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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십니까?
본문 : 사도행전 14장 18~19절
두 사도는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사하지 못하게 겨우 말렸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사도행전 14장 18~19절, 새번역>
놀이동산에 가면 늘 가장 오랫동안 줄을 서야 하는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걸 저렇게 오래 기다리면서까지 왜 탈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꼭 한번은 타고 가야 놀이동산에 갔다 온 거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놀이기구가 바로 ‘롤러코스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위하여 몇 시간을 웃으면서 기다립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오로지 이 롤러코스터만 타기 위하여 놀이동산에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하여 굳이 놀이동산에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 어떤 롤러코스터보다 더욱 ‘롤러코스터’이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올라가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나락으로 떨어진 직후 다시 금방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오르락내리락’을 짧은 시간에 반복하고, 정신을 차리지도 못 할 만큼 금방 상황이 바뀌는 신앙생활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본문이 사도행전 14장입니다. 사도행전 14장은 너무나도 빠르게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합니다. 회전목마를 타고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우리를 당황시키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이미 사도행전 13장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한 예행연습을 경험한 바울과 바나바는 본격적인 롤러코스터 탑승을 위한 줄을 서면서 14장이 시작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성경통독 캠프를 잘 마치고 그들은 이고니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사도행전 14장 1절, 새번역>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던 방법과 동일하게 선교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유대사람들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지난번처럼 도망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이었을까요? 아마도 명령이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축복해 주시고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가고서는 것’을 하나님께 맡긴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그런데 이고니온이란 도시에 서서히 롤러코스터를 타자마자 하늘을 향해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오르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더러는 유대 사람의 편을 들고, 더러는 사도의 편을 들었다. <사도행전 14장 4절, 새번역>
그리고 이 둘로 나누어진 도시에 이방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든든히 서가고, 복음이 더 빨리 전해지려면 하나님이 계속해서 도와주시면 좋으련만,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치는 이들을 꼼짝도 못하도록 따끔하게 벌해주시면 좋으련만, 갑자기 이런 상황이 등장할 때 하나님 앞에 자꾸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솔직히 속 시원하게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이 반드시 믿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오르막이 시작되고, 내리막이 시작될지 모르고, 좌우로 상황이 팍팍 바뀐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확실하게 도착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확실히 믿기에 또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먼저 그 마음을 가지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하였다. <사도행전 14장 6절, 새번역>
그리고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첫 번째 난코스가 등장합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오른 롤러코스터가 드디어 가장 높은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보이는 듯 합니다. 곧 엄청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도록 잠시 경계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직선 주행이 시작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닥쳐올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그 곳에서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되어서, 걸어본 적이 없었다. 이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바울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는, 큰 소리로 "그대의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14장 8~10절, 새번역>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함께 기뻐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더 선포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한 반응이 찾아옵니다. 경계심을 풀고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높이 올라온 만큼 급격하게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입니다.
무리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서,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성 바깥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 <사도행전 14장 11~13절, 새번역>
바울과 바나바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들이 믿는 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심을 선포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성육신’한 그들의 신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군중들은 성육신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모신 신전의 제사장들은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군중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바울과 바나바는 더 늦기 전에 이 사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그들 사이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 민족들이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4~17절, 새번역>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상황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명확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그저 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이 제사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안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하여 이미 충분히 계시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드러난 어마무시하게 놀랍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기적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기적’만을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어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바울과 바나바였습니다.
다행히 이 제사는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바울과 바나바를 향한 군중들의 인기는 사그러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딜 가든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환호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 ‘제사사건’이 있은 후 바로 바울과 바나바가 그 도시를 떠났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물러 있음을 선택했던 그들에게 다시 정신 못 차리는 롤러코스터 코스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사도행전 14장 19절, 새번역>
방금까지 ‘헤르메스’라고 추앙받던 바울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몰려와 군중을 설득한 유대 사람들 때문에 돌로 침을 받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를 가서 이런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으십니까? 아마도 안타고 싶으실 것 같습니다. 예전 스데반 때처럼 이제는 바울이 돌을 맞았습니다.
