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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인심
그날 저녁에는 권 수인이 닭 한 마리 잡아서 가마솥에 닭을 푹 고아 낸 후, 따로 삶아내서 담은 국수 그릇에 닭살을 발기발기 찢어서 그 위에 고명으로 조금씩 얹어서 식구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런 특별 식이 있는 날은 손님들을 부르게 마련인데, 권 수인은 이 동주를 불렀다.
마침 심심하게 혼자 저녁을 차리자니 멋쩍던 차에 권 수인이 국수 먹으라고 부르니 이 동주는 신이 나서 왔다.
시골은 닭 한 마리 삶으면 가까운 이웃들이 죄다 모여서 국수를 나누어 먹고, 툇마루와 멍석 깐 마당에 모여서 모깃불을 피우며, 수박이나 참외를 깎아 먹었다.
철이는 엄마와 멍석에 걸터앉아서 모기를 쫓고 있는데, 이 동주가 엄마 옆으로와 앉더니 차츰 철이 옆으로 옮겨 앉으면서 맨다리를 슬쩍 슬쩍 스쳤다.
“우리 철이는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남자로 잘 자랐는지, 요 인물 좀 보소”
이 동주는 철이 뺨을 꼬집었다.
철이는 다정한 사람들처럼 이 동주에게 얼굴을 맡겨두었다.
새벽에 이 동주를 뛰쳐나올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참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고 생각했다.
분이 엄마가 감자를 삶아서 들고 왔다.
“언니는 나는 안 부르고 동주만 불러? 감자 쪄왔지, 아저씨 안녕 하세유”
분이 엄마는 배 강복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오슈”
배 강복이 자리에서 물러나며 조금 떨어져 앉았다 일어나서 아낙들을 피해서 밖으로 나섰다.
석이와 욱이도 일어났다.
“왜들 일어나?”
분이 엄마가 미안해서 물었다.
“냄새도 잘 맞았네, 호 호 ”
권 수인이 분이 엄마를 보며 웃었다.
“누가 불러서 오나 뭐, 와서 앉으면 내 자리지, 안 그려”
“언니 말하면 뭐해 ”
분이 엄마보다 10 살이나 아래인 이 동주는 모른 척 한마디 거들었다.
“철이 인물이 날로 남자 같아지네!”
분이 엄마가 철이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아, 얘들 한태 못하는 말이 없어, 그까짓 얼굴보고 있으면 뭐가 나오나, 일을 잘해야지”
권 수인은 아들이 잘났다고 하니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이 철이나 철이 아베 한태 도움이 될 성 싶기도 했다.
인물이야 배 강복이 보다는 철이가 훨씬 남자답게 수수했다.
“철이야 우리 동네 제일 미남인 송 기사 만하지, 송 기사는 돈도 잘 벌고 인물도 제일 뛰어 나잖아요.”
분이 엄마가 권 수인 을 바라보았다.
“흠 별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우리 주인이 최고지, 남은 국수나 먹어”
권 수인은 분이 엄마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설거지 그릇을 옹가지에 담아서 부엌으로 가져가서는 지딱거렸다.
“언니 왜 화났어?”
“아니,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이 한태하면 뱃속에 바람이 들어갈까 봐 그러지”
“언니는 참, 설거지 내가 할게”
“그랴, 그럼”
권 수인은 분이 엄마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마른 그릇들을 챙겼다.
그동안 이 동주는 철이가 나란히 앉아서 감자를 먹었다.
“너 이따가 우리 집에 올 거지, 기다릴게, 나는 무서워서 혼자 잠을 못자는 것 너도 알지!”
마귀도 이런 마귀가 없다.
이 동주는 철이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철이는 먼 금화산을 보면서 말했다.
“야 ”
“맛있는 것, 해놓을 게”
이 동주는 철이 귀에 뜨거운 입을 가져다대며 속삭였다.
귀신도 꼬여 넘어갈 지경이었다.
“조카에게 무슨 이야기를 귀에다 대고 하는 거여”
부엌에 다녀온 분이 엄마가 둘 사이를 팔로 재치면서 끼어들었다.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언니 잘 먹고 가요, 조금 있다가 철이 좀 보내줘요.”
52회 밤은 오고
이 동주는 분이 엄마와 나란히 집을 나서며 권 수인에게 당부했다.
한마당에서 분이 엄마는 다리를 건너 아래 터로 내려가고, 이 동주는 순이네 집 아래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를 지나 황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밤에 집안으로 들어서는 이 동주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낮에 방앗간에서 찧어온 보리로 개떡을 찌기 시작했다.
보리 개떡에는 귀한 콩과 팥을 한줌씩 넣어서 푹 쪄냈다.
부엌에서 불이 환하게 비치니 온 집안에 인기척이 없어도 살만했다.
그리고 방안에는 기름등잔에 호롱불을 밝히고 삽짝에는 초래 등을 켰다.
이 동주는 귀한 사람을 맞이하려고 온몸이 마치 불꽃이 튀는 것처럼 환했다.
이 동주는 삽짝 옆에 붙어 서서 하마나 철이가 오나 자칫 안 오나 초조하게 살폈다.
이 동주의 달뜨던 마음이 충만했다.
마루에서 잠이든 철이를 권 수인이 깨웠다.
“철아, 아 이모 집에 안가? 얼른 가봐라, 기다리겠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엄마는 철이의 운명을 재촉했다.
철이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이 동주가 자기에게 또 무슨 짓을 할지를 잘 알기에 전혀 가고 싶지 않았다.
