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고개
진 용 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한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에는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 등 삶의 궤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삶의 어려움과 이를 야기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 지배층의 횡포와 신분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 가부장적 남성의 권위와 위선에 대한 고발이 풍자와 해학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영화 「아리랑」과 주제가인 아리랑이 나라 잃은 시름을 달래주었으며, 저항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 6․ 25전쟁 때에는 포연 속 고단한 마음을 달래는 유행가가 되어 참전 용사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가기도 했다. 그 후에도 아리랑은 근대화의 빛과 그림자를 아우르는 노래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등 국제 경기대회에서는 이념의 벽을 넘어 남북단일팀 단가와 응원가가 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릴 때에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응원가를 넘어 신바람이 어우러진 당당한 외침이 되기도 했다. 아리랑에는 우리 민족의 특별한 역사적 고난과 이를 극복한 사회적 경험이 씨줄과 날줄로 남아있다.
음악적으로 보면 아리랑은 지역에 따라 선율도 차이가 있고 노랫말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심금을 파고드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아리랑의 진지함은 우리네 가슴 속에 자리한 정서의 산물이자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아리랑을 한(恨)의 노래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운데 크게 자리한 억압과 체념의 정서가 한(恨)이라는 독특한 정서로 전해져왔기 때문인가 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아리랑은 한과 신바람을 두루 넘나드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허기지고 서글프고 속상할 때 부르면 아리랑은 한의 소리가 되지만 배부르고 기쁠 때 부르면 신바람의 소리가 된다. 역사의 고비길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탄, 원망, 회한을 담아 아리랑을 불렀지만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삭였고, 원한(怨恨)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체념과 좌절에서 일탈로 이어지는 과정을 한풀이라고 한다면 그 정점에는 아리랑 고개가 있다.
아리랑고개는 슬픔과 기쁨을 이어주는 고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라는 능동형이 있는가 하면, 정선아리랑에서처럼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수동형도 있다.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희망이지만 고개 너머는 알 수 없는 곳이기에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선지 숱한 아리랑을 살펴보아도 고개를 넘어가보니 좋더라는 식의 미래 완료형은 없다. 오히려 시련과 고난의 연속인 인생 여정에 비유해 열두 고개로 표현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고갠데
넘어 갈 적 넘어 올 적 눈물이 나네
아리랑고개는 본래 실존의 고개가 아니라 상징적인 고개였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극복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넘어가는 인생의 분수령이다. 따라서 아리랑고개는 버거운 삶의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고개로 누구나 가슴 속에 존재한다.
아리랑고개는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살아가면서 기어코 넘어야만 하는 숙명적인 고갯길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의 고달픔과 애환을 잔뜩 짊어지고 가는 길이기에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일은 고되고 때로는 외롭기 마련이다. 넘어 갈 때마다, 넘어올 때마다 ‘눈물이 나는’ 막막한 고개지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다. 자신의 처지가 제아무리 원망스러워도 올올이 맺힌 삶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넘어야하기에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
아리랑고개는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실존의 고개로 등장하기도 한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곳에 아리랑고개가 있으며, 부산 영도에도, 전북 익산에도, 전남 목포에도, 강원도 철원에도 아리랑고개가 있다. 멀리 두만강 건너 중국 삼합과 용정 사이에도 아리랑고개가 있다. 전국 도처의 수많은 아리랑고개는 세상사의 고달픔과 애환을 잔뜩 짊어지고 가는 상징을 담은 고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선에도 아리랑 열두 고개가 있다. 지난해부터 정선군이 정선아리랑 가사와 연관된 정선군내 열두 곳의 고개를 아리랑 고갯길로 지정하고 있다. 성마령, 비행기재, 더바지령, 뱅뱅이재, 만항재, 꼴두바우길, 새비재, 비슬이재, 둔두치, 수리너미, 꽃베루재, 너그니재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고갯길이다. 오랜 옛날부터 정선사람들이 소금이나 곡식을 지고 힘겹게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던 절체절명의 고갯길이다.
올해 들어 나는 틈틈이 아리랑고개를 찾아다니고 있다. 애절한 곡조를 입에 달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던 이들의 흔적을 그리다 보면 아무리 높고 험한 고개라도 어느새 고갯마루에 이르게 된다. 고갯마루에 서서 되돌아보면 오늘의 아리랑고개는 고난의 고개가 아니라 고난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고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리랑이 한이나 탄식보다는 흥겨운 노래,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듯이 말이다. 그것이 ‘은근과 끈기’를 담은 아리랑의 정신, 아리랑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