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6, 2002 | 장만옥, 그녀를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이웃집에 조용히 혼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평범하고 친근한 얼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그녀의 얼굴이 몹시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사춘기 시절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의 동네 누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누이가 없었다하더라도 마치 아득한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그래서 스크린을 떠나 극장 밖으로 나오는 즉시 그녀의 평범하고 친근한 얼굴은 좀처럼 잊기 어려운 얼굴이 되어버린다. 어째서일까. 영화 ‘화양연화’를 봤을 때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평범하고 친근하지만 동시에 어떤 미인이라도 흉내내기 어려운 ‘우아한 기품’이 있었던 것이다.
멜로물에 적합한 신파조의 얼굴, 장만옥
개인적으로 나는 그녀가 멜로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최루성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조 멜로 영화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녀는 기품을 잃을 것 같지 않을 정도로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을날의 동화2’, ‘차이나 박스’, ‘첨밀밀’, ‘화양연화’등 그녀가 등장하여 흥행시킨 멜로물은 감정의 정도를 벗어나거나 수준을 잃지 않는 신파다. ‘로즈’, ‘완령옥’, ‘아비정전’, ‘동사서독’등의 작품에서도 장만옥이 연기한 것은 멜로다. 멜로를 표현하는 얼굴은 지나치게 예쁘거나 아름다워서는 곤란하다. 지나치게 예쁘거나 아름다운 얼굴은 사랑 이외의 것을 얼굴에 담기 때문이다. 야심이라든가 욕망이라든가 꿈 같은 것 말이다. 사랑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 그런 얼굴이야말로 멜로에 적합하다. 장만옥은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우아한 기품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화양연화’(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를 보고 나서 장만옥과 치파오(중국의 청나라 때부터 유래 된 남녀 공용의 전통 복식)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치파오를 만드는 옷가게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냈다. 물론 걸프렌드에게 치파오를 아직까지 사주지 않고 있긴 하지만(걸프렌드는 ‘첨밀밀’을 보다가 극장에서 잠을 자는 성향의 여자다). 나는 ‘동사서독’도 그렇지만, ‘화양연화’의 사랑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듯한 그 멜로가 좋다. 게다가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극중 양조위와 장만옥의 ‘순진성’때문이어서 더 좋다. 순진성 때문이 아니라면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멜로와 순진성이 결합될 때 그것은 한없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장만옥의 얼굴화장과 치파오는 노스탤지어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양조위가 쓰는 무협소설도 ‘동사서독’과 같은 류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음악 중 인상적인 음률이 있었는데, 그것이 일본의 영화감독 스즈키 세이준의 ‘유메지’에 나왔던 주제음악이라는 것을 지난 2월 선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을 보고서 알았다. 애상을 끓는 이 음률이 흐를 때 벚꽃이 후두둑 스크린 위를 찬란하게 뒤덮으며 ‘유메지’는 시작된다. 이 이미지는 물론 ‘화양연화’에 그대로 겹쳐진다.
오로지 사랑을 연기한 한 잎의 여자, 정윤희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장만옥과 비견될만한 우아한 기품을 지닌 배우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배우는 지금은 은퇴하여 활동하지 않는 정윤희다. 이제는 정윤희라는 배우 자체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인물이 되어버렸지만, 7,80년대 정윤희가 연기한 인물은 멜로와 순진성의 결합 그 자체였다. 그녀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땜장이 아내’, ‘꽃순이를 아시나요’, ‘죽음보다 깊은 잠’, ‘사랑하는 사람아’, ‘안개마을’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었던 배우였다. ‘죽음보다 깊은 잠’은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안개마을’은 이문열의 〈익명의 섬〉을 각각 영화화한 문예영화였다. 나는 중학생일 때 소도시의 변두리 극장에서 이 영화들을 몰래 훔쳐봤었다. 고백컨대 내가 움직이는 여자의 나신을 처음 본 것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에서였다. 물론 난 충격을 먹었고, 정윤희는 나에게 각별한(?) 배우가 되어버렸다.
당시 사람들은 정윤희라는 배우에 대해 ‘백치미’ 따위를 운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반발해왔지만, 몇 년 전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비디오로 보게 되었는데 역시 백치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비스듬한 각도에서 보자면 멍해 보이는 그 얼굴이 백치미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장만옥의 멍한 얼굴이 때로 그렇게 보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숙한 여자의 순진성일 뿐 백치미가 아니다. 그녀가 목소리 대역 더빙을 하지 않은 영화를 볼 때, 그 목소리의 스타카토처럼 툭툭 끊기는 독특한 음성에서 역시 우아한 기품이 묻어나고 있다. 특히 ‘안개마을’의 내레이션은 압권이다. 동시대의 장미희나 유지인이 세련된 현대여성의 고독이나 욕망을 표현하는 것에 충실한 캐릭터였다면, 정윤희야 말로 오리지널 멜로드라마 배우였던 것이다. 그녀가 연기한 것은 오로지 사랑이었다.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가 떠오르는 그런 배우이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쌍한 여자. (오규원, 〈한 잎의 여자〉 中에서)
‘목마와 숙녀’,‘가을비 우산 속에’,‘우요일’(그녀가 출연한 작품에는 유독 ‘비’가 들어간 제목이 많다), ‘동반자’ 등 모든 작품이 신파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고상하거나 아름답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실연을 당하고 나서 낯선 남자와 설렁탕을 앞에 놓고 깍두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물면서 미소 짓는 연기를 잘도 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품을 잃지 않는 배우였던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언젠가 TV 단막극에서 송승환과 함께 출연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 단막극의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극중 정윤희의 성녀와 악녀를 오가는 연기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혹시 이 단막극의 제목을 아시는 분은 리플을 달아주세요). 어느 책에서 ‘약한 여자는 꿈꾼다, 그러나 강한 여자는 꿈꾸지 않는다’라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50% 정도는 이 말을 믿는다. 이 문장에서 강한 여자는 꿈꾸지 않고 사랑한다고 덧붙여야 완전할 듯 싶다. 사랑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듯한 조용하고 멍한 그녀들의 표정과 우아한 기품은 분명 약하지 않고 강한 것이다. 질긴 신파조처럼.
첫댓글 송승환과의 단막극은 TV문학관의 '어떤 여름방학'아닌가요? 그때 정윤희씨가 1인2역을 했죠. 그 작품이 너무 좋아서 그해 연말에 시청자가 뽑은 앙코르 TV문학관 10작품에 선정되어 재방영되기도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