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다음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첫 장면으로 유령이 나타나기 직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때는 한 밤이고 보초교대를 하는 장면이다. 당시 햄릿의 나라 덴마크는 노르웨이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인데 전선에선 노르웨이 군이 총공격을 하려고 군사들을 집결시키고 있어서 모든 사람은 긴장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때에 유령이 나타난다. 대사를 잘 읽으면 등장인물을 지배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입장과 주어진 상황을 잘 살펴서 묻는 말에 답하라.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상태에서 등장하는지를 살피면 답을 찾는데 도음이 된다.
엘시노오. 궁전 앞의 망대. 프란시스코 보초를 서고 있다. 그 앞으로 바나아도 등장.
바나아도 : ⓐ게 누구냐? 프란시스코 : ⓑ넌 누구야? 정지. 이름을 대라. 바나아도 : ⓒ국왕 폐하 만세! 프란시스코 : ⓓ바나아도? 바나아도 : 나야. 프란시스코 : ⓔ아주 딱 시간에 맞춰 왔구먼. 바나아도 : 방금 열두시를 쳤어. 교대다. 들어가 한잠 푹 자게. 프란시시코 : 응, 어이 육실헐 놈의 추위. 뼛속까지 다 얼었네. 바나아도 : 이상 없어? 프란시스코 : 쥐새끼 한 마리 얼씬 않았어. 바나아도 : 그럼 어서 가서 쉬게. 호레이쇼와 마셀러스를 보거든 빨리오리고 해. 여기서 좀 보자고 했거든.
ⓕ호레이쇼와 마셀러스 등장
프란시스코 : 저기 누가 오는군. 정지. 게 누구냐? 호레이쇼 : 이 나라 백성! 마셀러스 : 임금님의 신하! 프란시스코 : 난 가네. 마셀러스 : 잘 가게, 교대는 누구지? 프란시스코 : 바아나도. 그럼, 나 가네.
프란시스코 퇴장
마셀러스 : 어이, 바나아도 바나아도 : 마셀러스? 호레이쇼는? 호레이쇼 : 여기 왔네. 바나아도 : 어서 와, 잘 왔어, 마셀러스. 호레이쇼 : 그래, 오늘밤에도 나타났나? 바나아도 : 아니, 아직. 마셀러스 : 호레이쇼는 우리가 헛것을 봤다는 거야. 믿어주질 않아. 우리가 두 번씩이나 본 무시무시한 모습을. 그래서 오늘밤엔 같이 보초를 서보자고 했지. 오늘도 그놈의 허깨비가 나타난다면 우릴 믿어 줄 테고, 그놈한테 직접 말이라도 걸어 보자는 거지. 호레이쇼 : 나오긴 뭐가 나와. 바나아도 : 좀 앉아서 들어 봐. 이틀 밤이나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얘기야. 그렇게 귀 막고 절벽 만들지 말고. 호레이쇼 : 그럼 어디 앉아서 들어볼까. 바나아도 : 바로 어저께 밤이야. 북두칠성이 저 서쪽, 저기 봐. 저별이 지금 반짝이는 바로 저 자리에 왔을 때, 마셀러스와 나 둘뿐이었거든. 종이 한 점을 치는데……
유령 등장
마셀러스 : 쉿, 저 봐, 또 나왔어! 바나아도 : 돌아가신 선왕의 모습 그대로야.
1. 바나아도와 프란시스코는 보초교대를 하고 있다. 프란시스코는 보초 근무중이고 바나아도는 교대하러 초소에 도착한다. 보초인 프란시스코보다 보초 교대하러 간 바나아도가 먼저 “ⓐ 게 누구냐?”라고 소리친다. 바나아도는 왜 먼저 소리를 지르는가? 가장 적합한 설명은? [2점]
① 보초 교대하러 왔다고 알려 주려고 ② 사람을 불러 모으려고 ③ 졸고 있는 프란시스코를 깨우려고 ④ 깊은 밤의 무서움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서 ⑤ 보초를 유령으로 잘못 알고서
2. 프란시스코는 바나아도가 제시간에 보초교대 하러 온 사실을 고마워 한다. ⓔ “아주 딱 시간에 맞춰 왔구먼.” 이란 대사를 할 때 고마운 마음으로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적합한 대사를 찾아 써라. [3점]
3. 어제도 유령이 나타났고 그제도 유령이 나타났다. 오늘도 유령이 나타난다면 이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본문에서 답이 되는 표현을 찾아 써라. [3점]
4. 마셀러스와 바나아도가 호레이쇼를 이 장소로 데려오려고 설득을 할 때 호레이쇼가 가장 호기심을 갖게 된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적합한 설명은? [2점]
① 유령의 무시무시한 모습 ② 유령이 두 번씩이나 나타난 사실 ③ 유령이 나타날 때 별자리의 위치 ④ 종이 치려고 할 때 유령이 나타난 점 ⑤ 유령이 선왕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
[ 5~10 ] 다음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대사이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자매이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왕명을 어기고 죽음을 맞는다. 이스메네는 처음에는 안티고네 제안을 거절하지만 나중에 처벌은 함께 받겠다고 한다. 대사를 잘 읽고 질문에 답하라.
[가] 안티고네 : 왕께서 우리 두 오라버니 가운데 한 분은 후히 장사지내되 한 분은 장사지내지 못하게 하셨지 뭐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에테오클레스는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명예를 누리시도록 그분께서 바른 법도와 관습에 따라 땅속에 묻어 주셨으나, 비참하게 돌아가신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시민들에게 큰소리로 알려 아무도 무덤 속에 감추거나 애도하지 말고, 애도도 받지 못한 채 무덤도 없이 진수성찬을 노리는 새 떼의 반가운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두게 하셨대. 그런 포고를 크레온 왕께서 너와 나에게 내렸대. 그리고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똑똑히 알려 주기 위하여 그 분께서 이리로 오실 것인데, 이 일을 왕께서는 결코 가벼이 여기시지 않고, 이를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는 시민들이 돌로 쳐서 죽이게 하셨대 사정이 이러하니 이제 곧 너는 네가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고귀한 부모의 못난 자식인지 보여주게 될 거야.