“철아 안가?”
“..........”
순간
“어험”
아버지가 늦은 시간에 마을을 다녀왔다.
“여보 너무 늦었어요.”
“어험, 왜 그러고들 서있어?”
배 강복은 아내와 아들 철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철이는 찔끔 해서 신을 신었다.
“예, 엄마 지금가요.”
“왜 그래?”
아버지는 그제야 아내와 철이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 이모가 혼자 자니까 무섭다고 철이를 보내라고 해서요.”
“가봐”
아버지는 다른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철이는 아버지가 마음이 변해서 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몰라서 그냥 단걸음에 이 동주로 갔다.
이 동주는 삽짝 문 옆에 미리 나와 서있었다.
이 동주는 어둠 속에서 처적처적 걷는 걸음이 철이 인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 동주는 얼른 밖으로 마중 나가서 철이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기다렸다구, 어서 들어가자, 내가 보리개떡을 맛나게 쪄놓고 단술도 퍼놨단다.”
철이는 벌써부터 이 동주가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면서 숨소리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철이는 말없이 마루에 앉아서 이 동주를 기다렸다.
이 동주는 개떡이랑 단술을 소반에 받쳐 나오더니 철이 앞에 놓았다.
“얼른 먹어 시장하면 안되니께”
“야 ?”
“배가 고프면 아무 일도 못하잖아”
일이라니 한밤에 있던 일이 또 있을 까!
이 동주는 개떡을 꿀에 찍어서 철이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시무룩한 철이는 고개를 숙이고 받아먹었다.
“왜 이레 화났어?”
“아....니유, 그냥 유”
“걱정 마. 나 잠간 씻고 올게”
철이는 얼굴을 들고 이 동주의 뽀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동주는 부엌에서 멱을 감는지 나무통에 우물물을 길러서 두어 번 들고 들어가더니, 가마솥에 끓는 물로 김을 내며 목욕을 하고 머리에서 쥐똥나무 냄새를 풍기며 달빛에도 머리카락이 까맣게 드러났다.
이열치열이라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머리를 감으면 더 시원했다.
온몸에서도 산뜻한 냄새가 났다.
그런 복잡한 생각이 앞서니 철이 마음에 개떡이고, 단술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니 하나도 안 먹었네, 왜 나하고 같이 먹으려고, 기특하긴”
이 동주는 눈을 살짝 흘기면서 철이 얼굴을 꼬집었다.
“야, 같이 먹으려고요.”
철이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얼른 먹고 너도 우물에서 등물이라도 해라, 아님 빨가벗고 씻던지 누가 볼 사람도 없는데”
이 동주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새실거리며 웃었다.
철이는 팬티만 입고 우물에서 찬물을 뒤집어썼다.
도저히 몸이 뜨거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53회 이제 어떻게 해요?
이 동주는 철이가 거칠게 찬물을 여러 바가지 퍼붓고 서있는 등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법 남자다운 모습에 온몸이 저려오고 있었다.
철이는 속에서 치미는 더운 기운이 가실 때까지 찬물을 자꾸 뒤집어썼다.
그렇게 서있으니 이 동주가 광목 수건을 가져와서 닦아주었다.
철이는 젖은 옷을 발가벗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누웠다.
이 동주는 모시 홑이불로 벗은 철이 몸을 덮어 주고 삼베 꼬챙이만 입고 옆으로 와서 누웠다.
이 동주는 초저녁부터 달려들었다.
이 동주의 손놀림에 철이 것은 성질을 내며 일어섰다.
이 동주는 철이를 손으로 잡고 주물렀다.
철이는 이런 것은 꿈이고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이놈은 체면이나 예의도 없이 아무 때나 일어나서 아무하고도 그 짓을 하고 마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더구나 나이 많은 이 동주한테 말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동주는 철이 배위에서 온몸을 거칠게 움직이더니 온 집이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질렀다.
“아 악 아, 나 죽어”
철이는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있어도 통제 할 수가 없도록 얄궂은 일이었다.
이 동주는 아침에 어디서 났는지 인삼꿀물과 소고기 곰국을 데워서 내왔다.
철이는 도저히 얼굴을 바로 들 수가 없어서 이 동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 철이 이제 어른 다 됐어, 너는 평생 나를 사랑해줘야 해”
“...........”
그런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안하고 싶었다.
“왜 말이 없어, 내가 싫어”
“그 그게 아니고요.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으음 나하고 몰래 만나기만 하면 돼 걱정 마”
이 동주는 그러면서 웃었다.
“저 한태 이래도 되느냐고요.”
철이는 무서웠다.
“녀석도 겁은 많아서, 너 나하고 같이 했지, 나 혼자 했나! 걱정 마, 다른 사람들이 모르면 그만이야.”
철이가 일어섰다.“이제 갈래 유”
철이는 옷이 덜 말라서 꾸덕꾸덕해진 채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날아 갈 듯이 굉장히 가벼웠다.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철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다.
아니 죽었다가 저녁이 다 되서야 깨어났다.
“아니 너는 깨워도 죽은 것처럼 자더구나, 너는 이모 집을 잠도 안자고 지킨거여?”
“아니요, 몸살이 나서요.”
철이는 밤새도록 이 동주가 온몸을 이리 저리 굴려서 한 숨도 잠을 못 잔 터라 입술도 부르텄다.
“어여 저녁밥이나 먹어라”
권 수인은 눈이 퀑한 철이를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밥상을 내왔다.
