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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정착 은퇴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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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여행 &.. 스크랩 네 팔 - 7박 8일
유영모 추천 0 조회 134 09.07.15 10:3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네 팔 여 행 일 기

 

 2007.07.19 (목) 서울 - 카트만두

아침 7시30분 인천공항에서 전통예술학회 문화유적답사 회원들과 만나 네팔행.

이번 네팔 답사회원은 홍윤식회장님을 비롯해 조명렬, 홍점석, 김성호, 송규정, 노경미

김명란, 김수현, 임영주, 김치중, 이기만, 최정숙, 이 범수 등 모두 13명.

KE 695로 오전 9시50분 인천공항을 이륙해 오후 4시 05분(현지시간 12시50분, 우리나라와는 -3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다)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비자는 현지 카트만두 공항에서 받았는데 거의 1시간 이상이나 입국장에 서서 기다려야 해 네팔의 첫 인상을 흐리게 했다.

공항 현지에서도 받을 수 있는 입국비자 제도가 재미있다.

처음 온 사람의 비자비용은 US $30, 그러나 두 번째 부터는 50불.

이유는 자주 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라나?

현지 가이드인 Mr.기란(KIRAN MAHARJAN)의 안내를 받아 먼저 몽키템풀로 불리는 스얌부나트(SWAYAMBHUNATH)부터 둘러보았다.

"스스로 존재함(Self-existent)"이라는 뜻을 가진 스얌부나트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인 2,000년 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나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여하튼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신년 예불사찰이다.

365계의 계단을 올라야하는 높은 산 위에 있기 때문에 카트만두 어디서나 잘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카트만두는 원래 산정호수였는데 문수보살이 그 호수를 둘러보던 중, 호수 한 가운데서 밝은 빛을 내며 피어오르는 연꽃을 보고 이 연꽃을 참배하기 위해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고 물을 퍼내 육지로 만들었는데 바로 그 연꽃이 피어오른 자리가 이 스얌부나트라는 곳이고 따라서 이곳이 룸비니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聖地라는 것이다.

원숭이들의 습격(?)을 경계하며 입구에 들어서니 금강저(VAJRA)가 먼저 눈에 뜨인다.

금강저는 인드라 신의 무기로 아수라를 쳐부순다는 인도 신화에서 비롯되었는데, 붓다의 지혜로 능히 마음속의 탐욕과 번뇌 망상을 타파하는 지혜의 도구로 상징되고 있다.

금강저를 모신 단 아래에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십이지 동물들의 조각이 쥐, 소부터 개, 돼지까지 순서대로 새겨져 있어 흥미로웠다.

금강저 뒤에는 엄청나게 큰 스투파가 우뚝 서 있는데 흰색 반구체 기단위에 눈과 코가 그려진 도금된 사면체가 올려 져 있고, 다시 그 위에 13층의 원추형 덮개가 놓여 있고 또 그 위, 맨 꼭대기에 금도금된 鐘이 올려 있다.

사면체에 그려진 눈과 코(?) 같이 생긴 그림은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데 "제 3의 눈"으로 불리며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표시하는 것이고,

물음표처럼 보이는 그림은 1이라는 숫자를 형상화 시킨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결국 하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제 3의 눈"은 네팔의 어느 스투파에나 꼭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이 스투파를 중심으로 주위에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을 상징하는 작은 사원들이 배치돼 있는데

이들 사원에는 비로자나불, 아촉불, 아미타불, 금강모보살, 반다라, 노사나불 등이 모셔져 있다.

전시물은 비록 초라해도 조그만 불교박물관도 갖추고 있다.

사찰 경내까지 밀고 들어온 많은 기념품 상점들을 정비해 좀 더 깨끗하게 관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네팔이라는 나라

1.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내륙국으로 중국보다는 인도의 영향력을 많이 받고 있는 나라.

2. 국민소득은 300불정도. 육군은 있지만 해군과 공군은 없는 나라다.

