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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역사문화재단 산하 부천탐사회
제76차(10월) 정기 탐사
【홍양사터, 서봉사가 있는 홍천탐사】
▣ 일시: 2004년 9월 14일(화) 07:30~20:00
▣ 일정: 지장동 계곡-풍암리-솔밭유원지-서봉사 계곡-아미산(961m)-삼형제봉-물걸리 절터(홍양사터) 유적
▣ 강사: 최현수(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부천타임즈 역사문화 전문 기자)
■ 홍천의 연혁과 인물
강원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홍천군은 교통의 중심지로 전국에서 제일 넓은 군으로서 광활한 면적에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홍천군의 지형은 태백산맥이 분수령인 오대산(1,563m)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길고 완만하게 뻗은 산간분지로서 서쪽으로는 경기도 양평군과 가평군, 북쪽으로는 춘천시와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인제군과 양양군, 남쪽으로는 횡성군과 평창군에 접하고 있다. 홍천읍 시가지로 관통하는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강은 태백 분수령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고 있으며, 강물이 맑고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아 홍천군의 상징적 강이라 할만하다. 강변의 농토 또한 기름져 인접 마을은 부촌으로 꼽히고 있으며 홍천의 문화는 홍천강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계승 발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설악산으로 향하는 서울 속초간 국도와 춘천 대구간 중앙고속도로 등이 교차하는 중부내륙의 교통의 요충지로, 전원 휴양도시로, 첨단산업의 중심지역으로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홍천의 민심은 풍속이 순박하고 소송이 맑고 간결하다고 서거정이 <鶴鳴樓記>에 기록하고 있다.
◈남궁억(南宮檍, 1863~1939) 호는 翰西. 한말의 선각의 정치가로, 교육자, 언론인으로 겨레의 주권을 옹호 하였고 최초의 언론인으로 <황성신문>(1898)을 창간 사장으로 취임, 민족의 정의를 부르짖었으며 독립협회, 관동학회, 교육월보 발행 등 조국의 미래를 위해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으며 역사교재인 좬조선어 이야기좭, 좬무궁화 노래좭와 국사교육 등 후 세 교육에 전념하였고 일제의 간악한 침략 하에도 굳은 신념과 지조를 행동으로 실천한 애국지사이다. 남궁억은 홍천군 서면 모곡리 보리울에 낙향하여 1918년 사재를 털어 교회와 모곡학교를 세워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말 교과서를 편찬하여 국어를 가르쳤다. 또한 실습장에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으로 보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깨우치게 하였고 「무궁화」가 나라꽃이 되는데 공헌하였다.
■ 홍천의 문화유적
■보물
◈홍천 희망리 3층석탑 제79호, 홍천읍 희망리(읍사무소 정원)
◈홍천 희망리 당간지주 제80호 홍천읍 희망리509-1(화양강변)
◈홍천 괘석리 사사자 3층석탑 제540호 홍천읍 희망리(읍사무소 정원)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 제541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9-1
◈홍천 물걸리 비로자나불좌상 제542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9-1
◈홍천 물걸리 불대좌 제543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9-1
◈홍천 물걸리 불대좌광배 제544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9-1
◈홍천 물걸리 3층석탑 제545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
◈홍천 수타사 월인석보 제745-5호, 홍천군 동면 덕치리(수타사)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 제17호, 홍천군 동면 덕치리
■기념물
◈홍천 풍암리 동학혁명전적지 제25호,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505-11
◈홍천 물걸리 절터 제47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7-1
◈홍천 군업리 지석묘군 제56호, 홍천군 화촌면 군업2리 608-1
■문화재자료
◈홍천 양덕원리 3층석탑 제10호,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 210-2
◈홍천 수타사 3층석탑 제11호, 홍천군 동면 덕치리(수타사)
◈홍천 괘석리 3층석탑 제12호,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
◈홍천 장남리 3층석탑 제13호,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682
◈홍천 진리 석불 제14호, 홍천읍 진리 76-6
◈홍천 수타사 홍우당부도 제15호, 홍천군 동면 덕치리(수타사)
◈홍천 희망리 철비 제51호, 홍천읍 희망리 읍사무소앞
◈홍천향교 제99호 홍천읍 희망리 174
■ 홍천 물걸리 절터(홍양사터) 유적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41호(1971.7. 7 지정)
□ 소재지: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9-1
□ 시 대: 신라 후기
내촌면 물걸리 소재의 대승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얼굴은 마멸이 심해 세부표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것 같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고, 가슴에는 띠 모양의 매듭이 보인다. 어깨는 둥글지만 두껍고 투박하게 보이고, 상체는 평판적이고 왜소한 편이어서 당당한 양감이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ㆍ중ㆍ하대로 구분된 8각형으로 하대에는 각 면마다 무늬가 있고, 향로와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8각의 각 면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파손으로 인해 신체표현을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장식성이 강조되는 9세기 중엽 이후의 전형적인 대좌 양식을 보여주고 작품이다
