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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1일(금) 로마에서의 마지막 순례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은 이탈리아 로마 안에 있지만 이탈리아에 속하여 있지않은 별도의 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다. 로마시의 테베레강 오른편에 있으며, 로마교황이 통치하고 있다. 1929년 2월 라테란 협정에 의해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로마 교황이 국제법상의 주권과 영토적 기반을 가지는 것이 인정되어 성립되었다. 교황이 다른 국가의 제약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종교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보장할 목적으로 조직된 국가로 통상의 국가와 기구도 성격도 다르며, 교황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인간의 손을 빌어 신이 지었다"는 말이 믿어질 만큼 인류 최고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과 르네상스 미술 분야의 컬렉션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특히 거장 '미켈란젤로'가 1512년 경 시스티나 성당 450 평방미터 넓이의 천장에 완성한 <천지창조>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로 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로 가득 차 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까닭은 미켈란젤로의 세계적인 명작인 “천치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진으로 보긴 하였지만 실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일시에 몰려드는 까닭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어렵고,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가능성이 높아서 개인별로 무선 수신기를 배부해 주었다.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내를 순시하면서 굳이 한곳에 모이지 않아도 자세한 설명을 이어폰을 통하여 잘 들을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는 절차 또한 외국에 입국할 때와 같아서 여권을 보여주고,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 시국(市國) 즉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한 바티칸이라는 한 나라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물관 안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규범이 있었다. 입장권만 구입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에도 이와 같은 입국 절차가 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 있어야 하고, 결격사유가 없어야 천국에 입국이 허가된다. 그 여권은 믿음이라는 여권이다. 내가 성지순례를 마쳤을 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해야만 재입국이 허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치 않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문 앞에 서성이면서 들어가지 못하여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된 자격 조건을 구비하려고 헛된 시간들을 보내는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르네상스 시대의 3대 미술가는 레오날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이다. 르네상스 시대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던 시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이런 르네상스에 바탕을 둔 신(神)과 인간이 하나된 신의 이야기이다. 당시의 모든 철학사상과 예술 활동에 이런 사상이 묻어나온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소를 위해 조각을 하고 있던 당시 미켈란젤로를 시샘하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당시 비교적 유명한 조각가였던 브라만테(Donato Bramante)였다.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가 회화 (繪畵)에 있어서는 라파엘로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고, 미켈란젤로에게 억지로 회화를 맡기면 싫어할 뿐 아니라 결과물도 뛰어나지 않아서 교황의 신임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교황에게 적극 건의하여 결국 미켈란젤로는 본인이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미켈란젤로도 라파엘로에게 그 일을 맡겨달라고 교황에게 부탁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구약의 이야기를 위주로 구성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와 노아의 이야기 등 창세기의 내용이 실리게 된다. 이 천장화는 미켈란젤로 혼자서 약 4년(1508-1512)에 걸쳐 제작한 것인데, 브라만테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이 나오고 말았다. 이 천장화는 폭13m, 길이 36m로 제작되어져 있다.
교황 율리우스2세는 야훼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설이 있는데. 진위야 어쨌든 간에 이 그림의 압권은 야훼가 아담에게 손을 통해 생령을 불어넣는다는 설정일 것이다. 물론 성서적으로는 가당치 않지만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와를 왼팔에 끌어안은 폭발할 듯한 에너지의 야훼는 아직 부족한 생기로 힘없이 손을 들어 올린 아담에게 이제 막 생령을 불어넣으려한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이후 인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다. 스필버그는 E.T에서 재치있게 이 모습을 패러디한다.
천장 중앙 부분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아담의 창조를 비롯하여, 하와의 창조, 뱀의 유혹, 낙원에서의 추방, 노아의 홍수 등 창세기의 주요장면이 9개의 구획에 그려졌다.
천장의 가장자리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한 5명의 무녀들과 이사야, 에스겔, 예레미야 등 8명의 구약의 예언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율리우슨 12사도를 그릴 것을 요청했었다.
