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입니다.
하동읍 악양뜰은 예전에 들은 말로는 거지(동냥치)가 악양들을 한바퀴 얻어먹고 나오면 3년이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들이 넓고 기름지다는 이야기 인가 봅니다. 박경리씨의 토지를 생각하면서 저는 지금 옛 어르신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넓은 악양들녁~
저의 고향은 악양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전남 광양 다압면 바로 뒤산을 넘어인데 그러니까 악양에서 섬진강너머 보이는 산을 넘어 바로 뒷마을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날몰마을 입니다.
저의 할아버지 여동생 4분이 계셨는데 첫째 여동생은 전주에 이형수씨에게 시집을가셔서 외손 병두를 보았으며, 둘째 여동생은 전남 보성군 문덕면 내동마을 염동하씨(문덕면 내동마을입구에 만인 덕적비가 세워져 있다고함)에게 시집을 가셔서 9남매를 낳았는데 4남매를 잃고 5남매를 길러 딸 둘(행자,덕자), 아들 3형제를 길러 3급공무원과 해군대령(인열)까지 되었으며,
세째 여동생은 함안 조항제 씨에게. 그리고 4째 막내 여동생이 하동악양에 사는 이씨성을 가진 천석궁의 집안에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악양 천석궁의 외아들이라고 폐결핵환자였는데 당시는 이를 숨기고, 중매가 들어와 우리 4째 막내 고모 할머니가 그곳으로 시집을 가셨답니다. (우리 집안은 남자는 물론 여자분들도 인물이 좋와서 고모 할머니도 미인이셨습니다.)
결혼생활에 딸 하나를 겨우 낳아 키웠는데 그후 폐결핵을 앓았던 남편은 죽고 혼자 외동딸을 키우면서 사셨다는 데~
그때 악양에서 멀지 않은 화심동에 만석궁 여참봉(여종엽)의 둘째딸 혼처를 구한다는 중매 쟁이의 이야기에 자기 친정 큰 조카를 소개하였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외할머니는 사람을 넣어 우리집안을 알아보셨는데 섬진강 넘어 광양진상 날몰(飛村)에 착한 선비가정으로 (대대로 첩을 두지 않는 가정으로) 하동과 그 인근에 알려졌던가 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님이 하동 여참봉의 둘째 사위가 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악양 고모 할머님은 그후에 친정 막내동생(황숙현)을 공부시켜 서울 농대(예전엔 농림전문)를 졸업시켜
국회 농림전문위원을 오래 하시다 광양군 수리조합을 통하여 광양읍 간척지 공사를 추진 완공하여 넓은 땅을 간척지 논으로 만들어 경작케 하여
그후 군민들의 추천으로 민의원에 입후보 하여 광양국회의원이 되셨으며, 간척지의 주민들이 공적비를 세워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 황숙현 공적비 황숙현할아버지의 차남 호정(워싱턴거주), 전직-외무부근무,주미대사관 공사))
-가족계모임때 종조부님 광양공적비 근처를 지나다~
황숙현 종조부가 서울사실때 악양 누님의 은해를 생각하며 악양 누님의 딸을 항상 돌봐 주고 계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름은 제가 정열이 아짐 이라고 불렀는데 서울에 와서 자주 뵈었던 분으로 자기 아버지의 외도로 얻은 질병으로 인하여 태여날때 부터 한쪽눈이 보이지 않아 항상 검정 안경을 끼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 아짐이 원효로에서 외롭게 돌아가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박경리 소설의 토지를 처음볼때 문득 악양으로 시집간 할머님의 이야기가 소설의 처음 내용중 많이 닮은곳이 있어서 처음 소재가 되지 않았나 할 정도로 닮은 이야기가 됩니다.
첫째 서희 아버지가 폐병환자에 부자집 외아들이였다는 것, 둘째 서희 어머니에게서 딸 하나를 키웠다는 것. 세째 악양 이 그 소설의 처음 고장이라는 것.등등 입니다.
좋은구름 황상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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