그 다음부터는 이 동주가 동네에서 나타나면 철이는 도망가기 바빴다.
며칠 뒤에도 이 동주가 집으로 찾아왔다.
문 앞에서 이 동주와 마주친 철이는 뽕나무밭으로 뛰어 갔다.
“야- 철아 어디가”
이 동주가 불러도 철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도망갔다.
“어서와 ”
권 수인이 이 동주를 반겼다.
“이거 장 서방이 사온 것인데 언니도 맛 좀 봐”
“뭔데?”
“고등어하고 멸치”
“고마워 잘 먹을게”
이 동주는 얼굴이 샐쭉해서 말했다.
“저 아이는 나를 싫어 하나봐”
하고 투덜댔다.
“네가 우리 철이 한태 뭘 잘 못 한 게지, 이모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말여”
“그러게 말이야, 잘 해 줬는데”
이 동주는 자꾸 아쉽고 가슴이 쓰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이 동주는 계속 짜증이 났다.
54회 장 이장의 죽음
장이 장은 마을 일은 남들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로 잘하는 데 집안일과 밤일은 젬병이었다.
“아 고등어하고 멸치만 사오면 단 겨?, 왜 사는지 몰러”
이 동주는 남편을 보자마자 조금도 관심이 없는 태도에 짜증이 났다.
“여자가 몸만 뜨거우면 고생하는 겨”
장 이장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허구한 날 밝히는 여자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장 이장은 마을 장부를 호롱불 아래 펴놓고 귀둥대둥 말했다.
“맨날 마을일만 하고 나 한태 해준 게 뭐 있어, 남자면 남자 구실을 해야 남자지”
이 동주는 계속해서 게정거렸다.
“이년이 미쳤나, 남자 구실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겨, 너는 만날 남자를 밝히기만 하니 도대체 창녀야 뭐야!”
“그래 창녀다, 허구한 날 공만치는 너하고 사는 내 팔자가 한심해서 그런다.”
“그래 밤낮으로 그 짓만 하고 살까?”
“그럼 한 달에 한번이라도 해야지, 이게 무슨 부부 살이야! 혼자 사는 게 났겠다.‘
“혼자 잘 살아라.”
장 이장이 옷을 입고 나섰다.
“그런 다고 나가면 어떻게 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면 다냐고”
이 동주는 장 이장의 바지를 잡고 실랑이를 하다가 힘이 부쳐서 손을 놓았다.
장 이장은 성질이 나서 휘적휘적 걸어서 한밤에 맹탕개울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동주는 오랜만에 집에 들린 남편에게 퍼부은 것을 후회하였지만, 떠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길한 마음이 일었다.
아침에 지붕에서 기왓장이 툭하고 마당에 떨어져서 하루 종일 불안했었다.
“여보 가지 마요, 내가 잘 못 했어요, 여보 돌아와요, 제발”
이 동주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장 이장은 오던 길로 계속 나섰다.
한밤이고 걸음이 엄청 빠른 장 이장을 이 동주가 따라가기 힘들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울다가 혼자 집안으로 들어왔다.
3일 만에 돌아온 이장에게 할 소릴 다 퍼붓고 내쫓았으니, 내가 죽일 년이었다.
“내가 죽일 년이여, 내가 참지 못했어.”
이 동주는 어제 밤에 철이와 나눈 행복감은 싹 가셨다.
“사는 게 별거야?”
배 강복이가 논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한마디 했다.
“여보 무슨 말씀 ......이요?”
권 수인은 남편의 말이 이상스러워서 물었다.
“무슨 말이긴 장 이장이 술이 취해서 낙동강을 건너다, 배에서 떨어졌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도 흔적이 없다는 군.”
“그래도 찾아 봐야지요.”
“찾아야 보겠지, 찾는다고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
“이 동주에게는 연락했지요?”
“지서에서 연락 했드만……. 젊은 남자가 안됐어. 어제 밤에 부부싸움을 하다 나갔다고 하데”
“아이고 이걸 어째요, 우리 장실 이를 어째요, 흐 흐 흑”
“어쩌긴 어쩌, 답답한 일이지”
“우리 동상 이제 우뚝 혀, 우리 동상”
“알아서 하겠지, 하늘이 하는 일 우린들 …….”
“아이고 이 양반아,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우린들 어쩌거나 이 말이여”
배 강복은 체념하듯이 말했다.
“가봐야지 아니?”
“관둬, 찾으면 연락 오겠지, 젊은 사람은 젊은 대로 산다구”
“이런 나쁜 영감아! 뭐가 젊은 대로 사는 거야”
“내가 오직 하면 그 말 할까?”
“아이고?”
“언니 찾았데요.”
분이 엄마가 놀란 눈으로 쫓아왔다.
“뭐를 어디서?”
55회 상여
“장 이장 시체를요.”
“아니 그럼 돌아가셨다는 거여? 이걸 어쩌나”
“어디서 찾았데유”배 강복이가 말했다.
“낙동강 저 아래 까정 떠내려가서 솟은 바위에 걸려 있는 것을 어부들이 끌어내서 병원으로 옮겼대유.”
“그려 그럼, 어느 병원?”
“관기에 있는 병원 영안실에 시체를 안치했다가 마을로 운반해 오는 모양이우”
“객사한 사람을 집으로 끌고 온단 말여?”
