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통독은 마태복음 21-22장입니다.
21장 1-11절에서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길에는 양탄자 대신 때묻은 겉옷이, 또한 급히 잘라온 나무 가지들이 깔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흚먼지를 일으키며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함께 걸으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초라하게 하나님 성 거룩한 성을 방문하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1-3절). 철저하게 말씀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스가랴 9:9). ‘시온의 딸에게 말하라. 보라 네 왕이 네게로 가신다.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다.’ ‘시온의 왕’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철저하게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2-17절은 예수님의 성전 정결 사건입니다. 성전은 사람들의 기도(13절)와 하나님의 은총(14절)이 만나는 곳이어야 했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마치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강도 있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당시 성전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하던 사람들로써 변화하는 상황에 동화되어 성전 안에서 ‘편리’라는 이름으로 ‘환전과 매매’를 허용했습니다. 당연히 변화하는 상황에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편리’를 허용하되 그렇다고 ‘진리(말씀,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씀에 겸손함으로 늘 깨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18-22절은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해서 이제 그 독특한 위치를 박탈당한다는 예수님의 선언에 대한 상징적 교훈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의미’는 도무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28-32절).
예수님께 지적을 받은 이스라엘의 지도부는 틈만 나면 분노했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23-27절).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의 출처’를 언급하시면서 지혜롭게 역공세를 합니다. 결국 자신의 권위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이야기합니다(33-47절).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 비유(33-47절)에서 자신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비유를 듣는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예수님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미래입니다. 그것은 ‘이제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다른 사람들, 즉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다른 백성에게 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43절). 그런 가운데서 이 비유의 더 중요한 내용은 건축가들 즉 유대인들이 버린 돌 예수는 다른 곳에서 모퉁이 돌이 되고 그 위에 한 새로운 건물(하늘나라의 새로운 백성, 곧 교회)이 지어져갈 것이라는 점입니다(42절). 하나님의 영적, 구속적 축복의 사역이 이제 교회를 통해서 구현된다는 것.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교회가 다시금 힘을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22장 1-14절은 혼인잔치 비유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이란 민족적 한계를 벗어나고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확산될 것을 비유로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제한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임금이 준비한 예복을 누구나 입고 들어와야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예복’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대 지도부는 하여간 틈만 나면 예수님을 끌어 내릴려고 합니다. 세금에 관한 질문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합니다(15-22절). 하지만,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예수님에게는 헛수고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이 참 부럽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 지혜와 지식의 주인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대 지도부가 패를 당하자 최고 행정, 정치, 종교권을 쥐고 있는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한 부분이 동원되서 예수님께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들은 유대 사회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헬라, 로마의 통치세력에 협력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사두개인들(부활을 부정함)입니다. 이들이 부활에 대한 질문으로 예수님께 도전을 했습니다(23-33절).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대망신’(29절,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을 당하며 패했습니다.
소문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질문’으로 고소할 꼬투리를 찾으려고 몰려왔습니다(34-40절).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중첩된 단어 ‘사랑’을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 계명들의 강령으로 하나님의 뜻에 녹아 있는 근본정신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지혜와 권위 있는 대답에 한 마디도 능히 반박하는 자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46절).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겸손으로~
예수님의 지혜로~
예수님의 권위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는 것에는 관대하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일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송하는 소리는 견딜수 없어합니다.(21:12-17)
지금 우리도 일부분이든, 전체적이든 리더가 리더답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이 공공연하게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은혜로 초청받아 모인 곳이 교회이기에(22:10) 늘 부패할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교회제도도,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의 애타는 마음도 교회를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있는 힘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악한 것들을 제압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손이,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들을 쫓아내셨던 그때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를 정결케 하시고, 리더들도 바르게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이 오직 정답인줄로 믿습니다. 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셨던 것이 결국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어요.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다 받는 성숙한 리더가 되길 바라셨어요. 우리 역시 그런 전능한 능력을 원하지만 대부분이 탐욕으로 끝나는 것은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믿음" 때문일 거에요. 신실함... 일평생 이 믿음과 씨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멘입니다. '일평생',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믿음과 씨름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되 택함을 받은자들은 적다'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초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적대한 자들이나 초청에 응하되 예복을 입지 않은 자.
내안에 믿음이 자리잡고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초청에 응하는 예복, 곧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로써~ 계속하여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나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