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영축산 통도사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진골 출신인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오대산에서 구법(求法) 중에 꿈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깨달음을 얻고 신라로 돌아가 부처를 모시도록 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이튼날 아침에 어느 노승(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석가모니가 입던 금란 가사 한벌과 바리때 하나, 부처님의 정수리 뼈와 치아사리 등을 받은 자장율사는 643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 율사는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내자, 그 오리는 한 송이의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엄동설한에 칡꽃이 핀 곳이 절터임을 깨닫고 찾아 나선지 며칠 후에, 영축산 밑 큰 못 근처에서 칡꽃 두 송이를 발견했다. 자장율사가 이 못을 메우고 통도사를 세우고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진신사리와 가사를 이곳 금강계단에 봉안하였다. 통도사의 절 이름도 절의 뒷산이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說)하신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으로 통도사라 하였다는 설,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 하였다고 설, 산기슭에 계류를 끼고 펼쳐진 평탄한 지형에 규모가 매우 큰 절집으로 이루어 통도사라 하였다는 등의 여러 설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만큼 통도사의 위상이 다음과 같이 높음을 의미한다. .
양산 통도사
첫째는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 중 제1 적멸보궁으로서의 자부심이다. 5대 적멸보궁은 모두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양산 통도사 외에는 모두 강원도에 소재하고 있다. 평창 오대산 상원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이다. 그중 정암사(옛명 갈래사)를 제외하고는 신라 시대에 자장(慈藏)이 귀국할 때 모셔 온 진신사리를 직접 봉안했다. 다만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하려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래서 불교신도 간에는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순례하는 것을 성스러운 숭배로 여기며, 그중에도 통도사의 적멸보궁이 가장 신봉하는 기도처로 손꼽고 있다. 최근에는 임진왜란 때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달성 용연사와 고성 건봉사, 구미 도리사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하나, 그렇게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로, 통도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하는데, 불보사살(佛寶寺刹)은 진신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法寶寺刹)은 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 승보사찰(僧寶寺刹)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이다. 그 중에도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셨기에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으뜸으로 불보종찰(佛寶宗刹)이라고 한다. 셋째는 '영축총림(靈鷲叢林)'이다. 종전까지 우리나라(조계종)에는 ‘5대 총림’으로 영축총림(양산 통도사), 해인총림(합천 해인사), 조계총림(순천 송광사), 덕숭총림(예산 수덕사), 고불총림(장성 백양사)를 꼽는다. 이는 승려의 참선 수행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전문교육기관인 강원(講院 : 승가대학),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 전문교육기관인 염불원(念佛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규모가 크고 조직과 체계가 잘 정비된 절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팔공총림(팔공산 동화사), 금정총림(금정산 범어사), 쌍계총림(지리산 쌍계사)를 추가로 지정되어 ‘8대 총림’이라 한다.
통도사 총림산문
넷째로, 통도사의 가람(승려가 거쳐하며 불도를 닦는 곳= 절) 배치가 독특하다. 서쪽의 금강계단을 정점에 두고, 동쪽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하로전(下爐殿)’. 불이문을 지나면 대웅전 못미처 세존비각까지의 ‘중로전(中爐殿)’. 대웅전과 금강계단, 응진전이 있는 지역을 ‘상로전(上爐殿)’이라 한다. 이렇게 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 관리하는 스님의 숙소)이 세 곳이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을 합친 복합 사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만큼 크고 역사가 오래된 절을 의미한다. 특히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이 통도사의 핵심지역이고, 중로전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과 용화전, 관음전이 있으며, 하로전에는 극락전과 영산전, 약사전 등이 있다.