[나] 이스메네 아아 언니, 잘 생각해 보세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리 두 자매도 법을 무시하고 크레온 왕의 명령이나 권력에 맞서다가는 누구보다도 가장 비참하게 죽고 말 거예요. 아니, 우리는 명심하야 해요. 첫째, 우리는 여자들이며 남자들과 싸우도록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 다음 우리는 더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일들과 더 쓰라린 일에 있어서도 복종해야 해요.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은 어쩔 도리가 없는 만큼, 지하에 계시는 분들께 용서를 빌고 통치자들에게 복종할 거예요. 지나친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요.
[다] 이스메네 : 언니만 동의하신다면, ⓐ나도 거기에 가담했으니 함께 벌받겠어요. 안티고네 : 안 돼.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의가 용납하지 않아.
너는 원치 않았고 나는 너를 참가시키지 않았으니까. 이스메네 : 그러나 지금은 언니가 곤경에 처하셨으니 나는 언니와 함께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요. 안티고네 :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하데스와 죽은 이들이 알고 계셔.
나는 말로 사랑하는 친구는 사랑하지 않아. 이스메네 : 언니, 내가 언니와 함께 죽어 고인을 공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를 무시하지
마세요. 안티고네 : 너는 나와 함께 죽어서는 안 되며, 너와 무관한 것을 네 것으로 삼지 마라.
내 죽음으로 족해. 이스메네 : 언니가 안 계시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아가요? 안티고네 : 크레온 왕께 물어 보아라. 너를 보살피는 일은 그분 몫이니까. 이스메네 : 왜 나를 괴롭히시는 거예요. 아무 도움도 안 될 텐데? 안티고네 : 너를 비웃어야 한다면 나도 괴로워. 이스메네 : 어떻게 내가 지금 언니를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안티고네 : 너는 살기를 택했고 나는 죽기를 택했다. 이스메네 : 하지만, 나도 할 말을 안 한 것은 아녜요. 안티고네 : (손가락으로 주위와 아래를 가리키며)
ⓒ너는 이분들에게 나는 그분들에게 현명해 보였지. 이스메네 : 그래도 죄를 짓기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예요. 안티고네 : 안심해. 너는 살아 있어. 그러나 내 목숨은 죽은 지 이미 오래야.
내가 고인들을 섬겼으니 말이야. 크레온 : ⓓ내 이르노니, 이 두 소녀 가운데 한 명은 방금 미쳤고, 다른 한 명은 날 때부터
미친 거야.
5. 윗글을 보면 왕이 어떤 사실에 대하여 포고령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왕의 명령을 포고령답게 작성하라. [3점]
6. ⓐ에서 이스메네는 하지도 않은 일에 함께 가담했다고 주장하면서 안티고네와 함께 벌을 받겠다고 한다. 이 때 이스메네의 심리적 동기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있는 표현은 무엇인가? [2점]
① 나는 언니와 함께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요. ② 내가 언니와 함께 죽어 고인을 공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를 무시하지 마세요. ③ 언니가 안 계시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아가요? ④ 왜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아무 도움도 안 될 텐데 ⑤어떻게 내가 지금 언니를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7. 안티고네는 손가락으로 주위와 아래를 가리켜며 ⓒ의 대사를 한다. 안테고네가 의미하는 이분과 그분은 각자 누구인가. 대사에서 찾아서 써라. [2점]
이분 ( ) 그분 ( )
8. 다음의 대사에서 안티고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안티고네의 성격과 가장 거리가 먼 표현은? [2점]
① 고귀한 부모의 못난 자식인지 보여주게 될 거야. ②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의가 용납하지 않아. ③ 나는 말로 사랑하는 친구는 사랑하지 않아. ④ 너를 비웃어야 한다면 나도 괴로워. ⑤ 너는 살기를 택했고 나는 죽기를 택했다.
9. 안티고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를 안티고네의 대사 가운데서 찾는다면? [2점]
① 안 돼.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의가 용납하지 않아. ② 나는 말로 사랑하는 친구는 사랑하지 않아. ③ 너는 나와 함께 죽어서는 안되며, 너와 무관한 것을 네 것으로 삼지 마라. ④ 너를 보살피는 것은 그분 몫이니까. ⑤ 안심해. 너는 살아있어.
10. 크레온이 ⓓ의 대사를 한 다음에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스메네가 먼저 말하고 안티고네가 다음에 말을 한다면 무슨 대사를 할지 각기 한 줄 정도로 써라.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상기하며 [다]의 대사의 흐름에 따라 대사를 써라. [2점]
이스메네: 안티고네:
[ 11~25 ] 다음 글 [가], [나], [다]를 읽고 물음에 답하라.