이들 예언자와 무녀 사이에는 삼각형의 공간 안에 예수님의 조상들이 그려져 있고, 천장과 맞닿아 있는 벽면의 반원형 안에 다시 예수님의 조상들을 그려 넣었다.
천장화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하나하나는 당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더러 아름답고 완벽해서 인체 묘사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쓴 바사리는 1550년에 출판된 ‘예술가 열전’에서 “예술이 새로운 광명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미술가들이 해야 할 일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라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4년 새 교황 파울루스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면에도 작품을 그릴 것을 명령한다. 200평방의 거대한 벽면에 등장인물만도 391명에 이른다. 이 그림 작업도중 추락해 부상으로 거의 사망에 이를 뻔한 적도 있다. 이 작품의 크기는 길이 13.7m, 폭12.2m이다.
당시 독일의 루터에 이어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프랑스의 칼뱅이 종교개혁을 주장하던 터라 교황은 반(反)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미켈란젤로에게 가장 전통적인 종교 주제인 <최후의 심판>을 요청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비밀리에 작업을 할 것이며 작품의 4분의 3정도가 완성되면 공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교황에게 부탁하였고 화가의 천재성을 존중한 교황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유화를 따르지 않고 천장화 작업을 통해 친숙했던 프레스코 기법으로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드디어 작품의 4분의 3이 완성되었고 교황과 수하들에게 작품이 공개되었다. 작품을 본 교황과 수행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그들의 시각으로 볼 때 못마땅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못마땅했던 점은 이 작품에 나체의 군상이 넘친다는 점과 당초 취지와는 반대로 이단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교황청의 의전부장인 비아지오 다 체세나(Cesena)는 나체의 군상이 교황의 예배당 같이 신성한 장소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목욕탕과 술집에나 어울리겠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또한 처음 공개 당시 묵묵했던 교황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외설적이고 불결하다고 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육신의 죄와 근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지상에서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치며,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심판하실 예수는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과 땅에 창조된 모든 것들 사이에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하늘에는 요한계시록의 선지자들이 심판의 나팔을 불고 있다.
과거가 기록된 책을 읽는 천사들 속에 절망에 가득 찬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덤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은 자들, 옷을 걸치거나 벗은 사람들, 아직 잠에 취한 사람, 벼랑에 매달리거나 땅위로 추락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들을 감시하는 천사들 위에서 한 성자는 불구덩이 속에서 죄인을 던져 버리고, 천국에 몰래 들어온 자들을 다시 지옥으로 밀어내며, 사탄은 악한 자들을 집어내어 끌고 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순교자들임을 나타내는 이들, 살이 벗겨진 바돌로매, 십자가를 든 안드레가 보이고, 예수의 머리 위에는 그가 못 박혔던 십자가, 기둥,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든 천사들이 보인다. 이 모두가 성당 내부에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흰색과 푸른색의 공간 위로 상승하는 인간의 구원으로의 욕망은 선악을 주관하는 예수의 최후 심판에 따라 환희와 절망이 한 곳에서 교차하고 있다. 육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던 신플라톤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한 모든 것들이 숨김없이 꿈틀대고 있다. 이 작품은 교만한 인간들의 신앙으로의 경건하고 겸손한 복귀를 외치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메시지이다.
