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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학』(2017년 여름, 42호)이 주목하는 이 계절의 시인 / 대담 임애월 편집주간
극과 극은 한통속이다
장 순 금 시인
- 산천이 모두 그야말로 푸르른 5월 어느 날...
안양에 사시는 장순금 시인을 만나러 약속장소인 백운호수엘 갔다.
호수마저 푸른 물이 배어들어 사방천지가 싱그러웠다.
첫인상이 참 단아해 보이시는 장순금 시인이 그 5월 속을 걸어오셨다 -
임애월 : 장순금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품으로 먼저 만나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장순금 : 네, 안녕하세요? 《한국시학》 지면으로만 임 주간님을 만났는데 직접 만나서 저도 반갑습니다. 별로 할 얘기도, 특집으로 엮을 만한 내용도 없는 사람을 인터뷰를 한다니 걱정이 됩니다.
임애월 : 무슨 겸손한 말씀을요.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꼭 모시고 싶었답니다.
여기 의왕 백운호수에 저는 참 오랜만에 왔어요.
이렇게 무성한 숲에 둘러싸인 초여름 호수를 보니 기분이 참 상쾌해집니다. 선생님께서는 안양에 사시니까... 이곳에 자주 오시는지요? 안양에서는 얼마나 사셨어요?
장순금 : 가끔 시인들이나 친구들이 오면 백운호수 주변 분위기가 괜찮아 차 마시러 오기도 하고 또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답답할 땐 혼자 한 바퀴 돌기도 하고, 특히 비 오는 날 호수 풍경이 아름다워요. 안양 산 지는 한 30년 넘었지요, 2년만 살고 이사 갈 거야 했는데 살다보니 세월이 흘렀고 원래가 붙박이 체질이라 움직이는 게 굼뜨다보니 어느새 안양댁이 되었어요.(웃음)
임애월 : 네, 안양에서 정말 오래 사셨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우선 근황부터 좀 들려주세요.
장순금 : 요즘은 그냥 놀아요.(웃음) 지난 겨울호와 봄호 문예지에 작품 발표를 많이 했어요. 일 년치 발표하고 쓴 만큼이라 소진했는지 손 놓고 놀아버렸어요. 몇 달 쉬었으니 지금은 워밍업 중이라고 해야겠지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수업 듣고 하루 성경공부, 한두 번 휘트니스 가고 어쩌다 영화나 공연도 보지만 대부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사람 만나러 외출은 잘 안하는 편이며 고요한 날들이 많아요. 요즘은 뜯지 않은 잡지들이 쌓여있는데 보기만 해도 맘이 무거워요 빚쟁이처럼...
임애월 : 영어, 성경 공부에 운동까지...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저는 좀 게으르거든요.
고향이 부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시지요. 부산이 고향인 분은 이 코너에서는 처음이시라 부산의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장순금 : 늘 바다와 함께 지냈다고 해야겠지요, 바다가 귀한 줄도 좋은 줄도 모른 채 당연히 있는 공기처럼 생각했는데 부산을 떠나서야 비로소 바다가 고맙고 그립고 귀한 줄 알았어요. 영도에 살았었는데 그때 저의 놀이터는 성당이었어요. 학교 갔다 오면 교복 벗고 바로 달려가 친구들과 탁구 치고 성가 연습하고 미사 드리고 해거름에야 집에 돌아왔어요. 여름방학 땐 거의 매일 새벽미사 후엔 모두가 함께 바닷길로 태종대까지 걸어갔다 오곤 한 신선한 기억이 아직 선명해요. 또 달빛 좋은 날에 친구들과 해운대 모랫길을 걸으며 노래하고 시도 읊었던 추억이 아름답게 저장돼 있어요. 겨울날 어쩌다 눈발이라도 날리면 온 동네 애들이 다 달려 나와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지요. 지금은 원 없이 눈을 보고 살아 교통 불편이 먼저 떠올라 백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걸 보니 이런 게 나이 듦의 표징인가 봐요.
임애월 : 영도 바닷가에서의 어린 시절이라... 그림이 절로 그려지네요.
뜬금없는 생각인데요, 선생님의 함자가 정감이 있고 참 좋습니다. 불순물이 0%인 진짜 순금이시겠지만 한자로는 어떻게 쓰시는지요?
장순금 :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걸어 다니는 옥편이라 하셨답니다. 제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순임금 순(舜) 거문고 금(琴), 순금이라 지으셨는데 저는 그 이름이 못마땅해 방학 때면 외가에 가서 할아버지께 이름 바꿔 달라고 떼를 썼어요. 애들이 ‘굳세어라 금순아’ 그러면서 놀렸거든요.
임애월 : 어릴 때는 이름 가지고 놀려대는 일들이 허다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일찌감치 예술가가 되실 이름을 받으셨네요. 한자 이름도 참 멋지십니다.
장순금 : 한자 풀이로야 태평성대 순나라 임금 시대에 거문고 뜯으며 여유롭고 한가로이 노래하며 시를 읊는 풍류객이 떠오르는데 정말 그 뜻처럼 시로서 삶을 예술가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이 시대에...(웃음)
임애월 : 선생님의 E-메일 주소를 보고 혼자 웃었어요. 그 ‘24K’ 때문에요.
장순금 : 어릴 적 오빠들이나 주변에서 저를 부를 때 이름 대신 모두가 ‘24K’라고 불렀어요. 저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아 메일주소를 그리하니 기억하기도 쉽고 간단했어요. 근데 불순물이 0인 진정한 24K가 있을까 싶네요.(웃음)
임애월 :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백일장 장원을 휩쓸었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저도 들었어요.
