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道岩面) 대초리(大草里)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절.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부부와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전남 화순읍에서 서남쪽 26km쯤에 위치한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 산인지 절인지 모른채 한참동안 걸어가면 크기·모양이 천차만별이며 불균형한 몸체와 투박하고 밋밋한,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인 친근감이 배어나오는 석불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초입부터 넓게 펼쳐진 광장에 110여개나 되는 크고 작은 석불과 석탑이 어지럽게 어울려 마치 불상과 탑의 전시장을 연상케 한다. 크기가 수십cm에서 10m에에 이르는 돌부처들은 좌대를 갖춰 앉은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바위에 기대어 서있다.
이같은 모습은 우리나라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어서 이국정취마져 느끼게 한다.
석불 대부분은 토속적이며 투박한 형상을 띠고 있어 오가는 길손들에게 더욱 정감을 주고 있다.
운주사는 1970년대 이후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널리알려지게 됐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과 송기숙의 ‘녹두장군’이 운주사를 소재로한 대표적인 작품, 특히 장길산은 천불천탑 이야기로 운주사를 일약 민중의 해방을 가져다 줄 미륵성지로 부각시켰다.
그 미륵신앙의 관심은 절 오른편 산중턱에 누워 있는 와불에서 비롯됐다. 탑과 석불이 흩어져 있는 산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바닥에 거대한 와불 2기가 나란히 붙어 누워있다.
길이 12m, 폭 10m, 커다란 천연암반을 깍아 부처의 모습을 새겼다. 그러나 천년을 누워있는 와불은 이런 염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이다.
와불 아래쪽에는 북두칠성 모습을 옮겨놓은 칠성바위가 있다. 맷돌모양 돌의 배열상태와 크기가 북두칠성의 방위각과 밝기를 반영하고 있다.
천불천탑이 완성되면 미륵이 지배하는 참 민중이 의 세상이 오고, 운주사가 있는 천불산은 새나라의 수도가 된다고 했다.
운주사 일대를 가득 메웠다는 천불천탑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운주사가 세워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동국여지승람에 ‘석불석탑 각 일천’이라는 기록이 있을뿐이다. 지금은 폐허속의 석탑 19기와 석불 90여여구만 남아 천불천탑으로 부활할날을 기다린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내용은 이러하다.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국운이 일본으로 새나가는걸 막기위해 풍수지리설에 따라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천탑을 천상에서 석공들을 불러 쌓기로 했다.
마지막 석불이 완성되던 찰나, 일을 하기 싫은 한 동자승이 새벽닭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아침이 온 줄 알고 마지막 석불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려 미륵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운주사의 천불천탑 중에는 보물로 지정된 것이 3개 있다.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 의미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올라오는 차레순으로 보물번호가 붙어졌다.
제일먼저 만나는 보물은 제796호인 구층석탑, 거대한 암반위에 건립된 탑으로 옥개석의 흐름이 날렵하고 전체적으로 세련되어 운주사의 탑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石造)은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불상. 돌을쌓아 정육면체 모양의 석실을 만들고 남과 북을 바라보며 서로 등을 대고 있는 2구의 돌부처를 앉혓다.
고려중엽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끝마무리가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매우 특이한 양식이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석조불감 바로 안쪽으로 놓여있는것이 보물 제798호인 원형 다층석탑이다. 말그대로 둥글고 넓적한 돌을 쌓아 만들었고 현재 6층만 남아있다.
대웅전을 지나 북쪽 산 중턱에 올라서면 그 옛날 도선국사가 불사를 총 지휘했다는 공사바위가 나오며 만산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운주사의 석불과 탑들은 석공들의 연습장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다듬지 않은 돌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리거나 비탈진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서있어 석탑모양과 위치는 상식을 초월한다.
신라시대 탑들처럼 정교함이나 단아함은 찾아볼 수 없으나 운주사 천불천탑은 오늘도 세상을
구원하려는듯 비바람을 맞으며 중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운주사가 있는 화순군은 답사여행의 보고로 불릴만큼 명승과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시간이 허락하면 통일신라시대(839년) 혜철선사가 창건하고 중국에서 유학한 철감선사가 사자산문을 열었다는 쌍봉사(061-372-3765)와 세계유산 화순고인돌군으로 지정된 효산리와 대신리의 고인돌군을 찾아볼 수 있다.
도고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있는 보검재 (보성재) 계곡일대 3km거리에 596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다른지역에 없는 고인돌 채석장이 발견되어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