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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은유적 발화
- 『맡겨진 소녀 Foster』/Claire Keegan/허진 옮김/다산책방/2023
이 대 영
❚뭉클한 언어가 실종된 시대에,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소설이 있다. 바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이다. 이 소설은 생경한 환경을 대하는 소녀의 맑고 순수한 눈과 아픈 감정을 추스르는 어른의 원숙함이 빚어내는 애잔한 사랑으로 독자의 시선을 모은다. 또한,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상황을 묘사하고 사건을 전개한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우리에게 알려진 클레어 키건은 단편집 『남극(Antarctica)』과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통해 문학상을 받으며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영화 <말없는 소녀(The Quiet Girl)>로 상영되기도 했던 소설 <맡겨진 소녀>를 통해 그의 문학 세계로 들어가 보자.
❚이 소설은 아일랜드 단식투쟁(Irish hunger strike)이 있던 1981년 여름, 목장이 있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출산을 앞둔 어머니를 떠나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전혀 다른 환경을 접하며 적응하고, 의식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드 게임에 소를 잃는 등 거친 생활 행태를 보이는 아버지, 다섯째를 임신한 채 아이들을 돌보며 허접한 일상에 지친 어머니, 그리고 무심한 관계의 형제들과는 다르게 새로운 환경에서 접하는 친척 부부의 세밀한 보살핌은 소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집에서의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이별이라는 서사구조 속에 방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우물, 우편함까지의 달리기, 아저씨와의 해변 산책, 우물에서의 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독자에게 오랜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굵직한 서사의 줄거리가 아님에도 독자들은 선명한 영상과 함께 작중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한다. 이것은 서사를 이어가는 이미지의 선명성과 작중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에 기인한다.
바람이 불자 키가 큰 풀들이 구부러지면서 은색으로 변한다. 한쪽 구획에서는 키 큰 홀스타인 젖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서서 풀을 뜯는다. 우리가 지나가자 몇 마리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지만 도망가는 소는 하나도 없다. 젖통이 크고 젖꼭지가 길다. 젓소들이 뿌리만 남기고 풀을 뜯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계속 걸어가고,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타 넘는 바람이 가끔 속삭인다. 우리는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p.28.)
우리는 해가 뜰 때 일찌감치 일어나서 아침으로 달걀 요리와 토스트, 마멜레이드를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킨셀라 아저씨는 모자를 쓰고 밭으로 나간다. 킨셀라 아주머니와 나는 해야 할 일들을 큰 소리로 죽 읊은 다음 일을 한다. 우리는 루바브를 뽑고, 타르트를 만들고, 굽도리에 페인트를 칠하고, 온수 탱크 벽장에서 침구를 전부 꺼내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빨아 말린 옷을 전부 걷고, 스콘을 만들고, 욕조를 문질러 닦고, 계단을 쓸고, 가구에 광을 내고, 양파를 끓여 소스를 만들고 그 소스를 냉동고에 넣고, 꽃밭에서 잡초를 뽑고, 해가 지면 여기저기 물을 준다. 그러고 나면 저녁 식사와 밭을 가로질러 우물까지 걸어가는 일만 남는다.(p.46.)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공기에서 뭔가 더 어두운 것, 갑자기 들이닥쳐서 전부 바꿔놓을 무언가의 맛이 난다. 우리는 문과 창문이 활짝 열린 집들과 길고 펄럭이는 빨랫줄, 다른 집 진입로로 이어지는 자갈길을 지난다. 길모퉁이에 밤색 조랑말이 대문에 기대어 서 있지만 내가 코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자 히힝 울더니 느릿느릿 가버린다. 어떤 집 앞을 지날 때는 등 털이 곱슬곱슬한 검은 개가 나와서 우리를 보며 대문 창살 사이로 열심히 짖는다. 첫 번째 교차로에서 마주친 어린 암소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더니 결국 우리를 지나쳐 달려간다. 걸어가는 내내 꽃이 핀 키 큰 관목과 높다란 나무 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불다가, 가볍게 불다가, 다시 거세게 분다. 밭에서는 콤바인 몇 대가 옥수수를 놔두고 밀, 보리와 귀리를 베고 지나가며 지푸라기만 길게 남긴다.(p.58.)