장순금 : 저의 큰오빠가 재능이 많아 시도 그림도 잘 했어요. 특히 시를 잘 썼고, 전 오빠가 직접 엮은 만화책을 읽으며 작중 인물의 희로애락에 흥미진진해 했으며 어깨 너머로 명작인지 금서인지도 모르고 책을 마구 읽었어요. 나이에 안 맞는 책도 숱하게 읽은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다니는 릴케, 괴테, 사포, 하이네 같은 외국시집들을 먼저 접하게 되어 거의 외다시피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시집은 중1 때 김소월부터 읽게 되었어요. 뚜렷이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시를 대하고 있으면 애들과 노는 것보다 즐거웠고 그러다 전국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몇 차례 이름이 알려져 당시 또래에선 유명세도 좀 탔고요, 특히 부산대학교 주최 전국고교작품모집에서 전국에서 작품이 650여 편이 왔는데 최종심에 12편이 올라 그 중 제 작품 6편 모두가 최종심에 올라 화제가 되었으며 「화병」이란 시가 당선이 되었어요. TV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한동안 매일 뉴스에 보도되어 팬레터도 수없이 받았어요. 그때는 편지로 주고받던 시절이었고 봉투의 주소를 앞부분만 써도 우체부 아저씨는 배달해 주었어요. 수없이 받고 보낸 편지들의 내용은 문학작품에 관한 논평과 감상이었고 그 몇 년 간의 편지글들이 훗날 문장 훈련에 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그러니 제가 뭘 잘 하나 봤더니 시 창작이라 자연히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 거 같습니다.
임애월 : 네, 정말 대단하셨네요. 실력파들은 학생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일화들을 남기지요. 지성과 미모를 모두 겸비해서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셨겠습니다.(웃음)
1985년 《심상》으로 문단에 나오셨지요?
장순금 : 네, 《심상》이 박목월 선생님께서 창간한 시전문지란 걸 등단 후에야 알았어요. 고교 때 전국백일장에서 목월 선생님께서 뽑아 주셨는데 시제가 ‘뿌리’로 기억 됩니다. 그때 품평을 하시기를, “현재 발간되는 기성 문예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고교생이 이렇게 쓴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고등학생은 고등학생다운 글을 써야 한다”고 일침을 놓으셨어요. 그 말씀의 의미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고요, 목월 선생님께서 작고하신 한참 후에 《심상》으로 등단 후, 불현듯 그 생각이 나 목월 선생님과는 인연인가 했습니다. 그때의 정서와 허무감이 제 나이를 훨씬 앞질러 가 고독한 존재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염세철학에 매료되어 사색에 빠져있던 수렁의 시간이었어요. 즉 슬픔의 힘이 시의 무기였던 것 같았어요. 그 힘이 나를 견디게 하고 살아있게 하고 시를 쓰는 이유와 명제를 주었어요. 그때 누런 표지의 청록집 2권이 두껍게 청암사에서 나왔는데 청록집에 실린 목월시를 거의 다 외웠어요. 지금도 책장 한쪽에 너덜너덜한 채 꽂혀 있답니다.
임애월 : 네, 타고난 시인이라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슬픔을 중고등학생 때부터 끌어안고 있었나 봅니다.
등단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궁금해지네요.
장순금 : 등단 작품은 5편인데 「연」 「목련」 그리고 3편은 기억이 안 나네요 오래 되고 관리도 못한 탓에 등단지도 사라지고 작품을 외지도 못한답니다. 당시, 지금은 유명시인이신 문인수 시인과 함께 등단해 지금까지 각별한 시우로 문학과 살아가는 얘기도 격 없이 나누며 지내고 있습니다. 등단작의 심사는 강우식 선생님께서 하셨는데 감사하게도 현재 같은 안양에 거주하고 계시어 가끔 정다운 자리를 갖기도 합니다.
임애월 : 그러시군요. 『걸어서 가는 나라』가 첫 시집인데... 물론 첫 시집을 상재한 소감은 특별하셨겠지요? 그 무렵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장순금 : 88년도에 상재했는데 첫 시집이라 얼떨결에 냈고 한 단계 정리해 묶는다는 의미에서 낸 거라 지금 보면 어설프고 미숙한 데가 많지만 제 이름으로 된 시집이 처음 나왔다는데 만족했습니다. 그 땐 문단 형편도 모르고 모임도 거의 안 나가고 작품이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가사와 육아에 매여 외출도 어려웠고 독서와 시 창작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 답답함 속에서도 한 귀퉁이 시를 붙들고 자기 응시의 시간으로 언어가 발효되기를 기다렸어요. 저 개인의 문학도 소중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과 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직무유기라 여겼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으며 문학이 별나라 얘기나 뜬구름이 아닌 생활 속 체험으로 나오는 창작으로 불가사의한 세계와의 교감과 근원을 알 수 없는 허기의 갈증을 시 창작으로 이기고 풀어나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임애월 : 대부분의 시인들이 멋모르면서 묶긴 하지만 그래도 첫 시집 상재는 가슴 떨리는 일이지요. 첫 시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장순금 : 별로 신통하다 생각되는 작품은 없는 거 같아요. 더러 괜찮은 연과 행이 있겠지만 지금 눈으로 보니 눈에 차는 게 없네요. 다만 서문에서 ‘시를 사랑하는 일이 사람을 사랑함이며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함이다. 시 창작은 세상에서 깨어있기 위한 노력이다. 시는 삶의 도구이며 확인이며 때론 목적이기도 하다. 살아있음의 발언이며 그 살아있음을 지탱해 주는 지팡이며 채찍이다. 영원히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기다림과 인고의 나라이다’라고 썼어요. 문학과 자신에 대한 서약 같은 거란 생각이 드네요.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걸어서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도달점이 어디인지는 끝이 보이지 않겠지만요.(웃음)
임애월 : 그때 그 서약을 지금 충실히 지키고 계신 셈이군요.