“나도 몰러유, 암통 이 동주가 나서서 하는 것이니께유”
“그려 그럼 같이 가보세”
“가보기는 귀신 옮아, 여자들은 그냥 집에 가만있는 것이 좋은 겨”
“당신도 참 숙맥 같이....”
권 수인과 분이 네는 나란히 삽짝을 나섰다.
송 사리가 모는 M602 트럭이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 차에 실은 거 아니여”
권 수인이 깨금발을 하고 고개를 한껏 쳐들고 담 넘어 보며 말했다.
“송 사리가 싣고 오는구먼. 저 봐! 송 사리가 자기 집도 지나쳐 가네”
분이 네도 권 수인의 팔을 쥐고 깨금발을 했다.
“아야 살살 잡아”
“언니 내도 모르게 잡았네, 호 호 호”
“아따, 이 마당에 웃음이 나와 여자들은 참”옆에선 배 강복은 입바른 찬 소리로 한마디 하면서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송 사리의 차가 맹탕개울을 지나 이 동주 집 앞을 한 바퀴 돌고 한 점수네
배나무 밭 위에 있는 상엿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가 멈췄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상여에서 관을 꺼내고, 홀로 된 이 동주는 흰 수건을 손에 들고 연신 울었다.
“하이고 영감, 왜 죽어! 나도 데리고 가”
“아저씨”
“아제요”
“낙동강에서 사공 일을 하던 사람이 그 강물에도 빠져서 이겨내지 못하고 가면 어떻게 해”
마을 노인들도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네 아낙들이 모여 들며 통곡을 했다.
외부에서 객사한 사람은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엿집에 안치했다.
날씨가 더운 여름철이라 시원한 상엿집이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장 이장의 장례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보은에서 읍장이 오고, 경찰서장과 우체국장도 왔다.
쥐똥나무 마을이 일시에 귀빈들의 얼굴 마당이 되니 시끌시끌 했다.
여기저기서 귀빈들과 악수를 하자고 쥐똥마을 사람들과 이웃 마을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장의 죽음은 이 마을에는 귀빈들의 깜짝 방문 잔치 성격도 있었다.
귀빈들은 악수하고 조의금 봉투를 이 동주에게 쥐어주고는, 타고 온 자동차로 마을에 먼지를 펑펑 날리면서 오자마자 돌아갔다.
그 먼지 속에 장 이장의 마을 공로가 날라 가고, 이 동주와 마을 사람들만 남았다.
마을에 남은 이웃들은 끈질긴 인연들이라 어른 아이들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모여들었다.
타성까지 수 십 가구 남짓한 동네는 조용하게 장례를 진행했다.
무너매 어미와 이웃 절 스님들이 목탁을 치고 요령도 흔들었다.
스님들의 축원이 끝나자 옹기를 깨어 액을 막고, 소금과 콩을 뿌려 마을과 집안에 흐르는 액을 막았다.
액을 막고 난 다음에는 발인제를 했다.
마을사람들이 상여를 매고 금화산으로 향했다.
상여는 키 큰 철이가 앞에서 메고, 뒤에는 돌이와 마을 어른들이 어깨에 상여를 멨다.
장지로 가는 동안 마을 안뜰에 있는 장이장의 집에 들러서 철이와 돌이가 멘 상여가 이방 저 방을 끼웃거리고 다시 마당을 돌아 나왔다.
이 동주는 철이의 팔을 잡고 울부짖었다.
“왜 이리 일찍 가세요, 잘하려고 했는데, 나를 버리고 가시다니 나를 데려가요, 내가 죽일 년이지, 영감에게 그렇게 따지고 들다니, 내가 죽일 년이야, 아이고 나 살기 싫어요.”
통곡하는 이 동주를 바라보는 철이도 눈물이 났다.
“상여를 잡고 있는 사람 팔은 놔주어야지...우 음 음”
56회 팔장
권 수인이 이 동주가 잡고 있는 철이 팔을 놔주라고 하고 떼어냈다.
복이 엄마와 분이엄마도 넘어지려는 이 동주의 팔짱을 끼고 상여를 따라 나갔다.
한여름 더위에 상여가 금화선 낮은 땅에 이미 묏자리를 바 둔 곳에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상여에서 관을 내리고 하관을 했다.
상여꾼들이 흙을 덮고 달구질을 하며 ‘어이 어이 어허어’ 소리를 냈다.
그간 이 동주는 실신 했다, 일어났다, 하고 일어나서 울다가 산소 봉 위에 드러눕기도 했다.
“내가 죽일 년이지! 여보 미안해요, 이놈의 소갈머리 때문에 아이고 내가 못살아”
이 동주는 이 말만 녹음기처럼 틀어대고 있었다.
목이 탄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얼큰한 모습으로 이 동주를 달래며 산에서 내려왔다.
이 동주는 이장을 선산에 묻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쓸쓸해졌다.
그간 부부가 피를 튀기며 다투며 서로 괴롭던 집안에 찬바람이 일어도 하염없는 쥐똥나무 향기는 코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동주는 49제 동안을 잘도 참고 지냈다.
이 동주는 영감의 덕을 입고 앞 논과 밭이 큰 재산으로 남았다.
이 동주는 혼자 살기에는 많은 재산이었다.
배 강복이와 한 점수가 미루나무 아래 평상에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젊은 여자가 재산이 있으니 성한 남자들이 많이도 달려들겠구먼.”
배 강복이가 말했다.
“그러게 말여, 재산 많은 여자와 살면 남자야 팔자가 피 것지”
부러운 듯한 점수가 받아 쳤다.
