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영재 님의 글을 모 사이트에 올린 글로.너무도 주옥같은.... 혼자보기 아까운 글이라, 이곳에 소개 하고자 합니다 .
선비와 장수
1.
낚시를 하는데 으뜸으로 치는 고기는 엮시 붕어가 아닌가 합니다. 이 말은 대부분의 낚시인들도 아마 동의할 것입니다. 낚시는 붕어에서 시작해서 붕어에서 끝난다는 말도 있거니와 낚시의 본질을 꿰뚫는 의미가 붕어낚시에 있다 하겠습니다.
붕어의 자태로 말하자면 그 수려함에서 단연 선비라할 것입니다. 붕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눈이 참으로 어질고 이목구비가 마치 어린 송아지 처럼 천진하고 양순하여 죄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몸매도 단아하며 지느러미가 부드럽고 비늘이 가지런하며, 그 헤엄치는 우아한 모습을 보면 언제나 여유로움이 있어 그 유유자적함이 일품입니다. 행동이 침착하며 참을성이 많고, 그 순진무구한 눈빛은 영롱하기 이를데 없으니 어찌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메기나 빠가사리, 쏘가리, 누치, 마자, 피라미, 꾸구리 등등 수도 없는 고기들을 머리 속에 가득히 떠올려 보아도 붕어만한 의젓한 자태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기마다 개성이 있고 그 생김새에서 그 고기의 성격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붕어 이외의 특정 고기에 대하여 붕어와 견주어 가며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낚시인의 도리가 아니겠지요. 다만 한가지 우리가 떡붕어라 부르는 일본 붕어는 우리의 토종 붕어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만은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떡붕어를 주걱붕어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걱처럼 생겨 경박하며 먹이습성이나 찌의 놀림, 당기는 힘에서 우리의 토종 붕어와 그 격을 함께 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토종 붕어는 비록 어리다 해도 선비의 기품을 지니고 있으니, 붕어의 품격을 따를 고기는 이 지구상에
없다 하겠습니다.
붕어는 음식을 먹는 습성도 참으로 의젓해서 찌의 부드러운 올림을 보면 가슴이 저며옵니다. 대다수 붕어를 사랑하는 낚시인들은 그 붕어의 찌올림에 매료되어 붕어로 부터 영 헤어나질 못하는 것입니다. 붕어가 찌를 올리는 것은 아시다시피 붕어가 먹이를 발견하고 머리를 숙여 먹이를 흡입한 후, 다시 천천히 머리를 드는 과정에서 찌오름이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고기는 먹이에 입을 대고 먹는데 상당수가 먹이를 그냥 삼켜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붕어는 먹이에 접근하여 먹이와 떨어진 상태에서 흡입하고, 바늘은 점잖게 뱉어버립니다. 붕어의 이러한 먹이 습성이 찌를 천천이 수면 위로 밀어 올려 낚시인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러니 어찌 붕어를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진 자태요 지혜로운 몸가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비의 풍모를 지닌 그 붕어가 커서 월척에 이르면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하니 바로 옛 고구려 장수의 위용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찬란한 비늘은 고구려장수의 갑옷이며, 그 눈에 서린 기운은 지혜롭고 어질며, 굳게 다문 입은 문무를 겸비한 고구려 장수의 과묵을 보여줍니다. 누렇고 거무튀튀한 그 빛깔은 장수의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며, 몸가짐이 신중하여 찌올림에 위엄이 있습니다. 장수의 당기는 힘이야 다시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마주 본 붕어에서 어딘가 고구려 장수의 위용이 부족하다면, 아마 그것은 월척에서 조금 빠지는 붕어일 것입니다. 월척은 그 옆줄을 보면 참으로 찬연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치 단심을 지닌 여인이 장수의 갑옷에 그 일념을 수 놓은 듯합니다. 이 연개소문과도 같은 고구려 장수를 마주할 때 우리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숙연해지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선비와 장수
2.
붕어는 한자로 부(魚付)라고 쓰는데 부어가 변해서 붕어가 된 듯 합니다. 붕어는 우리 하천 어디에나 살고 있는 흔한 고기로 우리와 가장 친근한 고기입니다. 친구와 같이 늘 우리 곁에 머무는 고기입니다. 어쩌면 선인들이 중국식의 부로 부르기 보다는 붕어(朋魚)라고 고쳐 부른 숨은 뜻이 있는 건 아닐런지… 붕어! 너무도 친근한 이름이지 않습니까? 붕(朋)은 친구라는 뜻으로 ‘논어’의 첫머리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문자입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니 이 아니 기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가
아니겠느냐...
논어의 이 첫 귀절은 공부하는 학인의 기본 자세를 논한 것으로, 늘 배우고 익히는 한편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그간에 서로 익힌 바를 밤새워 논하니 참으로 즐거우며, 이렇게 학인들끼리 배우고 익혀 학문이 늘어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니 그것이 군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붕(朋)은 이와 같으니 붕어의 이름이 참으로 고상하다 하겠습니다. 늘 가까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친구요, 그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군자라 평생 벗을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낚시는 바로 기다림이며 물가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이 붕어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오랜 기다림 끝에 솟아오르는 찌는 오로지 붕어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낚시의 극치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