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롬소Tromso-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힘을 기울이는 도시.
수많은 천문학회가 열리고 일년이면 두번 오로라가 출현하여 인류를 또다시 꿈꾸게 만드는 도시.
이 작은, 그러나 큰 힘을 가진 도시에 도착하자 마자 나를 맞아준 것은 다름아닌 추위였다.
연극이 끝난 뒤의 무대 같은 빈 도시에서 홀로 어깨를 움츠리고 천천히 길을 걷는다.
<I>는 닫혀있고 차량도 인적도 거의 끊긴 거리에 바람만 차갑게 불어댄다.
조금은 막막한 심정으로, 그러나 마음은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으로 항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방금 전에 버스로 건너온 트롬소다리와 내일이면 오르게 될 해발 420m의
스토르스테이넨산을 바라보며 ‘평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세계의 모든 평화의 메신저들이 모이는 이 도시가 과연 인류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저녁식사로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먹고, 디저트로는 달빛에 샤워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어렸을 적부터, 인생은 내게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막연히 예감하던 일을 나는 지금 이 소도시의 한 호텔 창가에서 북해를 바라보며 체감하고 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도시의 밤 풍경은 불빛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유리창 안쪽엔 한 영혼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듯 껍질을 벗고,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가 조금은 쓸쓸하다고 느낀다.
Peace does not mean
The absence of war.
Peace means the presence
Of harmony,love
Satisfaction and oneness.
-Sri Chinmoy
*Tromso 22 mai 1998
문학,음악,미술,스포츠 그리고 모든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인류에게 보내는 이 메시지는
내가 피엘하이센Fjellheisen에서 케이블카(바람에 차체가 곡예를 하듯 공중에서 흔들려 댈때의 공포를 아는가!! 오르는 사람은 안전요원과 나, 두명뿐.)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전망대에서 발견한 것이다.
Peace-Blossoms…이 꽃이 많이 피어날수록 세상은 더욱 살 맛이 나겠지…
나는 이 메시지를 백야의 시간관측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 찍힌 긴 엽서에 담아
수신인을 ‘오딧세우스’로 정하고 빠리의 여행자들의 둥지인 ‘오딧세이’로 띄워보낸다.
내가, 그리고 당신들이 가지 못했던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며,
이 세상과 자신의 본성과 사랑과 아름다움에 눈이 떠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하여 그 오딧세우스의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음악, ‘엘도라도’가 생각이 난다.
몇년전 집을 떠나기 전 무수히 들었던.
그리고 늘 음악과 함께 했던 좋은 친구들의 모습이 그리움과 함께 뭉클, 보고싶어 지는 것이다.
버스출발시간이 조금 남아 도시를 한바퀴 돌기로 한다.
아직 차표가 유효하니까, 그리고 너무 추우니까.
지나는 시내버스를 아무거나 집어 타고 약간은 안도의 숨을 쉬듯 좌석에 털썩 주저앉아 창밖을 관찰 한다.
사람들의 모습은 빠리에서 보았던 것 보다도 훨씬 여유가 있고 따뜻해 보인다.
날씨는 훨씬 추운 곳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 사람들, 나이 40이 넘으면 코가 빨개지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이렇게 추우니 그 코를 밖으로 내놓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겠지, 후후.
그렇다고 코로 숨을 안 쉴 수도 없고 …
그러고 보니 귀마개,입마개, 장갑은 있는데,정말 코마개는 없네? 혼자서 웃는다..
다시 버스에 내리니 여전히 너무 춥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떠나올 때 방장이 입고 가라고 꺼내준 겨자색 파카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든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이건 완전히 생쥐꼴이다.
안되겠다 싶어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적당해 보이는 상점에 들어가서
모자가 달린 검은 색 파카하나를 산다. 내 생전 파카는 처음이다.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싫어 거부하던 옷인데, 이곳 북유럽에서는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이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맘에 드는 옷은 사이즈가 하나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입고 나온다.
그런데 이 나라 여자들은 중간싸이즈라고 하는게 허리에 동여매게 되어 있는 끈이 내 엉덩이 중간쯤에 걸쳐져있다.
그렇다면 빅싸이즈는? 아이구야, 확실히 크긴 큰 나라다.
저녁 12시가 다 되어 알타Alta에 도착하다.
사람은커녕 차량도 게다가 택시도 보이질 않는다.
트롬소의 호텔직원에게 물어온 알타의 숙소중, 산장을 개조한 자그마한 호텔에 들리라 생각했던 나는
터미널 맞은 편에 덩그라니 불빛이 보이는 현대식호텔에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버스럭 거리는 옷자락소리에 귀를 거슬려 하며 시내로 접어든다.
이거 원, 사람이라도 보여야 길을 물어보기라도 하지.
추위를 피하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갔다가 보이는 전화번호, 옳지, 이거다.
