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
지은이: 프란치스카 비어만
책벌레 여우 아저씨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나도 책벌레가 될 수 있을까?
종이 냄새를 맡을 코와 책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
도서관에 갈 때 필요한 물건은?
끌고 다닐 수 있는 낡고 커다란 가방.
심심할 때 할 만한 일은? 털모자 뒤집어쓰고 거울보기.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은?
이것저것 조금씩 맛을 보고 고르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면 냄새나는 침을 듬뿍 발라 찜하기!
주의: 이 책은 절대 읽기만 하고 뜯어 먹지는 마세요!
여우 아저씨는 책을 좋아했어요. 좋아해도 아주 많이 좋아했어요. 그래서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소금 한 줌 툭툭 후추 조금 톡톡 뿌려 꿀꺽 먹어치웠지요. 이렇게 여우 아저씨는 책에서 지식도 얻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우 아저씨는 워낙 식성이 좋아서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배가 고팠어요.
하루에 적어도 세 끼는 먹어야 했는데, 책값이 좀 비싼가요. 가난뱅이라 책을 맘껏 살 수 없는 여우 아저씨는 벌써 가구들을 모두 전당포에 맡겨 버렸어요. 전당포는 물건을 맡아 두고 돈을 꾸어 주는 곳이지요. 이제 아저씨에게 남은 거라고는 책상 하나, 낡은 침대 하나, 간닥거리는 의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뱃속에 책을 쏘옥 쏙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먹고 싶은 마음도 쑤욱 쑥 더 자라났어요. 여우 아저씨는 밤낮없이 배가 고팠고, 힘이 없어 책도 잘 보이지 않았어요. 눈에 힘을 주어 두 번씩은 읽어야 했는데,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요.
그렇지만 아저씨가 누군가요? 꾀쟁이로 유명한 여우잖아요! 아저씨는 벌써 오래 전부터 한 건물을 눈여겨보아 두었답니다. 그 곳에 있는 책장들엔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어요. 아저씨가 어릴 적부터 단골로 다녔던 길모퉁이서점보다 열 배 백 배 아니 천 배나 많은 책들이 있었어요. 그 건물에선 구수한 종이 냄새가 솔솔 풍겨왔어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 이게 웬 떡!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방들마다 책으로 가득 찬 많은 책장들이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었어요.
‘으음 맛있겠어, 맛있겠어!’
여우 아저씨는 쩝쩝 입맛을 다셨어요. 이 곳에선 공짜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았죠. 그 후 아저씨는 매일매일 도서관에 갔어요. 과연 어떤 책들이 입맛을 당기는지 살짝 알아보려고, 쪽쪽 핥아 보고 킁킁 냄새 맡고 이것저것 몇 쪽을 맛보았지요.
그리고 입맛에 맞는 것을 찾으면 가방에 쓰윽 집어넣고 집으로 왔어요.
여우 아저씨는 꽤 오랫동안 ‘도서관 나들이’를 다녔어요.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사람들이 누군가 책을 갉아먹는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지요. 도서관 사서도 많은 책들이 침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사서는 책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한 전문적인 일들을 하지요. 그런 책에서는 꽤나 역겨운 짐승 냄새가 나지 뭐에요. 게다가 어떤 책들은 송두리째 없어져 버렸고요. 정말 이상한 일이죠. 사서는 왜 그런지 꼭 알아내겠다고 결심했어요.
사서는 어쩐지 여우 아저씨가 수상쩍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우 아저씨는 빌려간 책을 아직 한 권도 돌려주지 않았어요. 그 때부터 사서는 여우 아저씨의 행동을 샅샅이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사서는 너무 놀라 넘어질 뻔했어요. 글쎄 여우 아저씨가 하는 행동 좀 보세요. 여우 아저씨는...먼저 지리 책 몇 권을 킁킁 냄새 맡아 보곤 역겹다는 듯 도로 책장에 꽂았어요. 그 다음 러시아 문학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어요. 거기서 특별히 멋진 책을 뽑아 들더니 번개처럼 빠르게 소금과 후추 병을 꺼내 휘리릭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책에다 톡톡 양념을 뿌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숨을 고르며 뜸을 들인 뒤 덥석 책을 물었답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의 표지와 독서 카드까지 몽땅 먹어치웠어요. 아주 맛있는 아침 식사였지요. 아저씨가 다른 책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자 숨어 있던 사서가 확 튀어나왔어요.
