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떠내려 오는 물고기들
홍수가 잦아드는 아침에 집집마다 수수밥이 냄비에서 익고 있을 때
말집에서 나누어준 말고기를 구우랴, 집집마다 판자 집 세우랴, 새 아침의 방천은 홍수 피해도 잊은 채
소풍 나온 가족들처럼 흥분해 있었습니다.
아직도 설익은 새 빨간 말고기를 한 점씩 입에 문 아이들은 조용히 그리고 도도히 흘러가는 개울 물소리 같이
삶의 의지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굶주림에 눈이 시뻘건 동네 사람들의 억지 속에 말집에서 나누어준 말고기 인심으로 판자 동네는 언제 또 다시
물난리가 날지 모르지만, 아침을 찾아 먹은 후 판자 집을 부지런히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판잣집은 네 귀퉁이에 각목을 세우고, 판자로 지붕에 이엉을 한 후, 둘레는 가마니로 싸고 그 위에 보드박스로 덮고
출입문은 가마니 한 장을 들치면 방으로 들어 갈 수가 있도록 하면 끝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집안으로 들어가서 방바닥은 둘레에 물 흐르는 골을 파서 물기가 빠져 나가게 하고 가운데는
가마니를 반으로 잘라 낸 후 3-4장을 바닥에 길게 깔면 훌륭한 안방이었습니다.
말고기로 배를 채운 남자들은 어디서 소주를 한잔씩 곁들여서 아침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바람에
아이들도 어른들 춤 사이로 끼어들어서 아빠와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 따라 다니니 방천 뚝은 이내 축제장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홍수 피해를 입은 피난민들이라 했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의 춤사위가 시들할 즈음 아이들은 누가라고 할 것도 없이 뚝 위에 엉덩이를 까고 죽- 앉아서 똥을 누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홍수에 몸서리치면서도 오늘은 강물을 바라보고 앉아서 흐르는 황토 물 속에 떠내려가는 닭이랑, 돼지랑,
나무토막이랑, 뿌리 채 뽑힌 나무를 보면서 간밤에 피해가 있었던 것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며칠 뒤 8월의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홍수로 불어났던 물길도 말갛게 바닥을 드러내니 자갈이 많은 곳으로 물길이 쏠리면서
급물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얕은 곳에 급물살을 찾은 민수와 뺑이는 쏜살같이 흐르는 물살에 엎드리니 갑자기 잠지가 급하게 흔들리며
귀에는 종소리가 울려 왔고, 물살을 이기려고 잠지를 들면 잠지가 성을 내니 아랫도리가 간지러워 숨넘어갈 것 같아도
참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물속에서 도저히 그대로 있기는 너무 간지럽고 물고기가 잠지를 물고 흔드는 것 같아서 확인하려고
물속을 드려다 보아도 고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뺑이와 민수는 개울물에 몸을 잠그고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니 잠지만 물속으로 들락날락거리며
간지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주위에 어른들이 없나 찾아 볼 정도로 잠지가 혼자 재미있어 하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홍수로 산속에 숨어있던 새물이 개울로 스며들면서 어른들은 고기가 마취되는 약을 상류에서부터 뿌려서 흐르는 물이
물반 고기 반으로 변하고 물속에는 쏘가리, 메기, 붕어, 뱀장어, 미꾸라지, 가재, 피라미들이 떼로 죽거나 반쯤 죽어서
배를 하늘로 허옇게 내밀고 떠내려 왔습니다.
피난민들에게는 개울물이 식수이며, 목욕물입니다.
그런데 그물에 약을 뿌렸으니 개울물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상류로 몰려가서 마실 물을 못 먹도록 약을 뿌린 사람을 찾아내려고 몰려다니지만 한번도
범인이 잡힌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홍수가 지나면 누군가가 약물을 뿌려서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판자촌 사람들은 뚝 넘어 샘이 있는 민가를 찾아가서
물을 동냥해야 했습니다.
물 인심마저 사나운 집들은 문도 안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또 한참을 걸어서 동인동 로터리에 있던 잠사 공장의 물을 길러다 먹고는 하였습니다.
잠사 공장에는 누에들이 뽕나무에 달려 있기도 하고, 나방이 된 누에는 뽕나무 잎에 열심히 알을 까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뽕나무 잎에 알을 씨는 나방을 잡아와서 뽕나무 잎에 올려놓고 어떤 누에가 알을 많이 까는지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에 누가 먼저 알을 빨리 터트리나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재미에 빠져 있을 즈음에 잠사 공장에서 갑자기 동네 사람들 출입을 막았습니다.
이유는 뻔했습니다.
잠사공장은 누에나방이 없어지고 번데기를 도적 맞는다면서 출입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단백질의 보고인 번데기를 못 먹게 되고 돈으로 사먹어야 할 판이니 동네 인심이 흉흉해지고
아이들은 자주 어른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민수네 앞집에 있던 엿장수 집이 이사를 가고 영주네가 이사 와서 집을 새 판자 집으로 다시 짓고 살았습니다.
영주네는 엄마와 결혼한 딸과 사위, 그리고 영주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영주의 형부가 무너진 집터에 기둥을 세우고 판자를 사방으로 둘러 쳐서 민수네 집 보다 훨씬 예쁜 집이 되었습니다.
영주는 민수 하고 나이가 같은 일곱 살이었습니다.
민수네 온 식구가 밥을 먹는 어느 날 아침에 영주가 가마니 문을 들치고 들어와서는
"안녕하세요" 하며 영주가 밥상을 끼웃거려서, 엄마가 수수밥에 감자 썩은 밥 한 그릇을 주니,
아직 아침 전인지 맛있게 떠먹으며 민수 얼굴에다 뽀뽀를
"쪽-"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너를 사랑 한단다"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웃고 있는 사이에
"네가 날 사랑하면 내 입에도 뽀뽀 해 봐" 하며 영주가 눈을 감고 입술을 민수 쪽으로 뾰쪽이 내밀었습니다.
민수는
"그래, 나도 너 사랑해" 하면서 영주의 앙증맞은 빨간 입술에 뽀뽀를 했습니다.
"제가 어른들이 하는 짓을 본 모양이예요" 하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글쎄 말이야,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조심해야지"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모두들 피난민이라 단칸 판자 집에 살다 보니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호호호"
"그렇지 가릴 곳이 없으니 아이들이 다 보지"
"그래도 어른들이 조심해야지요"
"영주가 걱정이군" 했습니다. (4부 계속)
첫댓글 곡월님! 6부작 다 써 놓으시고 순차적으로 올리고 계신건지 아니면 3부가 마무리되면 4부를 새롭게 쓰고 계신건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다 완성되면 신춘문예 응모하셔도 되겠습니다.
얼른 4부가 빨리 보고싶습니다. 제가 보고싶다라는 의미는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리 표현했습니다.
만우님 늘 건강하십시오 .
이 글은 오래전에 작성한 글인데
조금씩 다시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