선생님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은 감칠맛 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요. 특히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햇빛 비타민」에서는 최저, 혹은 최악의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는 네팔 어린이들의 삶을 순식간에 희망으로 반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정말 통쾌한 심미감을 느끼게 합니다.
파리와 섞여 노는 구정물 아이들,
쓰레기더미에 올라 찾아낸 고무풍선, 버려진 콘돔 불었다 빨았다,
시꺼먼 젖통 출렁, 등에 매달려 보채는 애
손가락 뒤로 벋어 입에 물리는 저, 극단의 생존
최악, 최저, 최후의 낱말 속에 하루살이처럼 윙윙거리는
목숨
생의 행간이 없는 새카만 발바닥들이 네팔의 질긴 태양 속으로 간다
진창의 바닥에서
오늘도,
먹이를 찾아낸 아이들은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 웃는다
하느님도 어쩔 수 없어
아이들 등짝마다 햇빛 비타민이나 흠뻑 칠해준다
-「햇빛 비타민」전문
장순금 : 비타민은 육신의 곳곳에 영양을 공급하는 주요 물질로 생존과 밀접한 영양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기에 최악의 극단적 환경에서 기본 먹이까지 위협 받는 열악한 현실이,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린이들의 가슴 아픈 현상인데 네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인도의 어린이들의 유난히 크고 맑은 새까만 눈망울을 봤을 때, 연민과 함께 신은 이렇게 아름다운 눈망울을 주는 대신 가난을 주셨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의 배시시 웃는 얼굴에서 내일의 희망이 보이고 행복지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하늘이 주신 햇빛만큼 더 큰 비타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늘이 내리는 선물입니다.
임애월 : ‘햇빛’과 ‘비타민’이라는 시어가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 때문에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살아갈 시대는 작품의 무대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환경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막 생겨난답니다.(웃음)
장순금 : 햇빛은 희망이며 불빛이며 사랑이며 미래입니다. 지금은 나라마다 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으니 그들도 교육을 받고 국가 경제도 좀씩 좋아지면 점차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임애월 : 이 시집으로 문학상도 많이 받으셨지요?
장순금 : 네, 부끄럽지만 동국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을 위시해 한국시단의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받은 동국문학상을 제가 받아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임애월 : 시집 『햇빛 비타민』 의 서문에서 ‘빙하기를 건너오면서 서러워서 자꾸 넘어졌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에게 ‘빙하기’는 어떤 시절이었는지 귀띔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장순금 : 춥고 어두운 지하 같은 성찰의 시간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삶의 궤도를 바꾸고 생에 큰 획을 긋는 죽음 문턱에 선 시간들이었지요. 갑작스런 암 선고에 허둥지둥 했고 죽음을 준비했고 가족들에 전하는 갖가지 일들을 메모해 남겼고 자신을 적나라하게 돌아보며 성찰과 반성으로 삶을 정리하며 죽음을 예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불쌍히 보았는지 남은 시간을 이렇게 길게 주시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임애월 :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장순금 : 한 10년 전쯤의 일이겠네요. 삶은 죽음과 다름 아니고 죽음 또한 삶과 맞붙어 있음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새로워져 시간의 귀함을 알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빙하기는 참으로 서럽고 뜨거운 체험의 병실이라 이후의 나를 다른 궤도로 살게 했습니다. 허술하게 대한 시에게도 미안했고 예기치 못한 삶의 폭풍 같은 먹먹함도 슬픔과 상면하는 놀라움도 먼 일이라 여겼던 것들의 침범에 대비하지 못한 실패가, 이후엔 시라는 수인에 갇혀 열중하는 시간이 되기를 스스로 다짐하게 됐습니다. 삶이란 캄캄한 동굴 속에서도 희망의 성냥불을 끝없이 켜며 사는 일이라 사랑이라는 삶의 큰 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임애월 : 다시 건강해지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세상에 남아서 좋은 시들을 더 많이 남기라는 계시인가 봅니다.
윤석산 시인은 이 시집 『햇빛 비타민』을 두고 ‘언어와 함께 놀고, 언어를 다스리고, 또 언어를 희롱하듯이 주무르는 言弄에 빠져있’다고 했는데, 물론 대상을 詩的으로 재해석하는 관점도 범상치 않지만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타고난 연금술사처럼 정말 매끄럽습니다.
장순금 : 과찬이십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시인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보면 저는 인내력도 지구력도 부족한 나태한 태도에 스스로 비난을 하게 됩니다. 우수한 시를 읽다 보면 무력한 제 시가 보이고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시는 제 삶의 무의식 상처와 허무감으로 패인 자리를 보상해 주는 듯합니다. 자주 염세적이고 비애에 넘어진 시간을 새롭게 환기 시켜주는 샘물 같은 이미지들이 고리를 물고 일어나면 절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언어들, 그것이 곧 언롱이란 말씀이겠지요.
임애월 : 선생님의 작품 「아, 21그램」을 읽었어요.