3. 마오쩌둥을 신봉하는 반군 게릴라들이 아직 산악지대에서 준동하지만 근래 상호 협정을 맺어 반군 지도자 5명이 각료로 들어와 있는 이상한 나라.

4. 우리나라 한반도의 2/3쯤 되는 나라.

5. 힌두교 87%, 불교 8%, 이슬람교 4%.

6. 히말라야 산맥 8,000m급 이상의 14좌 중, 에베레스트를 포함 8좌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7. 산소나 납골당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

8. 인구는 2,700만 정도이나, 神이 3,000만인 나라.

9. 수도인 카트만두에 교통신호등이 4개인가 5개가 있는 나라.

10.한국을 자상천국으로 알고, 한국에 가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국말을 가르치는 학원이 50여개나 되는 나라.

HYATT REGENCY KATHMANDU에 투숙.

 

2007.07.20 (금) 카트만두 - 룸비니

아침 10시30분, 카트만두 공항에서 18인승인 부다(BUDDHA)항공을 타고 11시10분, 바이라하와 공항에 내려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를 타고 20Km 거리에 있는 룸비니(LUNBINI)에 도착했다.

부다항공에 탑승하니 스튜어디스가 솜을 나눠주며 기내가 시끄러우니 귀를 막으라고 하는 게 재미있었다.

카트만두에서 룸비니로 가는 도중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산맥이 눈 덮인 히말라야라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흰 구름에 휩싸인 히말라야인 것 같았다.

룸비니 도착 후 바로 룸비니 가든에 여장을 풀고, BC 623년 싯다르타 고오트마,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해 인도의 붓다가야, 사르나트, 구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聖地로 손꼽히는 룸비니 동산을 참배했다.

마야 왕비가 친정으로 해산하러 가는 도중, 바로 이 곳 룸비니에서 몸을 풀었는데 경전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많은 시녀와 경호원을 거느린 왕비가 동산에 아름답게 꽃핀 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한 그루의 無憂樹 곁에 이르렀다.

그때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는 말할 수 없이 그윽했으며 꽃은 아름다운 색깔로 눈이 부셨다.

무우수 가지는 왕비에게 무릎이라도 꿇듯 미풍에 흐느적거리며 늘어지고, 왕비는 그 나무의 동쪽 가지를 잡고 가만히 멈추어 섰다. 그리고 몸을 풀었다"

마야왕비가 몸을 푼 터에는 지금 마야 데비 사원이 복원되고 있다.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천명한다.

이 신화는 붓다만이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제각기의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선언이다.

마야 왕비가 해산 후 목욕을 했고,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갓 탄생한 붓다를 목욕시켰다는 싯다르타 연못은 복원 중인 마야 데비 사원 바로 뒤에 있고

그 옆에는 아름드리 보리수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는데 많은 참배객들이 그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아쇼카 석주는 마야 데비 사원 옆에 세워져 있다.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는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의 꼭대기에는 馬像이 새겨져 있는데 어느 날 벼락으로 기둥이 부러졌다"라고 썼다.

현재 아쇼카 석주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돌이 그 마상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말을 조각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쇼카 석주에는 비명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즉위 20년 뒤 몸소 와서 예배하고, 이곳이 불타 석가모니께서 탄생하신 곳이므로 돌을 깎아 기둥을 세웠다. 또 이곳은 세존이 탄생하신 곳이므로 세금을 8분의 1만 받는다."

룸비니 동산에는 이 외에도 16나한의 스투파 등 몇몇 구조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고 소홀한 느낌이 들었다.

숲 너머로 우리나라 도문스님이 건립하고 있는 사찰 모습도 보인다.

많은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참배객들에게 적선을 구 하는데 참배객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모르니까 움마니반메흠, 남묘호렌게쿄, 석가모니불을 연달아 읊는다.

애처로 왔다.

