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통영
일시:2002년 12월 12일 목요일~13일 금요일
장소:거제도.통영.포로수용소.외도.청마생가 청마문학관가족 여행
통영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남도 찾아 떠나온 우리 가족의 문학기행은 아스라한 불빛 아래 더욱 영롱하게 빛나고 무엇으로 저녁만찬을 할까 몇 골목을 돌다가 음식점 이름이 독특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2002년 12월 12일 목요일
*깔아놓은 덕석
진주빛 정이 흐르는 술잔에 지친 목마름도 사위고 어둠도 비껴가는 칸타타
등불, 깔아놓은 덕석 위에는 통영의 바다 향기가 농익어 끓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의 동그란 사랑으로 여기 온 모든 이의 사랑이 익어가고, 우리 가족의 사랑도 은은히 익어가고 잇다. 맛있게 해물탕 식사를 하고 통영 시내에서 내일의 기행을 위해 유숙했다.
2002년 12월 13일 금요일
*통영 유자
슬픔이다. 그 험악한 태풍 루사도 견디어 내고 산자락, 들자락에 노랗게 익어 매달렸는데,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 하여 그대로 나무에 매달려 노오랗게 운다. 서리 맞으며.
자동차에서 내려 따고 싶은 심정이다. 한 두 그루도 아니고, 곳곳에 대부분의 유자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 곳 산지에서는 저렇게 홀대 받지만 대도시에 가면 사랑 받는데.
유자야, 당찬 통영의 정절로 님을 기다리는데, 한산섬 앞바다 홀로 지키시던 충무공의 충절로 목늘여 기다리는데 거두어갈 주인이 아니 오시니 어이할까. 애처럽다.
*거제대교
통영에서 거제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다리다. 통영은 아우, 거제는 형님처럼 둘이 둘이 손잡은 모습이다. 남도의 떨어진 두 땅덩이가 쓸려가지 않으려 의맺은 것 같은 풍경이다. 수많은 자동차와 관광 버스 외 여러 차량이 오가고 있다.
* 청마 생가
찾기 어려운 곳을 더듬어 갔다. 고등학교 시절, 의지시로 올바로 이끌어 주신 청마 유치환 시인님의 생가. 그 분의 일대기를 읽으며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거제도 둔덕면. 얼마 전에 생가를 꾸며 좀 어설프지만, 청마 생가 마루에 앉아 보니 어찌하여 그리도 가슴을 울리는 시를 쓰셨는지 알게 되었다. 집앞 논을 지나 아늑하게 바라다 보이는 거제 바다. 파도가 치면 밤 새워 울어댈 것 같은 오붓한 마을. 어찌 시인이 그냥 넘어가랴.
[그리움]-"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물처럼 까닥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라고 읊으셨지. 마루 위 벽에는 [출생기] 시문이 걸려 있고, 그 속에는 태어나시던 날의 큰 울음이 번져 나온다. 뒤뜰에는 채소가 님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고, 문간 사랑방엔 장작불도 따스히 지피려 하는데 먼 길 떠나 아니 오시는 님, 가슴팍이 아려온다.
시인님의 묘소도 조금 위로 가면 동산에 있다고 마을 아저씨가 알려 주었는데 자동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곳이라 하여 아쉬운 발길을 돌려나왔다.
*몽돌
어느 산모롱이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거제 신부에게로 이끌리듯. 산초롱 물초롱 바닷가에 모여 사는 몽돌. 어쩌면 이리도 고울까.
타조알 같은 큰 원형의 몽돌. 동그란 원형, 타원형, 긴 원기둥 모양 등등 잘 다듬어진 돌들. 거제의 특유한 돌이라서 외지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한다. 꽤 넓은 갯가에 모래는 한 톨도 안 보이고 몽돌로 꽉 차 있다. 기가 막힌 풍경이다. 꼭 누군가가 수없이 날라다 꾸며 놓은 돌의 정원 같다.
우리 가족은 하나씩 가슴에 품어 왔다. 그 고운 신부는 지금도 우리집 베란다에서, 거제 바다를 풀어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여차 절벽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이란다. 그러나 절경이다. 외국 어느 절벽에 온 듯. 수십 길 낭떠러지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평화로이 드러누워 있고, 저 멀리 선이 고운 매물도 외 여러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무인도와 유인도.
아주 심한 각도로 깎아지른 절벽을 차마 서서 보지 못하고 엎드리어 무릎을 꺾고 목만 내밀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내 돌아가서 무어라 정할까. 내 영혼 고이 깔아도 좋을 평화로운 이 곳. 차마 남녘 끝단에 홀로 두고 떠나지 못하는 내 발걸음 못으로 박힌다.
*해금강
외도로 들어가는 유람선을 탔다. 가는 도중 해금강을 만난다. 남도 순수의 바다 한가운데 거룩히 솟은 신의 걸작품. 태초의 고독을 장엄한 손등으로 한단 한단 쌓아올린 옥탑.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비경이다.
바다 위에 뜬 금강산. 바위 절벽과 사이 사이 해송의 삶. 푸른 향기로 더 큰 우주를 꿈꾸고 있다.
