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버스정류장(차부삼거리)에 설치된
서해랑길 64-1코스(지선 1코스)와 지선2코스 안내도 입니다
부석버스정류장에서 ㅡ 도비산 부석사 ㅡ 동사 ㅡ 도비산 전망대 ㅡ 동산리 송림사 공용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서해랑길 64-2코스(지선 2코스) 일부 구간을 지선1코스에 이어 연속으로 진행 합니다
지선2코스 출발점인 부석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도비산 부석사까지 2.4km를 진행 합니다.
서산시 부석면의 지역 특산물은 육쪽마늘과 생강인가봐요
지선2코스를 답사하면서 부석사, 해미순교성지, 해미읍성을 탐방하고 특별 이벤트로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을 견문한것이 뜻깊었습니다
세븐-일레븐에서 1,600원하는 750ml 막걸리 2병을 사서 한 병으론 지선 1코스 11.9km를
걸어오면서 칼칼한 목을 축이고, 한 병은 도비산 전망대에서 마실 요량으로 배낭속에 꼭꼭숨겨둔다
부석버스정류장에서 부석사까지 2.4km라 이정표는 친절히 안내하고~
배롱나무가 도열한 지선2코스를 걷습니다
햐~
부석사와 일주문이 조망되는군요
취평2리회관 앞을 지납니다
부석사 일주문 입니다. 저곳 일주문에서 직선거리 5.4km 위치한 검은여를 앵글에 담을 수 있었었습니다.
검은여란~?
일주문에서 만나요
이곳에서 임도 따라 차량으로 동사까지 3.8km를 갈 수 있습니다.
해돋이전망대가 도비산전망대와 동일한 위치 입니다.
거리는 2.5km이군요
아하~
좌측으로 진행하면 수도사가 있군요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길 한가운데 서 있는
정이품송(현재의 장관) 소나무와 같은 품종의 장자목 소나무인가봅니다
경춘선 사릉역에서 2km거리에 사릉이 있습니다. 사릉, 사릉(思생각할 사, 陵큰언덕 릉)
사릉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릉이죠
정순왕후 릉 바로곁에~
사능 (思생각할 사, 陵큰언덕 릉) 이란~
전통수목 양묘장이 있습니다
사릉(思陵)에서 관리하고 있는 묘목장에서는 이렇게
매년 묘목을 생산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태종대왕 도비산 강무 기념비
조선조 제3대 태종대왕이 셋째아들인 충년대군(후일 제4대 세종대왕)을 대동하고 1416년 2월 16일에
7,000여명의 군사와 함께 이곳 도비산을 직접 방문하여 사냥몰이를 하였던 곳이다.
이 사냥몰이는 단순한 사냥몰이가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의 일종으로 강무라고 부른다.
서산지역에서 이곳 도비산을 택한 이유로는 고려 말부터 조선초까 서산시 부석면 창리(구, 왜현리)
지방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음으로 도비산에 올라 이를 살피기 위한 일 이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때 해미읍성의 축조를 구상하여 다음해인 1417년부터 1421년까지 해미읍성을 축조하게 되고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해미읍성으로 옮기는 등 충청서해안 방어를 위한 큰 역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 고장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방의 역할을 담당 하였던 지역으로 대왕께서 친히 궁중을 떠나
장기간 지방에 머물며 지방을 샅샅이 돌아본 일은 매우 드믄 일이라 할 수 있다.
※ 태종대왕(1367 ~ 1422년) : 조선 제3대왕(1400 ~1418년)이며 이름은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임.
※ 세종대왕(1397 ~ 1450년) : 조선 제4대왕(1418 ~ 1450년)이며 이름은 이도,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임.
부석사 일주문에서 직선거리 5.4km 떨어진 검은여를 앵글에 옮겨봅니다
서산 검은여는 서산에 있는 검은돌의 군락지로써, 옛날에는 한 작은 돌섬이었다가 지금은 서산B지구방조제
매립으로 육지가 된 곳이다. 이곳의 검은 돌들은 모양이 아주 다양하고 조개껍데기 같은 해양생물이
붙어있는 것으로 한떼 이곳이 서해 바다였음을 엿보게 해준다.
검은여는 부석(浮石)면 갈마리에 있는 검은색 바위로, 신라시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그를 연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설화가 깃든 곳이다. 천수만이 매립되기 전 항상 같은 모양으로 바다 위에 떠 있어
부석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부석면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검은여는 1980년대 초 천수만 간척지 공사로 인해 훼손될 처지에 놓였으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부석면 검은여 보존위원회를 구성해 지켜냈으며 그 이후 해마다.
이곳에서 면민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매년 4월 3일 ‘검은여제’가 열리기도 한다.
검은여의 유래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문무왕 11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귀국할 때 대사를 사모하던
당나라 젊은 여인 선묘낭자가 결혼을 애원하였으나 거절하고 배에 오르자
선묘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는 선묘낭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문무왕 17년에 당나라와 가장 가까운
현재 부석면 도비산에 절을 창건하기로 하였으나 마을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절 짓는 일이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일고 검은 큰 돌이 공중에 둥둥 떠돌며
'너희들이 절 짓는 일을 반대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는 호통을 치자 그 후 방해하지 아니하여
부석사를 창건하게 되었고 공중에 떠 있던 큰 돌이 부석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 곳
적돌만에 떨어져 검은여가 되었다고 한다.