[가]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가 삼씨 까듯 하였나 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다. 계집아이 행실로 그네를 뛸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은근히 매고 그네를 뛰는 게 도리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멀지 않고, 또한 방초는 푸르른데 앞내 버들 뒷내 버들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에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에 노닐 때에, 홍삼 자락이 펄펄, 백방사(白紡絲) 속곳가래가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셨지,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뿐이랴.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관(官)에 딸린 몸이 아니어든 여염 사람을 오라가라 제 맘대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다 한들 갈 리도 없다.” 방자 체면에 못 이기어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다. 말인즉 옳다마는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러이러 하여라.” 방자 전갈을 받들어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사이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에 마주 앉아 점심밥이 막 벌어졌다.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타. 도련님이 다시 전갈 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염집에 있는 처자 불러보기 보고듣기 고이하나 혐의(嫌疑)로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속짐작에 연분이 되려고 그러한지 홀연히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한참 생각하여 말 안 하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앉아 정신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전혀 허사가 아니로다. 간밤에 난데없는 청룡 하나가 벽도지(碧桃池)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때,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켜서서 완연히 바라보니, 춘향이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연보(蓮步)를 바르게 옮겨 천연이 누에 올라 부끄럽게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얼굴을 단정히 하고 앉는 거동 자세히 보니, 새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꾸민 일 없이 천연한 국색(國色)이라. 옥 같은 얼굴을 대하고 보니 구름 사이 달빛 같고, 붉은 입술 반쯤 여니 물 속에 핀 연꽃 같다. “신선을 내 몰라도 영주에 놀던 신선 남원에 귀양 사니, 월궁에 모이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이때, 춘향이 은근한 정을 품고 고개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피니. 금세의 호걸이요 진실로 세상의 기남자(奇男子)라. 마음에 흠모하여 예쁜 눈썹을 숙이고 무릎 꿇어 단정히 앉을 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도 같은 성을 아내로 삼지 않는다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냐?” “성은 성가옵고 나이는 십육 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나이 들어보니 나와 동갑 십육 세라. 성자(姓字)를 들어보니 하늘이 정한 인연이 분명하다. 이성지합(二姓之合) 좋은 연분 평생동락 하여보자. 너의 부모 모두 계시냐?” “편모슬하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육십이 된 나의 모친 무남독녀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하늘이 정한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락(萬年樂)을 이뤄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눈썹을 찡그리며 붉은 입술 반쯤 열고 가는 목 겨우 열어 옥 구르는 소리로 여쭈오되,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절(烈女不更二夫節)은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한 첩이라. 한번 정을 맡긴 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 이내 마음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한(恨)은 이내 신세에 내 아니면 누가 그일까.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때에 금석 같이 굳은 약속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냐?” 춘향이 여쭈오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르치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빽빽하고 연못은 맑고 맑은데 고기 뛰놀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琪花瑤草) 난만하여 나무나무에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바위 위의 굽은 솔은 청풍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꿈틀대는 듯, 문 앞의 버들은 유사무사(有絲無絲) 양류지(楊柳枝)요, 들쭉 측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杏子木)은 음양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 문앞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 넌출 휘휘 칭칭 감겨 담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소나무 정자 대나무 수풀 사이로 은은하게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장원이 정결하고 송죽이 빽빽하니 여자 절행을 알겠도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쭈오되, “시속인심(時俗人心)이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나이다.” 도련님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밤 퇴령(退令)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세나 부디 말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오늘밤 상봉하자.” 누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 마주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느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 『열녀춘향수절가』
[나] 시간이 됐을 때 ㉠나는 그 여자와 만나기로 한, 읍내에서 좀 떨어진 바다로 뻗어나가고 있는 방죽으로 갔다. 노란 파라솔 하나가 멀리 보였다. 그것이 그 여자였다. 우리는 구름이 낀 하늘 밑을 나란히 걸어갔다. “저 오늘 박선생님께 선생님에 관해서 여러가지 물어봤어요.”
“그래요?” “무얼 제일 중요하게 물어보았을 거 같아요?” 나는 전연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잠시 동안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의 혈액형을 물어봤어요.” “내 혈액형을요?” “전 혈액형에 대해서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꼭 자기의 혈액형이 나타내주는 ― 그, 생물책에 씌어 있지 않아요? ― 꼭 그 성격대로이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세상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성격밖에 없을 게 아니에요?” “그게 어디 믿음입니까? 희망이지.” “전 제가 바라는 것은 그대로 믿어버리는 성격이에요.”
“그건 무슨 혈액형입니까?” “바보라는 이름의 혈액형이에요.” 우리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괴롭게 웃었다. ㉡나는 그 여자의 프로필을 훔쳐보았다. 그 여자는 이제 웃음을 그치고 입을 꾹 다물고 그 커다란 눈으로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고 코끝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 여자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나의 한 손으로 그 여자의 한 손을 잡았다. 그 여자는 놀라는 듯했다. 나는 얼른 손을 놓았다. 잠시 후에 나는 다시 손을 잡았다. 그 여자는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우리가 잡고 있는 손바닥과 손바닥의 틈으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무작정 서울에만 가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내가 물었다. “이렇게 좋은 오빠가 있는데 어떻게 해주겠지요.” 여자는 나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신랑감이야 수두룩하긴 하지만…… 서울보다는 고향에 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고향보다는 여기가 나아요.” “그럼 여기 그대로 있는 게……” “아이, 선생님. 절 데리고 가시잖을 작정이시군요.”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내 손을 뿌리쳤다. 사실 나는 내 자신을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감상(感傷)이나 연민으로써 세상을 향하고 서는 나이도 지난 것이다. 사실 나는, 몇 시간 전에 조가 얘기했듯이 ‘빽이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만난 것을 반드시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내게서 달아나버렸던 여자에 대한 것과는 다른 사랑을 지금의 내 아내에 대하여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구름이 끼어 있는 하늘 밑의 바다로 뻗은 방죽 위를 걸어가면서, 다시 내 곁에 선 여자의 손을 잡았다. (…중략…) “세상에서 제일 먼저 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내가 말했다. “아이, 편지, 정말 편지를 받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어요. 정말 누구였을까요? 아마 선생님처럼 외로운 사람이었겠죠?” 여자의 손이 내 손안에서 꼼지락거렸다. 나는 그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인숙이처럼.” 내가 말했다. “네.” 우리는 서로 고개를 돌려 마주보면 웃음 지었다. 우리는 우리가 찾아가는 집에 도착했다. 세월이 그 집과 그 집사람들만은 피해서 지나갔던 모양이다. 주인들은 나를 옛날의 나로 대해주었고 그러자 나는 옛날의 내가 되었다. 나는 가지고 온 선물을 내놓았고 그 집 주인부부는 내가 들어 있던 방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방문을 열고 물결이 다소 거센 바다를 내어다보며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거뿐예요.” 한참 후에 여자가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여자의 볼 위에 의미 없는 도화를 그리고 있었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방으로 불어오는 해풍 때문에 불이 꺼져버린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절 나무라시는 거죠? 착하게 보아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도 착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우리가 불교도(佛敎徒)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착한 분이세요?” “인숙이가 믿어주는 한.” 나는 다시 한번 우리가 불교도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누운 채 내게 조금 더 다가왔다. “바닷가로 나가요 네? 노래 불러드릴께요.”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가로 나가요, 네? 방이 너무 더워요.” 우리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백사장을 걸어서 인가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앉았다. 파도가 거품을 숨겨가지고 와서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 밑에 그것을 뿜어놓았다. “선생님”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여자가 꾸민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기억을 헤쳐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젠가 나와 함께 자던 친구가 다음날 아침에 내가 코를 골면서 자더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였지. 그땐 정말이지 살맛이 나지 않았어.” 나는 여자를 웃기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웃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참 후에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여자의 손을 달라고 하여 잡았다. 나는 그 손을 힘을 주어 쥐면서 말했다. “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느 개인 날’ 불러드릴께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나는 ‘어느 개인 날’의 그 이별을 생각하며 말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國語)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읍내로 돌아온 것은 저녁의 어둠이 밀려 든 뒤였다. 읍내에 들어오기 조금 전에 우리는 방죽 위에서 키스를 했다. ―― 김승옥, 「무진기행」
[다] 슬리퍼와 파자마에 가운 하나를 걸치고 있던 그는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 서둘러 서재에서 뛰어나갔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보나마나 아내의 전화일 터였다. 그녀는 출장만 가면 꼭 이 시간에 전화를 걸곤 했다. 그것도 술을 한 잔 걸치고서 말이다. 바이어로 일하는 그녀는 이번 주 내내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있었다. “여보세요, 당신이야?” 그가 말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글쎄요, 그 쪽은 누구십니까?” 그가 말했다.