오늘은 연중 보기 드문 청명일이라 작은 숨소리 하나 떨구지 않으려 태양호 기적선은 바흐의 선율로 해저터널의 문을 두드리고, 문 위의 비원의 기도 솟아 오른 바위 함성에 티끌 같은 목숨을 본다.
때론 사납게 흐르는 바닷물과 해풍에도 흔들림 없이 고적함을 속으로 삭이고 태고 전설처럼 이 바다와 저 하늘과 온 땅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다. 칼날 같은 함묵으로 솟아오른 저 비원의 날개.
*외도
유람선에서 내려 외도에 도착했다. 조금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니 사라사테 집시의 달이 등지 튼 뽀얀 고요가 오색 수를 놓고 있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임에도 이 곳은 봄의 고운 들녘이다. 천혜의 손길로 다듬은 수목의 머리는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는 웅녀의 숨결이고, 동백꽃 붉은 입술이 시름을 태운다. 노오란 치자 열매가 곱다. 하늘도 맑고, 섬 아래 물도 맑고 천국이다.
어느 부부가 낚시하러 왔다가 이 섬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움에 사서 이렇게 아름다운섬으로 꾸며 도시인의 지친 피로를 풀어 주고 있다.
모나지 않은 반듯한 땅에 작은 풀꽃 하나도 옥빛이다. 섬 허리를 휘휘 도는 물살에 한 소쿠리 복으로 차 오르는 물고기 떼들, 고적한 외도를 지켜주는 파수병이다.
내려가기 아쉬운 시간, 등푸른 절규로 떠나가는 배를 붙드는 외도의 영혼.
온 바다에 안개 무리로 작열하다.
*옥포 조선소
오붓한 길 모롱이 한 가득 바닷물이 고인 바다에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다.
완성되어 가는 배와 다 제작되어 수출 길에 오를 준비를 하는 배. 우람한 대한의 기상이 여기서 휘날리고 있다.
상상도 못할 만큼 큰 배를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의 힘이 위대함을 본다. 시린 바다 위에서 피와 살점 다듬어 잉태되는 꿈, 영글어 용트림으로 바다를 가르고 일어서면 오대양을 휘저어 큰 걸음으로 나아가리라.
그리고는 육대륙 곳곳에 대한의 깃발을 심겠지. 하늘을 찌르는 저 위용.
네 앞을 가로막는 광풍인들 무서우랴. 초야에 묻혀 꿈꾸는 달빛 소리로 어둠도 가르고. 눈부신 황금 열쇠로 드높은 세계의 벽도 가르고, 너는 바다의 제왕. 마음껏 달려 넓은 세계로 나아가거라.
*포로 수용소
너른 주차장 위 산자락 아래 숨죽인 침묵이 있다. 민족 동란만도 큰 슬픔이거늘, 어찌 이리도 이념의 벽이 두터워 비극이 파생된 걸까. 6.25 동란 후 돌아가지 못한 전쟁 포로들. 이 곳에 갇혀 숨가쁘게 살아온 생이 떨고 있다.
좌익과 우익이 패를 나눠 서로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 자국들. 여기까지 밀려와 돌아가지 못한 수만 명의 북한 동포가 그래도 살아 보겠노라고 손 끝이 닳도록 제련하는 저 모습, 눈물겹다.
높은 철책에 목숨을 매달고 칼날 위에 선 사람들 폭동이 일어 불길이 번지는 막사에는 민족 자존의 혼이 흐르는데, 서러워라. 죽 한그릇에 연명하며 살아가는 포로들.
아직도 총부리 거두지 못한 이념의 벽 앞에 통곡으로 거제골을 울리는 푸른 넋.
*청마 문학관
마지막 여행 코스였다. 그래서 좀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관람하였다. 통영의 고요한 언덕에 청마 유치환 시인님의 자취가 오롯이 모여 숨쉬고 있다.
살아 오신 시대의 힘듬 만큼 좀 긴 계단을 올라가니 얼마 전에 지었다는 청마 문학관과 생가가 길손을 반기고 있다.
지킴이 여인에게 나의 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를 기증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촉촉한 조명 속에 시혼을 불사르신 때 묻은 고서가 생시보다 더 짙은 향기로 님을 노래하고 있다.
억눌리고 척박한 땅에 문학의 씨를 뿌리고 필경하시던 님의 손길이 살아서 대한의 문인들을 이끌고 있다.
지금은 화사한 봄. 님이 건너오신 살얼음 겨울은 정녕 무너졌는데, 눈뜨지 못하고 누우신 저 모습. 님의 초상 앞에 파르르 내 눈빛이 떨린다. 님이 깔이 주신 고운 길, 한껏 늘씬한 허리로 뭇 시인의 꽃은 피어 일어나는데 일어나 보소서, 님이시여. 조선의 땅에 핀 수천 송이의 꽃들을 얼싸안고 우리 두둥실 춤이라도 추어야지요.
졸지에 교통 사고로 떠나셨기에, 가슴이 더 아려온다. 교직에 계셨음에 님의 시 속에는 교훈과 의지가 주로 담겨 있고, 나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님의 시를 낭송하며 문학의 싹을 틔웠다. 지금도 나의 시풍은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