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그 슬픈 기억의 재생
이대영
❙빛고을의 노을은 여전히 슬프다. 그러나 곱다. 그 고운 노을 속에 자리한 슬픈 기억들이 자꾸만 우리의 시선을 모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쓰라린 영상은 여전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고, 또 새겨야 할 사건이기에, 우리는 또 민주화의 함성이 울리던 그 광장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동안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많은 소설이 있었다. 윤정모의 「밤길」, 홍희담의 「깃발」, 임철우의 『봄날』, 박혜강의 『꽃잎처럼』,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최 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공선옥의 「씨앗불」, 정찬주의 『광주아리랑』 등이 그것이다.
작가들은 소설을 통해 국가권력의 폭력성과 잔인성,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의지, 인간의 존엄성,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망자의 한을 서사화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항쟁의 아픈 기억을 시린 언어로 담아냈던 한강은 유사한 서사 기제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환한다. 그리하여 '왜 우리가 빛고을의 슬픈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는가'를 서술한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던 열흘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 6장 및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소설은 1장 ‘어린 새’는 동호, 2장 ‘검은 숨’은 죽은 정대, 3장 ‘일곱 개의 뺨’은 은숙, 4장 ‘쇠와 피’는 나, 5장 ‘밤의 눈동자’는 선주, 6장 ‘꽃 핀 쪽으로’는 동호 어머니의 시점에서 각각 내용이 전개된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소설을 쓰게 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소설의 특징은 등장인물의 각각 다른 시점으로 서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의 다양한 모습과 상황을 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특히 제1장에서 ‘너’로 시작하는 인칭대명사는 다소 낯설기까지 하다.
이 소설의 서사는 항쟁 당시 광주시청과 상무대의 정황, 군인들의 진입과 시위자들에 대한 권력의 잔인성,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서사의 전개 과정 중 등장인물의 발화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서술한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p.17) - 동호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으로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p.17) - 은숙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p.45) - 손녀딸을 잃은 노인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리치겠다며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 앞 잔디 밖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굵은 개미들이 세 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고 들었습니다.(p.109) - 교대 복학생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p.117) - 교대 복학생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p.135) - 교대 복학생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 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p.166) - 선주
소설에는 거리 시위 중 총상을 입은 정대를 구하지 못하고 그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중 3의 동호, 방직공장을 다니며 동생 정대의 학비를 대며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진학을 꿈꾸던 스무 살 정미, 시청과 상무관에서 시신을 돌보던 여고 3년의 은숙, 양장점 미싱공이었던 선주, 대학 신입생이었던 진수,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생의 목표였던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이 등장한다. 그들은 한 가정의 자녀로 사랑을 받았고, 대학 진학을 열망하고, 교사가 되어 행복한 일상을 꿈꾸고자 했던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폭력과 잔인성 앞에 무자비하게 희생당해 죽거나 살아남아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타인이기보다 ‘너’ 또는 ‘우리’로 환치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릇된 역사를 단죄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 빛고을을 자주 소환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진학 후 학생운동을 하다 가정 사정으로 자퇴하고 인쇄소에 근무하며 시청 검열과 직원에게 뺨을 맞고 괴로워하는 은숙, 군법재판소에서 7년 형을 받고 출소 후 매형의 전파사 일을 돕다 끝내 자살한 진수, 9년 형을 받은 후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교대 복학생, 고문의 후유증으로 십 년 동안 여섯 차례 손목을 긋고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영재, 노동운동을 이어 가다 항암치료로 투병 중인 성희. 경찰에 연행되어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선주… 그리고 망월 묘지공원과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안장된 수많은 영혼…
‘너’ 또는 ‘우리’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화 내용과 질문을 생각하고 슬픔과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글을 쓰고 또 읽는다.
❙1980년대의 봄은 유독 최루탄이 꽃가루처럼 날리는 날이 많았다.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도심으로 질주해도, 또 그들이 남긴 숱한 구호와 어지러운 발자국에도 시민들은 짜증 내지 않고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다. 국가권력의 폭력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군사정권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너’ 또는 ‘우리’가 폭정에 맞섰던 것은 민주주의의 숭고함과 그것에 대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함이었으며, 독재정권은 반드시 붕괴시켜야 한다는 민중의 저항정신을 내재한 것이었다. 광주는 훼손되지 말았어야 할 훼손된 우리의 영혼과 양심이며, 고결한 민주 정신의 발현지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훼손된 것을 바로 세워 다지고 위무하며, 글을 쓰고 또 글을 읽는다.
‘소년’은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소년의 영혼 속에는 우정과 의리, 양심, 가족애, 민주 정신, 독재 폭력의 비극성과 몰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은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리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고통에 마음이 아리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 동호야.
나 또는 우리도 어머니를 따라 나직이 불러본다. ‘동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