오후에는 카필라 城이 있는 티라우코트를 갔다.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인 29세까지 태자로 살며 결혼까지 했던 곳이다.

태자 싯다르타는 이곳에 살면서 이 성의 東門 밖에서 허리가 구부러지고 쇠약한 노인을 보았고, 南門 밖에서 아파서 괴로워하는 병자를 만났으며

西門을 지나면서 장례행렬을 보았다. 이런 광경을 본 태자는 인생에 대한 번민으로 날로 그 생각이 커갔는데, 어는 날 北쪽 성문 앞에서 출가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불교의 유명한 四門遊觀 인데 이곳이 바로 그 현장이다.

현재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나마 그 흔적을 찾은 곳은 성곽과 중앙 궁궐터, 동문, 서문 터 등인데 구조물들을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일본 고고학계의 지원을 받아 1975년 발굴된 궁궐터에서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접시와 쌀 등이 나왔다고 한다.

성의 東西가 396m, 南北이 518m라고 하는 조사 결과를 봐서 카필라 성이 그리 크지는 않았으며, 아울러 석가 족의 나라도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카필라 성의 주변은 지금도 온통 논인데, 그 당시에도 곡창지대였었기에 왕의 이름을 淨飯王이라고 한 것 아니었을까?

카필라 성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쿠단(KUDAN)이라는 곳에도 들렸다.

이곳은 정반왕이 건립 한 곳인데 석가모니가 득도한 후 잠시 머물기도 했고 그의 이모가 석가모니에게 금장가사를 올렸으며 또 석가모니의 아들 라훌라도 출가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규모나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 봐 의문이 많이 가는 곳이다.

여하튼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저녁식사 후, 김성호회장이 주도해 룸비니 동산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전 회원이 참가해 맥주 파티를 열었다.

가이드 曰: 밤에 여우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니까 너무 겁먹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었으나 아침에 확인해 본바 여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음.

 

2007.07.21 (토) 룸비니 - 치트완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네팔에 도착한 날부터 계속 이런 날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08:00시 전용버스로 룸비니를 출발해 다섯 시간 만인 13:00시 네팔국립공원이 있는 치트완(CHITWON)에 도착, 국립공원 안에 있는 리노 리젠시 리조트에 들었다.

숙소가 마치 숲속의 별장 같은 느낌이다.

네팔에는 14개의 국립공원과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있는데 이곳 왕립 치트완 국립공원이

932평방킬로미터로 가장 넓고 자연환경과 풍광이 뛰어나 1984년 유네스코로부터 에베레스트 국립공원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 된 곳이다.

이 국립공원은 야생동물과 새들의 천국이다.

공원 안에는 뱅갈호랑이, 외뿔코뿔소, 갠지스악어, 네뿔영양, 줄무늬하이에나, 코끼리 등 43종의 야생동물과 450여종의 새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곳이다.

룸비니에서 치트완으로 오는 길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였다.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어느 계곡의 산간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 마을들이 모두 평온하고, 가끔 나타나는 군부대의 경계 태세가 빈틈없어 보이는 것도 같아 보였다.

이런 군부대의 주요임무는 아직도 완전히 소탕되지 않은 반정부 마오쩌둥

게릴라들의 준동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란다.

리조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치트완 국립공원 안을 흐르는 부디나프띠 강에서 1시간 가량 雨中 카누를 탔다.

그 동안 계속 내린 비로 강물이 많이 불었고 또 물살도 매우 빠른 강에서 7명이 나란히 앉아 타는 좁은 통나무 카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으나

한편 스릴과 재미도 있었다.

결국 일행 중 두 분은 카누 타기를 포기했다.

카누를 타고 강 하류에 도착해서는 코끼리 사육장도 관람했다.

네팔의 유일한 코끼리 사육장으로 암놈만 수용하고 있는데 밤중이면 정글에 살고 있는 야생의 수놈 들이 놀러 와(?) 암놈을 수태시키고 돌아간다나?