◈홍천 물걸리 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42호(1971.7. 7 지정)
□ 시 대: 신라 후기
대승사에는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외에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불대좌 및 광배 4기가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게 솟아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얼굴은 풍만하지만 턱이 뾰족하여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긴장감이나 탄력적인 모습이 사라진 채 다소 투박하고 무겁게 늘어진 모습이 역력하다. 옷 주름은 어깨에서 두 팔을 거쳐 무릎에까지 나타나 있으나 평행선으로 되어 약간 형식적으로 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 모양과는 반대로 되어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8각 연화대좌로 상대ㆍ하대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대에는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향로 등이 새겨져 있다.
양감이 없는 평판적인 신체, 긴장감이 사라진 무겁고 해이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홍천 물걸리 불대좌 보물 제543호(1971.7. 7 지정)
□ 시 대: 신라 후기
대승사에 있는 이 불대좌는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와 대좌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대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구분이 뚜렷한데 현재 머리광배 부분은 없어졌으며, 안쪽에는 덩쿨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표현하였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 대좌로 상ㆍ중ㆍ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에는 향로와 새 모양의 조각이 있는 8각의 받침돌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석이 놓여 있다. 중대에는 8개의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그 안쪽에 머리광배를 갖춘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을 이루고 있는 상대는 연화좌로 3중의 연꽃이 조각되었는데, 연꽃잎 안에 다시 꽃무늬를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세련된 이 불대좌는 물걸리에 보존되어 있는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등과 같은 절터에서 발견된 점과 조각수법 등에서 볼 때 다른 불상과 비슷한 시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천 물걸리 불대좌 및 광배 보물 제544호(1971.7. 7 지정)
□ 시 대: 신라 후기
내촌면 물걸리의 대승사에 있는 것으로, 불상은 없고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다.
완전한 배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무늬와 덩쿨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윗부분과 좌우 등 9곳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각기 손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광배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3단으로 구성된 8각 모양이다. 맨 아래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각 면에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귀꽃이 있다. 중간의 각 면에는 불상과 악귀를 쫓아준다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맨 윗부분은 연꽃이 활짝 핀 반원형 모양이고 연꽃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광배 및 대좌의 양식이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홍천 물걸리 3층석탑 보물 제545호(1971.7. 7 지정)
□ 시 대: 신라 후기
내촌면 물걸리 절터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절터에 남아있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이전에는 이곳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세운 모습이다. 위ㆍ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ㆍ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으로 줄어들었다.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모서리선이 뚜렷하여 끄트머리에서의 들림도 날카롭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는 노반만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탑이나, 기단 각 면의 가운데 기둥이 하나로 줄어든 것이라든지, 3층에서의 지붕돌받침이 4단으로 줄어 아래층과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 점 등으로 보아 시대가 조금 떨어지는 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 홍천 아미산(961m)
아미산은 홍천군 서석면에 있는 산이다. 지장동이란 계곡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골짜기가 긴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계곡을 형성케 하는 것은 산이다. 계곡을 보면 산을 알 수 있다. 풍암분지 북쪽에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는 산이다. 풍암리는 온통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로만 이뤄진 서석면 일원에서는 유일하게 널찍한 들판이 있는 곳이어서 이곳에 서석면 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풍암리 보다는 일반적으로 서석으로 불리는 고장이다.
