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1. 시작 성가 (발자취 또는 전례에 맞는 성가)
2. 기도 (발자취 158쪽 집회 시작 기도 또는 자유 기도)
3. 출석 확인 및 인사
4. 회칙
5. 생활 묵상
6. 생활 나눔
7. 공지사항
8. 마침 기도(발자취 159쪽 또는 자유 기도)
회칙 제2조
재속프란치스코회는 프란치스코의 가족 중에서 고유한 위치를 가지며, 온 세계에 퍼져 있고 모든 신자들 그룹에 개방되어 있는 가톨릭 형제회들의 유기적인 단일 조직체이다. 이 형제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은 성령께 인도되어 각자 재속 신분으로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한다. 그리고 서약을 통하여 교회가 인가한 이 회칙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처럼 복음 생활을 추구한다.
생활 묵상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40여 년의 신앙 생활과 재속프란치스칸으로서의 20여 년의 시간을 어떻게 살랑하며 살았는지, 기도와 봉사와 사랑의 조화를 이루었었는지 돌아본다.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넘어지고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의 말을 전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봉사하면서 부딪치는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하지만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넘어졌다가 다시 또 일어선다. 그리고 다시 또 일어설 것이다.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처음 입회했을 때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 했던 분, 성직자, 수도자의 부모나 친척들이 많아 참 좋은 회에 가입했다 하셔서 자긍심을 가졌는데, 어느덧 평의원이 되어 좀 더 가까이 회원들을 알게 되니 안 좋은 모습들이 보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듯이 개성과 아집이 강해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평의원직도 쉽게 사임해 가난, 겸손, 형제애와는 거리가 먼 모습들을 보게 되어 실망감에 그만 퇴회하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내 자신도 남을 흉볼 입장은 아닌 것 같았다. 프란치스코의 한 가족으로 종신서약까지 하고 나서 어떤 형제자매가 마음에 안 든다 하여 가족을 떠나야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종신 서약 때 회원들 앞에서 한 약속을 끝까지 이행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 내게 사부님은 권고 14로 깨우침을 주신다.
'여러 가지의 기도와 일에 열중하면서 자기 몸에 많은 극기와 고행을 행하지만, 자기 육신에 해가 될 것 같은 말 한마디에, 혹은 자기가 빼앗길 것 같은 그 무엇에 걸려 넘어져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 3,16).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으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마태 5,44)고 하셨고 사부님께서도 형제애가 극진하셔서 죽기까지 늘 내어주는 사랑을 하셨다. 그런 주님과 사부님을 따르겠다고 모인 우리는 부족한 상태로 프란치스코 영적 가족으로 불림 받았기에 자신 안의 '까로'(caro육肉)을 없애고 주님의 영을 모시기 위해 성체성사와 기도로 무장을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형제자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도록 노력하고 주님과 사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끊임없는 회개와 복음 생활로 사랑의 완성을 향해 함께 가야겠다.
프란치스코처럼
프란치스칸 성가 2번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게' 몇 번을 되뇌며 성가를 부른다 두 팔을 위로 올리고 기쁘고 힘차게 소리로 부르며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불러야 제맛이 나는데......, 요즘 거리두기 4단계로 월례회, 구역모임을 매월 진행이 조심스러워 안타깝다. 월례회에 참석해도 서로 반가운 표시는 눈인사로 절제된 인사 나눔 정도로 한다. 언제 성가를 힘차게 불러 보았던가, 월례회에서 영보님께서 미사에서 "우리 코로나 빨리 보내고 성가를 반주만이 아니라 크게 목청껏 불러 봅시다." 하시는데 울컥했다.
우리를 꽃처럼, 새처럼 아름다운 평화의 사도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불러주신 그 임께서 회칙을 제시하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조금 더 쉽게 하느님께 나아가게 도와주신다. 때로는 사랑의 길로, 때로는 나태한 모습을 다그쳐 주시며, 격려와 용기도 주시고 나를 자랑스러운 재속프란치스칸이 되게 옆에 다가오셔서 속삭이신다.