이 검은여는 적돌만에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의 눈에 항상 떠 있는 돌 같이 보여서
부석 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서기 1914년 3월 16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화변면과 마산면을
통합할 때 이곳 부석의 이름을 따서 부석면 이라 개칭을 하였다.
검은여 표지석
부석사 일주문에서 검은여까지 직선거리 5.4km 입니다.
일주문에서 조망되는 풍경
부석사 일주문에서 지선1코스(부석버스정류장) 종점이자, 지선2코스(차부삼거리) 시점이 조망된다
구름이 머물다 간다는 운거루가 인상적이다
도비다원
다원에서 대추차 한 잔 사들고~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운거루 앉아~
불경소리 들려오는 템플스테이 숙소에서 깊은 명상의 세계로 스며든다.
의상대사와 못이룬 짝사랑, 용이된 선묘낭자의 사랑의 이야기 줄거리~
잠시 읽어 볼까요?
"못 이룬 사랑 용이 되어"
신라 제28대 임금 진덕여왕 4년 서기 650년에 <복흥사>라는 절에 의상대사라는 승려가 있었다. 의상대사는
큰 뜻을 품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사에서 지엄법사라는 노(老)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불도)를 하였다.
나이 많아 시작한 공부지만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였는지 의상대사는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이때 지장사 아랫마을에는 젊고 예쁜 "선묘 낭자"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남자는 신라에서 온 의상대사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상대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문무왕 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상대사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낭자는 떠나기 전날, 의상대사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였고
이에 의상대사는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불가함을 설명하자 물러갔다.
다음날, 의상대사가 배를 타려고 하자 그 낭자가 어느새 승복차림에 "결혼은 못하더라도 스님 곁에서 나도
불도를 배우겠다고 말하자 의상대사는 다시 점잖게 꾸짖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의상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것을 안 낭자는 죽을 것을 결심하고 깊은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말았다
의상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를 생각하며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데, 죽은 낭자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탄
배를 따라 신라까지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의상대사가 가는 곳마다 숨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의상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여인을 생각하고 그 여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절 터를 찾았다. "당나라의 그 낭자를 위해 아담한 절을 창건하여 그의 넋을 위로하리라" 의상대사는
이곳저곳 절터를 물색하다가 서산군 부석면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산수가 수려하고 앞에 바다가
탁 트였으니 그 낭자가 좋아할 것 같아!" 의상대사는 좋은 곳에 절을 짓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그때가 문무왕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그곳 동네 사람들은 도비산에다 절을 짓는 것을 반대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 데도 의상대사는
절 짓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사람들은 거의 다 지어가는 절을 쇠스랑을 들고 쫓아와서 부수어 버리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흥분하여 절에 불을 지르려고 할 때 갑자기 큰 바위가 공중에서 둥둥 떠오더니 바위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 듣거라, 너희들이 절 짓는 것을 계속 방해하면 이 바윗돌로 너희들 머리를 부수겠다
지금 당장 물러가거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고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혼비백산 쫓겨가면서도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알도리가 없었다.
의상대사는 생각하기를 저 바위는 당나라 낭자가 용으로 변하여 그 용이 다시 바위로 변하여 나를 도와주는
거야!" 의상대사는 새삼, 죽은 낭자가 가엾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 있다 해서 "부석"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부석약수
지금부턴 부석사 경계선을 벗어나 동사까지 1.6km 도비산 중턱 사면길을 걷습니다
부석사에서 도비산 사면길을 답사하며 동사를 거처 도비산전망대(해돋이전망대)를 지나
서산시 인지면 동산리 송림사 공용주차장까지 3.6km를 걷습니다
도비산 정상을 400m 남겨둔 쉼터~
도비산 정상을 200m 남겨둔 위치에서 지선2코스는 동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걷게되는군요
도비산 정상 200m라 금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인데
도비산 정상을 쉽게 포기를 합니다
부석사에서 동사까지 거리 표시가 다르게 표기된곳이 3곳이나 된답니다
별것 아닌것같아보이자만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1.600m, 1.350m, 1.300m
부석사에서 1.1km 이동해온 위치 입니다. 이곳에서 도비산 정상까지 600m 거리 입니다.
부석사에서 동사로 이어지는 지선2코스를 버리고 등산로 따라 하산하다가 임도에 이르면
그 임도 따라 해돋이전망대(도비산전망대)까지 거리가 1.2km라 합니다. 그러면 동사까지 거리는 200m라 합니다.
부석사에서 1.1km에 이른 지점에서 도비산정상까지 600m라 합니다.
부석사에서 1.1km 이동한 위치에서 동사(동암)까지 거리는 200m라 합니다
부석사에서 1.1km 이동해온 위치에 이정표가 세워진 위치를 뒤돌아 봤습니다.
부석사에서 500m에 이르는 지점까지는 숨가쁘게 오르막이였지막 그 이후로는 높낮이가 없다시피한
평탄한 산책길 같았습니다
걸어왔던길 잠시 뒤돌아 봤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동사에 도착하게 되지요.
지선코스를 걸으면서 난 동사가 꽤 큰 절인줄 알았는데, 규모가 아담하게 작은 암자였습니다
동사 마당엔 수령 500년된 느티나무가 동사의 이력을 알려주는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동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동사 요사채 입니다
서해랑길 64-2코스(지선2코스) 2부로 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