서석은 마치 거대한 분화구 속에 싸인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석을 중심으로 북으로 고양산과 아미산이 가로막혀 보이고, 동으로는 홍정산, 남으로는 운무산, 서로는 동막산 줄기가 둥그렇게 원을 그린 듯 에워싸고 있다.
풍암리는 해발 300여m쯤 되는 고원지대 산골마을인데도 인근의 들판이 꽤 넓고 또 산골동네치고는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홍천에서 동면을 지나 노천리를 거쳐 대학산과 응봉산 사이에 있는 고개인 부목재를 넘으면 바로 풍암리가 나온다. 춘천에서 오는 길, 설악산에서 오는 길 홍천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홍천 동북쪽에 위치한 구성 사거리는 풍암리에서 솔치터널을 지나 화촌면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횡성으로 가려면 수리봉과 운무산사이의 고개인 먼드레재를 넘어가 운무산, 봉복산, 덕고산을 지나면 청일면이고 청일면 다음이 횡성이다. 풍암리에서 율전으로 빠지면 구룡령을 넘어 양양, 운두령을 넘으면 영동고속도로이다. 풍암리를 지나다니기 시작한 것은 한참 되었으나 아미산은 특별히 주목을 끄는 산은 아니었다.
삼형제봉 일대에 바위가 있다지만 대체로 육산인 아미산이 등산 대상지로 떠오른 것은 순전히 가을 때문이다. 속칭 낙엽송인 이깔나무 단풍은 산야의 단풍이 다지고 난 다음에 물이 든다. 이깔나무 숲에 노란 단풍이 들면 그것은 점묘적일 수밖에 없는 활엽수 단풍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활엽수 단풍이 국지적이고 유화적이라면 낙엽송 단풍은 수채화적이고 전면적이다. 그 아름다움은 표현할 어휘를 찾기가 힘들다. 사진 한 장이 그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석면은 사방이 고산에 둘러 싸여 있다. 12시 방향의 아미산에서 시계방향으로 응봉산, 흥정산,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또 하나의 응봉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삥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산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깔나무 조림이 실시되었을 것이다. 재목으로서 이용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엔 유난히 이깔나무가 많다.
지장동으로 가려면 서석(풍암리)에서 율전 방면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전개되는 아미산 능선을 보면서 골짜기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3,4㎞ 정도 올라가면 물빛이 곱고 바닥의 돌이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송림이 울창한 곳이 나온다. 솔밭유원지이다.
그 전에 동네를 중심으로 하여 위쪽과 아래쪽 개울이 마치 작은 협곡이 길게 이어지듯 한 것이 목격된다. 길목에서 내려다보면 평지보다 3,4m 깊이는 되는 절벽 양안 아래로 흐른다. 협곡을 이루고 있는 절벽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비경이라고 할 건 없으나 작은 한탄강 같은 곳이다. 송림이 울창한 숲 속과 그 옆의 맑은 여울은 여름에 동네사람들이 더위를 식히는 곳이다. 계곡에서 들어가면 어프로치가 대단히 길다. 이 길은 서석에서 들어가는 길의 반대편인 셈이다. 계곡엔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철이 가을철인 탓이었다. 길은 대체로 또렷했지만 여름내 웃자란 풀들이 길을 숨기고 있어서 길 찾기가 쉽지 않은 곳도 더러 있었다. 지장동 계곡의 물줄기는 아미산과 967봉 사이에 위치한 작은 계곡이 원천이다. 개울을 따라가다가 지능선을 타고 능선에 오른 뒤 남향인 왼쪽의 높은 산지를 향해 능선 길을 재촉해야 된다. 사람이 없는 지장동 계곡으로 뻗어 내리는 늦가을 능선은 거대한 수채화폭을 이루고 있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함께 볼 수 있는 프로젝트 같은 것도 관광사업의 한 포인트는 될 듯해보였다. 석양이 되어가자 노란 이깔나무 단풍은 더욱 명징한 색깔로 푸른 하늘과 어울려 환상적인 색채 대비효과를 자아낸다.
