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4. 다음에 제시된 조약이 체결된 계기가 된 사건의 설명으로 옳은 것은?
---------------------------------------
- 1조 : 조선국은 흉도를 포획하고 수괴를 가려내 중벌로 다스릴 것.
- 2조 : 일본국 관리로 피해를 입은 자는 조선국이 융숭한 예로 장사지낼 것.
- 3조 : 조선국은 5만원을 지불해 일본국 관리 피해자의 유족 및 부상자에 지급할 것.
- 4조 : 흉도의 폭거로 인해 일본국이 받은 손해 및 공사를 호위한 육·해 군비 중에서 50만원을 조선이 부담 하며, 매년 10만원씩 지불해 5년에 완납 청산할 것.
- 5조 : 일본공사관에 병사 약간 명을 두어 경비하게 하며, 병영의 설치·수선은 조선국이 책임을 지고, 만약 조선국의 병·민이 법률을 지킨지 1년 후에 일본공사가 경비를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할 때에는 철병을 해도 무방함.
- 6조 : 조선국은 대관을 특파하고 국서를 보내어 일본 국에 사죄할 것 등이다.
--------------------------------------------------
① 구식군인을 차별 대우한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다.
②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
③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며 의병을 일으켰다.
④ 전국 요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답: ①
* 임오군란과 제물포 조약
개항 후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하여 극심한 차별을 받던 구식 군인들은 13개월 만에 월급으로 지급받은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폭발하여 선혜청을 습격하며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6).
구식 군인들은 흥선 대원군을 찾아가 지지를 요청했으며, 정부 고관들의 집을 부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이 와중에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이 죽었다. 그 후 서울의 하층민들이 가세하여 세력이 더욱 커지자, 구식 군인들은 왕궁을 습격하고 민씨 일파 등 고위 관리들을 처단하였다. 군인들이 궁궐에까지 침입하자 민비는 종적을 감췄고(장호원 피신) 고종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에게 정권을 맡겼다.
그러나 민씨 일파로부터 군대 파견을 요청받은 청은 일본의 무력 개입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군대를 출동시켜 군란을 진압했으며, 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 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해 갔다. 또한 청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고문 파견: 마건창, 묄렌도르프)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8)을 체결하여 양화진을 통한 한성개잔권과 내지통상권을 얻어 도성의 시장과 개항장 밖 내륙 시장까지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군란의 책임을 물었다. 이에 굴복한 정부는 제물포 조약(1882.8)을 체결하여 사과 사절단의 파견(3차 수신사: 박영효), 주모자 처벌, 배상금 지불, 공사관 경비를 위한 군대 주둔 등 일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②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급진개화파들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1884.12).
③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며 양반 유생들을 중심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1895~1896).
④ 흥선대원군은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물리치고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1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