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에게 선승이라고 칭하고 있고 율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초의를 선승이고 율사라고 하는데 불교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에서 승려들에게 수계를 설할 수 있는 율사가 존재하는가를 바르게 고찰해야 한다,
조선후기에 승려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계단이 상실되었는데 초의가 출가하여 승려가 된 시기에 승단은 계단이 존재 했는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초의는 1786년에 탄생하고 15세에 출가를 하였다고 하는데 전라도 남평 운흥사에 출가를 하여 금담에게 선을 닦고 윤무에게 법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정약용과 김정희 와 대화를 하였다는 것은 초의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초의는 지리산 칠불에서의 서상 수계를 전승했다고 하는데 서상 수계가 전통성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오늘날에 금강계단의 태동은 순조 이후에 불교계의 전승이다,
해동계맥은 조선 순조 26년(1826) 병술(丙戌)에 대은낭오(大隱朗悟) 선사가 지리산 칠불사에서 『범망경』에 의하여 서상수계(瑞祥受戒)한 계맥이다. 『범망경』에 의하면 천리 안에 계를 줄 스승이 없으면 부처님께 기도하여 서상을 받으면 계체가 성립되어 부처님께 계를 받은 것이 된다고 했다.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서 주석하던 대은선사가 서상계(瑞祥戒)를 받기 위하여 스승인 금담(錦潭)스님과 함께 칠불사로 와서 『범망경』에 의지하여 용맹 기도를 하는데, 대웅전에 모셔놓은 부처님 미간 백호로부터 한 줄기 상서러운 광명이 나와 대은스님의 정수리에 비추었다. 이렇게 해서 서상계를 받고, 스승인 금담스님은 제자인 대은스님으로부터 그 서상계를 전해 받았다. 그 계맥은 대은낭오(大隱朗悟), 금담보명(金潭普明), 초의의순(草衣意恂), 범해각안(梵海覺岸), 선곡율사(禪谷律師), 용성진종(龍城震鐘) 등으로 전해졌다 7불사이야기
순조시기에도 승려들에게 수계를 주는 금강계단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로 볼 수 있는데 칠불에서 서성 수계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은 수계의 정통성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