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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동산(코트디브와르를 하나님께...)
 
 
 
카페 게시글
아프리카를 알자 스크랩 코트디브와르-1
김형구 추천 0 조회 571 08.09.24 15: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코트디브와르  국기

     

     

     

     

     

     

    공식명칭 : 코트디부아르공화국(Republic of Côte d'lvoire
    인구 : 17,655,000
    면적 : 320,803㎢
    수도 : 아비장
    정체·의회형태 : 공화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 프랑스어
    독립년월일 : 1960. 8. 7
    화폐단위 : 아프리카공동재정프랑(CFA franc/CFAF)
    국가(國歌) : L'Abidjanaise

    서아프리카의 공화국

     

     

     

     

    자연환경
     
    코트디부아르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좁은 해안지역, 적도 삼림지대, 사바나 지역 등 3개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대너비가 64km를 넘지 않는 해안지역은 대체로 굴곡이 완만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적도 삼림지대의 우림(雨林)은 지난 1세기 동안 크게 줄어들어 현재는 라이베리아와의 국경을 아래축으로
    하고 아비장의 북쪽을 정점으로 하는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다. 현재 이곳의 나무 대부분이 커피·카카오·
    야자씨 같은 대농장 작물 재배를 위해 베어진 상태이다. 북부의 사바나 지역은 인구가 희박한 고원으로,
    가축사육에 알맞은 노지(露地)가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대략 북위 8°선을 경계로 남과 북의 2개의 기후대로
    구분된다. 월평균기온 변동량이 적으며, 두 지역 모두 연평균기온은 26∼28℃이다. 북부는 남부보다 건조한
    편으로 연평균강우량이 1,400㎜이고, 12∼2월의 건기에는 연강우량의 약 2%밖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부는
    연강우량이 1,500∼2,000㎜에 달하며, 건기가 뚜렷하지 않다. 우림에는 아프리카마호가니와 이로코(아프리카
    티크나무)와 같은 값비싼 수종(樹種)이 자라며 거대한 숲돼지, 봉고(적갈색의 영양류), 해우(海牛)와 같은
    희귀동물을 포함한 야생동물이 발견된다. 북쪽의 사바나 지역에는 약 10종의 영양이 사자 및 코끼리와 함께
    서식한다. 다이아몬드가 중요한 광물자원이다. 앞바다에서는 석유 및 천연 가스가 개발되고 있다.
     
     
    국민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60개 이상의 전통적인 독립부족 가운데 큰 집단은 베티족·세누포족·바울레족·아니이족·말링케족
    ·단족·로비족 등이다. 베티족은 콰어파(語派)의 한 갈래인 크루어에 속하는 언어를 쓰고, 바울레족과 아니이족은 콰어파의
     트위어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이들 집단은 주로 이 나라의 남부에 자리잡고 있다. 볼타어(구르어)를 쓰며, 북부에 사는
     집단으로는 세누포족 외에 로비족과 보보족이 있다. 말링케족과 단족은 주로 중서부에 거주하며 만데어를 사용한다.
    이 집단들은 각각 국경외곽지대에서 무리를 이루며 사는 수많은 집단들과 동족 관계를 맺고 있다. 전통적인 정령신앙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최근에 이슬람교 신봉자의 수가 늘어 전체인구의 약 1/4을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주교구에
    소속된 로마 가톨릭교 신자들은 인구의 약 1/5을 차지하며, 개신교 가운데는 감리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세계평균보다 훨씬 높으며, 연평균인구증가율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 전체인구의 거의 절반이
    15세 미만이며, 전체인구 가운데 절반 정도가 도시에 거주한다. 정부는 영아와 산모의 이환율과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공공의료시설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경제사정이 나쁜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포함해서 이민율이
     높은 편이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비(非)아프리카인으로서 최대 인구집단은 프랑스계와 레바논인을
    비롯한 아랍계 주민이며,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경제
     
    코트디부아르는 생산성 높은 열대작물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경제 상황은 검은
    아프리카(아프리카 대륙의 흑인지배지역)에서는 가장 발달되었으며 독립한 이래 거의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와 거의 같은 속도로 성장했지만, 1인당 GNP는 세계표준에 비해 비교적 낮다. 농업은 GNP의
    약 1/3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3/5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코코아 생산국이며, 커피의 최대 생산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 코코아와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커피가 목재와 함께 수출액의 3/5을 차지한다.
     