“몇 번에 거셨지요?” “잠깐만요.” 여자가 말했다.
“이칠삼국에 팔공육삼번 아닌가요?” “번호는 맞는데….” 그가 말했다.
“어디서 이 번호를 적었지요?” “모르겠어요. 일을 끝내고 와보니 종이 쪽지에 이 번호가 적혀 있더라구요.” 여자가 말했다. “누가 쓴 쪽집니까?” “모르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아마 유모가 적었겠죠.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그가 말했다.
“글쎄요, 그 유모라는 분이 어떻게 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내 번홉니다. 난 이 번호를 전화국에 등록도 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가지고 계신 쪽지를 그냥 휴지통에 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네. 들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시간도 늦었고, ㉠난 지금 좀 바쁘거든요.”
그는 사실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전화기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런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기분 나쁘게 들렸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난 그저 시간이 꽤 늦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고, 당신이 어떻게 내 전화 번호를 알게 됐는지 궁금할 뿐이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슬리퍼를 벗고 발을 주무르며 상대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아무런 메모 같은 것도 없고 전화 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거든요. 오늘 아네트를 만나면 물어 봐야겠군요. 아, 아네트가 아까 말씀드린 그 유모랍니다. 아무튼 댁을 성가시게 할 마음은 없었어요. 지금 막 이 전화 번호를 발견했거든요. 퇴근하고 돌아온 다음엔 줄곧 부엌에 있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그가 말했다.
“잊어버리세요. 뭐 쓰레기통에 버리든 마음대로 하시고 잊어버리세요.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수화기를 반대편 귀로 옮겼다. ㉡“아주 좋은 분 같네요.” 여자가 말했다. “그래요? 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는 그만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적막한 방 안에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라도 울려퍼지고 있는 게 듣기 좋았다. “별 말씀을요.” 여자가 말했다. 그는 발을 내려놓았다. “혹시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여자가 물었다. “아놀드라고 합니다.” “성은 뭐죠?” 여자가 물었다. “아놀드가 성입니다.” “저런, 죄송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아놀드가 성이로군요. 그럼 이름은 뭐죠, 아놀드?” “이제 정말로 끊어야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놀드, 저는 클라라 홀트라고 해요. 당신 이름은 아놀드 뭐죠?” “아놀드 브레이트.”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클라라 홀트, 멋진 이름이군요. 하지만 이젠 정말로 전화를 끊어야 합니다, 미스 홀트. 지금 다른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거든요.” “죄송해요, 아놀드. 당신 시간을 뺏을 마음은 없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건 괜찮습니다.” 그가 말했다. “ 나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고맙군요, 아놀드” “잠깐만 수화기 좀 들고 있어 주겠소?” 그가 말했다.
“뭐 좀 살펴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해 놓고 서재로 들어가 담배를 집었다. 탁상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다음, ㉣안경을 벗고 벽난로 위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그리고는 전화기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혹시 그녀가 전화를 끊어 버린 게 아닌가 약간 걱정스러웠다. “여보세요?” “네, 아놀드.” 여자가 대답했다. “전화를 끊어 버렸을 줄 알았습니다.” “저런, 그럴 리가 있나요.” “내 전화 번호를 가지게 된 것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거기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세요.” “그럴게요, 아놀드.” 여자가 말했다. “그럼, 이만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요.” “네. 그래야죠.” 여자가 말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여자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무례한 부탁인 줄은 알아요, 아놀드. 하지만, 어디서 한번 만나서 말씀을 나누는 건 어떨까요? 잠깐이라도 말이에요.” ―― 레이몬드 카버, 「당신은 의사인가요?」
11. [가]의 ㉠이 지시하는 내용을 본문에서 찾아 한 문장으로 써라. [3점]
12. [가]의 ㉡에서 춘향모가 “우연한 일이 아니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가? [3점]
① 간밤에 난데없는 청룡이 푸른 복숭아 연못에 나타났기 때문에 ② 양반인 도련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왔기 때문에 ③ 딸이 만난 남자의 이름과 꿈 내용이 비슷했기 때문에 ④ 딸과 이도령이 필히 백년가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⑤ 공교롭게도 딸과 이도령의 나이가 열여섯 살 동갑나기로 일치했기 때문에
13. 춘향전에서 드라마를 형성하고 그것을 추동시키는 힘은 사랑하는 두 연인 사이에 불가항력적인 현실로 개입해 있는 반(班)/상(常)이라는 신분상의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에 있다. 특히 자신은 기생이 아닌데 기생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에 대한 강한 자의식과 일종의 콤플렉스가 춘향의 주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가] ㉤에서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한 첩이라” 고 스스로 일컫고 있는 춘향은 물론 막무가내로 접근하는 이도령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를 옥죄고 있는 당대의 봉건 질서를 스스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편 춘향은 윗글에서 이와는 전혀 상반된 태도와 의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한 문장을 본문에서 찾아써라. [3점]
14. 윗글 [가]를 읽어보면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춘향모의 은밀한 기획 혹은 연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춘향모의 대사는? [3점]
① “꿈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허사가 아니로다.” ②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너라.” ③ “애고, 내 딸 다녀오느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④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⑤ “잘 하였다!”
15. 윗글 [가], [나], [다]는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공간에서, 다시 말해 전근대적, 근대적, 포스트모던 조건들 속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에 공통된 듯이 보이는 사랑의 변하지 않는 본질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본문과 관련하여 가장 가까운 것은? [3점]
①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는 애정과 증오의 양가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② 신분이나 성격의 차이에서 오는 역경이 오히려 사랑을 광적인 상태로 발전시킨다. ③ 사랑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에 대한 동경을 낳고 그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고 떠나는 여행이다. ④ 사랑의 첫 게임을 구성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그것을 감추려는 위장이다. ⑤ 남성적 화자에 의해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에서 여성은 대개 사랑의 무기력한 대상일 뿐이다.
