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과 잘 익은 열매, 가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푸른 등과 은빛 배를 가진 전어 떼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보성 출신 시인이 <전어의 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쓴 다음과 같은 시 한 구절만 보더라도 이 계절, 뭇 사람의 입을 즐겁게 만드는 제철음식으로 으뜸이 될 만한 것이 바로 전어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름이 / 피서객 따라 / 떠나고 나면 // 득량만 / 물 맑은 바다에 / 가을이 온다 / 전어 떼가 온다 // 파름한 은빛으로 / 파닥이는 / 살진 전어 / 듬성듬성 / 썰어다가 // 새콤달콤 / 초장 찍어 / 한입에 넣고 // 회로 무쳐 / 매콤달콤 / 입에 넣고 / 호-호- // 왕소금 살살 뿌려 / 숯불에 구우면 // 그 맛 못 잊어 / 집 나간 며느리도 / 돌아온다는 // 율포의 가을 명물 / 전어가 한 맛. //
문제는 ‘살진’ 전어가 아닌 ‘살찐’ 전어라면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진정한 가을 전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처럼 그 고소함이 일품인 가을 전어라면 기름기가 살살 도는 ‘살진’ 전어여야지 그저 몸만 불은 ‘살찐’ 전어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어의 맛을 전혀 다르게 만드는 우리말 ‘살지다’와 ‘살찌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다음 문장의 사례를 보기로 하시지요.
⑴ㄱ. 농부는 말을 몰고 시장으로 가다 살진암소를 몰고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ㄴ. 바위 틈새에 사는 찌든 소나무가 살진땅에서 사는 낙락장송을 탐하지 않는다.
ㄷ. 물이 오른 살진과일은 보기에도 탐스럽다.
⑵ㄱ. 배고픈 설움에서 벗어난 것만이 아니라 살쪄서는안 된다는 인식이 아이들에게까지 심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언뜻 보아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이와 같은 문장에서 사용된 ‘살지다’와 ‘살찌다’는 품사는 물론 구체적인 사용 맥락과 의미도 차이가 있음이 특징입니다. 다음은 두 단어에 대한《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입니다.
단어
품사
의미
살지다
형용사
① 살이 많고 튼실하다.
② 땅이 기름지다.
③ 과실이나 식물의 뿌리 따위에 살이 많다.
살찌다
동사
① 몸에 살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다.
② (비유적으로) 힘이 강하게 되거나 생활이 풍요로워지다.
이와 같은 정의를 통해서 볼 때,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살진 전어’이지 ‘살찐 전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가을 어디에선가 전어를 한입 먹었을 때, 그 맛이 참깨 서 말의 고소함을 담은 듯하거든 ‘살진 가을 전어’를 제대로 맛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