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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14)
주부 출신 사사 - 드보라
본문 : 삿4:1-7
<이스라엘의 고질병>
‘고질병’은 쉽게 낫지 않아서
오랫동안 어떤 사람을 괴롭혀 온 병을 뜻합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병에만
‘고질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것에도 ‘고질병’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고 넘어진다면
그것은 영적인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이 영적인 ‘고질병’이 있었습니다.
1절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왼손잡이 사사 ‘에훗’ 이 죽은 이후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또 다시 ‘고질병’이 도졌습니다.
사사시대의 순환적인 구조에 따라
‘또’ 다시 ‘배교’가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훗’ 이후 80년간 태평성대를
누리는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에훗과 삼갈의 활약으로
모압과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
약 80년 동안 긴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질병’은
특정한 기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마치 고인 물이 썩듯,
평화와 안녕의 시기에 방심하면
반드시 ‘반역의 고질병’이 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려했던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렇게 경고하신 바가 있습니다.
<신8:11-20>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절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절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절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절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이상하게도 인간은 고난과
역경의 시절보다 풍요와 평안이
계속되는 시절에 더욱 타락하고
범죄에 물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질병’을 생각하고
더욱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오히려 방종의 기회가 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 하솔 왕 야빈>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복되는
‘고질병’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2-3절>
2절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절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번에는 ‘하솔 왕 야빈’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솔 왕 야빈’ 이란
이름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앞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북방을 정복할 당시
가장 강력한 대적이
바로 ‘하솔 왕 야빈’이었습니다.
수11: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수11:10-11>
10절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11절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고.”
여호수아에 의해 죽은
‘하솔 왕 야빈’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야빈’은
왕의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의 바로와 같은
왕의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의 정복 이후
불과 백여 년 만에 하솔이 완전히 복구되었고,...
이제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나라로 강성해진 것입니다.
이는 에훗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압과 똑같습니다.
그러면 ‘하솔 왕 야빈’이
가진 전력은 어떠합니까?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3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탱크 구백 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8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며 방종하던
이스라엘은 변변한 무기 하나 없었습니다.
그 강력한 무기로
야빈은 상당한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야빈’은 ‘하솔’에서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 한참 북쪽에 위치한
‘하솔’과 이스르엘 계곡의 평원 서쪽에 위치한
‘하로셋’ 사이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그렇지만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에
그 넓은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반역한
이스라엘을 야빈의 손에 ‘파셨습니다.’
그 결과 야빈 왕은 2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습니다.’
성도님들 !
지금까지 반복되는 징계를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이시지요?
예, 모두 이방 민족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자연 재해나 질병처럼 ....
천지 만물의 모든 것들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허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삼하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에는 예외 없이
이방 족속들만이 징계의 도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이방 족속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삿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2:21-22>
21절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약속에 철저하신 분이신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축복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심판에 대한 약속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시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의 구원와 심판에 대한 말씀 역시
약속하신 대로 이루 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이스라엘>....
‘하솔 왕 야빈’의 압제로 20년 동안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3절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결국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스라엘을 파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부르짖으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처음 메소보다미아 구산 리사다임에게
압제를 받을 때는 8년이 걸렸습니다(삿3:8).
- 그 다음에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압제를 받을 때는 18년이 걸렸습니다(삿3:14),
- 이번에는 야빈에게 20년 동안
학대를 받은 후에야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주 징계를 받는 아이들이 면역이 되어
잘 뉘우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작은 징계에도
죄를 깨닫고 뉘우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더 심한 징계를 주어질 때까지
뉘우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양심이 무뎌지고, 화인 맞은 양심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자범죄를 짖습니다.
육체를 입고 있기에 죄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죄가 깨달아 지거든 시간 끌지 말고,
버티지 말고 속히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 – 여선지자 드보라>
그들이 20년 만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4-5절>
4절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절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치고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상대가 누구입니까?
철병거 구백승(중무장 탱크)을 가지고 있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야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력한 압제자를
물리쳐 달라는 부르짖음에 ....
하나님은 겨우 한 사람의 여인을
사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어찌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앞선 사사들에게서도
우리가 깨달은 바입니다만 ...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의 기대를 초월합니다.
- 맨 처음 사사인 옷니엘을 부르실 때에는
80세가 넘은 노인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 두 번째는 오른손을 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왼손만을 사용하는 장애인,
에훗을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 농부 삼갈을 들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55:8-9>
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면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때로는 모세나 갈렙 같은 노인도 쓰셨습니다.
소년 다윗도 쓰셨습니다.
장애인도 쓰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도 쓰셨습니다.
여자라고해서 쓰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녀가 ‘여선지자’로 기록된 것으로 봐서
그녀는 이미 하나님께 사로잡힌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한 가정의 어머니요,
한 남자의 아내였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만한 그릇이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딤후2:20-21절>
20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와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바락을 불러다가>.....
아무튼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했다’(5절)고 합니다.
‘라마’는 ‘벧엘’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 땅입니다.
그런데 하솔의 야빈 왕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는 곳은
여기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납달리와 스블론 지역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선지자 드보라를
야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세우셨다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오신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문제가 벌어진 지역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사사’를 찾아
세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을 읽으면
그 의문이 해소됩니다.
<6-7절>
6절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절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는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불러오게 합니다.
그런데 바락이
어디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납달리 게데스’입니다.
하솔 왕 야빈에 의해서
압제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지역입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쓰려고 하는
용사 ‘바락’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다가
하나님께 받은 신탁을 전합니다.
그것은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면 야빈의 군대 장관과
그 군대를 바락의 손에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
이제 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야빈 왕의 압제에서부터
구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바락’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바락’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단지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신탁을 바락에게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목회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직접 나가서 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수많은
이 시대의 ‘바락’을 세워나가는 것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일꾼들을
불러 세우는 것이 목회입니다.
(축구 - 운동장에서 뛰는 것은 선수이지만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작전을 짜는 것은 코치입니다.
목회자는 코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께서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 많은 옷니엘도 들어 쓰셨습니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왼손잡이
에훗을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농부 삼갈을 들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주부인 드보라를 들어 하나님의 사사로,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저와 성도님들도 !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이 시대에 하나님 뜻을 이루는
귀한 사역자로,
성도로 쓰임 받게 되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