다섯째로 통도사는 국내 최대의 성보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국보 제290호 대웅전 및 금강계단과 25점의 보물이 있으며, 성보문화재 4만여 점을 소장한 국내 최대 규모의 성보박물관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도난과 훼손 등 위험요소가 있는 사찰의 전래 문화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 전시하는 한편,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적으로 1987년 문화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찰 박물관아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길옆에 흐르는 맑은 시내는 차고 시원해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가 높다. 영축총림(靈鷲叢林) 대형 현판을 단 총림산문(叢林山門) 앞에는 제법 큰 규모의 석당간(石幢竿 : 절의 행사 때 깃발을 걸어 두는 돌기둥)이 있다. 오른쪽에는 경내 승탑과 탑비를 한곳에 모아놓은 부도원(浮屠院)이 조성되어 있다. 총림산문을 지나 오른쪽으로는 성보박물관과 목재와 석재로 된 사찰 장승이 2기씩 서 있다. 초입부터 볼거리가 많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지나면 비로소 일주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사찰영역으로 하로전이다. 통도사는 일주문도 어느 절집에 비하여 작지 않은 규모이나, 이미 지나온 문들이 워낙 크고 화려해서 오히려 작아 보인다. 보통 2개의 기둥을 한 줄로 세우지만, 이곳은 네 개의 기둥을 세운 세 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에 다포형식이 화려하며 좌우 앞뒤로 또 4개의 활주를 받쳐야 할 만큼 크고 무거운 일주문이다. 일주문 앞 2개의 돌기둥에는 구하(九河) 스님이 쓴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 각 성들끼리 모여 사니 모름직이 화목해야 하고)',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 : 가사 입고 삭발했으니 늘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통도사의 스님들에게 주는 경구(警句)라고 하겠다. 일주문 현판 ‘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일주문 좌우에 걸린 '불지종가(佛之宗家 : 불가의 맏집)' '국지대찰(國之大刹 : 나라의 큰 절)'이라는 주련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이것만 봐도 통도사의 품격과 사세(寺勢)를 가늠할 수 있다.
통도사 일주문
천왕문을 들어서면 하로전(下爐殿)이다. 왼쪽에 2층의 범종루가 있고, 오른쪽에 극락보전이 있다. 그 앞마당의 왼쪽에 만세루, 오른쪽에 영산전, 극락보전 맞은편에는 약사전이 중앙의 3층 석탑을 중심으로 'ㅁ자' 꼴로 모여 있다. 하로전을 독립된 하나의 사찰로 간주했을 때 만세루를 입구로 하여 중앙에 3층 석탑을 세우고 정면에 영산전, 오른쪽에 극락보전, 왼쪽에 영산전을 갖춘 모양새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로전의 중심건물은 영산전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의 발길은 극락보전으로 먼저 향한다. 들어오는 입구에 있기도 하거니와 극락보전의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극락보전 후벽 중앙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 : 불교의 사바세계에서 극락으로 건너갈 때 타고 간다는 상상의 배) 벽화가 그려져 있어 모든 이들이 감탄해 마지않는다. 하로전(下爐殿)의 중심건물은 영산전으로 극락전마저 이곳에서는 부속 불전이다. 만세루와 마주 보며 서 있는 영산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으로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 하로전에는 앞에서도 뜻밖에도 눈길을 끄는 건 천왕문 왼쪽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작은 가람각(伽藍閣)이다. 가람을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사방 1칸짜리 법당이다. 아홉 마리 중 남아있는 한 마리 용신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목수 한 사람이 도끼 하나로 쇠붙이를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는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중로전(中爐殿)이다. 불이문(不二門) 편액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이고, 그 아래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 : 불가의 근원이 되는 사찰) 편액은 명 태조 주원장 친필로 전해지는데 원래는 일주문에 걸었다고 한다.
통도사 불이문
몇 개의 계단을 올라 하로전보다 약간 높은 지형의 일주문을 지나 중로전으로 들어서면 먼저 관음전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 뒤편으로 용화전, 대광명전이 있는데 이 세 불전이 중로전(中爐殿)의 중심건물이다. 관음전은 정면, 측면 모두 3칸의 정사각형 건물로 주심포식 팔작지붕이다. 자비로운 관음보살을 모셔 항상 많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느라 분주한 곳이다. 관음전 앞에는 3m가 넘는 큼직한 석등이 하나 서 있다. 네모난 화창에 팔각 받침과 지붕돌을 얹은 고려 시대 형식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70호이다. 관음전 뒤 용화전 안에는 하얗게 호분칠한 석조미륵불 좌상을 모셨다. 내부 벽체에는 절집에서는 유일하게 서유기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용화전 앞에는 봉발탑(奉鉢塔)이 있다. 