16.『열녀춘향수절가』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윗글 [가]의 ㉤과 [나]의 ㉠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서사가 담긴 공간에 대한 인식에서 있어서 중요한 차이를 드러낸다. 방자의 사설로 장황하게 서술되고 있는 춘향전의 공간은 마치 우리 전통의 관념 산수화에서 보듯 원경, 중경, 근경을 수직적인 적층성에 의해 차곡차곡 쌓아놓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실재하는 풍경을 묘사하기보다는 한문학의 시가 미문, 이를테면 “바위의 굽은 솔은 청풍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꿈틀대는 듯”과 같은 시적 관용구들을 배열하고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나]의 ㉠에 묘사된 공간은 서구 르네상스 이후, 특히 네델란드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근대적 공간 표상을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여자를 만나러 가는 일인칭 화자의 시점을 통해 독자에게 “구름이 낀 하늘 밑 바다로 뻗어나가고 있는 방죽”의 먼 풍경에 대한 실감을 제공하고 있는 이러한 시선을 우리는 ------ 이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 시선을 수렴시키고 있는 중심에 포착된 노란 파라솔은 매우 인상적이다. 빈 칸에 가장 알맞은 용어는? [2점]
① 가상현실적 ② 원근법적 ③ 흑백대조법적 ④ 색채분할법적 ⑤ 단축법적
17.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점화되며, 그 시선은 사랑의 성격과 형태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이몽룡의 춘향에 대한 사랑은 광한루 유원지에 첫눈에 뿅 가버린 맹목성의 시선에서 불타기 시작한다. 이 빛나는 눈먼 시선 앞에 춘향은 국중제일 미인이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조선조 한시 어록이 총망라된다. 상투형의 극치인 그 어록의 시적 술어들이, 그러나, 사랑의 대상인 춘향의 신체적 특징들을 성형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춘향의 “얼굴을 대하고 보니 구름 사이 달빛 같고, 붉은 입술 반쯤 여니 물 속에 핀 연꽃 같다”는 진부한 묘사는 시적이기보다는 자못 성적이며 그래서 관능을 자극한다. 몽룡이는 춘향의 이런 얼굴을 지금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춘향은 몽룡의 시선 앞에 온몸으로 나타난다. 그에 비해 [나]의 ㉡에서 이 소설의 일인칭 화자는 여자를 옆으로 비켜서 보고 있다. 그것도 그녀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화자는 아무런 미적 성형이 가해지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며 다만 코끝의 땀방울이 곧 증발할지도 모를 그들 사랑의 리얼리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는 [가]와 [나]에 나타난 공간 표상의 차이와 함께 이들 작품에 그려진 사랑의 형태와 성격에서의 차이와 대응한다 하겠다. 또한 [나]를 윗글 [다]와 비교할 때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레이몬드 카버의 이 작품에서는 사랑의 대상, 혹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자에 대한 시선 자체가 아예 없다. 따라서 그 대상, 그 타자의 신체성마저 부재한다.
[나]의 화자와 여자(인숙), [다]의 그(아놀드)와 그녀(클라라 홀트) 사이에 감정을 주고받고 일시적 관계를 맺어주는 매개물은 각각 무엇인가? 아래 보기에서 바르게 짝지은 항은? [4점]
<보 기>노란 파라솔, 혈액형, 칼, 손, 불교도, 발, 목소리, 슬리퍼, 이름, 전화 번호
① 노란 파라솔과 전화번호 ② 혈액형과 이름 ③ 칼과 슬리퍼 ④ 손과 목소리 ⑤ 불교도와 발
18. 작중 인물들의 성격은 대체로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 즉 어떤 결핍에 의해 두드러진다. [가]에서 춘향은 이도령과의 관계에서 그녀의 신분상의 결핍, 즉 “그대는 양반이지만 나는 기생의 딸이다”는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며 그것에 의해 어떤 행동이 동기화되어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렇듯이 [나]에서 여자(인숙)도 화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결핍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본문에 입각하여 한 문장으로 써라. [3점]
19. [나]의 ㉢에 함축된 내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것은? [2점]
① 그녀와 나는 가끔 산사를 찾아 불공드리는 사람처럼 서로의 말에 갑자기 경건함을 느꼈다. ② 그녀와 나는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했다. ③ 그녀와 나는 서로를 착하게 보아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도 착하지 않다고 믿었다. ④ 그녀와 나는 세상과 인간의 마음에 관해 서로에게 한 말에 대해 문득 무상함을 느꼈다. ⑤ 그녀와 나는 만사가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20. 윗글 [다]에서 읽을 수 있듯이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전쟁이라든가 살인, 자살, 희대의 사기극, 근친상간 등과 같은 큰 사건을 소재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적인 삶에서 누구나 쉽게 만나게 되는 일견 시시해 보이는 사소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것들이 문득 ‘의미심장한’ 광채를 띠도록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카버의 재능이며 독자들을 그의 소설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마력일 것이다. 그의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서사의 섬광은 삶의 디테일에 대한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더불어 일체의 수사학적인 비계 덩어리를 제거해버리고 꼭 필요한 말만 ‘최소한으로’ 남기는 그의 시적인 미니멀리즘에서 발산된다고 하겠다. 그의 이러한 미니멀 소설이, 잘못 걸려온 전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다]와 같은 작품에서 그렇고 그런 시시한 삶에 대한 뜻밖의 심오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다음 진술들에서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은? [3점]
① 인생은 모든 종류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소멸되어 간다. ②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설명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그 자체로 거기에 존재할 뿐이다. ③ 인생은 사람에게 어떤 가치 전환을 강요하는 부조리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한다. ④ 이 작품은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 남자의 고독감을 폐허 같은 광경으로 보여준다. ⑤ 우연은 삶의 불확정성을 뜻하지만 어떤 구원의 가능성을 예감케 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21. [다]에서 드러난 여자에 관한 정보 가운데 본문과 확실하게 일치하지 않은 것은? [2점]
① 그녀는 직장 여성이어서 낮에는 집을 비운다. ② 그녀에게는 돌봐주어야 할 아이가 있다. ③ 그녀는 고독감을 느끼고 있다. ④ 그녀는 활달한 반면에 조금은 집요한 데가 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듯하다. ⑤ 그녀는 어딘가 바람기가 있는 것 같다.
