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회사 13
(조선책략)
청나라 외교관 황쥰센이
조선의 외교정책에 대해 쓴 책으로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일본, 청국 등 동양 3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1876년 한일수호조약 (강화도 조약)을 맺고
일본에 개항한 조선은
그해 5월 1차 수신사로 예조참의 김홍집을
일본에 파견한다.
김홍집은 일본에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국제정세 탐문 및 국제법과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청국(청나라) 공관을 왕래하면서
주일 청국 공사와 참사관 황쥰센 등과
외교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황쥰센이 지은
'조선책략'을 고종에게 바친다.
이 책은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정책이 핵심내용으로
황쥰센은 러시아가 이리처럼 탐욕하여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정벌에 힘써온지
300여년 만에 드디어 조선까지 탐낸다고 하면서
조선이 이를 방어하기 위한 책략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어지고
미국과 연결하라는 뜻인데
황쥰센은 중국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로
중국이 물질이나 여러면에서
러시아를 능가하고 조선은 천 여년 동안
중국의 변방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양국이 더욱 우호를 증대한다면
러시아가 중국이 무서워서도
감히 조선을 넘보지 못한다는 것이며
일본은 조선이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로
과거부터 통교해 온 국가로 조선과 일본 중
어느 한쪽이 땅을 잃으면 서로 온전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형세이므로
서로 결합해야 하며
미국은 조선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남의 토지나 인민을 탐내지 않고
남의 나라 정사에도 간여하지 않는
민주국가로서 약소국을 도우려 하니
미국을 우방으로 두면
화를 면할 것이라 하며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무사하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외교정책으로
조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시기를 놓쳐 위세에 눌려 조약을 맺게되다면
자주권과 이익을 탈취당하게 되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책략'은 당시 완고한 조선인의 생각보다는
확실히 한 걸음 앞선 이론이었으나
책략이 부분적으로 청국이
조선간섭정책을 지원하며
일본의 조선침투전략을 시인하는 경향이 다분해
그 한계성을 드러냈다.
또한 러시아의 침략을 경계해
미국과의 수호통상을 적극 추진하려는 것도
청국의 의도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청국의 이홍장이 배후에서
조선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과의 조약체결을
권유한 것과 관련해 볼 때
조선책략의 내용은 오직 저자인
황쥰센의 의견이 아니라
어느 정도 청국 정부 당국자들의
의견이기도 했다.
따라서 조선책략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중국인이 본 국제적 안목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선책략은 중국인 주일 외교관이
쓴 책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조선에 유입된 후 조선조정의
반향은 상당히 컸다.
조선조정은 연일 찬, 반 논의가 격렬하게 전개되고
재야에서는 보수 유생들을 중심으로
거국적인 위정척사 운동이 일어났다.
1880년 11월 7일 유원식의 척사상소를 비롯하여
1881년 2월에는 이만손을 필두로 한
'영남만인소'는 전국의 척사풍조를 자극하여
척사상소 운동을 선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책략은
당시 조정을 비롯한 집권층에게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이후
조선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정책을
추진 및 서구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조선책략은 단순한 책자가 아니었다.
그 책으로 인해 조선은 많은 진통도 겪었으나
결국은 서구문물을 수용하며
근대화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올리면서 살짝 어려울 수 있으나
조선책략에 대해 아는 것이
이후 조선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부연설명을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