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고린도전서15:20-28
부활의 영광스러운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땅에 많은 종교가 있으나 그들의 교주는 죽었고, 거대한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 인생의 한평생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①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에 자신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남자나 여자가 된 것, 김씨나 이씨 성을 가진 것,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 내 부모와 형제 모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되었습니다.
②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누가나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성취한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습니까?
지금 나의 배우자를 내가 스스로 선택하였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처녀 총각 때의 환상이 깨어집니다. 시계 바늘을 되돌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돈이 최고인 줄 알고 악착같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많이 쌓아두었다 할지라도 실제 얼마나 누리고 갈 것입니까? 재벌이라도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저 많이 가졌다는 과시욕을 충족할 뿐 돈이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최고인 줄 알고 잠을 줄여가면서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공부는 마치고, 학위를 얻었는데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공부보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명예와 권력이 최고인 줄 알고 달려왔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실상 명예란 매우 거추장스럽고 불편합니다. 명예와 권력은 얻기 힘들지만 지키는데 더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차라리 무명으로 살 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쾌락이 최고인 줄 알고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패가망신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 썩어질 육신이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러나 그 자식이 속을 썩이고 나이들고 병들었다고 버립니다. 그제야 “내가 저 녀석을 잘못 키웠구나.” 후회합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수고와 슬픔 속에서 30대, 40대를 지나 인생 황혼기를 맞이합니다. 자동차는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다시 돌아나오면 되지만 우리 인생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1)
③ 나는 왜 죽어야 하는가?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들면 누리며 살자 생각하였는데 몸이 병들고 죽음을 직면합니다. 솔로몬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잠3:2)라 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도 일 초에 두 명 이상이 지구상에서 죽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서 몇 년, 몇 십 년 더 사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습니까? 죽음의 문제 앞에서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 질문할 것이 아니라 “나도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
이 땅에 죽음이 온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창2:17) 그 이후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고,(롬3:23)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이 세상에 죄를 짓지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죄를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요3:16)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부활하신 현장과 예수님을 수많은 사람이 만나고 목격했습니다. 가장 먼저 안식 후 첫날 새벽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 손에 못자국와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낙심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시어 저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셨습니다.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체포하기 위하여 마게도냐로 가던 사도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들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겁쟁이였고,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저들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고, 사도 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과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아멘’하며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단지 이 세상뿐이면 우리는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며 방탕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전15:19,32-33)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히11:19) “(박해를 받는)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3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우리도 다시 살아날 것이기에 앞서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례식에서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이렇게 통곡하였습니다. “이 녀석아 니가 애미한테 이렇게 못된 짓을 할려고 평소에 그렇게 착했었니?” 그 어머니는 권사님이었는데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것입니다. 집안이 어려워 사 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 공부를 시킨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마지만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시 보자.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곧 따라갈게” 그러면서 그 뒤로 감사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냈습니까? 그가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간직해야 부활의 아침이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삶이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괴롭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실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고대하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의 시작입니다. 우리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하였습니다.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하늘 문이 곧 육신의 죽음입니다. 죽음은 육신에 속한 우리가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나그네 길이 끝나는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부활은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위대한 순간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고전15:42-44) 우리는 반드시 다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신앙이 무엇입니까? 부활신앙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 아니라 천국임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이란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고 반드시 상급을 받게 될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나도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런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결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나를 보내셨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밥먹고, 돈벌고, 명예를 누리며 살면 안됩니다. 건강하다면 그 건강을 가지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십시오. 재물이 있다면 그 재물을 가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여 하늘의 보화를 쌓아가십시오. 명예와 권력과 지식이 있다면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벌거숭이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