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솔티고개(덕천주유소) - 나동공원묘지(190.5) - 삼각고지 - 선들재 (도로) - 183.5 - 외딴집 - 205 - 딱밭골 - 225- 외딴집 - 수련원 - 234.9(변곡점) - 224 - 239 - 245.5 갈림길 - 사거리 임도 - 201 - 2번 고개 (원전고개) - 마곡고개(밤재)
산행일시 : 2010.08.21 11:00 ~ 16:14 뫼솔산악회
날씨 : 약 35도, 습도 약 75%
올 여름 중에서 가장 여름다운 날씨에 산 이름조차 갖지 않은 산길을 걷는다.
온천에서 시작하다.
전 구간에서 온천맛을 보았으니 이번 구간은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온천에서 시작한다. 누구는 여기로 날머리로 하면 어떻냐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하면서 배수로를 따라 오른다. 꾼들만이 찾는 이런 산길에 거미줄이 새로 쳐지고 나뭇잎과 풀잎은 단단해지고 푸름이 극성이다. 이 구간에도 옻나무는 등장하고 그 사촌뻘인 가중나무와 붉나무, 개옻나무까지 연약한 피부를 긁어놓는다.
물 온도를 유지시키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맥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과수원이나 옻나무 정글이나 국도로 끊어진 곳이나 묘지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전진한다. 한 여름에도 버스의 냉기가 보존되어 약 10분간은 땀을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고 이 시간은 짧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산속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이 10분을 넘긴 때부터 자동으로 세수를 하게되고 샤워를 하게된다. 그 만큼 물이 들어간다. 냉수가 들어가야 하니 물을 얼려와야 한다. 물을 보온시키기 위해서 밖으로 꺼내놓지도 않고 배낭안에 보관한다. 그러면 4시간 정도 산행에 물이 거의 다 녹지않고 시원함을 유지한다.
이름없는 산 들
어느 누가 오늘은 어느 산에 가냐고 묻는 다면 어찌 대답할까. 오늘은 산 이름이 없다. 낙남정맥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해설을 붙여야 하니 난감하다. 오늘 동행하는 분들중에 명산팀에 가야할 분이 오셔서 고생도 했다고한다. 오늘은 그냥 낙남정맥을 가는 날이다. 이제 경상도 남해안 순례길과 지리산 산행길의 분기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 바람
여름 산에서 제일 절실하게 마주 치고 싶은 친구는 누구일까. 바로 산 바람이다. 오늘은 그 친구가 매정하게 돌아서 버렸다. 가끔 웃으며 반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숨어서 약만 올린다. 산 바람이 그립다. 그래도 계절은 속이지 못하겠지. 이제 곧 9월이니 말이다.
과수원
과수원은 항상 딜렘마에 빠지게 한다. 아직 덜 익은 과수를 지나면서 이 과일이 속히 익어서 식탁에 올라오기를 고대한다. 주인은 이 길을 폐쇄하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고 이 길을 가는 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를 지나가야 한다. 만약 다른 좋은 길을 내어준다면 그 길로 가고 싶다. 그런데 산길을 어찌 바꾸랴. 지도는 바꿀 수 없는 것을..
외딴집
외딴집이 유난히 많다. 사람들이 스쳐지나간 자리에 깊은 여름이 익어간다. 이제 가을이 되면 이 외딴집에 수확물이 가득할 것이고 다시 빈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이들은 외딴집이라고 부른다. 일회용이라고 보기에는 아까운 곳도 있지만 오직 한 철을 위해 지어졌으니 할 도리는 다하는 것이다.
공원묘지
공원묘지는 모두 가야하는 방향을 일러준다. 오늘 묘지공원은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가면서 사진 배경으로 삼을 만하다. 궁극에 이르러 정맥을 마치고 마치면 어디로 가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곳도 지나친다.
수련원
수련원은 길 옆 풀 숲에 파묻혀 있다. 원생들로 가득차 있어야 할 자리에 숲속의 뜨거운 공기만 맴돌뿐이다. 그래서 그냥 지나친다.
빈집은 야생화의 잔치를 베풀어 놓았다. 집이 있으니 길이 있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빈집은 빈 마음을 가진 자 만이 들어갈 수 있다. 아직 마음에 세상 욕심이 가득하여 들어갈 수 없는가 하여 그냥 지나친다.