“과부 팔자는 개 팔자라 주인을 잘 만나야 뒤야, 이장이 고자였잖아, 몰러?”
“그려? 난 모르는 일이여,”
“한심 하군, 하여튼 과부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 인 게로, 서로 잘 만나야 것제, 하 하 하”
배 강복이가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앞쪽으로 권 수인과 분이 엄마가 수심이 가득한 이 동주의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들 하셔유”
“그려 어디가?”
“이 동주가 병이 나서 병원 가는 길 이구면요.”
“언능 다녀오쇼”
“야, 일 끝나면 빨리 집으로 오슈”
“땀 좀 식히고, 남은 일 정리하고 싸게 갈겨”
배 강복은 측은한 눈으로 이 동주를 바라 봤다.
이 동주는 남자들이 수근수근 하는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보은에 있는 병원은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내과 의사가 있었다.
시골의 늙은 의사는 머리를 갸우뚱 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셨나요?”
“배가 끊어지는 듯이 아파요. 밤에는 더 심하고요.”
권 수인은 이 동주가 해준 말을 전했다.
“아니, 아픈 사람이 누구여, 여기여 저기여”
의사는 이 동주와 권 수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저요.”
이 동주가 하릴없이 신경질을 냈다.
“허어, 성질하고는 이병으로 잘 죽지는 않아요, 남편은 있슈”
“남편이 죽었어요, 달포 전에”
권 수인이 말했다.
“내가 지금 이 분 한태 묻고 있는데, 답을 옆에 있는 저 분이 하시니 도대체 누구를 처방 해드릴까요?”
“언니는 좀 가만있어, 나 아직 안 죽었거든”
“그려 언능 말 혀”
“지가 무슨 병에 걸렸나 몰라요. 몸이 나른하고, 식은땀이 나고, 머리도 좀 아프고 배도 아프고, 몸이 말이 아니여유”
“남자 생각이 많이 나요?”
“남편이 얼마 전에 죽었다니께요,”
“의심이 가는 병은 아마도 대식(對食)병이 아닌가? 하네요, 야튼 여기 침대에 누우세요.”
한의사는 이 동주의 배를 여기 저기 눌러 보고 진단했다.
57회 대식병
“대식이가 왔네”
의사가 진단했다.
“누가 온다고요? 대식이라는 사람을 저는 몰라요.”
“대식이는 사람이 아니요, 병명이지! 암통 대식이여! 대식(對食)병이란 임금이 사는 궁궐의 궁녀들 사이에 사랑의 행위지. 당시에는 동성애를 ‘대식병’이라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었기에 마주보며 밥이나 먹는 관계라는 뜻이 있어요.”
“그럼 제가 지금 진짜 마주보는 대식병이란 말이유?”
“아마도 이병인데,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야, 첫째 결혼을 하든지, 두 번째 애인을 만들든지 하는 방법이야”
“제가 알아서 할게요, 원 싱거운 의사를 다보겠네”
“저런 진단을 받으려 온 거야, 시비를 걸로 온 거야, 아무리 그래도 병이
심해.”
“그럼 약이라도 주세요. 밤마다 힘들다고 하니께요.”
권 수인이 나섰다.
“알았오, 이 약은 옆에 분에게 주는 게 아니라 환자에게 주는 거요.”
의사는 가루약을 처방해주었다.
이 동주는 시큰둥하게 약을 받았다.
남편 죽고 홀로된 이 동주는 수시로 온몸에서 열이 났다 추웠다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고 조금 안정이 되기는 해도 울화는 넘치고 있었다.
“대식이가 왔다, 대식이가 왔다 네”
병원에서 나온 이 동주는 까짓것 서방질이라도 하면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칠득이가 먼저 가고 있었다.
“대식이가 왔다 대식이가 왔어요.”
칠득이가 소리치면서 느티나무 아래를 돌아 다녔다.
“저놈이 또 뭐라는 거여, 대식이라니?”
을동 노인이 혀를 찼다.
“잘 모르는구먼 대식이란 말여”
갑동 노인이 아는 체 하면서 말했다.
“예전에 문종 임금이 세자 시절에 두 번째 세자빈이었던 봉씨도 대식을 했었다고 했었어, 미모가 빼어난 봉씨 였으나, 문종의 관심은 새로 맞아들인 후궁들에게 있었기에 독수공방(獨守空房)으로 밤이 외로웠던 봉씨가 금단의 사랑을 택했다네. 봉씨와 궁녀 소쌍의 동성애는 드디어 들통이 났고, 세종 임금은 조사를 벌여 사실을 확인하고는 폐서인으로 만들어 내쫒고 말았다는 말도 있다고 하데, 근데 저놈이 누굴 두고 하는 말이여”
“들으면 몰라? 동네 과부 하나 생겼잖아, 이 동주 말여,”
을동 노인도 맞장구 쳤다.
“글세, 칠득이 놈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지껄이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니께”
갑동 노인은 궁금했다.
이 동주는 집에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에 젖었다
참! 하루 밤을 같이한 철이가 있지 않은가! 둘이 도망가서 살면 될 일이기도 했다.
이 동주는 야무지게 나이 어린 철이의 인생을 망치는 생각만 했다.
그렇지만 그런 나쁜 생각만이라도 이 동주는 온몸의 병이 깨끗이 낫는 듯 했다.
“철아 어디 있니, 나 지금 배가 많이 고파”
빈방에서 소리쳤다.
