의 커다란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차이를 알아보시겠어요?' '차이를 알아보겠냐고? 자네 어깨가 몇인치나 커진 건가?' '4인치요-다리운동을 하는 동안 팔도 같이 단련했죠. 그거 알아요? 저 이제 짐 브라운을 이길수 있어요.'
짐 브라운에 대한 패배를 갚아주는 일은 그에게 부상회복만큼이나 중요했던 겁니다. 이 짐 브라운과 팔씨름에 관한 얘기가 사실이냐고요? 전 사실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자이자 작가로 30년간 저널리즘에 종사해온 데이비드 쇼가 체임벌린의 죽음 이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한 "내가 만난 중 가장 잊을수 없는 개성"이란 글에서 :
"...내게 월트를 특별하게끔 만든 점은 그가 한경기에 100점을 넣었다는게 아니었다....그를 특별하고 잊을 수 없게끔 한 것은 그의 코트 밖에서의 행동이며, 조명 밖에서의 모습이었다...우리는 모두 기억은행 안에 윌트의 수많은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 내게 가장 생생한 모습은 우리가 보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놀러갔다가 보트가 선착장에 들어올수 없게 된 날이다. 보트는 선착장에서 4피트정도 떨어져 있었다. 윌트는 일어서서 오른발로는 보트를 왼발로는 선착장 위를 밟고는 우리들, 다자란 성인 네명을 하나씩 차례대로 무슨 깃털베게처럼 들어올려서 선착장에 내려놓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웃으면서 그는 우리 모두를 선착장으로 옮겼다.
여기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놀랄만한 힘의 현시가 아니라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려는 의지와 친구를 돕기위한 결단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그 우스꽝스러움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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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첨엔 워낙 전설같은 얘기들이고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었지만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다 입을 맞춰 거짓말을 할리는 없다는 생각에 그냥 믿는게 낫겠다고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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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서 찾았다는 윌트 체임벌린의 기록들입니다. 출처:NBA 매니아
위키피디아에서 체임벌린에 대해서 찾아보다 보니 몇가지 수치적인 기록들이 있더군요.
아마 그의 운동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단은 유소년시절의 기록입니다.(고등학교 입학전) 1) 높이뛰기 6피트 6인치 2) 440 야드 달리기 49초 (440야드면 400m가 약간 넘죠) 3) 880 야드 달리기 1분 58.3초 4) 멀리뛰기 22feet (약 6.7m)
당시 1950년대 높이뛰기 세계기록이 210cm 부근이었는데 중학생정도가 거의 2미터를 넘는다는 건 경악할만한 것이죠.
대학시절 기록도 몇개 있더군요 1) 100야드 달리기 10.9초 (100야드면 91m가 약간 넘는데 100m 달리기를 하면 11초대에 너끈히 들어올 듯 하네요.) 2) 3단 멀리뛰기 50피트 이상(50피트면 15.24m인데 이분야의 현재 기록이 18m가 좀 넘습니다. 1950년대라면 세계기록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듯 하네요.) 3) Big Eight conference 에서 3년 연속 높이뛰기 부분 우승 (여덟개 대학을 묶어서 지구가 있었나봅니다.)
결론은 역시 사람이 아니다는 것.
빅맨치고 운동능력이 좋은게 아니라 모든 선수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운동능력을 지녔으리라 보여집니다.(새삼스럽게) 2m를 넘을 수 있는 점프력이면(당시에는 배면뛰기가 정착이 안되었던 때였죠) 백보드 상단에 동전올려놓기도 빈말은 아니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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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유투브에서 본 체임벌린동영상에 달린 리플
WIlt would lose to ali,but just so u know wilt had amazing stregnth. He benched pressed 500 lbs and he has knocked out a few basketball players. Im talking knocked out cold. He chased Kareem one tim on the court too. He once grabbed Tom Heinsons jersy,double reincforced nylon jersey and tore it apart with his pointer finger. That part of the jersey that is on the shoulder area
I dont have proof,but let me correct myself,I actaully heard he benched 600 lbs max and when he was in his 50's he was still benching 500 lbs. That was one of the things wilt was known for im surprised u never heard that. As far as not looking like he could bench 500 lbs,i beg to differ. If u see him with no shirt on he was all muscle. 7 feet 1 and over 300 lbs. He looks alot thinner in this video cuz he's wearing a suit, Its no secret that wilt had amazing strentgh |
첫댓글 윌트 체임벌린이 농구 뿐 아니라 다른 운동에서도 발군의 기량이었다는 소리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었는데 이걸 보구실히 알게 되었네요 잘 읽구 갑니다
체임벌린은 머리도 좋아서 15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하고 단순히 표현만 안 것이 아니라 시까지 지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15개 언어 진짜인가요 ㄷㄷㄷ; 무톰보가 5개국어 하는건 알고있었는데 새발의 피였군요;;
진짜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스태미너라.ㅎㅎ..
15개국어 --...사람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