“책을 먹다니!”
사서가 화가 나서 외쳤어요.
“당장 그 주둥이를 우리 책에서 떼지 못해요!”
아이쿠 깜짝이야, 놀란 여우 아저씨는 입 속에 든 종이 조각들을 얼른 삼키면서, 그 커다란 눈으로 사서를 쳐다보았어요. 아저씨의 순진한 표정은 누가 봐도 가슴 찡할 정도였죠.
“책은 그렇게 이용하는 게 아닙니다!”
사서는 으름장을 놓으며 여우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오늘부터 당신은 출입금지에요!”
여우 아저씨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어요. 이제 좋은 시절은 다 끝나 버린 거에요.
읽을 것도 먹을 것도 구할 데가 없어진 불쌍한 여우 아저씨. 아저씨는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는 광고지라든가 공짜 생활 정보 신문들을 먹으며 겨우겨우 버텼어요. 심지어는 집 뒤에 있는 헌 종이 수거함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음식만 먹은 여우 아저씨는 마침내 소화 불량까지 걸리고 말았어요. 뿐만 아니라 비단결처럼 곱던 털도 점점 윤기를 잃어 갔지요.
얼마나 책이 먹고 싶었던지 여우 아저씨는 밤마다 꿈을 꾸었어요.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 나오는 꿈을요.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뱃속에선 여전히 꼬르륵 소리가 났지요. 불쌍한 처지였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까지 남에게 절대 폐 끼치지 않고 살아왔는데...도서관 사건만 빼면 말이죠.
여우 아저씨는 뚱뚱이 할머니한테 털모자를 빌렸어요. 털모자를 푹 눌러 쓰고 가방을 메고 아저씨는 길을 떠났어요. 바로, 길모퉁이서점을 향해!
서점에 도착한 여우 아저씨, 문을 콰당 박차고 들어가 외쳤어요.
“손 들엇! 이건 장난이 아니다!” “당장 내 가방에 책을 넣어라! 허튼 짓을 하면 엉덩이를 물어 줄테다!”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서 꼼짝도 못 했어요. 서점 주인은 얼른 가방 가득 책을 채워 주었습니다. 24권이나 되는 두꺼운 책들로 가방이 채워지자 여우 아저씨는 서점을 나왔어요.
끄응, 이렇게 무거울 수가!
‘다음 번에는 식품점에서 손수레를 빌려야겠어.’
여우 아저씨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난생처음 해 본 강도짓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
여우 아저씨는 집에 오자마자 첫 번째 책을 넘기며 읽기 시작했어요. 일곱 번째 책을 게걸스레 먹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어요.
“당신을 체포하겠소!”
하마처럼 배가 불룩한 경찰관이 소리쳤어요.
“책을 훔치는 아주 못된 짓을 했기 때문이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강도가 여우 아저씨란 걸 알아보았던 거에요. 뚱뚱이 할머니의 털모자를 썼는데도 말이죠.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여우 아저씨는 사정을 늘어놓고 백 번 천 번 아니 수십만 번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범죄는 범죄요.”
경찰관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아저씨를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어요.
이제 여우 아저씨에겐 물과 빵밖에 없었어요. 읽을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아무튼 여우 아저씨에겐 읽을 것은 전혀 주지 않았어요. 독서 절대 금지라는 벌이 내려졌거든요.
‘이건 옛날 옛적에나 썼던 잔인한 방법이로군.’
여우 아저씨는 생각했어요.
‘난 사흘하고 반나절도 더 살지 못할 거야.’
꼭 그럴 것만 같았어요.
여우 아저씨는 너무 괴롭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여우 아저씨는 교도관 빛나리 씨를 꾀었어요. 이제껏 책에서 읽은 온갖 듣기 좋은 말은 다 했지요. 교도관은 감옥에서 일하며 죄수를 돌보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종이와 연필을 얻는데 성공했어요. 여우 아저씨는 밤낮없이 종이에 글을 썼어요. 마치 연필에서 생각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어요.
