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강해-6] 손을 힘 있게 하심 (스 6:13-22)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 앞뒤 옆에 있는 분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한 달 전에도 우리는 새해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다시 우리는 새해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을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복들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맘 때쯤 되면 연초에 세운 결심과 계획들이 벌써 흐지부지 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새해 들어서 세운 계획과 결심들은 잘 행해지고 있습니까? 물론 잘 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혹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분들이라 할지라도 음력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결심이 대개 작심삼일로 끝날 때가 많은데 그러한 사람들이 그 결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삼일마다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결심한 것의 효력이 다 떨어질 무렵 다시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03년이 벌써 한달이 지나버렸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뜨겁게 시작된 성전 재건의 역사가 얼마 못가서 그만 멈추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대적의 방해가 반드시 따라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어서고자 할 때, 우리가 부흥코자 할 때에 사단의 방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대적들의 끈질기고 교묘한 방해공작으로 성전 재건의 역사가 멈추어졌습니다. 다리오왕 2년까지 약 16년간에 걸쳐서 그 역사가 그쳐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성전 짓는 일만 멈추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방해를 받아 멈추어지자 하나님이 감동케 하신 그 마음도 식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자는 부흥의 열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는데, 거기에 대적들이 찬물을 끼얹자 그 불길이 순식간에 수그러들고 말은 것입니다. 이 때의 상황이 에스라서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학개와 스가랴서에 보면, 그 때의 백성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찌 그리 빨리 식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결심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몇 일 가면 그 마음이 냉냉하게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심지어는 예배드리면서 먹은 마음이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식어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작심삼일이면 참 많이 가는 것입니다. 돌아서자마자 그 마음이 약해집니다. 예배당을 나서자마자 그 마음이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모처럼 큰 맘 먹고 제대로 할려고 하는데, 그 일이 방해를 받아 막혀버리면, 금방 식어버립니다.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흥에의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기에 그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헌신적이었습니까? 그러나 대적의 방해에 막히자 저들의 상황이 급격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깝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겠지만, 이내 곧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 안주하게 시작합니다. ‘에이 이렇게 된 바에 차라리, 우리 집부터 짓자, 내가 살아야 하나님의 일도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직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학개서 1장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 역사를 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임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처음에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불처럼 일어나 시작했던 일들이 방해에 부딪히자, 아, 아직은 시기가 아닌가 보다 하고 금방 꺽여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작은 방해에도 우리는 금방 물러서고 맙니다. (혹 지금의 상태가 그런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이 땅에 살지만 천국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의 상황이 좋아지고, 살만해져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좋아지면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적인 것들이 먼저 채워져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적회복 없이는 그 삶이 풍요로와 질 수가 없습니다. 혹 물질적인 풍요로움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그 심령에 참 만족이 없고, 여전히 갈하고, 주린 것이 하늘에 속한 자, 성도인 것입니다. 땅의 떡만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늘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 땅의 떡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하늘의 양식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영적 부분이 채워지지 아니하면, 늘 곤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세상의 속임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대적들이 방해함으로 일이 멈추어지자 고통하며,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바에 집이나 짓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식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조금만 상황이 막혀도 얼마나 쉽게 포기해 버립니까?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 읽고 묵상하는 일, 번번히 대적들의 작은 공격에도, 포기해 버리지 않습니까? 그 귀한 것들을 지극히 작은 것들 때문에 빼앗겨 버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에 반해서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역경이 와도 뚫고 나아갑니다.
계속되는 학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학 1:3-6]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저들이 성전 재건하는 일이 막힌 바에 먼저 살길을 찾고 나중에 그 일을 하자고 생각했으나, 그 생각이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은 삶은 방식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니까, 많이 뿌리는데 수입이 적습니다.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않습니다.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합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은혜입니다. 영적 회복없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없이 세상적으로 잘 된다면, 그것은 영적 사생아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백성이라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하나님을 떠나가도, 일이 잘 안되고, 심령이 곤고하고, 왠지 삶이 이상하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다시 학개 선지서 1장 7절부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학 1:7-11]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저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이 무조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는 사인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에 그 길을 막으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제 길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구 경기를 보면, 선수와 감독은 끊임없이 사인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선수가 한 눈을 팔고 있다면 아무리 감독이 싸인을 보내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경기에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작은 싸인에도 금방 알아채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스라 5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의 말씀이 바로 이러한 말씀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의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저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5: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또한 학개서 1장 1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늘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무리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한다 할지라도 그곳에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가 없다면, 참된 부흥은 일어날 수가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의 역사를 포기하고 주저 앉아 있는 자들에게 말씀의 종을 보내셔서 다시 을켜 세우십니다. 그 마음의 다시 흥분케 하십니다. 가라앉은 심령을 다시 부흥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 임하시는 역사는 우리에게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성령충만의 역사는 늘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그 심령이 부흥케 되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전축할 일이 형통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성전을 완성하고야 합니다. 형통케 되었다는 말은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그 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의 5장에 보면, 전에 비슷한 방해가 또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방해와 모함은 여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적들의 방해가 이 일을 꺽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일들이 도리어 성전 재건의 역사에 도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들의 조서 때문에 더 힘을 얻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은 필역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격적인 전 봉헌식을 행합니다. 20년 전에 통곡하면서 기공예배를 드렸던 성전 재건의 역사가 이제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이 고백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 역사하는 손을 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손을 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그 손을 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고 있을 때, 그들의 모든 일들은 헛된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의 종들을 통해, 그 말씀을 통해 다시 저들을 일으키셨고, 흥분시키셨습니다. 또 다시 저들을 방해하는 대적들의 궤계가 있었으나 그 도모를 멸하셨으며, 오히려 그들의 방해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지도자들을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세워나가셨습니다.
[슥 4:6-10]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손을 힘 있게 하셔서 그 일을 이루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올 한해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는 여러분의 손을 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흥분케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힘 있게 세워지는 그 놀라운 역사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그 일을 이루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시작하신 하나님의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빌립보서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시작하신 하나님의 그 일이 그 부흥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짐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그 마음을 놓치 말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