    한정된 품목에 집중된 이러한 의존도는 바나나·면화·고무·야자 등 생산 증대를 통해 줄여나가고 있다. 주요식량작물은
     마·플랜틴·카사바·쌀·옥수수·기장 등이다. 광업·제조업·공공사업은 GNP의 1/6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지만, 고용 인구는
    총노동력의 약 1/10밖에 되지 않는다. 경공업을 위주로 하는 공업 생산은 독립 이래로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공업의 토착화를 위한 정부의 시도는 민간투자회사와 사업기술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시설로는 제분소,
     정유소, 통조림·양조·담배·섬유·플라스틱 공장, 제재소, 차량 조립공장 등이 있다. 1980년에 시작된 앞바다의 석유생산이
     각종 광산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전력은 주로 수력발전에 의존한다. 야심적인 개발계획은 국영회사와
    농경기업들에 의한 공채의 증가와 막대한 외국차관의 원인이 되었다. 인플레가 증가했고, 인구 역시 급속도로 팽창하여
     실업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주요 무역상대국은 프랑스·네덜란드·미국·독일 등이다.
     

     
    정치·사회
     
    코트디부아르는 정치적으로 중도파인 코트디부아르 민주당(Democratic Party of Côte d'Ivoire/PDCI)이 다스리는
     1당체제의 공화국이다. 1960년에 제정된 헌법은 보통선거에 의해 5년 임기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막강한 정치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므로, 각료 임명권을 가지며,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입법권은 국회에 있으며, 175명의 국회의원은 성인 일반투표에 의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국회의원
    선거는 경선제이지만, 모든 후보는 PDCI 소속이다. 코트디부아르에서 가장 역량 있는 정치가는 PDCI의 창설자이며, 1960년
    독립한 날부터 계속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펠리스 우푸에 부아니이다. 국민보건과 위생 상황은 서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
    보다는 다소 낫다고 볼 수 있으나 대체로 불량하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말라리아·이질·인도마마·결핵·성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평균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한다. 초등학교는 의무제이지만, 전체 취학연령 아동의 3/4 정도만이 학교에 다닌다.
    교육제도의 큰 문제는 교실과 코트디부아르인 교사의 부족이다. 중등학교 교육은 프랑스 국적을 가진 교사들이 많이 맡고 있다.
     
     

     
    역사
     
    초기 정착민인 코트디부아르의 해안 원주민 부락민들은 해안지방 내에서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으나 유럽 열강이
    상아와 노예를 얻기 위해 15세기부터 조금씩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7세기말 아시니와 그랑바상에 교역소를
    설치했다. 19세기에 프랑스는 현지 추장들과 조약을 체결했고, 1893년에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설정되었다.
    1908∼18년에 무력으로 프랑스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1903년에 해안지역에서부터 부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1935년 보보디
    울라소(지금의 부르키나파소에 있음)까지 연결되었다. 아비장 항(港)은 1950∼54년에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0∼42년 코트디부아르는 비시 정권의 통치령으로 있다가 1946년 프랑스 연합(French Union:프랑스 본국과 해외식민지
    ·보호령·신탁통치령을 포함한 전 프랑스 영토의 총합체, 1946년에 창설되었다가 1958년 프랑스 공동체로 개편됨)에 포함되었다.
    1년 뒤 북부의 주민들은 분리하여 오트볼타(지금의 부르키나파소)를 창설했다. 1958년 펠리스 우푸에 부아니의 영도하에
    평화적으로 자치권을 얻었고, 1960년에 독립을 획득했다. 우푸에 부아니는 196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때부터 간간이
     일어났던 폭력사태와 2차례의 쿠데타 음모를 무릅쓰고 대통령직을 계속 지켜왔다. 주요수출작물의 국제가격 변동이 심하고
    우푸에 부아니가 후계자 지명을 계속 미루고 있어 정국 불안이 증가되고 있지만 생산성 높은 농업에 기반을 둔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코트디부아르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한국과는 1961년 7월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66년 2월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북한과는 1985년 1월 수교했다. 한국은 일찍부터 우호협력 차원에서 차량·의약품·농기구 등을 무상 원조해왔으며, 그밖에
    의료단을 파견하고 전문기술자를 통한 기술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이미 진출해 있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지사를
    비롯, 다른 기업체들도 합작투자의 형식으로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교역 전망이 밝다. 1991년 두 나라의
     통상현황은 대한 수입 1,178만 달러, 대한 수출 1,241만 달러의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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