미국인 의사 맥두걸이 정밀하게 실험 측정한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었다고 하지요. ‘그 동전 네댓 개 정도의 무게’에 경배하고 거대한 육신이 끌려 다니고...
그게 사실이라면 사람이 사망 시 빠져나가는 영혼의 무게 21그램은 어디로 날아가는지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게 아직도 정말 궁금하거든요.(웃음)
사람의 영혼을 무게 재어 보았더니 21그램이라고 한다
그 동전 너댓 개 정도의 무게에 내 한 생이 끌려 다녔다니!
그 가벼운 힘이 휘두른 사랑의 칼날에 피 흘리며 죽음의 문턱에 쓰러졌던가,
저울의 눈금이 출렁, 기울어지는 몸의 2천분의 1도 안 되는 무게가
두근거리며 사랑한 비밀한 몸의 정수리에 떡하니 앉아
뜨거운 피 오르내린 골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니
영혼에 경배하고 높은 곳으로만 끌고 다녔던,
수백 톤의 고통을 끌어내 시를 쓰게 한,
아, 21그램!
거대한 힘이 하늘에서 한 생애 잡고 있는 줄만 알았던,
아니다
21그램에 힘을 주신 그 거대한 힘
을,
언제 깨우칠까!
- 「아, 21그램」 전문
장순금 : 저는 오랫동안 육신보다 정신에 큰 비중을 두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육신이 먹고 자고 하는 것에 소홀히 했고 정신 뒤로 육신을 마냥 끌고 다닌 시간이 미안했고 마음에 끌려 다니며 혹사당한 몸에게 영육의 균형을 잃고 아프게 한 죄 또한 커, 그래서 몸에게 혼 난 일이 있었다고 했지요. 인제는 자주 몸의 눈치를 보며 삽니다. 좋은 음식으로 잘 먹이고 시간 되면 재우고 영양보충제도 먹이며 몸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나이 듦에 오히려 허약한 몸을 앞에 세우고 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21그램의 저울의 눈금, 그 가벼움 속의 무한 중력은 하늘을 받드는 힘, 영혼의 시선에 맞추는 하늘의 찰나의 무게로 지상을 빠져나간 허공에서 바람이 되어 떠돌거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을지... 어디에 물어 볼까요?(웃음)
임애월 : ‘장순금 시인은 언어와 언어를, 시어와 시어를 서로 부딪치게 하므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 새로운 가치의 세계를 언어를 통해 만나는 그 재미에 시를 쓰고 있는 것’ 같다고 윤석산 시인이 말했는데 시를 창작한 후에 가장 행복감을 느낀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기억하시는지요?
장순금 : 모두가 제 피와 살 같은 거니 다 귀하긴 하겠지만 유난히 쓰고 난 후 많이 아픈 시가 있습니다. 문학성으로 우수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개인에겐 깊은 기억이 만들어 낸 애착어린 시가 있지요. 이미 발표한 시로 「청춘」을 완성해 놓고 눈물이 스르르 흘러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부분만 보면,
‘슬픔이 고인 동네가 있어, 동구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발목이 젖는, / 발자국 출렁거리며 한 시절을 걸어 들어간다 /그림자가 뜨뜻한 빨간 우체통을 지나 키 큰 미루나무를 돌아서면 /오래 별이 된 집 // 우물처럼 깊은 바닥에 두레박을 내려 아침이면 내 죽음을 건져 올리던 /파랑대문 물결이 목울대를 차올라 /출렁출렁 바람이 집을 모로 기울이며 울컥울컥 모래를 쏟아낸 /독한 약에 취한 듯 깨지 않는 가파른 꿈이 아직도 나를 가파르게 세워둔 집 /몸을 뚫고 간 혹한의 청춘 한 구절이 퍼렇게 얼어 발치를 핥는’
기억의 농도 짙은 시절의 슬픔이 고인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이 집에서 써야 할 많은 이야기가 시작품으로 나오리라 합니다. 눈물의 보화가 쌓인 시공간이며 고통이 고통을 낳던 아픈 시절이 고스란히 숨 쉬던 푸른 청춘의 집이지요.
그리고 「붉은 방」이란 시도 제겐 아픈 시입니다.
누구나 몸속에 붉은 방 하나씩은 갖고 있다
좌심방 우심방 그 뒤, 가장 깊이 면도날로 숨겨놓은 방
꿈이 붉어, 붉어서 죽지 않는
열망으로 짓물러 서러운 반점처럼 찍힌 방
꽃술까지 붉은 물감 쏟은 피 같은 방
헛구역질 헉헉대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방
뜨건 하혈 무섭게 쏟아내도 제 방이라 우기던
꽃잎, 그 피의 향기
얼음 껴안은 영하 10도의 체감으로도
불 꺼지지 않는 방
그 붉은 방을 지탱한 독한 심지의 기운이
지옥 불길 속을 지나
불 꺼진 나를 살렸다.
-「붉은 방」 전문
임애월 : ‘꿈이 붉어, 붉어서 죽지 않는/열망으로 짓물러 서러운 반점처럼 찍힌 방’...
‘빙하기’를 건너오실 때의 작품 같은데 아프게 다가오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이 보입니다.
2013년에 상재된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시집에서는 ‘붉은 방’ ‘골방’ ‘빈방’ 등 ‘방’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고립감과 안락함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에 대한 이미지 때문일까요?