코끼리 사육장을 돌아보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강 가운데 수십 마리의 물소 떼들이 나타나 이들이 모두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역시 국립공원 내에 있는 전통공연장에서 이곳 치트완 원주민인 타루족의 민속공연을 관람했다.

관람객 대부분이 치트완으로 여행을 온 배낭객 들인 것 같았다.

 

2007.07.22 (일) 치트완 - 포카라

오전에 코끼리를 타고 2시간30분 동안 왕립 치트완 국립공원의 정글을 투어 했다.

정글을 투어하면서 호랑이나, 코뿔소는 만나지 못했으나 숲속의 악어, 원숭이, 사슴, 영양, 멧돼지, 공작새 등은 직접 볼 수 있었다.

코끼리 정글투어는 안내원 1명 포함 모두 5명이 한 마리의 코끼리 등을 타고 정글 속 야생 동물을 찾아 헤매는 투어인데 코끼리들이 무척 힘들어 했다.

너무 힘이 들어 가끔 가다가 걸음을 멈추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안내원이 가차 없이 코끼리의 머리통을 몽둥이로 내리치고는 해서 코끼리한테 미안했다.

오후, 치트완을 떠나 무글링을 거쳐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로 이동했다.

무글링은 카트만두와 포카라, 테라이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 네팔의 주요 버스는 모두 이곳을 통과한다고 했다.

치트완에서 포카라로 이어지는 길은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위 도로이고, 도로 밑으로는 머러샹디 강이 흐른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르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이 머러샹디 강을 거쳐 인도 갠지스 강까지 흘러간단다.

곳곳에 천길 폭포도 가끔 나타난다.

포카라에서는 풀바리 호텔에 들었다.

이 풀바리 호텔은 세계유명호텔 10권 안에 드는 호텔이라고 하는데 명성 그대로 주위 자연환경과 호텔내의 조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9홀인 골프장까지 갖추고 있어 호텔을 다 돌아보려면 2시간이나 걸린다며 가이드가 허풍을 떤다.

포카라는 호수라는 뜻.

포카라로 오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한 무글링에서의 에피소드 한 토막.

1. 우리 일행 중의 H선생이 갑자기 길거리 노점상의 구운 옥수수가 먹고 싶어 가격을 물었 더니 노점상 왈 "1개에 10루피"

2. 이런 데서는 무조건 깎고 봐야 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이미 갖고 있던 우리의 H선생,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드디어 1개를 더해, 2개를 10루피에 구입하는데 성공.

3. 의기양양해진 우리 H선생, 가이드인 Mr.기란에게 이 내용을 자랑.

4. 놀란 우리의 기란, 어디서 샀냐며 H선생을 앞세워 산 곳으로 다시가 무엇이라고 이야 기를 하니까 그 노점상, 아무소리 못하고 옥수수 8개를 더 제공.

5. 우리의 H선생: 으 흐-. 나쁜 놈...

 

2007.07.23 (월) 포카라

역시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함.

새벽 히말라야의 일출과 안나푸르나를 보기위해 사랑코트를 가려고 했으나 비 때문에 포기하고, 오전 포카라 산악박물관을 관람했다.

에레레스트를 비록한 주요 명산들의 사진과 등반 장비 등을 체계적으로 전시하려는 노력은 보였으나 그 내용은 빈약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속초 설악산도 소개돼 있고 엄홍길, 박영석의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도 일부 엿볼 수 있다.

네팔은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 중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8좌나 소유하고 있는 나라로 세계 산악인의 메카와 같은 나라이다.

산악박물관을 둘러본 후에는 페와 호수로 갔다.