22. [다]의 ㉡과 [나]의 ㉣에서 여자들은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들에게 거의 같은 대사를 말하고 있다. [다]의 여자가 “당신은 좋은 사람 같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과 소통하고 있는 남자에 대한 일종의 예의를 나타내는 의전용어에 가깝다고 한다면, [나]의 여자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나]의 인숙이 화자에게 “선생님은 착한 분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써라. [3점]
23.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녀가 처음 만나 통성명하는 장면에 있어서 [가]의 ㉢과 [다]의 ㉢은 사뭇 다르다. [가]에서 이도령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의도를 금방 드러내는 데 반해서 [다]의 아놀드는 그렇지 않다. 다음에서 아놀드의 반응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은? [2점]
① 다소 적대적이다. ② 다분히 방어적이다. ③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④ 남자답게 직설적이고 솔직담백하다. ⑤ 남자가 쫀쫀하고 냉소적이다.
24. ‘거울’은 자아의 반성적인 의식을 표상하는 문학적 도구로 여러 작품에서 자주 나타난다. [다]의 ㉣에서 주인공이 거울을 보고 있을 때 그의 내면에 흐르고 있을 의식을 일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세 문장 이상으로 생생하게 다시 표현해 보라. [3점]
25. 윗글 [다]에서 여자는 앞의 [가]와 [나]와 달리, 그 신체적 존재가 완전히 가려진 ‘타자’로 그려지고 있다. 유일하게 그녀의 육체성이 감지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본문에서 찾아 한 문장으로 써라. [3점]
[ 26~29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가] 어느 여름 ㉠ 매미가 남겨놓은 껍질 같은 육체가 새로 들여온 삼백육십만 원짜리 통가죽 소파에 몸 가누고 있다
하루 종일 토하고 밤에는 잠 못 이루는 어머니,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말씀 없으시다가, 인제 겁 안 난다, 살 만큼 살았으니……
살얼음 낀 우물을 들여다보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본다
―― 이성복,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나] 배가 둥그런 엄마와 빼빼 마른 아빠가 예쁜 서랍장을 새로 사들이고 손바닥만 한 옷가지와 골무만 한 신발들 정성껏 빨아서 말리고 유치원생 사촌들이 타던 유모차를 받아오고 코끼리와 원숭이가 장난치는 채색 돗자리도 얻어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님이 그늘에서 쉬도록 비치파라솔까지 마당에 세웠다 온 가족의 이 부산한 준비를 ㉡ 손님은 모를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함께 살면서도 아기 손님은 모를 것이다 오래오래 모를 것이다 부모를 떠나고 짝을 만나서 둘이서 함께 살아가도 잘 모를 것이다 스스로 손님을 맞이하면 어렴풋이 알게 될까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깥 세상에서 어떻게 자기를 맞이할 준비했는지
―― 김광규, ‘손님맞이’
26. 윗시 [가]에서 육체성을 나타내는 시적 환유로서 ㉠ ‘매미’와 동일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3점]
① 통가죽 소파 ② 찬물 ③ 도토리묵 ④ 살얼음 ⑤ 우물
27. [나]의 ㉡이 삶의 양극을 이루면서 대응하고 있는 이미지를 [가]에서 찾아 써라. [2점]
28. 시를 쓰거나 읽을 때 우리가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이 어떤 것을 시이게 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시어로 된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행들 가운데 혹은 시 전체 속에서 그것을 딱 시가 되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을 시의 ‘눈’, ‘씨눈’이라고 할 때, [가]에서 이 언어적 텍스트 전체를 하나의 시로 발아시키고 있는 것은 단연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이라는 빼어난 이미지라 하겠다. [나]에서 시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2점]
① 코끼리와 원숭이가 장난치는 채색 돗자리 ② 손님이 그늘에 쉬도록 / 비치파라솔까지 마당에 세웠다 ③ 집에 도착해서 함께 살면서도 아기 손님은 모를 것이다. ④ 짝을 만나서 / 둘이서 함께 살아가도 모를 것이다 ⑤ 바깥 세상에서 어떻게 자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는지
[ 29~ 30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교양은 궁국에 있어서 개성(個性)에 관계되는 문제이다. 이 경우에 개성이란 일종의 처녀지(處女地)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처녀지를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제초를 하고 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개발과 경작의 과정이 즉 교양이다. 그러기에 영어에선 개발이나 경작이나 교양이나를 매한가지 ‘컬춰’라고 부른다.
나) 교양은 혼자 물러앉아서 독서하고 사색하고 심적으로 분투하는 사적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양이 개인적인 문제라 해서 그것을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해선 큰 잘못이다. 개인주의와 교양은 문제의 존재가 수준을 달리하는 것이니 비교가 되지 않고, 만일 교양을 연결하여 생각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될 것이다. 휴머니즘이 그 근저(根柢)에 있어서 인간적 가치의 증진이라면 그것은 개인적 교양 없이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다) 이질적인 문화를 너무도 많이 섭취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개성이 통일되지 못하고 자아분열을 일으킨 예를 우리는 우리 주위와 우리 자신 가운데서 흔히 보는 바다. 이것은 현대인의, 더욱이 동양에 앉아서 구라파문화를 유입하고 있는 우리들의 가장 큰 번민이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교양의 정신이 관용의 정신이라는 원리엔 변함이 없다. 따라서 교양의 다양성과 신념의 통일성이라는 것은 현대에 있어서 양립되지 않는 두 개념이면서도 이것을 양립시키는 데에 현대 지식인의 중대한 임무가 있는 것이다.