글을 쓴 종이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나중에는 종이가 감방에 가득 차서 잠 잘 자리도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저씨는 누울 필요도 없었어요. 정말 조금도 쉬지 않고 글을 썼거든요.
이 주일 후, 드디어 책이 만들어졌어요! 무려 923쪽이나 되는 책이었어요.
‘두툼한 햄 덩어리 같군!’
여우 아저씨는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였어요. 빛나리 씨도 뛸 듯이 기뻤어요. 차를 날라다 주며 여우 아저씨가 쓴 글을 살짝 엿보았는데 아주 재밌었거든요.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죠. 빛나리 씨는 연필도 뾰족하게 깍아주는 훌륭한 조수 노릇을 했어요. 그래서 여우 아저씨는 감사의 뜻으로 빛나리 씨에게 제일 먼저 책을 보여 주었어요.
빛나리 씨는 이틀 동안이나 일하러 가지 않았어요. 여우 아저씨가 쓴 글을 다 읽고 난 빛나리 씨는 깨달았어요.
그 여우, 굉장한 작가인걸!
얼마나 감격했는지 빛나리 씨도 하마터면 종이를 뜯어 먹을 뻔했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감옥으로 돌아갔어요. 곧장 간 것이 아니라 어딘가 들렀다 갔어요.
여우 아저씨는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이러다 책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무럭무럭 솟았죠. 그러나 빛나리 씨가 종이 뭉치를 들고 나타났을 때, 아저씨는 너무나 좋아서 팔짝팔짝 공중제비를 넘었어요.
여우 아저씨는 행복했어요. 쩝쩝거리며 책을 먹는 동안 빛나리 씨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어요. 소설의 멋진 말투와 기발한 아이디어 그리고 너무도 놀라운 결말에 자기가 얼마나 감탄했는지를요. 여우 아저씨는 먹으며 듣고 또 들으며 먹었어요!
“여우 선생, 당신 소설을 진짜 책으로 만들면 어떻겠소? 그러니까 서점에서 팔 수 있는 그런 책 말이오!”
교도관 빛나리 씨가 말했어요. 서점이라는 말에 여우 아저씨는 깜짝 놀랐어요. 입에 물었던 종이 몇 조각을 떨어뜨릴 만큼이나요. 그러나 빛나리 씨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가라앉았지요.
“흐음.”
여우 아저씨는 주둥이를 닦으며 말했어요.
“저야 뭐.”
빛나리 씨가 들렀다 온 곳은 바로 복사 가게였어요. 그 책을 전부 복사했던 거지요. 다행이었죠. 안 그랬다면 그 책은 여우 아저씨의 뱃속으로 영영 사라지는 거잖아요. 똥으로 나온 걸 읽을 수도 없구요.
이제 이야기는 다 된 셈이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모든 일은 꼭 동화 속에서처럼 진행되었어요.
빛나리 씨는 교도관 일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렸습니다. 여우 아저씨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열일곱 나라의 말로 번역되었어요. 베스트셀러는 굉장히 많이 팔린 책을 말해요. 또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극장에서도 상영되었어요. 여우 아저씨 입맛에 영화 필름은 별로 맞지 않았지만, 영화도 훌륭한 예술이지요.
여우 아저씨는 문학에서 이룩한 업적을 인정받아 일찍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아저씨는 슬그머니 감옥에서 풀려났고, 사람들은 여우 아저씨의 지난 일을 이러쿵저러쿵 들추지 않았어요.
여우 아저씨는 이제 대단한 부자가 되어 책이라면 맘껏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아저씬 그러지 않았어요. 자기가 쓴 책들이 특별히 맛있었거든요.
여우 아저씨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작가가 된 여우 아저씨를 기사로 다루고, 수많은 비평가들이 여우 아저씨의 작품을 연구했어요.
다만 왜 여우 아저씨의 모든 소설엔 언제나 소금 한 봉지와 후추 한 봉지가 들어 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답니다.
쉿, 아무에게도 말하지마세요. 우리들만의 비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