건전한 행복을 찾아 나서기보다 비참해도 그 자리에 머무는 소심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
한편, 순이는 고시 공부 하는 건실하고 학구파인 석이 오빠가 희망이 엿보여서 좋았다.
마을에서 석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석이는 아무것도 건질 것 없는 깡촌에서 해 같은 존재였다.
옛날 같으면 과거를 준비해서 과거에 급제하므로 마을의 명예를 높여주고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연달리어 아쉬운 부탁을 해도 다 들어 줄 것 같은 석이었다.
순이는 자기가 하지 못하는 공부를 석이 오빠가 잘하니, 자기 인생을 대신해서 성공시켜줄 햇빛 같은 존재였고, 생명의 동아줄 같았다.
한편으로 평소 같이 다니는 친구 돌이야, 착한 농부로 마을의 농사를 이어갈 사람이라서 마음은 편하지만, 석이는 까다로운 것이 흠이었다.
석이가 하는 일에 누구라도 방해가 되면, 성질을 마구 내고 집어 던지기도 하니, 주변에 사람들은 두려워서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내대신 출세 해줄 석이가 공부를 게을리 하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래서 석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옆에서 조금이라도 돕는 일이란 것이 석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었다.
석이는 3끼니 밥 만 먹으면 밤이나 낮이나 공부에만 몰두했다.
철이는 석이 형의 이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공부하는 체하는 욱이 형도 맘에 안 들었다.
자기는 허구한 날 집안일에다 농사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도, 석이나 욱이 형은 몸에서 쉰내를 풀풀 풍기면서 책 만 들고 에헴! 하고 있으니 불공평했다.
이런 환경이 있기까지 엄마의 독촉도 심했고, 반면에 아버지의 욕망도 드셌다.
아버지는 옛날의 참봉 명문가를 다시 이루고 싶었다.
어쩌다 조상들이 몰락하고 남은 자손들이 힘들게 사는 환경에서 아들 셋 중에 둘이라도 공부를 잘 해서 집안을 일으킨다면 농사일쯤이야 누가 해도 되었다.
배 강복은 공부와 멀어지는 철이를 농사라도 가르쳐 집안을 다독이고, 공부하는 두 아들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철이로서는 불평의 근원이었다.
공부를 못하면 농사라도 지어서 먹고 살리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철이는 몰랐다.
철이 생각은 아들 셋이 있어도 자기를 마치 머슴처럼 뼈 빠지게 일시키고, 욕만 얻어먹으니 신경질이 나서 언제고 형들에게 따지고 들고 말일이었다.
58회 토굴생활
그러나 철이의 마음은 알지만, 집안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석이라고 믿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이나 마을사람들이 석이의 주변에서 조용하게 오가면서 눈여겨보고 있어서 감히 다른 이유나 변명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석이는 마을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석이가 웬일인지 짐을 싸서 마을에서 오리거리에 있는 금화산 폐금광의 토굴로 들어가기로 했다.
석이는 공부하기도 힘들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더 성가셨다.
아니, 내가 나를 이기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잠시도 자기에게 관심을 끊지 못하고 밀어붙였다.
공부는 순식간에 끝내는 운동경기가 아닌데도 말끝마다 부담이 되는 소리들을 했다.
“석이는 말여, 우리들의 희맹이니께 열심이 혀, 글고 성공 하면 나중에 나도 좀 도와줘 아니”
이런 쓸데없는 말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었고,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디 먼데로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땅히 어디 갈 데도 없고 해서 발가벗고 돌아다닐 때 자주 가서 놀았던 토굴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그 토굴은 금광이 있었지만, 폐광이 되어 여우나 너구리가 새끼를 키우기도 했고 토끼들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동학 난이 일어났던 해나 한국전쟁에서는 장정들이 토굴에서 수십 명이 기거하기도 했던 곳이었다.
“어머이 토굴로 갈게요.”
“야가 와 이리여, 그 험한 곳에 왜 간다고 그랴”
“괜찮아 유, 거근 조용해서 좋아 유, 지가 맨날 놀던 곳이 잔아 유”
“그래도 그렇지, 뱀이나 벌레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려”
“걱정 마세 유 엄니, 그런 뱀이나 벌레들은 담배 진으로 물리칠 수 있어 유”
“하이고 참, 귀양 가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몰러”
“기양 나둬, 지가 하고 싶은 디로 하게 말여”
배 강복은 석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다.
“자슥을 뭐로 아는 겨, 아 죽겠다고 나자빠져도 당신은 그냥 두라 할 끼여”
권 수인은 기어이 성질을 냈다.
“참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나 한태 화풀이여 허허”
배 강복은 서운해 하는 아내 권 수인의 마음은 잘 알고 있어서 픽하고 웃어넘겼다.
“아 다들 그만들 하세유, 지일은 지가 알아서 한다구 유”
석이는 부모가 자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 싫었다.
“참 내가 뭐라 그랴, 어여, 이거나 가지고 가”
권 수인은 석이의 툴툴거리는 것이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서 걱정되었다.
권 수인은 언제 준비 했는지 갖은 양념과 반찬이며, 떡이랑 찰밥 덩어리를 석이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코앞에서 있으니께, 걱정들 마세유”
석이는 어머니의 정성에 감격하고 있었다.
“아 갈 티면 언능 가”
“알았시유, 가끔 먹을 것이나 챙겨 주세 유”
“그랴”
빈손으로 나선 아버지 배 강복은 얼른 말대답을 했다.