장순금 : 방은 어머니 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이미지입니다. 저는 그런 방에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조용하고 정돈된 공간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방 이미지가 시에 많이 작용했나 봅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불안요소나 허공으로 떠도는 심리적 역마살 같은 불안정한 고립감을 안정적으로 붙들어 매고 싶은 욕구로도 해석이 되겠지요. 아늑한 공간을 그리워하고 안주하기를 바라는 절대고독의 갈등과 결코 안주해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까닭에 양면성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 고통을 동행하며 날마다 무한공간의 바람 부는 언덕 같은 방을 들락거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임애월 : 삶의 모든 선택에는 양면성이 내재되어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반대편에는 늘 그늘이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게 근원적인 슬픔이 되는 것이고요.
그 슬픔을 마구 풀어놓아도 좋은 곳, 그래서 누구에게나 ‘골방’은 필요하지요.
혼자 겨우 들어가는 혼자만 아는 골방, 때론 쉬어가고 때론 울다 가고
얼굴 묻고 있는 방, 내가 조그만 알처럼 둥글게 되는 좁은 방에 들어서면
산도 구름도 낮아지고 달빛도 내려와 두손을 모은다
골방에선 일생을 걷던 내 발이 보이고 감춰둔 발톱도 보인다 더 크게 더
자세히, 갈라지고 튼 뒤꿈치로 걸어온 길, 길의 튼 살이 보인다
무념무상의 얼굴로 골방이 나를 본다 나도 깃털처럼 앉아 골방의 복부를
연다 골방은 침묵하는 수다쟁이, 내가 하지 않은 말까지 다 말해 버린다
나는 몸을 숨긴다
골방 속에서도 또 몸을 숨기는 나의 골방
몸에 꼭 맞는 골방에 꿇어앉으면 꿇어앉은 당신이 보인다
-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전문
골방에서는 ‘감춰둔 발톱도 보인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서 꽂힙니다. 팍팍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그 시공간 속에서만 무장 해제되는 우리들 ‘발톱’의 광기... 어린 시절에 꿈꾸던 별이 뜨는 다락방처럼 가슴 속에 내밀한 ‘골방’ 하나쯤은 누구나 만들어놓고 있을 텐데요. 들어앉으면 자신의 ‘걸어온 길’이 보이고 그 길의 ‘튼 살’까지 다 보이는 자기 성찰의 시간에 비로소 ‘하늘’이 보이는 거겠지요.
장순금 : 네, 누구나 그런 골방 하나쯤 늑골 속 감춰두고 있으리라 합니다. 바로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정신의 밀실이지요. 남에게 보이기 싫은 부끄러운 것, 평소 숨기고 있어 남모르게 할퀸 핏자국 보이지 않는 발톱으로 곱게 걸어온 길, 그런 치부를 저만 알듯이, 감춘 뒤꿈치를 집요하게 파헤쳐 다 트고 짓물러 피투성이의 길을 걸어온 적나라한 진짜 내 모습 화장도, 옷을 입히지도 않은 맨몸의 자신을 골방에선 절대자인 신에게 있는 대로 다 열어 보이는 겁니다. 바로 절대 고독의 민낯을 자아와 부딪치는 진정성으로 몰래 비워둔 방엔 언제든 들어가 기도하고 얼굴 묻고 울며 위로 받을 수 있는 비밀의 시공간이지요. 그곳은 유일하게 신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시인은 골방에서 매순간 하늘과 삶과 문학에 정면으로 다가서는 자세로 스스로 환기해야 함에도 저 역시 실행은 어려운걸요
임애월 : 선생님의 작품 「극과 극은 한통속이다」에서 ‘꽃이 악마고 악마가 꽃’이 되기도 하고,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듯’ 결국 ‘극과 극은 한통속’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맥락에서 ‘골방’과 ‘하늘’도 한통속이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웃음).
장순금 : 골방의 개념이 제게는 현실을 초월한 시공간이니 곧 하늘과 상통하는 거지요. 골방에선 하늘과 내가 오롯이 소통하는 직선거리로 결코 협소하지 않은 깊은 시력으로 만나는 무한공간이고, 시야말로 혼자 노는 예술이니 골방은 혼자 놀기 딱 좋은 공간이지요.
세상 모든 것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끝이 있는 곳엔 또 다른 시작이 있듯 맞물려 가는 길엔 흑과 백도 결국엔 하나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생명이 끝나는 지점에선 지구 어디선가 새 생명의 울음이 죽음의 울음과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시간이 열리니 우주의 기는 순환하며 그 속 우리의 생명도 하루씩 허공에 넘겨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임애월 : 하늘과 골방, 고속도로와 리어카, 고물들과 별빛, 순한 양과 도깨비, 얼음과 햇살, 바닥과 하느님, 햇빛과 그늘 등, 그러고 보니 한편의 작품 속에 극과 극을 매치시키고 그 간극을 매끄럽게 채워나가는 기법이 참 신선하네요.
장순금 : 빛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드러나고 어둠은 빛이 있어야 뒤편 그늘이 짙게 남게 됩니다. 상극인 것 같지만 서로에게 동전의 앞뒤만큼 가깝고 필요불가결한 존재이며 빛 속엔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깊이 숨겨 있고 어둠의 끝은 빛이라 생각합니다. 궁극에 가선 모두 하나로 흘러들어가고 흘러나오는 길에 만나는 거라 생각하며 에포케가 서로 먼 사물을 환유로 가져와 더욱 자극적이고 선명한 이미지가 감동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며 시를 쓰고는 있지만 제게는 아직 숙제가 많습니다.
