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 니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장6-9a)
저도 40일을 굶어 본적이 있으니 금식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제가 무모하게 금식을 하느라고 4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맥박이 40에 60까지 내려가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가 기사회생을 했습니다.
병원에 가진 않았지만 수간호사인 전도사의 말로는 그 상태로는
병원에 가도 링거를 꽂을 수 없어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신기한 방법으로 지혜를 주셔서 장이 풀려 물을 마시고
또 곡기를 조금씩 섭취하므로 다시 살아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중요한 것은 금식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이 덤빈 결과 혼쭐이 난 겁니다.
그건 제 자신을 금식으로 환골탈태를 해보자고 도전해 본 거죠.
딱 하나 제대로 금식이 된 것이라면 34일 정도까지 성경을 반복 읽었는데
그 때 본 성경이 제게 아주 꿀맛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참 금식이었습니다.
금식이 끝나고 나니 손을 대기만 하면 중병환자도 낫고
희한하게 사람을 꿰뚫어보니 별별 사람들이 교회에 줄을
서서 이거 뭐야 하고 허탈해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도 있습니다.
40일 금식으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므로 나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려고 했다니...
이건 중세 수도사들의 무지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단언하건대 제가 금식한 후에 얻은 것은 말씀에 대한 계시일 뿐
신유 투시 등이 따른 것은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굶으면서 말씀만 보는 제대로 된 금식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40일 금식을 통하여 얻은 교훈은 어떤 사람이라도 귀하다는 것과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렇게 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큰 소득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나타난 신유나 투시는 말씀을 증거하려고 나선 제게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제가 40일 금식한 지난날을 들추느냐 하면 유대인은 금식으로
괴로운 모습으로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굵은 베옷을 입고 죄인인 양(사58:5)
제스처로만 쫄쫄 굶다가 날짜만 채우고는 실컷 먹고 ‘나 금식했어’ 자랑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유대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마6:16)
사실 중병에 걸린 거의 모든 사람의 상태를 보면 응어리와 앙금이 있어
용서하지 못하는 아니 용서가 안 되는 쓴 뿌리가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폐암 말기 환자가 부산의 모 병원에서 신음한다고 하기에
심방을 했습니다. 그분의 딸이 저희 교회에 집사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반지 팔찌 목걸이 등과 가진 모든 소유를 다 교회에 바치고
이제 천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살펴보니 아직 먼저 가신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그 속이 보여서 집사님 이대로는 천국에 못가십니다 하고
돌아 왔는데 그 집사님이 내가 33년 동안 얼마나 유명한 부흥사들의 말씀도
듣고 안수기도를 받고 또 내가 가진 폐물도 다 교회에 드린 사람인데
그 새파란 돌팔이 목사가 나를 천국에 못 간다고 했다고 며칠을 난리치더랍니다.
그러기나 말기나 모른 체하고 버티니 몇 달 후에 그 집사님이 딸을 시켜
테이프 몇 개를 달라고 해서 제 말씀을 잘 듣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기를 거의 일 년이 되어 그 집사님이 진주에서 장거리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에게 극약처방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는 2-3개월이라고 했지만 결국 참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먼저 간 남편을 용서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1년 가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결재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과 또 처리할 용서의 찌꺼기가 남은 채로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오게 하실 일은 만무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건 천국은 결코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수화기로 너머로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로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제 남편을 용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녀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 남편 곁에 묻히기로 했습니다 하더군요.
그 집사님은 바로 그 이튿날 소천을 했습니다. 그만큼 용서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할라치면 나의 땅의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떠나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라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사모하는 금식이 진짜 금식입니다. 밥을 굶는 것만이 참 금식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밥만 굶고 괴롭게 하고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빈다고 칩시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은 자신으로
계산해 보지 않고 어찌 백 데나리온 빚진 다른 사람의 빛을 탕감해 줄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의 결산에 걸려 결국 다시 옥에 잡혀 들어가고 맙니다(마18:34)
우리는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 가운데서 죄인들 틈에 사느라고
피해를 받으므로 가해자가 되어 가해를 하고 치고 박고
싸우며 살아 온 지금까지의 인생들입니다.