킨셀라 아저씨 집 주변 환경, 소녀의 일상, 아주머니와 함께 초상집에 가는 주변 풍경에 관한 묘사는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다. 특히 시각과 청각 등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한 서술은 독자에게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단순하고 감각적인 어휘로 일상성과 서정성을 연출한다. 또한, 쉼표를 활용하여 짤막한 문장으로 장면을 이어가는 문체가 리듬감과 역동성을 창출한다.
이 소설은 부모의 역할과 가족애, 인간에 대한 예의 등 여러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 <맡겨진 소녀>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는 두 가족의 환경적 차이가 극명하다. 소녀의 순수한 시선은 그 차이와 느낌을 온전히 보여준다. 긍정과 부정을 내포한 소녀의 생활 체험은 그를 성숙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p.17.)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P.25.)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pp.69.~70.)
처음에는 어려운 단어 때문에 쩔쩔맸지만 킨셀라 아저씨가 단어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짚으면서 내가 짐작해서 맞추거나 비슷하게 맞출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나는 짐작으로 맞출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나갔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처럼. (P.83.)
집을 떠나 소녀가 접하는 새로운 환경은 혼란스럽다. 소녀는 거칠고 투박했던 이전의 환경과는 다르게 이곳에선 여유와 생각할 시간이 있다고 느낀다. 처음으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며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의 또 다른 무엇을 느낀다. 또한, 손을 잡아주고 책을 같이 읽어 주는 아저씨에게서 변화된 삶의 차이를 수용하기 시작한다. 그 느낌과 차이 사이에는 사랑의 있음과 없음이 자리한다. 작가는 소녀가 접하는 새로운 환경과 인식의 차이를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에서 드러나는 어른의 경박성과 세상을 향한 작가 자신의 은유적 발화를 던진다.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P.27.)
우리는 계속 걸어가고,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타 넘는 바람이 가끔 속삭인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p.28.)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p.33.)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p.73.)
소녀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다는 사실, 행복하면 말을 안 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는 사실 등을 인지해 간다. 이러한 소녀의 발화는 곧 작가 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소녀는 초상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밀드러드 아주머니에게서 킨셀라의 가정에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듣는다. 즉, 부부 사이에 있던 아들이 개를 따라 거름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죽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쓰던 방과 옷을 소녀가 지금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사랑이 소녀의 마음에 얹어지면서 상쇄된다.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보이니? 아저씨가 말한다.
네. 내가 말한다. 저기 보여요.(P.75.)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p.98.)
이 집에서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을 소녀가 알고 난 직후, 소녀와 아저씨가 바다를 산책한 후 발견한 새로운 불빛은 소녀가 이 가정의 일원으로 완전 합일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소녀는 착유실로 일하러 간 아주머니를 돕기 위해 우물로 양동이를 들고 갔다 쓰러져 실신한 사건도 영원한 비밀로 하기로 다짐한다.
작가가 남긴 소녀 또는 작가의 마지막 발화는 사뭇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집에 돌아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아빠를 부르는 소녀의 부름에는 진솔한 사랑이 묻어난다. 소녀가 경고하는 아빠는 친아빠이며, 그가 애절하게 부르는 아빠는 킨젤라 아저씨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위치와 경계를 돌아보게 된다.
❚경계란 이웃과 만나는 지점이다. 아이에게 부모와 이웃의 경계란 다분히 형식적이고 심리적이다. 가족애라는 끈끈한 유대 관계가 있을 때, 그 경계가 명확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이야기는 다르다. 이 소설은 소녀의 의식 성장과 함께 그 경계가 의미 없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변성에 대한 깨달음과 수용, 사랑과 배려, 말과 행위의 가치성, 상황의 이중적 해석, 이별의 슬픔 등 짧은 기간에 소녀가 경험한 생활은 우리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그 평범한 일상의 내용에서 버릴 것과 채울 것을 상기한다. 거기에는 장황한 훈시나 설명이 필요 없다. 파노라마 같은 사건과 장면 전환, 함축적 의미 전달,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한 전경 묘사, 대조적 성격의 인물 창조, 사건의 극적 전환 등과 같은 세밀한 서사 기법이 작품의 가치를 탄탄하게 받친다. 특히 순수한 소녀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가치 판단, 그리고 순수한 감정과 행동이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이것이 클레어 키건 소설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