나는 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나의 있는 곳을 알리고 택시를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 궐리티호텔(비카)은 역시 나의 예감대로 따뜻한 곳이었다.
가족처럼 따뜻이 나를 맞이해 주었고 사우나를 찾으면 즉시 불을 올려주어 나를 추위에서 놓여나게 했다.
24092002
6000-2500년전에 그려진 바위그림을 보러 알타박물관으로 향한다.
지금도 선명한 채색화의 붉은 빛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고대의 수수께끼가 들어있는 원형의 돌놀이터(? 아직도 이것은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한다)에서 아이처럼 뛰어놀다가
가까이에 있는 북해로 눈을 돌려 시린듯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숲길로 들어선다.
숲 입구에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이니 잘 보존합시다라는 문구가 각개국어로 써있다.
동시에 우리나라 불국사를 생각해 본다. 경주의 그 멋진 왕릉들도.
그 좁은 나라에 고속전철이 그렇게 필요한 걸까?
철로를 놓으려면 좀 더 연구를 하고 놓을 것이지, 나는 갑자기 화가 난다.
아마 그것은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준 그 고급공무원의 인식부족일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호흡이 맑아지면서 숲이 내게로 다가온다.
처음엔 회색으로, 그리곤 하늘색으로….
비가 내린다.
이 광막한 숲속에, 빽빽히 영원을 담고 서 있는듯한 ‘노르웨이의 숲’속에
비가 내린다.
때는 이미 겨울, 아무도 없는 빈 숲속에서 홀로 후드득, 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는다.
그리곤 얼마간 걷다가 갑자기 정지한 듯한 시간 속에서 털썩, 자리에 주저 앉는다.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니,어쩌면 텅 빈 마음으로 숲을 빠져나온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 나는 빠리에서부터 이곳에 오면 구입하고자 마음먹었던 음악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 중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는 듯 어느 문을 향해 들어가더니
키가 거구인 남자와 함께 나온다.
자기를 관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내가 찾는 음악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 큰 체구에 무릎을 구부려 아래쪽 보관용서랍까지 다 뒤져, 결국은 찾아낸다.
그의 적극적인 자세에 나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세계의 민속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고
당신네 나라의 음악은 나를 매료시킨다, 했더니 그는 몇 개의 음반들을 손에 집어들고
나를 시청각실로 안내하여 직접 음악을 들려주며 내게 평가를 하게 하고 부족한 부분은 설명을 첨가하며
그 음악가의 자국에서의 위치, 요즘의 근황들을 들려주며 민속음악이 나올땐 어떨 때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을 덧붙여 준다.
나는 마리보인과 잉고르 앙테 아일로 게잎의 시가 담긴 음반과 Johan Sara Jr.& Group등의 CD,
그리고 오로라가 출현할 때 찍은 비디오인 <The dance of northern light>을 골라든다.
우리는 음악을 듣다가 졸지에 음악과 예술과 문화유산에 대한 서로의 견해에 까지 대화가 이어졌다가
박물관 문이 닫을 무렵,
다음 행선지의 버스시간을 걱정하는 나를 위해 차로 직접 버스터미널과 호텔까지 안내해 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그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블레스 유, 했다.
그도 내게 좋은 음악 많이 듣고 많은 영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블레스미, 를 해준다.
그에게 들은 얘기지만 내가 묵는 비카호텔의 주인은 여름이면 알타박물관의 캬페테리아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고 주인내외가 아주 좋은 사람들이란다.
그의 말을 확인시켜주듯 호텔의 직원들은 내가 식사를 할 때 촛불을 붙여주며 수줍게(!) 자기네 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어주었고, (나는 벌써 이 집의 순록고기요리수준을 책자를 통해 알고 있었다)
사장은 직접 내게 모든 호텔의 방 구조를 일일이 소개했다.
나는 이날 저녁식사로 미리 정해둔 순록로스트Poronpaisti요리에 직원이 추천한 브리게리에Bryggeriet 라는
노르웨이맥주를 곁들여 먹었는데, 그 맛과 그들이 보여준 멋스런,
그러나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는 가히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한 마을의 족장이 있다.
족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사람을 다스리는데 있어 먼저 <사람>과 자연을 위한 정치를 하고 부족 사람들은 다분히 온순하여 서로 화합하며 자기의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간다.
이것이 내가 알타의 호텔 창 밖으로 바라본 노르웨이의 모습이다.
열심히 외워 두었던 ‘Polliti’ 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스스로 준법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따뜻하게 미소 지을 줄 아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 또한 인간 일진대, 과연 이들은 화나거나 분통터지는 일이 있을 땐
도대체 어떻게 감정 표현을 할까… 또다시 고개드는 설움받은 민족의 후예근성!!
정확함과 순박함이 공존하는 바이킹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나 또한 정신은 조금 차갑게, 그리고 마음은 더욱 따뜻하게
그렇게 세상을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