지장동 계곡은 특별한 비경은 없으나 물과 바위들이 그 나름으로 어울어지는 곳은 여러 곳 있다. 계곡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개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이 나오는데 이때 왼쪽 개울로 들어가야 된다.
정상은 수림이 우거져 조망이 좋지 않다. 하산은 정상에서 암봉(노송이 우거졌다)인 삼형제봉을 지나 844봉에 이른 뒤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조망은 삼형제봉 암봉에서 남서, 남향으로 수리봉과 운무산이 보인다.
지장동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옆으로는 여름 한 때 물놀이하기에 적절한 곳이 몇 곳 있다. 이 계곡을 서봉사 계곡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일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서봉사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말할 것도 없이 지장동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라 물이 맑기로 이름나 있다. 물은 두 가닥으로 나뉜다. 하나는 지장동 계곡 물이고 하나는 오른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소명동 계곡 물이다. 이 물은 전자는 아미산과 응봉산(1103m) 사이의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고 하나는 응봉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다. 지장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서봉사 계곡" 팻말이 서 있는 서석 못미처 검산리 구방에서 좁은 포장도로로 들어가면 논밭 등 경작지대와 자그마한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지나면 곧 솔밭유원지를 꽤 남겨두고 높은 단애와 푸른 소가 암반협곡 사이로 흐르며 근처엔 제법 운치 있게 자란 송림도 있어서 운치가 여간 아닌 곳에 외로이 텐트 한 동이 자리 잡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 여름을 날 수 있다면 결코 작은 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맛 뵈기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솔밭 유원지가 곧 나타나기 때문이다. 송림도 꽤 커서 웬만한 텐트촌이 들어설 수 있는 솔밭이다. 요즘 부근을 정리하여 깔끔해졌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높지막한 단애와 그 아래 너럭바위, 건너편이쪽의 테라스를 이룬 식당암 같은 바위, 그 아래 펼쳐진 푸른 소가 감탄을 자아낸다. 작은 폭류를 이룬 아래쪽에는 쪽빛 투명한 청류가 손짓하고, 그 아래쪽 부챗살로 넓어진 얕은 곳이 말하자면 수영장이다. 소와 암반, 청류와 송림이 어울어진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동네 피서지이다. 이런 곳은 위쪽으로도 있지만 군휴양지가 되어있고 지장동 안쪽에는 물론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차는 들어가지 못한다.
홍천에서 서석으로 가려면 구성포(여기에서 춘천에서 오는 도로와 홍천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도로가 만난다)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 도로가 춘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도로 즉 56번 도로이다. 이 도로로 드라이브하는 맛은 주위를 둘러싼 산과 산간분지를 보고 밤나무꽃 향내를 맡으며 한적한 길을 달리는 맛이 유난히 정겨운 바가 있다. 화촌면을 지나면서 깊은 골짜기 안쪽에 날카롭게 솟아있는 공작산의 모습도 홍천-인제가도에서 보는 공작산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람하게 가까이 다가서 있어 군업리에서 올라가는 공작산 산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 공작산을 지난 뒤 고개를 넘으면 이번엔 응봉산자락이 오른쪽에 보이고 솔치터널을 지나면 수리봉과 동막산이 다가선다. 장마를 앞둔 산들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한 산소를 다량으로 뿜어내고 있다. 보이느니 푸른숲의 산자락이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운전해도 피로에 지칠 것 같지가 않다. 드디어 서석에 닿으면 오른쪽으로 운무산의 춤추는 듯한 능선이 나타나고 그 뒤의 고산은 봉복, 덕고, 흥정산이다. 서석의 왼쪽 산자락은 아미산이다.
등산코스 :
지장마을 →솔밭유원지 →서봉사 계곡 →능선길 →개울 갈림길(왼쪽) →정상 →삼형제봉 →844봉 →능선길 →서봉사 →삼생 초등학교
단풍이 우거진 10월에 울진 불영산 탐사 때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