숲속에서 식사시간 (모기와 함께)
임도에 닿았다.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다. 점심을 풀어 놓는다. 막걸리와 족발도 나온다. 각종 과일과 야채가 풍성하다. 부페식당 같다. 그런데 모기도 제철을 만났다. 갑자기 승합차가 들어온다. 식당에 난리가 났다. 지나간 자리는 고요하다.
묘지 옆에 원두막이 있다. 극진한 효성에 감동이 일어난다. 묘 자리도 좋다. 누군지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였다.
마을에 닿았다. 먼저 물부터 찾는다. 마시고 들이붓는다. 수돗물이 이렇게 맛이 있을 줄 몰랐다. 머리에 물을 부으니 흘러내리는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마을사람들의 피서지
도로 밑에는 마을 사람들의 피서지이다. 위로는 쌩쌩 자동차가 지나가고 수많은 이들이 잠자면서 무심코 지나가는 길 밑으로 한 여름의 한가로움이 배어난다.
알바
알바를 하면서 오늘도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단조로왔을까. 과수원이 끝나가고 조금 더 가면 포장도로가 나와서 끝날 줄 알고 기뻐했는데 삼각지 로타리에 왔다. 한쪽에 리본이 매어 달려있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선두는 오른쪽으로 가 있다. 그러면 그리로 가야지 하면서 길 아닌 길을 가기 시작한다. 날머리가 가까우면 길이 좋던지 아니면 리본이 많이 달려있어야 하는 법이 거늘 어찌 그런 법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서 절개지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한 지도가 있으면 금방 알았을 텐데 간단한 개념도만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도 주머니에 놓았으니 땀에 절어 물오징어가 되었다. 옻나무가 가장 무성한 곳을 헤치면서 길을 개척하고 갔는데 앞장섰던 용두동님이 너무 많이 알바를 한 것 같다고 충격적인 속보를 보도한다. 아니 어쩌면 그 속보를 빨리 들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과수원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맥은 왼쪽으로 뻗어간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인데 분명 선두가 알바하는 바람에 이런 파장이 온 것이다. 약 1500미터를 되돌아간다. 다시 헤치며 왔던 옻나무 숲을 원위치로 돌리며 중간 쯤 왔을 때 선두의 알바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과수원 끝에서 갈라진 로터리에서 좌회전 표시가 되어있다. 그렇게 선두를 향해 외쳤건만 대답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로터리에서 날머리까지 겨우 300여미터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평탄한 숲길, 그것도 간벌을 해서 아주 상쾌한 숲길인데 바로 도로가 보인다.
디카
오늘 사진기를 버스에 놓고 내리는 행운이 있었다. 카메라가 좀 구식이라서 바꿀 때가 되었는데 어떤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버스 안에서 쿵하는 소리를 스틱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고 있다가 배낭에서 잠시 꺼내 놓았던 카메라인줄 모르고 그냥 잊은 채 광화문에서 배낭과 스틱을 갖고 내린 것이다. 사진을 한장도 안 찍고 오니 마음속에 담아 둔 말들이 많다. 그리고 느낀 점이 그대로 우러나온다. 대신에 다른 이들의 사진을 자세히 보게된다. 그리고 모두 저장한다. 심지어 다른 팀들의 선답자들의 사진도 눈여겨 본다. 사계가 그대로 우러나온다. 하지만 이 지친 모습과 정맥이 어우러진 사진이 없다. 그래서 용두동님에게 부탁하여 한 컷을 부탁한다.
날머리
날머리는 새로운 시작점을 알려준다. 마곡리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마곡고개이리라. 여기 밑으로 완사천이 흐르고 마곡교가 있고 마곡마을 주민들의 논이 푸르른 여름을 더해준다. 바닥에 300미터 가면 버스가 있다고 알려준다. 도로에 바람이 가득 기다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마중나온다.
알탕의 의미
작은 개울이 목욕탕으로 변했다. 다리 밑이 탈의실이 되었다. 뜨거운 도로는 찜질방이 되었다. 식당은 길 한 모퉁이, 아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