“겨울이 되면 큰일 인디, 그전에 끝내야 혀”
권 수인은 벌써부터 겨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석이는 지게에 책과 양식을 지고 산으로 휘적휘적 올라갔다.
웬일인지 권 수인은 아들이 자기를 영영 떠나는 환상에 젖었다.
그만큼 아들이 장성한 것이 든든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토굴로 가는 길은 맑은 계곡물이 금화산 자락에서 모아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곳이었다.
길가에는 최근에 파 내린 금광의 폐석들로 쌓여 있었다.
광부들이 먼지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밥과 새우젓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힘들게 지내다가 마을 안으로 먹을 것을 찾아서 오가던 모습도 사라졌다.
금광에서 금이 나오지 않자, 광산은 철수하고 폐장비들이 방치되어 아름답던 오솔길이 어질러지고 다소 정신없는 길이 되었다.
광산에서 여러 해 동안 파헤친 돌과 흙의 잔해들이 입구 주변에 쌓여있고, 그 위를 길고 긴 덩굴 풀들로 뒤덮여 있었다.
석이는 날선 돌멩이 하나를 힘껏 찾다.
돌이 퍼덕퍼덕 살아서 아래로 날아갔다.
“아이고 오빠, 놀랬다.”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에 길섶에서 기다리던 순이가 일어나면서 웃었다.
“너는 어디 갔다가 오는 기여”
“오빠, 뽕잎도 따고 지루해서 꽃도 따려 다니느라고 헤 헤 헤”
“하긴 한참 때 뽕잎만 따기가 지루하고 말고여”
“근데 오빠는 어디 가는 기여”
“나도 이산너머 좋은데 가고 있다.”
“거기가 어딘데”
“외롭고 힘든 곳이다, 하하”
“오빠 무서워”
“어여, 가거라, 어여”
“오빠 잘 가”
“그려”
59회 뱀 나와
순이가 떠나고 석이는 산으로 오르면서 웃었다.
하늘은 맑았고 가슴에 숨긴 목표는 뚜렷했다.
토굴 앞으로 다가가니 어지러운 모습이어서 일단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토굴의 오목한 부분에 헌옷가지를 얼기설기 덮어서 바람이 통하지 않게 문을 하나 해달고 바닥에는 돌을 평평하게 깔았다.
큰 돌을 들어서 책상을 만들었다.
낯에는 햇볕이 드는 토굴 밖 바위 위에서 좌정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비가오거나 눈보라가 치면 토굴 속으로 들어가서 모닥불과 호롱불만 켜면 되겠지!
마침 토굴의 벽에는 기름 종지를 얹을 수 있는 앉은키 높이에 돌출부가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것들은 혼자 오랜 기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공부하는 환경을
꾸미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시장해서 가져온 찰밥과 고추장에 찍은 생마늘로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대낮인데도 잠이 쏟아졌다.
토굴에 대나무로 깔판을 하고 짚으로 이은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일은 자라면서 늘 하던 경험이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잠을 자는 데 코끝에서 쉭-쉭- 소리가 났다.
가까이로 눈을 뜨니 코앞에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새끼 뱀이 마치 콧구멍 속으로 들어 갈 것처럼 고개를 앞으로 뒤로 움직이기도 했다.
석이는 공부도 못해보고 여기서 뱀에게 물려 즉사하는가 하면서 순간 정신이 뻔쩍 들었다.
석이는 뱀을 향해 마주 입을 벌렸다.
석이의 입에서 마늘 구린내가 팍 풍겨 났다.
뱀은 재채기를 하면서 침을 튀기고는 얼른 뒤로 물러서더니 실실 고개를 돌려 도망갔다.
하마터면 뱀에게 목이라도 물려서 석이가 골로 갈 뻔 한 순간이었다.
마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석이는 얼른 담배 잎을 뿌리고, 생마늘을 까서 여기 저기 던져 놓았다.
방충과 방제는 이제 끝났다.
그리고는 산신령에게 신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산신령에게 기도했다.
“산신령님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거룩한 산에 못난 제가 공부를 하고자 자리를 정했으니, 혼내지 마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제가 지금 목표로 삼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검사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동안 건강을 지켜주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고시에 통과 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제가 공부하는 데 방해 되는 일이 없도록 주변을 늘 정리 해주시옵소서.
산신령님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석이의 마음이 좀 편해졌다.
석이가 아침에 눈을 뜨니 순이가 토굴 문 앞에 서있었다.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 입은 모습이 꼭 들 여우처럼 보였다.
“너 여기서 뭐햐”
“오빠 주려고 주먹밥 해왔지”
“왜 내가 언제 너보고 주먹밥을 해오라고 했어?”
“좀 그러지마!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지!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엄마 몰래 아버지가 가져온 멸치를 꿀 간장에 볶아서 김 부숴 넣고 이렇게 해왔지~”
순이는 석이가 좋아 할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났다.
“시키지도 않는 일하다가 어른들한테 혼난다. 가져왔으니 맛이나 볼게”
순이는 좀 밀려 앉아서 석이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봤다.
가까이 가 있으면 언제고 석이 오빠가 쫓아낼지 몰라서 마음에도 없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맛있지? 나 난생 처음 오빠 줄려고 싸 본겨”
“이 놈의 지지바! 할 일이 따로 있지, 다음에는 이러면 안 된다.”
“내가 오빠를 진심으로 좋아 하니께, 이러지 뭐”
순이는 석이와 돌 위에 마주보고 앉아서 석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면서 소원풀이 하는 샘치고 있었다.
