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장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1절은 그리고’(And)로 시작합니다.
신령한 자는 곧 온전한 자(고전2:6)인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자입니다.
지나치게 영적인 척하는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일에 숙련된 사람이 바로 신령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1) 육적인 자 곧 육신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2) 혼적인 자, 정신적이며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3) 신령한 자가 있는데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가능성이
있지만 스스로 혼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면 길이 달라집니다.
이성과 지성의 사람이며 자연적인 양심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2:14)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의 지참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그 다음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로 인해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알고 영생의 믿음에
진입을 하는데 그만 윤리나 도덕으로 빠지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바울이 어린아이들이라고 함은 비록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육적인 신자 곧 감정에 흔들리며 먹고 마시는 것을 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기분전환을 위해 교회를 다니며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입니다.
아직 연약에 쌓여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으로 견고해져야 합니다.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답니다.
젖은 영양가가 적어 성장이 안 됩니다. 현대교회의 문제점입니다.
주일 설교가 거의 전도설교에 머물러 있는 현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없으니 자아가 그대로 살아 자신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 나아가는 단단한 식물을 피합니다.
그래서 미국을 위시하여 지구상의 교회가 총체적으로 어린아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밥은 양식인데(요6:27, 4:32) 주님께서 내 살은 참 된 양식(요6:55)이라 하십니다.
단단한 식물(히5:12)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 또는 원어나 어려운 말씀이 단단한
식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비밀한 구원의 도리를 알고 자기를
버리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그를 먹고 마시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비밀 통로를 따라 완전한데 나아가는 말씀이 바로 단단한 식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나타나심만 있는 고린도교회는
아직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양식이 되고 힘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며 나타나시는 체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양식이란 말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니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고전2:14)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생명의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들을 수 없습니다.
3절 “너희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교회가 아직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라는 증거가 바로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겁니다.
시기는 육체의 열매입니다(갈5:20)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약3:14-15)
만일 작은 교회가 큰 교회 때문에 배가 아프면 그 교회는 부흥이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 어찌 성령의 역사인 부흥을 일으킬 수가 있겠습니까?
부흥이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는 역사인데 성령이 아니면 안 됩니다.
분쟁도 역시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납니다(롬1:29)
그래서 언제나 교회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들로 인해 분쟁 곧 소요가 끊이질 않습니다(딛3:9)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그 다음의 증거는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목사들이 부끄럽게도 자신의 멘토는 누구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으로 행하라 하십니다(고후12:18) 성령의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언제나 혼자이며 외톨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당을 짓는 패거리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의 교만한 말과 거만한 행동이 싫어 혼자 있고 싶어집니다. 주님처럼...
그러다가 오해도 받고 미움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를 각오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신령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성령을 좇아 행하고(갈5:16) 진리 안에 행하고(요삼4)
빛 가운데서 행하는 길(계21:24)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 몸에 채우는 것입니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육에 속한 자가 영의 사람이 되는 유형은 아볼로 같은 사역자입니다.
처음에는 아볼로가 성경은 잘 알았으나 성령을 몰랐습니다(행18:24, 행19:1)
아볼로는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잘 가르쳤지만 요한의 물세례뿐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므로
드디어 아볼로가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게 됩니다(행18:25-28)
아볼로에 대해 참고할 구절은 고전4:6, 고전16:12입니다. 사도행전의
메시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다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임마누엘하신 구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겁니다.
지금도 예수만 가르치면서 사도행전의 역사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절은 사역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나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사역자들은 섬기는 자(마20:26)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롬13:4)이며 그리고 주의 일꾼입니다(고후3:6)
요2장에서 물을 떠다 준 하인들이 바로 사역자의 자세입니다(요2:9)
그런데 이 사역자들이 복음을 위해 사람들을 섬기므로 그들을 영접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그들은 각각 하나님이 주신대로 성도들을 섬깁니다.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으니”그래서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서로 사역의 내용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물을
주는 가운데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십니다. 미완료로 계속이 됩니다.
그 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자랍니다. 그래서 설교는 물을 주는 거라고 말하죠.
이와 같이 심고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자나 물주는 자가 주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 분께 까지 자라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끝까지(테로스)의 사랑입니다(요13:1) 베드로를 보세요.
처음에는 정말 엉터리입니다. 시몬 곧 진흙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전 후서는
반석 신앙이라고 일컬을 만큼 견고한 서신입니다. 베드로가 그 서신의 저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란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벧후3:18) 바울도 에베소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라고 말합니다(엡4:1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계속 자라게 되는 겁니다.
8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일반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목회자들은 이 관점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교만해 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사역자들은 이미 삯을 받았고(요4:36) 상이 있습니다(고전3:14, 9:17)
이 상은 일한 수고에 따라 다릅니다(계22:12) 일하는 자에게 삯을
주시고 이기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는 겁니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주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랍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엡4:12)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밭이며 집입니다. 그러나 황폐해진 땅은 일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집들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이 쓴 고린도전후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교회도 육신에 속하여 땅의 것을 추구하느라 이 내용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