입회1반 때 산청 성심원에 피정을 가서 나환우 방을 찾아 뵙는 시간이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만나 단맛을 느껴 와락 껴안으며 가난부인을 생각했는데 나는 그분들의 얼굴 모습에 너무 놀라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손을 잡으려는 할머니에게 내 손을 내어드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본명이 무어냐고 물으시고 기도해 줄 테니 가족들의 본명도 써놓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용기가 없어서 써 놓고 오질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했다. 왜 그랬을까? 함께 다녀온 친구는 얼른 가족 이름과 세례명을 써 놓으면서 "꼭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다. 한편 부러웠으나 계속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서약 후 프란치스칸을 그만 두었다. 기도만 받고 어디로 갔나? 난 아직도 가난부인을 찾고 있을까? 언제까지? 그러나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게 복음적 생활을 추구하며 온 세상을 가보자!
재속프란치스칸으로 부름 받음
"형제자매들은 성령께 인도되어 각자 재속 신분으로 사랑이 완성을 위하여 노력한다."라는 구절은 재속프란치스칸의 정체성, 특히 재속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재속프란치스칸들에게 세상은 구원과 성화를 위해 넓게 펼쳐진 텃밭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크게 보면 공동체가 힘을 합하지 않고서는 넓은 텃밭을 경작하지 못할 것이다. 힘을 합해 길러낸 열매는 공동체의 기쁨이고, 이것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재속프란치스칸으로 부름 받은 나는 때때로 자문자답을 해본다. 과연 나는 '재속프란치스칸'이라는 명칭에 합당한 언행을 하고 있는지? 성령으로 인도된 사람,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 회칙을 지키기로 서약한 사람인지에 대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사실 재속프란치스칸이 되지 못했다면, 결코 도전해 보지 못했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공동체 형제자매들과 함께한 활동 안에서 따뜻한 형제애를 나누고, 나눔을 실천한 기쁨과 보람을 느꼈었다.
초기 양성기 때부터 시작된 사도직 활동은 강화도 "통진 프란치스코네"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역 근처 쪽방촌이라 불리는 "한사랑 공동체"에서의 기쁨도 잊을 수 없다. 담당 신부님과 공동체 형제님들과 함께 지난 얘기를 들으며, 웃고 울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흔히 "마석 글라라의 집"으로 불리는 어르신 자매님들의 공동체에서도 점심 준비와 자매님들과 함께하는 미사, 대화 나누기를 하였는데, 늦은 오후에 떠날 때가 되면 헤어지는 게 아쉬워 계속 손만 흔들고 계셔 마음 아팠다. 또 프란치스카 ㄴ평화대행진, 제주에서의 5박6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과 참가자들이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열띤 단합대회를 한 후, 전국에서 모인 환경운동가들과 연대해 매일 제주 일대를 행진했다. 사뭇 의연함과 결연함이 넘쳤기에 제주 본당 교우님들이 만들어주신 주먹밥 한 덩이가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탈원전, 탈 석탄, 탈 송전탑 세상을 위한 국토도보순례단의 마지막 종착지인 서울에서 행진하기로 한 날, 전국에서 야간열차와 새벽버스로 청량리역에 모인 일행과 빗속을 뚫고 광화문과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뜻을 같이한 프란치스칸 형제자매들, 교우들, 수녀님들이 함께해 힘이 솟았다. 장장 세 시간을 쉬지 않고 걷다보니 광화문이 나왔고, 다시 한숨 돌리고 효자동까지 행진 후, 대표단만 남고 우리는 정동회관으로 돌아와 파견미사 준비를 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새벽부터 쳥량리역에서 효자동까지 빗속에 걸어 봤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전혀 고달프지 않고, 오히려 미사 내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재속프란치스칸인 내 자신이 대견해졌다. 해냈구나!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는 벌써 팔순을 넘었다. 이제 백 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안에서 이미 뿌리를 잘 내렸다고 생각되지만,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오늘도 성장 중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또한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르는 복음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생활 나눔
1.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경험했었나요?
2. 그 무엇도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경험의 순간들을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