“오빠 물도 먹어야지, 체하겠다.”
“관두고 이제 내려가라, 누가 오는 것을 내가 좋아 할 거 같아?”
“공부 하니께?”
“잘 아네, 나를 그냥 놔두는 것이 나를 돕는 일이여, 얼른 내려가! 누가 올지도 모르잖아 내가 공부하려 온 건지 너하고 놀려고 온 건지 헷갈려 할 거여, 내려가라. 아니”
“알았어. 오빠 다 먹는 것 보고 가는 것은 괜찮겠지”
“이런 ……. 허 허”
순이는 석이가 밥을 먹는 동안 토굴을 청소하고 빨래 꺼리를 집에 내고 있었다.
“야, 너 또 뭐하는 겨”
“보면 몰라, 청소하고 빨래하려고 주어 담는 것”
“이런 말썽쟁이 지지바, 너 나하고 살림 하냐? 남들이 보면 신방 차린 줄 알겠다. 빨랑 이리 줘”
“잠깐만 놔 봐”
순이는 빨래꺼리를 움켜쥐고 집으로 들고 갈 요랑으로 손에서 놓치지를 않았다.
“놔”
“안 놔”
둘이 맞붙어서 실랑이를 하는 순간 철이가 토굴 속으로 들어왔다.
“형! 뭐하는 겨? 순이를 성폭행하겠다는 겨 뭐여, 공부 한다고 하더니 잘한다. 잘해, 아예 순이 하고 살림을 차렸구나.”
“넌 뭐여?”
석이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철이를 보고 놀랐다.
60회 백중놀이
여름날 중에도 백중날의 더위는 살을 푹푹 삶은 날씨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서 무더위에는 농사를 잠시 쉬라고 백중놀이를 하는 전통이 있다.
마을 한가운데 미루나무 옆에 마을 행사를 마련하느라 마을 사람들이 분주했다.
갑, 을, 병, 정 노인들이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를 차려입거나, 홑 무명옷을 입고 미루나무 아래에서 천신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말여”
“언제?”
“을동이 너 장가가든 해 말여”
갑동 노인이 말했다.
“그래서 ....”
“네가 나 한티 씨름에서 졌잖여”
“아니 야가! 시방 노망든 기여?”
“내가 이겨서 명월 네가 시집을 왔지! 졌어봐, 오나?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말어! 병동아 안 그려”
“그날 둘 다 서로 이겼다고 했제, 참 시끄러웠어”
“우째, 내가 이겼지”
을동 노인이 화가 나서 일어났다.
“앉어, 노인들이 주책이란 소리 들어, 뭐시여, 내가 확실히 기억 하는데, 거 뭐시여, 을동이가 갑동이를 넘겨가려는데 명월 네가 저기 저 쯤 있으니게, 한 눈 파는 사이에 갑동이가 누우면서 안고 돌았잔여, 비긴 거여”
병동 노인이 차근차근 말했다.
“진짜 노망은 저 녀석이네, 내가 누워가면서 몸을 돌리니 을동이가 파닥하고 흙바닥에 먼저 엉덩이를 댔다구, 그 걸 기억 못 혀? 40년 밖에 안 지났는데 ”
갑동 노인은 참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면 어쩔겨, 시방 나하고 다시 붙겠다는 거여 뭐여”
을동 노인도 일어섰다.
“좋아, 한판 붙자”
갑동 노인과 을동 노인이 허리춤을 마주 부여잡고 일어섰다.
“할아버지들 씨름 하세요? 호 호 호 ”
분이 엄마가 부침개 바구니를 이고 오면서 물었다.
“아 아 아니여, 씨름은 이렇게 하는 거란 말이지, 이 손 놔, 허 허 허 ”갑동 노인과 을동 노인은 손을 탁 탁 털며, 어색한 표정을 하고 웃으면서 평상에 돌아가 앉았다.
“호 호 호, 조금 있다가들 오세요.”
“아암”
우 민자는 노인들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도록 긴장하며 씨름 자세에서 손을 터는 것을 보고 웃으며 지나갔다.
“분이 네는 여전히 이쁘구만, ”
“소담한 얼굴이더니 인물이 여전하구먼”
우 민자가 처음 방물장수 노파하고 마을에 들어설 때 모습을 상기했다.
“엉덩이도 토실 토실 하고 말여”
“병동이 너는 꼭 그런 말을 한단 말여, 우리 며느리여”
을동 노인이 화가 났다.
“여그 며느리나 딸 아닌 사람이 있던 가?”
갑동 노인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백중놀이가 시작되었다.
마을 앞 한마당에 커다란 상차림 위에 첫 출산한 과일, 통돼지가 참나무 가지에 끼워져서 불이 타는 장작 위에서 돌려가면서 굽히고 있었다.
시루떡이 함지에 담겨 평상에 올려 있었다.
돼지기름을 바른 가마솥뚜껑에는 햇배추 전이 고소한 냄새를 피우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음식들을 잔뜩 차려진 마당에서 천신(薦新) 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이네, 복이네, 분이 네들은 그동안 집에서 기르던 누에고치를 큰 소쿠리에 담아서 올렸다.
맹탕개울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은 달걀, 오리알, 거위알도 내왔다.
예전부터 백중날은 양반들이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하루 만큼은 즐겁게 놀도록 했다.
쥐똥나무 마을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마을 사람들끼리 하루를 즐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칠득이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 옷과 백중 돈을 탔다.
칠득이는 마을 머슴이나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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