임애월 : 이 시집 속에서 「바닥론」 등 ‘바닥’에 대한 명제가 깔린 시편들도 볼 수 있는데요, 바닥이란 갈 데까지 다 내려간 가장 낮은 장소 혹은 처지를 상징하는데, 바닥(?)에서 일하는 구두수선공의 이야기는 처참하지도 슬프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되고 희망이 넘치거든요. 물론 「햇빛 비타민」처럼 그런 반전적인 이미지 처리가 선생님의 수법(?)이긴 하지만요. 바닥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집니다.
장순금 : 가장 낮은 곳은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눈치 볼 일도 겁 날 것도 없는 그런 바닥을 밟고 사는 구두, 그 구두의 수선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선공은 이미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추고 있기에 오히려 행복감을 느낍니다. 타인이 필요로 하는 곳에 제 기술력으로 새 것처럼 멀쩡하게 만들어 놓았을 때의 희열은 시 한 편을 완성한 후의 희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구두 수선공이나 시인이나 제 본분을 해냈을 때의 기쁨은 경제성과 관계없이 만족을 느낍니다. 또한 바닥에는 낮은 자의 겸손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다녀간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도 가난한 자의 겸손한 삶이었습니다. 바닥론을 쓰면서 스스로 맨 아래로 낮춘다면 그간 보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 시와 삶의 안목이 더 커지고 실로 낮춤의 자세에 대한 겸손을 배우는 힘이 생길 거라 생각 했습니다.
임애월 : 네, 선생님의 말씀처럼 바닥을 딛고 선 자는 불안하게 흔들릴 이유가 하나도 없겠네요. 바닥이 그 밑을 단단하면서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공광규 시인은 이 시집 해설에서 ‘장순금 시인의 많은 작품들이 몸에서 상상력이 발아되고, 이렇게 발아된 상상력을 변주하여 시로 형상화하’였다고 하면서 「껍데기」나 「프린트하다」 등에서 ‘몸’에 대한 환유적 상상력이 돋보인다고 했는데 사실 몸은 가장 원초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영혼의 집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시적 모티프가 되는 것이겠고요. 특히 건강상 힘든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어서 ‘몸’에 대한 사유가 더욱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장순금 : 네, 제 시는 몸에서 출발 되어진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민감한 감성의 흔들림으로 전달돼 오는 것이 몸의 변화이고 그 떨림을 섬세한 감각으로 건져 올려 환희나 고통이나 가벼운 통증의 강도까지도 지극히 미세하고 가녀린 마이크로 물질로 몇 천 분의 일 초속으로 꽂히는 것 같아요. 거기서 순간적 이미지가 안테나에 착 달라붙어 촌음의 발견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육화된 언어가 형상화 되어 시가 되기도 산문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시적 고백들이 몸의 통로를 통해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임애월 : 사실 몸을 ‘영혼의 집’이라고들 하는데, 분명히 그 이상의 무엇일 거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합니다.
박제천 시인은 이 시집을 ‘上善若水인양 바닥으로 낮게 흐르는 물의 힘,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대로 스며들어 한몸이 되는 통달무애의 시편들’이라고 극찬하셨는데, 정말 낮은 바닥으로 스며들어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마력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장순금 : 정말 과찬이십니다. 통달무애의 시편이라 함은 최상의 칭찬인데 시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겠지요. 장자시나 당시를 읽었을 때 또는 미당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데 통달무애의 경지는 큰 시인들이 예술로 무장한 우주적 시세계를 작품에서 보여줬을 때인데 저 같이 작은 사람이 갖기엔 너무 큰 우주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달무애의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기웃거리며 발돋움은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한계도 있겠지요.(웃음)
임애월 :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목 메인 책」이라는 선생님의 작품을 읽었어요. 책 한 권 구하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책에 대한 지독한 갈증이 다시 일어나면서 정말 목이 메어 왔어요. ‘햇빛’과 ‘달빛’이 사라진, 그늘지고 우울한 마당가에 ‘봉인된 봄’은 소리 없이 스러지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새파랗게 언 발’의 아이들...
사실 그 시절 ‘책’은 우리들에게 목이 메는 미래이고 희망이었지요.
장순금 : 「목 메인 책」은 한 시절 가족사의 한 장면인데요, 그 때엔 달리 놀이가 없었고 책 읽는 거 외엔 인형놀이를 하거나 밖에서 뛰노는 것밖엔 없었어요. 저는 그나마 집에 돌아다닌 책들이 있어 무조건 읽긴 했지만 갈증이 심했지요. 읽은 걸 또 거듭 읽곤 했으나 새로운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김내성, 방인근 등 통속소설도 반복해 읽었으며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 입학 전까지 두어 달 동안은 틀어박혀 고모 네서 빌린 수호지 한 질을 다 읽었으니 어린 나이에 지금 생각해도 부족한 가운데서도 독서는 어지간히 했나 싶네요. 그러나 책 속에 높고 크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는 걸 좀 일찍 알았더라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지요.
임애월 : 그때 책을 선별해 가면서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多讀의 힘이 문학적 토대를 이루고 있었군요. 물론 시인으로서 타고난 DNA가 더 중요하겠지만요.(웃음)
시인들과의 교류나 문단활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장순금 : 시인들과의 교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을 많이 가리고 낯가림도 있고 별로 친화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친해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린답니다. 그러나 친해진 사람들과는 오래 가는 편입니다.
활동 영역은 주로 서울 중심으로 아무래도 잡지 발행이나 한국시인협회 등 중앙 문단이 서울이고 시인들도 행사도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지방(안양)에서의 활동은 아는 사람도 모임도 없으니 자연히 교류가 없으나 근간에 와 생각하니 안양 사람이 된 지도 오랜데 발 딛고 사는 동네에 오랫동안 무심한 것 같아 지역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일장이나 시낭송 대회 때 심사도 하고 참여도 하고 있습니다. 안양문협 장호수 사무국장님의 공로가 커 감사한 일이지요.
