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ADHD·공황장애·조울증…다양해지는 정신 질환 관련 고백록 출간 늘어나
“나는 스스로의 본질에 다가선 대가로 본질이 원래 붕괴되어 있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 6월에 출간된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은 회사원 정지음(29)씨의 성인 겪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 관한 진단·치료기(記)이다. 주의가 산만해 부모에게 ‘지(너) 결혼식에도 늦을 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던 필자는 뒤늦게 ADHD 진단을 받는다. ADHD 환자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버텼는지,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는지를 썼다. 지금까지 4000부가량 팔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출되는 것이 금기로 여겨졌던 정신 질환이 출판계에서 ‘내가 겪었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뒤늦게 ADHD로 진단받은 신지수 임상심리학자 가 쓴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 양극성장애(조울증)를 10년 동안 앓아온 삽화가 리단(본명 이한솔)이 쓴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 공황장애를 앓는 회사원이 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가나출판사) 등이 최근 두 달 사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정신질환은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가 제3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조언하는 형식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 ‘아파 봤고, 지금도 아픈 사람의 1인칭 시점’이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당사자가 직접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보니 공감하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신지수 임상심리학자는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으니까. 나에게는 그것이 ADHD라는 이름으로 왔을 뿐이다”라고 적었고, 리단은 “꼭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우리는 기분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던 시기를 지났습니다. 오로지 움직이십시오”라고 썼다.
당사자여서 할 수 있는 말도 있다. 리단은 책에서 ‘정신병’(정신질환이라고 한다)이나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은어) 같은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다. 그는 “간단한, 직접적인, 그리고 자조적일지언정 유머러스한 당사자의 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리단의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4쇄를 찍으며 현재까지 8000부 나갔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김경영 인문 MD는 “겪어 봤기 때문에, 당사자이기 때문에 닿을 수 있는 영역에서 끌어온 직설적이고 실용적인 안내가 빼곡하다”고 했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정신건강학과)는 “독자들이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이야기할 때 더 호응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 같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문턱과 편견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필자들이 투병기를 쓰는 분위기는 2018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가 나온 이후 본격화됐다.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를 앓고 있는 평범한 20대 여성이 쓴 이 책은 국내에서 50만부 이상 팔리면서 일본에도 수출됐다. 한 출판사 대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일반인이 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반인의 투병 에세이에 독자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시작한 정신질환에 대한 ‘당사자 서사'는 이제 ADHD, 공황장애 등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을 대하는 태도가 관대해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한창이어서 병원 방문이 급감했던 2020년에 예외적으로 정신과는 환자가 10% 이상 늘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신과를 찾게 되면서 관련 독자층이 두꺼워졌다는 것이다. 정지음씨와 신지수씨 같은 성인 ADHD 환자는 국내 8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투병기는 어디까지나 투병기로만 여기고 참고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이가 권하는 치료법 등을 맹신하면 안 된다. 하지현 교수는 “관련 책을 읽고 ‘나도 정신질환에 걸렸나’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검사를 해본 뒤 자기도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며 “의심이 된다면 전문의의 진단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치료와 약물치료 모두 효과 없을 때 정신질환도 뇌 수술
일부 정신질환이 수술로 치료되고 있다. 하지만 뇌 수술로 정신적 장애를 치료하는 ‘사이코서저리(Psychosurgery)’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이코서저리는 치료 효과 대비 시술 위험도나 비용이 약물치료나 정신치료에 비해 높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우울증, 강박장애, 정신분열병 등에 제한적으로 적용해 일반에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 보통의 방법으로 치료가 어려울 때 마지막 대안으로 쓰는 데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 강박장애 등 정신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요즘, 사이코서저리에 대해 알아본다. 참고로 여기에 인용된 내용은 2011년 8월 기준이기 때문에 현재 이보다 더 좋은 기술과 치료 사례가 나왔을 것으로 본다.
●전두엽절제술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첫 치료
사이코서저리는 포르투갈의 신경외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심한 충격을 받고 돌아온 상이군인에게 처음 실시하면서 알려졌다. 전두엽과 시상을 연결하는 신경섬유를 절단하는 전두엽절제술을 통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이 시술로 에가스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사이코서저리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으며, 국내에도 도입돼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돼 왔다.
실제로 국내에선 1990년대 초까지 주요 정신병원에서 매주 수십 건씩 사이코서저리를 시행했다. 이후에는 정신과 약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약물 부작용이 심하거나 약물치료가 아예 듣지 않는 심각한 우울증, 정신분열병 환자 등에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에는 약보다 수술이 오히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로 알려졌다.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가 사이코서저리의 하나인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을 도입하면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내외에서 정신질환에 뇌심부자극술이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미국에서는 2009년 일부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제한적인 FDA(식품의약국) 승인이 이뤄졌다.