라) 학식은 지식의 축적이고 양식은 교양을 표징하는 비평적 감별력이다. 우리는 독서로 말미암아 학식을 얻을 수 있으나, 그러나 학식이 있다고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식은 결국에 있어 지식의 축적이니 다른 학자의 것을 그대로 빌려 올 수도 있지만, 양식은 오랜 동안의 교양만이 가져올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에 이것은 함부로 차용할 수는 없다. ―최재서의 <교양의 정신> 중에서
29. 가) 글에 의거하여 교양을 정의하시오. [2점]
30. 다음 중 교양에 관한 필자의 주장과 거리가 먼 것은 무엇인가? [2점]
① 교양은 양식이요 비평적 감별력이다. ② 휴머니즘은 개인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다. ③ 교양은 혼자 사색하는 것이 필요하니, 개인주의적이다. ④ 양식은 교양만이 갖는 지혜이므로, 쉽게 빌려올 수 없다. ⑤ 현대 지식인은 교양의 다양성과 신념의 통일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 31~33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마)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직업 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淫婦的) 환락의 탐혹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로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지훈의 <지조론> 중에서
바) 구한국 말엽에 단발령이 내렸을 적에, 각지의 유림들이 맹렬하게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이 목은 잘릴지언정 이 머리는 깎을 수 없다’라고 부르짖고 일어선 일이 있었으니, 그 일 자체는 미혹하기 짝이 없었지만, 죽음도 개의하지 않고 덤비는 그 의기야말로 본받음 직하지 않을 바도 아니다. 이와 같이 ‘딸깍발이’는 온통 못생긴 짓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훌륭한 점도 적잖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쾨쾨한 샌님이라고 넘보고 깔보기만 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일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인은 너무도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 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에 현명하다. 염결(廉潔)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우매하기 짝이 없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 할까. 우리 현대인도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이희승의 <딸깍발이> 중에서
31. 지조를 설명할 수 있는 어귀를 다)에서 고르시오 [3점]
32. 다음 중 본문에서 의도하는 ‘딸깍발이’의 의미에 맞지 않는 것은? [2점]
① 선비와 교양인 ② 지조와 정조 ③ 염결(廉潔) ④ 쾨쾨한 샌님 ⑤ 의기와 강직
33. 마)와 바)에서 “양가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을 모두 꼽으시오. [3점]
[ 34~36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아) 혁명의 길은 파괴로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한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들테면 우리가 일본 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우선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 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제구(諸具)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오로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뿐만 아니라 고유 전통의 의미와 뿌리를 결코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중에서
자) 포스트식민주의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제국들이 붕괴한 이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경험한 역사의 한 단계를 가리킨다. 제국이 해체된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 연안 제국의 민중은 식민지 이전의 자기 문화를 회복하고, 식민지 지배의 문화적 언어적 법률적 경제적 결과를 산정하고, 새로운 정부와 국민적 정체성을 창출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은 식민지 이후의 상황에 처한 개인의 삶에 수반되는 이점과 해방감만이 아니라 갈등과 모순도 중심으로 삼고 있다. ― <현대문학 문화비평 용어 사전> 중에서
차)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은 우선 이른바 민족주체성이나 민족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일제 때처럼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는 전통을 보위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투쟁방법이 되었다. 또 서양 제국의 문물사조가 마치 침략해 오듯이 할 때에 그것은 응전의 방식이었다. 역사상 분단의 시대라고 하는 현시점에서 민족의 근원적 동질성은 전통 속에서 찾아야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통은 여러 가지 의미로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다. 미개민족이나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용된 ‘제국주의적 민속학과는 달리 민족적 긍지의 동질성을 피지배층의 기층문화에서 찾으려는 ‘민족주의적 민속학’--이를테면 18세기 당시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유럽의 주변국가인 핀란드, 에이레, 그리고 피식민지 경험을 겪은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20세기의 후진국, 그리고 종족의식이 강한 아랍 제국 등에서의 민속학적 경향--이 어떠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대두되었는지를 오늘 이 땅의 상황에로 시각조정해보면 민족적 동질성과 민중적 창조성이 별개의 것이 아님이 분명해진다. 민중문화의 보수성은 차라리 우리에겐 진보성을 보증해줄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체성만이 강조될 경우 자칫 폐쇄적인 국수주의나 권력부회적인 것으로 빠지기 쉽고, 민중적 창조성만 강조될 경우 편파적인 계급성향에 빠지기 쉬운만큼 이 둘의 통합적 기능을 현식적으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채희완의 <전통의 계승문제> 중에서
34. 밑줄 친 “고유 전통의 의미와 뿌리”를 의미하는 한 단어를 자)에서 골라 쓰시오. [2점]
35.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면 일어나는 결과가 아닌 것은? [2점]
① 권리사상이 박약하다. ②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한다. ③ 고유 전통의 뿌리를 모른다. ④ 강자 오락의 제구(諸具)를 향유한다. ⑤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지 못한다.
36. 아)는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일부이다. 그가 ‘노예적 문화사상’을 거부한 것은 차)의 글에 의하면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를 찾아서 두 단어로 쓰시오. [2점]
[ 37~ 40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그의 어느 책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신이 설계한 삶에 똥누는 일이 필수적인 것으로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쿤데라가 이 말을 하는 투로 미루어보건대, 이것은 단순한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의 표현은 매우 무례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전형적으로 엘리트적이다. ( ⓐ ) 엘리트들은 이러한 짓을 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용기는 모두가 찬미하는 자질이다. 그런데 오직 엘리트들만이 비겁함을 도덕적으로 사악한 것으로 단죄한다. 특권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 하에서는 누구든지 비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한 주일 전에 나는 일년 동안의 똥을 치우고 묻었다. 이 일은 일년에 한 번 치러야 하는 일이며, 5월이 그때이다. 그보다 이르면 얼어붙기가 쉽고, 더 늦으면 파리들이 날아온다. 여름에는 가축 때문에 파리들이 많다. 얼마 전에 어느 남자가 자신의 외로움에 관해 얘기하면서 내게 말했다. “지난 겨울에는 파리가 그리워지기까지 했지요.” 먼저 나는 구덩이를 하나 판다. 대개 무덤 크기지만 그렇게 깊게는 파지 않는다. 짐을 풀 때 손수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구덩이 가장자리는 잘 다듬을 필요가 있다. 내가 구덩이 속에 서 있는데 이웃집 개 미크가 지나간다. 강아지 때부터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지만 그는 내가 자기 앞에 난쟁이보다 더 작은 키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크기에 대한 그의 감각이 혼란을 일으켜, 그는 짖기 시작한다. 뒷간의 똥을 치우고, 그걸 손수레로 옮겨서, 구덩이 속으로 쏟아 붓는 일을 처음에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시작했다 하더라도 언제나 내 속에서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무엇에 대해서 혹은 누구에게 향하는 분노인가? 내 생각에, 이 분노는 격세유전적인 것이다. 모든 언어에서 “똥!”이라는 것은 격분에 차서 내뱉는 욕설이다. 고양이는 발톱으로 흙을 긁어서 자기의 똥을 덮는다. 인간은 자기들의 똥을 가지고 욕설을 내뱉는다. 내가 삽질을 하는 물건의 이름을 부르면 마침내 밑도 끝도 없는 화가 나는 것이다. 똥 같으니라구!