페와 호수는 약 20만 년 전에 이 일대가 바다에서 육지로 변할 때 생긴 호수란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르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자연호수이기 때문에 더욱 관광객들과 배낭 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호수에서 유람선을 탈 계획이었으나 역시 계속 내리는 비로 이를 취소하고 호수 주변으로 길게 형성된 시장을 구경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관광객과 산악인들을 위한 등산장비나 기념품, 환전상, 여행사, 게스트하우스, 식당과 카페 등이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반드시 깨진 검은 자갈을 팔고 있는데 여러 종류의 바다 생물이 화석으로 남아 있는 암모나이트라는 것이란다.

오후에는 티베트 난민촌과 데이비스 폭포를 둘러봤다.

티베트 난민촌은 1959년, 인도로 망명하는 달라이 라마를 따라 온 티베트 인들이 이곳에 남아 형성한 난민촌인데 수년전 까지도 이곳에 들어가 한 시간도 머물지 못하고

뛰쳐나올 만큼 악취가 심하고 환경이 열악했다고 하나 지금은 외국의 원조와 이곳 티베트 인들의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 송금해 오는 돈으로 오히려 네팔 주민들보다

주거환경이 더 깨끗해 보였다.

티베트불교 사원과 학교도 따로 세워져 있었다.

카패트를 수공예로 짜고 있는 공장에도 들어가 보았다.

데이비스(DEVIS)폭포의 본래 이름은 빠뚜제장구인데 1961년 외국인인인 데이비스 부부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 페와 호수에서 갑자기 흘러온 많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실종되는 바람에 폭포 이름을 데이비스 폭포라고 불리게 됐단다.

페와 호수에서 흘러온 물이 이곳 폭포에서 100m 의 수직 동굴로 떨어져 우리가 묵고 있는 풀바리 호텔의 옆을 흐르는 쎄티 강으로 나간다고 한다.

요즘 계속되는 비로 페와 호수의 물이 많이 흘러와서 수직 동굴 속으로 내려 쏟아지며 만들어 내는 물안개와 엄청난 폭포 소리가 장관이다.

포카라 거리를 지나며 우리나라 제주도 여인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허벅과 똑 같은 것을 지고 다니는 여인들과 가정집의 출입문이 제주도 것과 같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제주도의 전통가옥에는 대문이 따로 없고 돌기둥에 구멍을 뚫어 나무 막대기 3개를 걸어 놓는 것으로 주인의 출타여부를 알린다.

나무 막대기가 한 개 걸쳐 있으면 주인이 가까운데 간 것이며, 두 개가 걸쳐 있으면 오늘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리고 세 개가 다 걸쳐 있으면 먼 곳으로 가 오늘 못 돌아온다는 뜻인데 이곳의 풍습도 우리 제주도와 같고 그 문 모양도 너무나 똑 같다.

민속학자들이 관심을 가져 볼만 한 풍습이다.

 

2007.07.24 (화) 포카라 - 카트만두/나가르곳

포카라 공항에서 18인승 부다항공을 타고 다시 카트만두로 와서 한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고 카트만두 아산(ASAN) 거리에 있는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대강 훑어보는데도 1시간이 모자랄 만큼 큰 시장인데 역시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붐볐다.

우리 일행도 일부는 전통음악을 파는 CD집으로, 일부는 기념품이나 옷가게로 또 일부는 카메라 헌팅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모여 릭샤를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점심을 먹은 한식당에서 티베트를 배낭여행하고 온 우리나라 여학생 들을 만났는데, 티베트에서 중년의 한 한국인 관광객이 고산병으로 쓰러져 결국 죽는 것을 직접 봤다며, 무서웠다고 했다.

우리의 이번 답사를 티베트에서 네팔로 바꾼 것이 잘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발(DURHAR)광장. 달발이란 왕궁이라는 뜻이란다.

유네스코의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카트만두 밸리의 세 왕궁 광장 가운데 하나다.

달발광장에는 옛 왕궁은 물론 수많은 힌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사원이 쿠마리 사원과 하누만 도카 사원.

쿠마리 사원 입구는 두 마리의 하얀 사자가 지키고 있다.