임애월 : 성당에 다니신다고 하셨는데, 작품 속에서 가끔 살짝살짝 내비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교적인 색채가 그렇게 강한 것 같진 않아요.
장순금 : 하느님이 등장하고 신에 대한 얘기가 바탕에 깔려있는 작품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연작시를 쓰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갑니다. 사고가 깊어지지 않아 그런 거 같은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 쓰긴 할 겁니다. 작품에 노골적인 종교적 색채가 묻어 나오지 않기를 심각하게 경계하며 조심하고 있습니다. 직접적 표현은 개인의 기도문 같아 문학성으로 보기엔 좀 어렵단 생각이며 간접 표현이나 풍자, 비유를 끌어다 쓰길 바라지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신앙시집을 따로 한번 묶을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미지수입니다. 어릴 적부터 가톨릭은 제 정신의 고향 같은 곳으로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신앙에 사로잡히면 예술 세계에 한계가 그어진다고 합니다만, 그건 초월하면 된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습니다. 세상은 초월자의 알 수 없는 절대적 힘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예술은 정신적 외상을 깨달은 자들의 놀이이며 그 상처와 결핍을 알 수 없는 저 너머에의 그리움을 표현해 감동과 위로를 주고받는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언어로 그 책임을 감당하는 자들이며 창작으로 스스로 치유 받고 공감을 공유하기 위해 힘든 길을 절뚝거리며 가고 있는 겁니다. 제가 가는 그 길의 바탕에는 가톨릭 정신의 기반이 깔려 있습니다.
임애월 : 시는 내면의 상처들을 모아 착유하듯이 짜낸 정신의 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시를 창작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어떤 것들 때문일까요?
장순금 : 존재와 부재, 믿음과 불신, 사랑과 배반 이러한 것들이 자신과 시비를 붙는 불화의 시간이 늘 불안케 합니다. 허공의 빈집 같은 저는 소통의 도깨비, 유령들을 불러 함께 길을 가며 말 걸며 동행합니다. 그 길에서 끊임없이 저는 불화로 유실되고 분열되며 행방이 묘연해지기도 하겠지만 중단 않고 그 험난한 길 차마고도의 끝에 잘 익은 열매같은 시가 기다리고 있다 하니...
임애월 : 그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어가는 시인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살풀이춤도 잘 추신다고 들었는데, 몸이 날렵하셔서 정말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시인이 추는 살풀이춤은 전문 무용수들과는 색다른 매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네요.(웃음)
장순금 : 하하, 이매방 살풀이를 어릴 적에 좀 배우긴 했습니다만 내놓고 춤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죠, 다만 춤을 감상하는 눈은 있는 것 같아요.
손끝으로 곡선과 직선의 물결이 흐르듯 지긋이 시선을 먼 사선으로, 몸 그릇에 찰랑거리는 감정의 물결을 버선코 발끝에서 팽팽한 햇살줄로 하늘을 끌어당기는 긴장에 몸이 궁전이 되었다 폐허가 되었다 천 년 매듭의 한을 흥건하게 풀어나가는 살풀이는 갈증과 허무를 몸으로 말하는 시적 엑기스이며 오르가즘의 표현입니다.
임애월 : 네, 춤과 시, 시와 춤... 어찌 보면 ‘한통속’이겠네요...
장순금 : 살풀이는 한 생애로 쓰는 제 허무시의 몸짓 같은 거예요. 전생인지 태생적인지 모를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하고 몽롱한 기억 속에서 뜨겁게 달구는 몸의 흥얼거림, 그것이 언어화되어 몸춤을 추듯 시를 대했으며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살풀이는 신이 내려준 저의 소명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한때 그런 무용가가 되고 싶은 맹랑한 꿈을 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춤 공연 보는 걸로
만족하고 행복해 합니다.
임애월 : 저는 살풀이와 한풀이가 왜 가끔씩 같은 단어로 인식이 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등단하신 지 이제 30년이 넘으셨는데 시집이 여섯 권이면 대략 5년에 한 권씩 묶으셨네요. 일곱 번째 시집은 언제쯤 나올지 기대가 큽니다.
장순금 : 네, 나올 때가 지났지요, 시집 내는 일에 회의가 생겨 잠시 접어두고 있는 중입니다. 시집도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시잡지들도 쏟아져 나와 다 읽지도 못한 채 버려지기도 하는데, 시집 내는 일이 망설여져요. 원고는 그런대로 모였으나 천천히 내년 하반기쯤 생각하고 있어요.
임애월 : 사실 시집과 문예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긴 합니다. 어떤 책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심한 말들이 오고가기도 하고요. 그렇더라도 그 중의 어느 작품 한편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특권처럼 여겨졌던 문학에 대한 갈증의 한풀이 현상이라고 저는 이해하려고 합니다. 결국 옥석은 시간이 가려내리라 믿기도 하고요.
그건 그렇고 내년에 상재되는 선생님의 일곱 번째 시집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길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장순금 : 네, 먼 길 와주셔서 변변찮은 작품들로 인터뷰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김광기 선생님께서도 힘든 걸음으로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들이 독자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다행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장순금 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돌아보니 그 사이에도 산천은 더욱 푸르러지고 있다.
‘극과 극은 한통속’이라는 명제가 가슴 속에 다가와 깊이 박힌다.