이 탑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석물로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존자가 석가여래의 발우(鉢盂 : 공양그릇)와 가사를 가지고 인도의 계축산에서 미륵불을 기다린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용화전 뒤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중로전의 중심건물 대광명전(大光明殿 : 보물 제1827호)이 있다. 통도사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대웅전과 함께 통도사에서 중요한 목조건물로 꼽힌다. 내부의 삼신불 탱화는 보물 제1042호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러 통도사가 모두 타 버렸을 때도 대광명전만이 불에 타지 않았다. 이는 내부 들보에 화재를 예방하는 묵서(墨書)가 쓰여 있어 그랬다는 말이 전해온다.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우리 집에 한 분의 손님이 계시니, 定是海中人(정시해중인) 바로 바닷속에 사는 사람이다. 口呑天漲水(구탄천장수) 입에는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能殺火精神(능살화정신) 능히 불의 정신을 소멸할 수 있네. 이후 통도사에서는 위 문구를 적은 종이로 밀봉한 소금단지 60여 개를 크고 작은 당우(堂宇)마다 처마에 올려놓아 화재를 예방했다고 한다. 매년 양기가 가장 세다는 단오에는 새 소금을 담은 소금단지로 교체하는 용왕재를 올린다. 그 밖에도 불전마다 댓돌 계단 아래 아귀발우(餓鬼鉢盂)가 있다. 아귀밥통이라고도 하며 부처님께 올린 청정수나 공양을 마친 후 물을 버리는 용도로 퇴수대(退水臺) 혹은 청수통(淸水筒)이라고도 한다. ‘아귀는 늘 배고파서 아우성인데 목구멍은 바늘만 해서 물만 마실 뿐 음식을 먹지 못하니 소중한 물을 버리지 않고 아귀에게 준다’는 의미이다. 이는 음식 찌꺼기 하나도 버리지 않겠다는 절약과 검소함을 익히려는 한국불교의 귀한 풍습이기도 하다. 중로전 마당 왼쪽의 원통방과 감로당은 법회 시 대중을 수용하는 대방(大房)으로 공양간이 함께 있는 편의시설로 쓰고 있다. 원통방 처마 밑에는 원통소(圓通所) 편액이 있다.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석파(石坡) 호가 쓰여 있다. 그밖에 원통전 옆 서쪽에는 개산조당(開山祖堂)과 해장보각(海藏寶閣)이 있다. 사대부집에나 있을 솟을대문 형식의 삼문(三門)에 개산조당(開山祖堂) 현판을 달았다. 그 뒤편의 전각이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이다. 개산조당 삼문 옆 금강계단 축대 아래 붙여지은 작은 비각은 세존비각(世尊碑閣)이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불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하였고, 또 다른 하나는 태백산(太白山) 갈반사(現 정암사)에 봉안되었음을 새긴 비석이다. 이렇게 하로전, 중로전의 중요한 전각만 둘러보았어도 웬만한 절집 두 곳 넘게 본 셈이나 정작 통도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상로전(上爐殿)이 남았다. 상로전에는 별도의 문이 없어 정(丁) 자 형태의 특이한 대웅전이 바로 나타나는데 오른쪽 뒤에 있는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 제290호이다. 상로전의 중심 건물 대웅전은 동, 서, 남, 북 네 곳 모두에다 현판을 걸어놓았다. 들어가는 방향인 동쪽에는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등 각기 다른 현판을 걸었다. 적멸보궁(구하 스님 글씨) 외에는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5년(인조 23)에 중건했다. 건물 기단은 통일신라시대 석조기단과 같은 구조이다. 남측 정면과 양측면 지붕이 합각인 특이한 모습에 일부는 철제 기와도 보여 보통 건물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붕 정상에는 찰간대(刹竿臺·큰 절 앞에 세우는 깃대)라고 통칭해 부르는 청동제 보주(寶珠)에 철주(鐵柱)가 솟아있다. 통도사 절터는 원래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을 교화시켜 승천하게 한 뒤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했다.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는 남아서 절을 지키겠다 하여 연못 한 귀퉁이에 살게 하였다. 천왕문 옆 가람각은 용을 위한 전각으로 전해진다.
금강계단
계단(戒壇)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는 상징성이 있어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이 깃든 곳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금강계단에 직접 참배를 금지하였으나 최근에는 지정된 날자와 시간에 안으로 들어가 가까이에서 참배할 수 있다. 음력 초하루부터 초삼일, 음력 보름날 그리고 지장재일인 음력 18일과 관음재일인 음력 24일의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이다. 대웅전의 서쪽으로는 산령각과 삼성각, 응진전이 있다. 비좁은 공간에 작고 예쁜 연못이 하나 있는데 남아서 절집을 지키겠다던 한 마리 용이 살던 구룡지(九龍池)이다. 연못자리에 절이 지어졌다는 창건설화를 증명하듯이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멋스러운 공간이다. 상로전의 나머지 공간에는 응진전과 명부전, 일로향각이 있고 보광전과 선원 구역이 있는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관리 목적의 건물 등이다. 통도사의 자장매는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하여 심은 매화나무로, 자장율사의 호를 따서 ‘자장매’라고 하였다. 특히 이른 봄철의 통도사 자장매는 절의 흥취를 더욱 짙게 해 준다.
통도사 홍매(일명 : 자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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