본래 쿠마리는 시바 신의 부인인 파르파티의 화신으로 풍요의 여신이다.

네팔의 쿠마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 받고 있는데,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자야프라카슈로 부터 시작된다.

한때 자야프라카슈 왕은 사춘기 이전의 소녀와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소녀가 얼마 후 죽었다.

그 뒤로 매일 밤마다 그 소녀가 꿈속에 나타나 왕을 괴롭혔고, 왕은 속죄하는 의미에서 그 소녀를 쿠마리 여신으로 모셔 경배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시작이다.

여신 쿠마리를 선발하는 기준은 엄격하다. 전통 있는 네왈 족 가문의 다섯 살에서 여덟 살쯤 된 소녀를 발탁하는데 반드시 석가모니 성씨여야 한다.

9월에 열리는 "인드라 자트라" 축제 때는 직접 왕에게 축복을 내릴 만큼 권위가 있지만 초경을 하면 쫓겨나고 다른 여신으로 대체된다.

그런데 이 여신의 선발을 정부가 한다는 게 이해 안 된다.

우리들이 이 쿠마리 사원에 들어갔을 때는 아직 알현(?) 시간이 아니라 기다려야 했다.

정각 4시가 되니 2층 창문이 열리며 쿠마리가 얼굴을 살짝 내밀었는데 바로 뒤로 사라지는 바람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붉은색 옷을 입었고 진한 화장을 했는데

어딘지 무표정한 얼굴에 슬픔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 사원.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을 모시는 사원으로 구 왕궁 입구에 있다.

하누만은 인도의 2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원숭이다.

라마야나는 비슈누 화신 중 하나인 "라마"의 러브스토리.

라마의 아버지인 다샤라타 왕으로 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라마가 계모의 음모로 부인 시타와 함께 숲 속으로 쫓겨나고, 또 사랑하는 부인 시타 마저 악마 라바나에게 납치되어 스리랑카로 끌려갔으나 우여곡절 끝에 하누만의 도움으로 정절을 지킨 부인 시타도 찾고 다시 아요디아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왕위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이 라마야나는 인도뿐 아니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도 벽화로 그려질 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도 하누만에서 비롯되었단다.

힌두교도들은 해결하기 힘든 일이나 어떤 특별한 힘이 필요하면 모두 원숭이 신인 하누만에게 기원한단다.

이 사원의 입구에 붉은 망토를 걸친 하누만 신상이 있는데 좀 희화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기원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진지하기만 하다.

일반 관광객은 사원 안으로의 출입이 통제된다.

네팔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가면이 하누만 가면이다.

이 달발광장에는 이 외에도 시바 사원, 나랴얀 사원, 비슈누 사원, 시바 파르파티 사원등이 있다.

하누만 도카 사원 바로 앞에 있는 사원의 처마 받침 기둥에 윗부분에는 비슈누의 조각이, 아래 부분에는 남녀의 성희 장면이 생생한 미투나 상이 조각돼 있어서 흥미로웠다.

마치 인도 카주라호 사원의 미투나 상과 같이...

그러나 달발광장은 너무 무질서하고 지저분했다.

사원의 한 모퉁이에 앉아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지를 적어 봤다.

관광객, 참배객, 주민은 물론 걸인, 개, 소, 오토바이, 자전거, 경찰, 잡상인, 사두, 걸인, 짐꾼, 릭사가 마구 뒤엉켜 돌아간다…….휴우-

오후 4시30분, 달발 광장을 출발해 나가르곳으로 왔다.

이곳은 해발 2,000m로 히말라야의 연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는 길 내내 비가 왔는데 산 밑에 왔을 때 간간히 햇빛이 나더니 야호! 무지개가 뜨는 게 아닌가?