‘최상’은 최저의 ‘바닥’이 존재함으로써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바닥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
그래서 세상은 아직도 살맛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름이다 -
■□ 시인의 자선시
그늘 이불 외 4편
장 순 금
저녁이 쓰고 남은 손바닥 만 한 온기에
그늘이 집을 지었다
한 번도 홀로 햇빛 속에 서 보지 못한 담벼락과 골목과 구석이 함축된
더듬더듬 어눌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막다른 길 앞에 납작 엎드린
한 번도 젖어보지 못한
속내 안까지 샅샅이 비춘 햇살의 낯 뜨거운 흰 뼈들이
백야의 긴 밤을 오가도 등 뒤의 새벽은 보지 못해
지평은
밤을 나와 달빛 속 외딴방을 지나
홀로 노숙하는 저녁에 몸을 기댔다
지상에 지분 없는 남루한 발들이
평화 한 평 그늘로 들어가 이불을 덮을 때
뜬구름을 덮고 자던 허공이
온기로 데워진 그늘을 한 겹씩 끌어당겨
제 발등을 덮고 있었다
아브라함 병원
황금색 고딕체 간판이 우뚝 선 아브라함 병원
불임 노산 전문 병원이 상가에 들어섰다
주치의 손을 거치면 예순에도 생산 포기한 아기집에 별이 뜬다고
전단지 광고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죽음 같은 깜깜 동굴에
빛의 통로가 폭포처럼 뚫려 쌍둥이도 세쌍둥이도 만들어낸다는
신의 손을 가진 아브라함 원장님
그는 매일 제물 이사악의 목을 베려던 칼에 기도를 한다
목숨 주신 신의 칼을 마이더스의 손으로 쥐어 주시어
아브라함 원장의 손끝에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불임 여성들을 모이게 하시면
아브라함이여,
천둥 같은 최 상질의 기를 모아 기도 올리겠으니
황금색 간판이 무색하지 않게
식탁에도 황금 수저를 놓게 하소서
그럼 제물로 뉴질랜드의 가장 살찐 양을 급송 올리고
아브라함 이름의 로얄티도 넉넉히 헌금 하겠사옵니다 아브라함이여,
지나가는 동안
한 사람이 몸속을 지나가는 동안
몸 밖은 백년이 흘렀어
시작은 책 속에 끝을 숨기고 문장으로 나를 눌러 놓았어
심야를 달리는 트럭의 깜깜 속도 속에 우리를 숨겼어
생략된 세상에서
도벽처럼 가지에 앉아 떠는 동안
바람 사이로 피로 물든 잎들을 낳았어
한 알도 부화되지 못한 잎들은 스스로 숨을 끊어
죽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어
우리는 아무도 새가 되지 못했어
죽은 기억이 죽음 같은 고요에 발이 빠져
비릿한 향내를 봄의 무덤에 뿌리고
책 속에 숨은 무수한 벽이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죽은 잎들을 펄럭이고 있었어
나는
천천히 물처럼 흘러내리고
한 사람이 지나가는 동안
몸 밖은 보이지 않았어
얼마나 많은 물이 순정한 시간을 살까
할머니는 샤워기로 몸을 수십 번 헹구고 또 헹궈냈다
몸뚱아리에서 먼지와 오물이 쉴 새 없이 묻어나오는지 두 시간째 샤워기 앞이다
땡볕에 무방비로 삐져나온 살 속으로 먼지바람 욕설 눈총도 박혔는지, 악취도 몸속을 뚫고 들어왔는지
유효기간이 끝난 버려진 시간들이 할머니 발바닥에 달라붙어
세척을 강요했다
할머니는 몸 바꾸고 싶었을까, 물로 수백 번 씻어내면
내일이면 새로운 생이 시작될지 몰라
바뀔지 몰라
보송한 햇살이 몸 덥히는 따끈따끈한 생이 아침 밥상에 오를지도,
날마다
내일은 향긋한 몸으로 햇살을 주워야지 깨끗한 신발로 순정한 시간을 주워야지
갓 나온 싹을 주워 서쪽에 버려진 봄을 사야지
한 번쯤은
비탈진 척추를 볕에 세우고 고른 길 파랗게 오르고 싶은,
길바닥에 갇힌 할머니는 등껍질에 수백 번 물을 끼얹으며
오물 묻은 허공을 씻고 또 씻고
나무가 나뭇잎에게
뼈와 살 사이의 숨은 간극은 어디까지일까
나와 작별 한 나는 몸에 돋은 세상의 잎을 다 버렸다
솜털 사이로 흘린 눈물 한 점도 닫아
매달린 건 하늘에 걸린 고립과 고립에 매달린 가지만
햇빛을 돌아앉은 개망초에 기대 울었다
햇빛 한 오라기 가까스로 체온을 붙든 겨울에
뼈 한 가닥으로 서 있는 나는 살아있음이 뼈 한 가닥 이었다
나뭇잎과 나무 사이에서 자란 푸른 구멍이 오래된 슬픔처럼 익어가
익어서 틈과 결에 꽃이 피기를 바람은 만발해줄까
밤새 나뭇잎은 몸에 남은 일조량을 다 내려 젖은 흙으로 발을 닦고
두꺼운 벽을 데워줄 장작이 되려고
물기 다 뺀 나무는 빛살 든 쪽으로 돌아앉아,
* 장순금 시인 프로필
부산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햇빛 비타민』등 6권 상재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등 수상
심상시인회 회원, 목월문학포럼 회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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