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0.
봄바라기
한반도 최남단 해남이다.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움트는 시기이다. 땅끝 달마산에서 두륜산을 거쳐 흑석산과 월출산으로 봄바람이 일렁인다. 영하의 기온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볕이 따사로워지고 있다. 봄빛이 생동하니 만물이 소생한다는 경칩이 닷새나 지났다. 겨울이 물러가 완연한 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춘분은 지나야 한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다.
봄맞이 마음만 급하다. 두륜산 대흥사 적묵당 앞 수령 350년 대흥매의 은은한 향이 궁금하다. 특히 향기가 짙고, 꽃이 눈부실 만큼 새하얀 빛을 띠고 있어 호남 5매로 꼽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첫 꽃잎 터질 때부터 함께해야겠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장성 백양사 고불매, 담양 지실 계당매, 광주 전남대 대명매, 고흥 소록도 수양매, 순천 선암사 선암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니 과한 욕심이라도 부끄럽지 않다. 양산 통도사에서는 매화가 만발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구례 화엄매의 개화도 벌써 시작되었다.
봄꽃이 너무 그립다. 청명을 전후로 분홍빛 봄이 찾아온다. 달마산 벼랑 끝에 홀로 자리한 작은 암자가 있다. 기암절벽으로 굽이치는 능선길을 따라 800m 정도를 걷는 도솔암 가는 길에는 진달래 나무가 지천이다. 파란 하늘빛과 진달래꽃 연분홍빛의 대비와 조화를 생각하면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겨울꽃인가? 봄꽃인가? 푸른 잎사귀 사이에서 노란 수술과 붉은 꽃을 피웠을 때 아름답다. 하지만 꽃숭어리째 떨어져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있다. 유명한 원로가수의 노랫말처럼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이다. 할머니 산소에서 붉은 꽃을 피울 동백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눈물 되어 꽃봉오리째 바닥을 메울지도 모를 일이다. 춘분 전 며칠 동안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에서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숲으로 가서 온종일 거닐며 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리라. 이제 동백의 시간이다.
겨울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앙상한 나무들의 가지 끄트머리에 붉은빛이 감도니 머지않아 새 이파리가 돋을 것이다. 연두연두한 봄빛이 나뭇가지를 장식할 때면 눈치 없는 여름이 새치기할지도 모르겠다. 꽃이 피면 꿀을 찾아 퍼덕이는 새들의 날갯짓이 연상된다. 작은 새들의 몸부림은 앙증맞아 더 귀엽다. 나에게는 봄을 연상할 너무 많은 추억이 있다. 봄의 소리를 알기에 기다림이 힘들고, 봄의 기운을 알기에 기다릴 수가 없어 찾아 나선다. 어리석은 까닭이다.
다 안다. 자연의 순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작지만 봄기운이 꿈틀거린다. 더디지만 봄은 오고 있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늘 조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