솔직히 포카라 사랑코트 일정의 취소와 또 몇 일째 계속되는 비로 나가르곳의 눈 덮인 히말라야도 희망 없다고 단념을 하고 있었는데 햇빛이 나고 날이 맑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아흔아홉 구비도 더 되는 것 같은 꼬불꼬불한 좁은 산길을 올라가 숙소인 클럽 히말라야 산장에 도착하니 눈앞의 무지개 사이로 눈 덮인 히말라야의 연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게 아닌가?

신비롭고, 장엄하고 또 아름다웠으며 황홀했다.

가슴이 벅차고, 감동스러웠으며 정말 꿈만 같았다.

홍윤식회장님은 그간의 피로가 한 순간에 다 풀렸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 행운도 잠시, 30여분도 안 돼 다시 그 고고한 모습을 구름 속으로 감춘 후 끝이다.

히말라야는 정년 그의 모습을 아무 때나 밖으로 내보이는 게 아닌 모양?

오늘의 이 장관은 이 곳 산장의 종업원들도 거의 한달 만에 보는 것이란다.

클럽 히말라야는 참으로 멋있는 산장이다.

마치 알프스 어느 산록에 아주 정성을 다해 예쁘게 꾸며놓은 별장 같다.

산장의 구조는 물론 비품이나 식기, 벽걸이, 안내표시판, 소품 등이 모두 아기자기, 오밀조밀 마치 예술품과 같이 귀엽고 예쁘다.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경미회원이 전통음악을 연주하던 그곳 공연단과 어울려 아리랑을, 김치중회원은 즉석 꼽추 춤을 춰서 갈채를 받았다.

 

2007.07.25 (수) 나가르곳 - 카트만두

새벽 히말라야의 일출을 기대했으나 역시 짙은 운무로 실패.

짙은 구름에 덮여 신비롭기까지 한 나가르곳의 히말라야 산장을 내려와 파탄(PATAN)지역을 둘러보았다.

파탄은 우리들의 현지 가이드인 기란이 살고 있는 곳인데, 답사에 앞서 기란의 부인이 경영하고 있는 마트에 들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대접 받았고

집에도 들려 기란의 아버지, 어머니와 인사도 나눴다.

여행을 여러 번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파탄은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야크샤 말라가 죽으면서 자신의 세 아들에게 왕국을 나눠 주었는데 카트만두, 박다프르다와 함께 세 왕국 중의 하나다.

당시 서로 경쟁적으로 아름다운 왕궁과 사원을 세우며 각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발전해 갔으나 지금의 샤 왕조에 의해 무너지며 사라지게 된다.

이곳에는 인도의 아쇼카 왕이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다섯 개의 스투파를 세웠는데 현재는 동서남북의 네 곳만 있고, 중앙 스투파 자리에는 파탄 왕궁(달발)이 세워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쇼카 왕은 파탄을 붓다가 머물렀던 성스러운 곳이라 생각해 스투파를 세웠는데 이로 인해 이곳이 네팔 불교의 중심지가 됐다는 곳이며

지금도 불교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또 석가 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파탄 달발, 즉 구 왕궁 입구에는 사자 석상이 버티고 있는데 옛날 거짓말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이 사자 상 앞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이 들어났다나?

두 마리의 코끼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조각도 인상적이고, 말라 왕이 기도하는 동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카트만두의 달발 광장에 비해서는 그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석가 족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과 그 안에 있는 몇몇 불교 사찰들도 둘러보았는데 그 중에서 3층으로 된 골든 템풀이 인상적이었다.

법당 안에는 석가 족만 들어갈 수 있는 사찰이다.

12세기 바스카 버마 왕에 의해 건립된 사찰로 가죽으로 된 신발을 신은 사람은 경내 입장까지도 금지된다.

사찰 안을 돌아다니는 금빛 거북이가 신기했다.

역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네팔 카트만두는 비록 570평방킬로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7개나 되는, 단일 면적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다.

저녁식사는 민속식당에서 네팔의 전통음식과 민속주를 들면서 공연을 봤는데 내용을 몰라서 그런지 지루했다.