현재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와 같은 정밀진단 기기들이 발달하고, 뇌과학에 대한 실마리가 하나둘씩 풀리면서 사이코서저리는 기존보다 진일보한 상태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심한 강박증, 공격성, 우울증 등의 증상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에 사이코서저리가 중요한 치료법이 되고 있다.
●정신분열병, 피막절개술로 증상의 40% 감소
정신분열병을 앓으면서 공격적 성향이 강해져 가장 높은 단계의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조절되지 않던 27세 남성 A씨의 증상 감소를 위해 서울아산병원과 국립서울병원 연구팀이 사이코서저리를 한 결과, 공격성 등이 40% 정도 감소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 교수는 이 환자에게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뇌 신경섬유의 일부에 넣어 고주파 전류를 흐르게 해서 파괴하는 ‘양측 전방 피막절개술’을 실시했다. 전신마취 후 정확한 수술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에 프레임을 장착한 후 CT와 MRI 촬영을 하고, 이 영상을 활용해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정확하게 뇌의 신경섬유에 넣어 고주파 전류로 파괴하는 사이코서저리였다. 이정교 교수는 “도파민 이상 분비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사이코서저리는 도파민이 이동하는 변연계 연결통로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A씨는 수술 전 통제되지 않던 공격성이 수술 후 자취를 감췄다. 대화가 힘들었던 수술 전과 달리 상대방이 물어보는 질문에 정확하게 답했다. 정신병리 측정도구에서 병적 증상을 나타내는 점수가 수술 전 99%에서 수술 후 60%로 40% 가까이 낮아졌다. 측정한 점수가 낮을수록 좋은 결과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이태경 박사는 “이 환자는 국제정신과학회 기준에 따라 수술 다음날부터 정신과 약물의 용량을 절반으로 줄였다”며 “강박적 행동과 충동조절 문제 등이 현저히 개선돼 매우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정교 교수는 “사이코서저리는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강박증과 공격성이 심한 정신질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수술법이다. 유사한 상황에 놓인 정신과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뇌심부자극술로 난치성 강박장애·우울증 치료
우울증이 심한 경우에는 미주신경자극수술(VNS. Vagal Nerve Stimulation)과 뇌심부자극술(腦深部刺戟術 deep brain stimulation)과 같은 사이코서저리가 쓰인다. 보통 목에 작은 기계를 심어 주기적으로 뇌에 자극을 가하는 원리이다. 난치성 강박장애의 치료에도 뇌심부자극술이 효과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은 뇌심부자극술을 이용해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 4명을 치료하고 2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4명 모두 수술 전보다 강박 및 우울 증상이 호전됐다.
뇌심부자극술은 볼펜심 정도(1.27mm)의 가는 전극을 뇌 병소 부위에 삽입해 컴퓨터 프로그램된 자극장치가 지속적인 전기 자극을 주어 신경회로를 복원하는 치료이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김찬형 교수는 “뇌심부자극술에 반응을 나타내는 환자가 44~66%에 머물던 외국의 결과에 비해 수술한 4명의 환자 모두 증상이 호전됐다”며 “모두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의 전반적인 기능도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찬형 교수는 “그동안 수술적 방법으로 강박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시도가 많았지만 외과적 수술이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었다”며 “뇌심부자극술은 조직손상 없이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뇌심부자극술 외에 국소적 뇌수술인 대상회전절제술. 피막절개술, 하미상부신경로절제술(Subcaudate Tractotomy), 변연계백질절제술(Limbic Leucotomy) 등이 난치성 강박장애 치료에 효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전기자극수술 2014년에 국내 첫 1000건 돌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팀이 2014년 1월에 국내 처음으로 ‘신경전기자극수술’ 1000건을 이미 돌파했다.
신경전기자극수술은 전기자극장치를 인체에 삽입해, 약물이 듣지 않는 중증의 파킨슨병이나 수전증, 이상운동 질환과 간질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수술방법이다. 대표적 수술기법들로는 심부뇌자극수술(deep brain stimulation), 척수자극수술(spinal cord stimulation),과 미주신경자극수술(vagal nerve stimulation)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고집적초음파(MRgFU)를 이용한 치료법도 등장했다.
특히, 심부뇌자극수술은 2000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팀이 국내에 처음 도입한 술기로 뇌의 신경회로에 전기자극 장치를 삽입하여 신경계 질환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신경회로를 차단하는 치료방법이며 이미 1000건에 달하는 환자를 치료했다.
장진우 교수는 “초미세 신경들 사이에서 정확한 위치에 전기자극기를 삽입하여 중증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축적된 경험이 필수적”이라며 “세브란스병원은 전기자극기 삽입 및 배터리 모소에 따른 이차 전기자극발생장치 교체 수술 등 총 1000건이 넘는 시술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파킨슨병과 수전증 치료를 받았던 환자의 80%~90%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환자 본인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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