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둔 날 아침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복도에 어떤 형이 찾아왔다고 한다. 바쁜 아침에 누구일까 나가보니 상렬이다.
"어이구, 상렬이구나. 어떻게 왔어?"
상렬이는 내가 15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이다. 80년대 후반 교육운동을 시작할 때쯤 가르친 아이인데, 이제 당당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자주 연락도 못 드렸어요. 스승의 날도 되고 또 전교조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되었다기에 축하드리려고 찾아왔어요."
손에 들려있는 작은 꽃바구니를 받아드니 가슴에 울컥 뜨거운 기운이 솟는다. 사실 며칠 동안 나는 기운이 좀 빠져 있었다. 정부가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뒤 일부 언론과 세력들이 보여주는 비난 때문이었다. 나도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10년 가까운 생활을 교단 밖에서 지냈지만 무슨 대단한 민주화 유공자라고 추앙을 받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적어도 아이들을 참답게 가르치자고 희생을 무릅쓰고 나섰던 그 정신만큼은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박수를 못 쳐 줄망정 '전교조 교사를 민주화 운동 인정하면 나머지 교사는 민주화 반대세력이냐' 따위의 돼먹지 않은 논리로 몽둥이질을 해대는 걸 보면서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 시간이라 상렬이와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누고 보낸 뒤 오후에 교실에 앉아 있으려니 얼마 전에 만났던 지난 날의 제자들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20대 청년시절에 맡은 아이들인데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었다. 첫 학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은 이제 서른이고 그 뒤의 아이들도 대부분 20대 후반이다.
우연히 아이들 인터넷 동창 모임방을 들러 이야기를 훔쳐보다가 그냥 나오기가 뭐 해서 내 소식을 간단히 적어둔 게 끈이 되었다. 그날부터 10년 넘게 소식을 몰랐던 아이들의 쪽지 편지가 후드드득 날아들었다. 86년도에 2학년 꼬맹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은 그때 만든 학급문집 이름인 '하늘소'라는 방에서 만나고 있었는데 대견스럽게도 나를 기억해 주었다. 한진이는 자기들 방에 '참교육! 드디어 우리 선생님이 나타나셨다.'고 불길로 글을 싣고 마징가z 음악을 깔아 환영을 한다. 그 뒤로 선희, 도환이, 준상이, 연희, 선명이, 선민이 같은 시골 6학급 학교에서 만났던 코흘리개들의 편지가 이어질 때마다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기 전 해에 가르쳤던 6학년 아이들의 반창회에 초대받은 날은 기억이 새롭다.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늦게 나섰다. 미리 자기네끼리 자리를 잡아 이야기라도 나누라는 속셈이었는데 막상 약속한 곳이 다다르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녀석들이 좀 컸다고 예의를 지키는 모양이다. 지금 나이가 스물 여섯이이 몰라보겠구나 생각했는데 얼굴은 처녀총각이 다 되었지만 옛 모습이 어디 가랴. 반가운 마음에 하나하나 손을 붙들고 선겸이, 중희, 용성이, 지은이, 복성이, 효승이 불러대는데 서로가 긴장이 된다. 나머지 대여섯 아이들은 직장 일이 늦게 끝나 조금 뒤에 오기로 했다고 한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도 몇 잔 돌렸다. 처음에는 술도 조금 먹고 말도 줄이고 그저 아이들 노는 모습이나 보아야지, 했는데 뜻대로 안 된다. 아이들이 지난 시절을 풀어헤치고 웃음판이 자르르 흐르면서 술잔이 거푸 돌려진다.
"선생님, 그때 참 재미있었어요. 또랑이 흐르는 들판으로 나가 놀이하고 도시락 까먹던 일, 꽃을 꺾어 장식을 만들던 일, 들길달리기 하던 일이 기억나세요?"
"학교 다니면서 그때만큼 교과서에 안 나오는 공부를 많이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책 읽기, 이야기, 노래, 놀이....."
아이들이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온통 끄집어낸다. 더욱이 십 년이 넘었지만 그때 가르쳐 준 노래까지도 자그맣게 부른다. 중희는 그때 배운 '에야디야'라는 민요를 신입사원 야유회때 불렀는데 사람들이 몰라주어 썰렁하기도 했단다. 참, 아이들이란 게 무섭구나, 그 어린 시절에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이리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줄이야!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만 있겠는가? 혹 가슴에 상처를 남겨 준 일은 없을까 두렵기도 했는데 뒤에 온 혜영이, 현경이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혜영이는 나보다 옆 반 총각선생이 담임하기를 바라서 내내 자기 마음을 열지 못했노라고 한다. 현경이는 손버릇이 나빠 나한테 매를 맞다가 작은 상처가 났다고 보여 준다. 그랬니? 얘들아 너무 미안하구나. 그럼 그렇지, 내가 부족한 게 많았겠지.
"그런데 만약 그때 총각선생님이 담임이었으면 오늘 안 나왔을걸요."
"선생님 덕분에 다시는 그런 나쁜 행동을 안 하게 되었어요."
참 고마운 아이들이 이렇게 못난 나를 용서하고 위로해 준다. 2차로 찻집에 옮겼을 때는 깐돌이 진환이, 지연이, 희정이 거기다가 다른 반이었던 용학이, 영화까지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이 모여들고 우리는 그날밤을 기어코 넘기고야 말았다.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옛 제자들 모임에 다니는 걸 두고 'A/S 다닌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까지 없다. 그저 아이들이 찾아주면 곁에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내 지금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 주면 그뿐이다. 그것이 교실아닌 세상에서 서로에게 배우는 또 다른 교실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나는 우리 제자들의 정직한 가슴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다시 힘을 내며 '스승의 기도'를 나직하게 불러 본다.
스승의 기도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개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