네팔 도착 첫 날 묶었던 하야트 리젠시 호텔에 투숙,

 

2007.07.26 (목) 카트만두 - 인천공항

오늘도 역시 비가 오락가락한다.

경비행기를 타고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눈 덮인 히말라야의 준봉들을 보기위해 공항까지 나가 티켓 팅까지 하고 기다렸으나, 역시 날씨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몇몇 관광객들이 벌써 두세 번이나 나왔다가 허탕을 치고 있다는 것을 봐서 역시 히말라야는 그렇게 쉽게 자신의 자태를 들어내지 않는 영산인 모양이다 .

호텔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보드나트(BODHNATH) 스투파를 돌아봤다.

나트란 시바 신을 지칭하는 단어란다.

보드나트는 사리탑의 높이가 38m나 되며 그 주변이 100m나 되는, 네팔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투파이다.

티벳과 네와르 석가 족 불교신자들이 가장 신성시 하며 숭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티베트 인들은 이곳에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돼 있다고 믿고 있으나 근거가 없단다.

이 보드나트에 얽힌 전설이 있다.

초능력을 가진 한 소녀가 자신의 초능력을 실험하려고 인드라 신의 꽃밭에 몰래 들어가 꽃을 훔쳤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카트만두 계곡에서 소를 치는 사람의 딸로 태어난다.

소녀는 자라 결혼을 해 네 명의 자식도 낳고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지만 늘 그 꽃을 훔친 것이 죄스러워서 부처님을 모실 성스러운 사찰을 지어 참회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가 물소 한 마리로 덮을 수 있는 정도의 땅을 달라고 청해 결국 허락을 받는다.

이 노파는 물소의 가죽을 얇게 펴고, 또 고기도 아주 얇게 썰어 그 만큼의 넓은 땅을 얻고 그 자리에 현재의 보드나트를 세웠단다.

이 보드나트를 비롯해 네팔의 스투파는 모두 그 형태가 특이하다.

먼저 하얀 사발을 엎어놓은 듯 한 봉발형의 하단부가 있고 그 위에 사면체를 올려놓았는데, 각 면마다 커다란 눈을 그려놓았다.

"제 3의 눈"이다.

그 눈은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듯해 마주하기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진 지기도 한다.

역시 스투파의 주위로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진 마니차가 걸려있다.

보드나트 주위에는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를 처음 전했다는 카두마 삼바바를 주불로 모신 사원을 비롯해 여러 티베트불교 사원과 티벳인들의 불교 용품 및 기념품 가게들이 많았다.

1959년 중국과의 독립전쟁에 실패한 후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로 가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가 이때 네팔을 거쳐 갔는데 달라이 라마를 따라 온 많은 티베트 승려들과 난민들이 네팔에 남아 티베트불교를 전파한다. 이 때문에 네팔의 불교사원에 티베트불교의 흔적들이 강하게 스며들었다. 이곳 보드나트 또한 예외가 아니다.

보드나트를 마지막으로 7박8일간의 네팔 일정을 모두 마치고 카트만두 공항 행.

현지시간 14시 15분, KE696 편으로 네팔과 아듀 했다.

27일(금) 새벽 12시10분경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후기를 쓰면서 첨언.

* 네팔 힌두교도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곳이며, 인도 힌두교도들 에게도 성지로 알려져 12월 열리는 시바축제 때 많은 순례자들이 온다는 황금빛 사원, 파슈파티를 가보 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파슈파티 사원 옆으로 흐르는 바그마티 강가에서는 인도의 갠지스 강 같은 네팔 인들의 화장터도 있다는데…….

* 파탄의 붉은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는 레드 마젠드라나트를 가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 네팔은 6월부터 시작되는 우기를 피해 9월 이후로 여행계획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대한항공이 매주 목요일 왕복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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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7.15 10:51

    첫댓글 이글은 퍼온글인데 현재는 대한항공 직항로가 주2회(월,목) 운항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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