작품의 상부에는 천국의 기둥과 십자가를 둘러싼 천사들이 등장한다. 그 아래로 중앙에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성인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또한 이들의 좌우로 또 다른 많은 성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에는 예언자도 있고, 베드로(열쇠를 들고 있으며 예수의 우측에 서있다)를 비롯한 예수의 사도들이 있으며, 아담도 있고, 성 바돌로매(껍질이 벗겨져 순교당한 성인)나 성녀 카트리나(마차 바퀴에 깔리고 참수형을 당한 성녀) 같은 성인들이 있다
중앙의 예수는 건장한 남자의 몸을 하고 있고 단호한 심판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 옆의 마리아는 아들의 분노를 무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권유해야하지만 그림 속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성인 중의 한 사람인 바돌로매를 보자. 그는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를 믿다가 껍질이 벗겨지는 순교를 당한 성인으로 그림에선 흔히 칼을 손에 쥐고 있거나 껍질을 손에 들고 나타난다(이렇듯 누구인지 알게 해주는 힌트가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미술사에선 이를 어트리뷰트(attribute)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돌로매가 들고 있는 껍질에 그려진 얼굴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는 점이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인물이 시원찮았다. 원래도 잘 생긴 얼굴이 아닌데다가 동료 조각가인 토리지아노(Torrigiano)의 작품을 혹평했다가 평소 열등감이 많고 쌓인 게 많았던 토리지아노로부터 얻어맞아서 코뼈가 주저앉은 사건 이후로 그는 평생을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성인의 껍질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해석을 하자면 그는 신앙심이 깊었던 사람으로 성인과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그는 ‘외모란 껍질 하나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못생긴 사람들의 하소연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우측으로 구원받은 사람 중에는 서로 강렬히 입맞춤하는 사람도 보이는데 이는 구원받은 기쁨을 표현한 것이지만 관능미를 풍기고 있다.
좌측 중하단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연옥(煉獄)을 묘사한 것으로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 부활한 영혼이 타락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고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와 천사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측 중하단을 보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왼손을 뻗고 있는데 그 손은 바로 윗사람의 성기를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윗사람의 항문을 찌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역시 불경스러운 요소이다.
우측 하단의 지옥 장면의 모습은 단테의 신곡에서 유래한 것인데, 카론과 아케론 강은 기독교 신앙과는 관계없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이다. 단테의 신곡 제 3곡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카론은 무섭게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노려보며 저들을 모조리 배안으로 불러 모아, 어물어물하는 자는 노로 사정없이 후려갈겼나니…”라고. 이렇듯 불경스럽고 이교적인 내용들로 인해서 교황청에서 심한 혹평을 했던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는 천지와 인간 모두를 한 손으로 쳐부술 것같은 심판관 앞에서 전율하는 인간이 그려져 있다. 인물 묘사는 볼품이 없이 크고 몸들은 온통 꼬인 채 아름다움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자기 몸의 피부를 칼로 동물 껍질을 벗기듯 순교당했다는 바돌로매의 가죽 속에 속죄, 순교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추한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당시 미켈란젤로를 혹평하며 괴롭혔던 교황의 의전관 '비아지노 다 체세나'는 뱀에 감기고, 성기를 뱀에게 물린 모습으로 지옥의 맨 하단부에 배치함으로써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교황의 의전관이었던 그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있는 나체들이 거룩한 장소에 적절하지 못하고, 홍등가에나 어울릴 것이라고 비평하여 미켈란젤로의 분노를 샀다. 그는 단테의 지옥편에 나오는 지옥의 심판자 미노스로 분장시켰다.
최후의 심판의 메시지와 공포의 증오가 전체 작품에 가득 차있다. 지옥의 무서운 장면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만큼 처참하다.
최후의 심판은 NHK의 청결작업을 통하여 종교재판 중에 다른 화가들에 의하여 덧칠되어 가려지고 벗겨져 잘 보이지 않던 인물들이 선명하게 나타났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간상은 여전히 아름답지 못하고 가련해 보인다.
성 베드로 성당
당시 로마제국은 이 성당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기 위하여 면죄부 판매를 생각해 내었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라고 한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규모도 어마하고, 내부도 매우 화려하게 지어져 있다. 12제자의 동상이 있고, 아름다운 성화가 벽과 천정까지 장식하고 있다. 이 건물을 만들기 위하여 뭇 영혼을 속이고, 진리를 변절시킨 로마의 교황청에서 면죄부를 판매한 잘못이 후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로마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 공항으로
로마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터키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마침내 성지순례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지난 2주간 동안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머잖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과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성도의 삶도 이와 같다.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모든 것을 다 두고 가야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끝날 날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에게는 아버지께서 예비하여 놓으신 그 나라에 들어 갈 소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얻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요1:12)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그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나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세웠네
그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