다만 복수를 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싸우지 않으려고 브레이크를 꾹 밟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이 들키지 않은 살인자들이 무수합니다(마5:21-22)
형제를 등신이라고 욕하지 않고 저 놈하고 이빨을 갈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심한 상처를 받은 피해자로서 마음속에 가해할 마음을 가진 상태로 쭉 가면 병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금식이 필요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듣고 또 듣고 체화시키는 금식입니다.
제가 아침 식사로 올리는 이글을 여러분이 동의하신다는 것과 그 말씀이 속에서
생명의 능력이 되도록 진리를 따라 적용하는 전문가가 된다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건 우리의 악하고 게으른 체질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며 감동도 받고 기쁨도 맛보지만 진리의 말씀이
우리 몸에 생명으로 나타나려면 10년 정도는 인내로 말씀의 트랙을 돌아야 합니다.
용서나 사랑이나 긍휼에 대한 원함이야 굴뚝이지만 우리 속에 있는 나 아닌
죄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 곤고한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롬7장)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발견이 되므로 진리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계명을 지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
망신살을 당하지 않고 담대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진리의 사람이 되면 법정신에서 해방이 되어 검사와 같이 정죄에
투철한 성격이 부드럽고 너그럽게 되어 기쁘고 명랑한 영으로 바뀌게 됩니다.
세상에 부러운 것도 하나 없고 미운 사람도 또한 하나도 없어집니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용서할 쓰레기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을 묶었던 결박이나 멍에가 저절로 해체되고
자신의 속에 있는 자비의 마음 주머니를 열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슬픈 사람과 함께 슬퍼하며 그들의 짐을 지려고 그들에게
감정이입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이입이 되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빛과 같이 빛이 나고 치유가 급속하게 일어나며
그의 의가 앞에서 이끌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병풍처럼 후광이 됩니다.
사족으로 말미에 달고 싶은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에
119구급대원이 되고 응급실이 되어 그들을 따라가며 병을 그 때마다 치유하시는
치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가나안을 향해
만나를 먹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벗어나지 않고 뚜벅뚜벅 걸으면
애굽의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시는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심을 명심하세요(출15:26)
모세가 120이 되어 죽을 때도 영원한 청춘이 된 것이 그 모델이었습니다(신34:7)
앞에 언급한 그 집사님의 예대로라면 사람들의 말로 또는 스스로 생각으로
천국에 충분하리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의 의와는 먼 법정신과 의무의 신앙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을 받는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에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중병에 걸려 마지막에 큰 고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홍길동이는 지혜로워서 하나 하면 열을 깨닫는다 하니 이 정도면
여러분들이 충분하게 깨닫고 적용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므로 그만 쓰겠습니다.
첫댓글 옛날 오산리 순복음교회에서 3일 금식기도 했던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3일이라도 그때 심령은 청량했고, 유리처럼 투명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기도 조차 생각이 나지 않고, 심령은 자욱한 안개가 낀것처럼 시야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있어야할 위치를 벗어난 죄를 회개 했지만 여전히 삶의 정황은 그대로 입니다ㅡ
단 하나 바뀐것은 말그대로 "순복음" 의 말씀을 듣는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썩어질 땅의 양식 대신 하늘 양식을 사모하는 것이 가장 귀한 금식입니다.
다만 진리를 따라 마음의 땅이 거룩해져야 새 하늘과 연합이 되어 하늘문이 환하게 열립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 곧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신을 계산하고 그 안에서 진리의 성령으로 주와 한 떡 한 영 한 몸이
되는 새언약을 지켜 인내하므로 하늘 가는 밝은 길이 환해 집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서서히 낡아져
새 것으로 뚜렷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 인내 연단을 통해 소망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아멘.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