쇠똥이나 말똥은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비교적 기분에 거슬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것들은 발효된 밀 냄새를 풍기고, 그 냄새의 아득한 저편에는 건초와 풀이 있다. 닭똥은 고약하다. 그것은 암모니아의 양 때문에 목구멍을 자극한다. 닭장을 치울 때는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러나 돼지와 인간의 배설물이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인간과 돼지는 육식성이며 그들의 식욕은 닥치는 대로이다. 그 냄새에는 욕지기가 날 만큼 썩는 내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냄새의 먼 저편에는 죽음이 있다. 삽질을 하는 동안 낙원의 이미지가 내 마음에 떠오른다. 천사들과 하늘의 나팔이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울타리가 있는 정원, 깨끗한 물이 있는 샘, 신선한 빛깔의 꽃들, 풀밭 위에 깨끗한 흰 천이 펼쳐져 있고, 암브로시아가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순수함과 신선함에 대한 꿈이 온통 거름과 흙투성이 때문에 나왔다. 이러한 양극성은 인간 상상력에 깊이 뿌리박혀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피난처로서의 집--더러운 것도 포함되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우리를 보호해주는 집에 대한 개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현대적 위생의 세계에서는 순수함은 순전히 비유적이거나 도덕주의적인 용어가 되었다. ( ⓑ ) 그와 대조적으로, 터키의 가난한 집들에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첫 행동이 레몬향수를 가지고 방문객의 손과 팔과 목과 얼굴에 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관습은 내게 엘리트에 관한 한 터키의 속담을 연상시켜준다. “그는 세상의 똥 속에서 자기가 파슬리 잎이나 되는 줄로 생각한다.” 수레를 뒤집으면 똥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러면 더럽고 감미로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썩어 가는 냄새,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완전히 부패한 냄새, 이건 틀림없는 죽음의 냄새이다. 그러나 그것은--육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청교도 정신이 끊임없이 가르쳐온 것처럼--수치나 죄악이나 사악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똥의 빛깔은 반들반들 광택이 나는 황금빛, 어두운 갈색, 까만색, 투구 쓴 알렉산더 대왕을 묘사한 렘브란트의 그림 빛깔이다. 세 번째 똥을 실은 손수레를 내가 비울 때 푸른머리도요새가 자두나무에서 노래하고 있다. 새들이 어째서 저렇게 많이 노래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이나 다른 것들을 속이기 위해서 노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들을 말하고자 노래한다. 새들의 노래의 투명함에 비교해서 우리의 이야기는 불투명하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진실이 되는 대신 진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 똥을 운반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각기 다른 사람들. 똥은 그들 뒤에 분화되지 않고 남겨진 것이다. 받아들여진 에너지가 타서 남은 쓰레기. 이 에너지는 수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우리 인간의 똥에는, 모든 에너지는 부분적으로 언어적이다. 너무 많은 똥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내가 조심스럽게 삽을 들면서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분해되는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중얼거릴 수 있는” 인간 능력에 악의 출발이 있는 것이다. 18세기에 그려진 “고상한 야만인”에 관한 그림은 근시였다. 그 그림에는 인류의 먼 조상과 그 인간이 사냥한 동물들이 혼돈되어 있다. 모든 동물들은 그들 종의 법칙과 더불어 산다. 그들은(사별의 슬픔은 알지만) 동정심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심술궂지는 않다. 이런 까닭에 사냥꾼들은 어떤 동물들을 선천적으로 고상한 존재--그들의 육체적 품위에 어울리는 정신적 품위를 소유한 존재--로서 꿈꾸었던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했다. 우리 주위의 자연에는 아무것도 사악한 것이 없다. 이 사실은 되풀이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얼거림으로써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이른바 자연의 잔인성을 들먹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 ‘똥 한짐’ 중에서
37. 다음 보기에서 ⓐ와 ⓑ에 들어갈 적당한 문장을 골라서 써 넣으시오. [3점]
<보 기> - 그것은 모든 감각적 요소를 잃어버렸다. - 그것은 우리가 떨쳐버리고 싶어하는 그 무엇이다. - 그것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혐오감을 도덕적인 충격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 그것은 우리 가족과 우리를 방문하는 친구들의 똥이다. - 그것은 암모니아의 양때문에 목구멍을 자극한다.
38. 구멍 속에서 삽질을 할 때 떠오르는 낙원의 이미지는 오감 중에서 어떤 것에 치중되어 있는가? [2점] ① 후각 ② 청각 ③ 시각 ④ 촉각 ⑤ 미각
39. 더럽고 감미로운 냄새에서 “더럽고”와 “감미로운”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의미가 “냄새”를 동시에 수식하고 있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수사법은 똥에 대한 물질적 이미지의 양극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똥은 단순히 더럽고 욕설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그 냄새의 저편에 죽음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낙원의 이미지, 즉 순수함과 신선함에 대한 꿈을 불러 일으킨다. 글쓴이는 정신과 육체, 깨끗함과 더러움, 삶과 죽음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지 않다. 이분법적 사고는 대립쌍 중의 하나는 우월하고 나머지 하나는 열등하다는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그러한 사유는 어디에서 유래하고 있는지 본문에서 찾아서 쓰시오. [3점]
40. 이 글을 통해서 글쓴이가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 것은? [2점]
① 우리는 바로 우리가 진실이 되는 대신 진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② 우리 주위의 자연에는 아무것도 사악한 것이 없다. ③ 엘리트들만이 비겁함을 도덕적으로 사악한 것으로 단죄한다. ④ 모든 에너지는 부분적으로 언어적이다. ⑤ 인간은 자기들의 똥을 가지고 욕설을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