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에 실린 내용 입니다.
워밍업
1.서설
찬양인도자는 찬양으로 끝장을 봐야한다. 찬양인도자는 말에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에 집중하고 찬양인도자는 찬양에 집중할 때 가장 정성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은혜는 규모가 아니라 준비된 예배자에게서 나온다.
2.예배에서 찬양이 정말 중요한가?
종교개혁전통에서 시대를 복음앞에 통곡시켰던 설교자들은 찬양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이 고난을 이긴 힘은 찬양에 있다고 고백했다. 존 웨슬리는 설교전과 후에 꼭 찬송을 했으며 동생과 함께 6,500편에 이르는 찬송시를 지었다. 찰스 하돈 스펄전은 항상 자신의 집회에 복음성가 가수를 대동했다.
3.찬양단을 만든다고? 뭐부터 해야지?
모든 노래는 감성적이다. 심지어는 군가조차도 애국심, 전우애 같은 감성에 기초해 있다. 찬양이 예배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기초는 믿음,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높은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렬한 순교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찬양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더욱 열렬하게 하는 사랑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것은 찬양의 중요성에 비해서 찬양단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투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절실한 것은 인식적인 투자이다. 찬양단을 만들고, 찬양인도자를 세우는 것이 예배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요즘 웬만한 교회는 성가대에 성악을 전공한 솔리스트와 반주자, 지휘자를 세운다. 대부분이 초빙되어 온 유급사역자이다. 더 수준 높은 찬양을 부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 예배 안에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과연 수준 높은 합창을 들었다는 만족인지, 아니면 찬양에 빠져서 충만하게 누리는 은혜인지. 성가대와 설교자가 오늘 선포될 말씀에 대해 은혜를 공감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은혜로운 찬양을 드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찬양단을 구성하고자 하는 교회는 물질적 투자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된다. 찬양인도자를 어떤 사람으로 세울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찬양인도자는 설교자와 갚은 신앙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가 오늘 예배에서 나눌 은혜의 초점을 잡았다면 찬양인도자도 그 초점에 몰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되고 훈련된 찬양인도자가 필요하다.
노래 좀 하고, 기타 좀 튕기면 찬양인도자가 되고, 악기 몇 개 들여놓으면 찬양단이 꾸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찬양단 꾸렸다가 만족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부지기수이다. 악기를 구비하기 위해 꽤 많은 재정을 투자했는데 청년들도 여럿 끌어 모아서 찬양단을 만들었는데 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찬양인도자를 준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된 찬양인도자 한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열 개의 찬양단보다 강력하다. 비록 그가 홀로 기타를 튕기며 찬양인도를 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4.Warming Up!
찬양단은 설교자와 깊이 교감해야 한다. 따라서 악기와 시설을 구비하는 물적 투자보다는 찬양인도자를 준비시키는 인적 투자가 우선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찬양단이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반드시 준비되어야 할 사항이다. 워밍업이 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다음호에서는 ‘찬양단을 구성하기 위한 기획안’을 만들어 보기로 하겠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전부이다!
1.관성의 법칙
물리학에는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있다. 모든 물질은 자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성의 법칙은 물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나 일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자기가 하던대로 하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번 습관이 들면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후 모든 결과가 좌우된다.
찬양단을 꾸릴 계획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만약 찬양단을 이미 조직했다면 첫 단추가 잘 끼워졌는지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사실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잘 준비하고 차근차근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곳은 관성을 깨뜨려야 한다. 당연히 더 어렵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체질개선에 나서야 한다.
기획을 시작하며 여러분께 신신당부한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데만 집중하시라. 절대로 서두르지 마시라. 첫 단추만 잘 끼우면 90퍼센트는 성공한 것임을 명심하시라!”
2.찬양인도자가 첫 단추
교계신문을 보다보면 사역자를 구하는 구인광고를 자주 보게된다. 주로 관리집사나 부목회자를 구하는 내용인데 가끔은 찬양인도자를 구하는 곳도 있다. 내용은 이렇다. “악기에 능하고, 성가대 지휘와 찬양인도에 재능 있으신 분”
이렇게 구해진 사역자들은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 광고시간에 교우들 앞에서 소개하고 찬양단원들과 인사하면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예배에 선다. 말 그대로 ‘재능’에 의지해 사역하는 것이다.
찬양단을 만들고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이 여기에 있다. 유급 찬양사역자도 세우고, 큰 돈 들여 악기도 사고, 매월 상당한 운영비까지 지출하는데 원하는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찬양인도자,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찬양인도자는 ‘음악적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찬양은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재능’과 ‘은사’를 혼동한다. 아무리 좋은 재능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재능은 은사가 아니다. 좋은 재능이 사역자들과 잘 소통되고 은혜로운 도구가 될 때 은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은사가 아니라 교회를 해치는 독사가 된다.
찬양인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다. 어느 목회자든지 찬양인도자를 세우는데 음치를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음치이면서 찬양인도자를 꿈꾸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찬양인도자에게 필요한 재능은 보통이거나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재능이면 된다. 그 정도 재능만 있으면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찬양인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의사소통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깊은 교감이 일어날 정도의 의사소통이다. 하나님과 의사소통, 설교자와 의사소통, 찬양단원들과 의사소통, 청중들과 의사소통이 모두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 찬양인도자의 영성이 확보된다. 마치 네 다리로 지탱하는 의자처럼 말이다.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다 보면 웬만한 교회에는 다 청소년부 찬양단이 있다. 가끔은 중고등학생이 찬양리러들 하는 경우도 있다. 하는 것을 보면 자기들끼리 신나서 럴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끼리만 재미있다는 것이다. 찬양단원들과 의사소통은 잘 되지만 나머지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고등학생을 찬양읹도자로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 중·고등학생에게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할 재간이 없다.
3. 설교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라!
찬양인도자에게 가장 결여되기 쉬운 것이 설교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 인도자와 청중의 만남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청중 사이에 있는 예배인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배인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그것은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찬양인도자를 오랜 기간 준비시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설교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 설교자도 변해야 한다, 찬양인도자가 아무리 설교자와 교감을 하고 싶어도 설교자가 예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설교자가 아무리 예배에 대 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해도 찬양인도자가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배전에 설교자와 찬양인도자는 예배의 초점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고 교감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서로간에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는 한 순간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따라서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시키지 않으면 준비된 찬양인도자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찬양인도자를 준비시키는 교회가 준비된 찬양인도자를 얻을 수 있다.
4.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전부이다!
찬양단 기획의 시작은 찬양인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어떤 찬양인도자를 세우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평범한 노래 실력에 통기타 하나만 가지고도 예배를 훌륭하게 인도하는 찬양인도자가 있는가 하면, 화려한 노래 실력에 완벽한 밴드를 가지고도 예배를 망치는 찬양인도자가 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는 예배와 설교자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찬양인도자를 세우는 것은 찬양단 기획의 시작이자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