바울이 죽은 것처럼 보이자, 군중들은 바울을 성 밖에다 내다 버립니다. 그런데 낙하만 하던 롤러코스터가 다시 하늘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사도행전 14장 20절, 새번역>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서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난 것입니다. 최고의 추대를 받기고 하였고, 최악의 대접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그 당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라면 도무지 이 롤러코스터 같은 생활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롤러코스터를 끝까지 타고 있습니다.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 롤러코스터 같아 보이는 삶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기에 사람들의 추대를 받는 높은 곳에 가서도, 사람들에게 최악의 대접을 받는 바닥에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마무리할 때까지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실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히 신뢰 했습니다.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제자들을 얻었다면 거기에서 계속 머물면 좋을텐데 놀랍게도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들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사도행전 14장 21절, 새번역>
분명히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마치 이제 다음 차례에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하는 이들에게 해 주는 말 같은 당부가 등장합니다. 타지 않았으면 모를까,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회전목마를 타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신앙생활을 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도전이 되는 말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 새번역>
롤러코스터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끝에 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칭찬과 환대 같은 오르막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예상되지 않는, 때로는 죽을 것 같은 내리막을 경험해야합니다.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제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합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 없이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꽤 많은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서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롤러코스터를 아무리 잘 타는 친구와 함께 타더라도 결국은 그 친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용기를 내어 몸을 내어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역자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역자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오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변함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비시디아 지방을 거쳐서 밤빌리아 지방에 이르렀다.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향하여 갔다. 이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이제 그들은 그 일을 다 이루었다. <사도행전 14장 24~26절, 새번역>
이제 처음 타보았던 롤러코스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공적인 1차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타라고 하면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이 롤러코스터에 좀 익숙해진 듯 보입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린 사람들의 무용담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최소한 두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이제 기쁨과 감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줄을 서는가 봅니다.
그 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모으고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냈다. <사도행전 14장 27~28절, 새번역>
이렇게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사도행전 14장이 마무리 됩니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이 롤러코스터는 점점 레벨이 올라갑니다. 마치 ‘도장깨기’를 하는 것처럼 더욱 더 레벨이 높은 롤러코스터가 바울과 바나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첫 시작을 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결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문제없다’ 라고 말입니다. 이 신앙생활이 아무리 롤러코스터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계시니 더욱 더 이 신앙생활을 기대하며 즐겁게 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강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신앙생활이 얼마나 다이나믹한 롤러코스터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더베의 제자들에게 해 준 말과 같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마 바울부터가 아나니아로부터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사도행전 9장 15~16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여러분은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십니까? 신앙생활이 이 롤러코스터와 같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그래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에 뛰어들기를 망설이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환난이 두렵습니다. 오르막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리막도 추락이 아니라 서서히 아주 천천히 편하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였으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회전목마를 탄 듯 우아하고 평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굳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편안히 있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두가 동일하게 원하는 넓은 길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마태복음 7장 13~14절, 새번역>
그리고 우리가 겪어야 할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새번역>
그리고 우리를 독려 하십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이 두려워 보이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환난을 당하더라도 담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 역시 오늘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두려움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응원하고 있음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린도후서 1장 3~6절, 새번역>
이제 또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이번 6월도 꽤 레벨이 높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한 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을 받다가도 비난을 받고, 대접을 받다가도 내침을 당하고, 수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또 방황하며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오늘 사도행전 14장에 먼저 그 길을 걸었던 바울과 바나바를 꼭 묵상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해 주었던 이 말을 다시 마음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 새번역>
많은 사람들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기쁨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기왕 타는 롤러코스터 같은 신앙생활, 두려움과 걱정이 아닌, 기대와 기쁨 그리고 결국은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타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 이제 출발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뿌듯하고 의미 있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용기를 내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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