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생의 소망
◑본 문 : 딛 01장 02절~3절
더운 여름 어느 날 나비와 하루살이가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나비가 말했습니다. "하루살이야, 이제 자고 내일 같이 놀자." 그러자 하루살이가 말합니다. "내일 놀자고, 내일이 뭐야!" 이튿날, 나비는 하루살이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나비는 그날 하루살이 대신 한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도록 둘은 재미있게 잘 놀았습니다.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나비야, 이제 우리 들어가서 자고 내년에 만나자." 나비가 말합니다. "내년에 만나자고, 내년이 뭐야!"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살았습니다. 나이 많이 늙도록 잘 살았습니다. 어느 날 신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임종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신자가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불신자에게 말했습니다. “난 행복합니다.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천국에서 만나기 원합니다” 불신자가 말했습니다. “행복, 하나님 품, 천국 그곳이 어떤 곳이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내일, 내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도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시죠? 그리스도인 즉 예수쟁이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바로 이 영생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아주 낡고 허름한 집에서 보냈습니다. 한번은 지인들이 애덤스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지내시다니요” 애덤스는 손으로 신체부위를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했습니다.“집의 지붕과 같은 머리카락은 빠지고 집의 벽과 같은 늑골도 허물어졌어요. 이제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 살고 있답니다” 방문객들은 딱한 표정으로 애덤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요. 저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답니다. 그곳은 정말 좋은 곳이지요”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영생의 소망. 이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인생은 한없이 비참할 뿐입니다. 영생이 우리 앞에 있기에 인생의 고달픈 삶을 참고 나갑니다. 영생을 믿기에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갑니다.
1.영생의 소망을 가져라 (2절) -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얻는 것, 즉 영생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 것 말고 신앙생활 하는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의 목적은 생명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수양을 위해서 입니까? 친교를 위해서 오셨습니까? 심심해서 놀이 차 오셨습니까? 소원 성취를 위해서 입니까? 자녀의 출세를 위해서 입니까? 사업의 번창입니까? 질병의 치료입니까? -- 아니면 이것저것 모두를 위해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어떤 이유에서 나오셨든지 이제는 바른 목적을 찾고 신앙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곧 생명, 영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우리가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가는 것만 뜻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영생의 삶을 사는 것 까지 포함 합니다. 영생의 삶이란 마음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삶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나라에 쌓아 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요, 하늘나라에 가서 주께로부터 받을 상급에 관한 소망이었습니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러한 소망은 험하고 어려운 그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데 커다란 힘과 위안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는 그럴 듯하게 살았다 하여도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 자녀들이, 나의 후손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족들이 보기에, 또 이웃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살았다고, 참되게 살았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누가 죽었을 때 목 놓아 울어줄 사람이 혈육 말고 한 명만 더 있으면 인생은 잘 산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또 그렇게 아름답게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러 영생을 얻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천국에 이르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60년, 80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국은 영원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영생의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할 최종 종착지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천국의 삶을 말합니다. 영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영생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2절)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지구촌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이동원 목사님께서 수원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나이 많으신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분이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아 구원을 받으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이분은 평생 동안 교회에 출석하신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권사님,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서실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권사님은 “확신이라뇨? 목사님, 전 자신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권사님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해 보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암송했습니다. 목사님은 권사님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에는 권사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믿으시는지요?” “네, 당연히 믿죠.” “자,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권사님, 이 말씀이 누구의 약속이지요?” “예수님의 약속이지요.” “그렇다면 이 약속이 진실인 것을 믿으시나요?” “믿지요” “그러면 이 약속처럼 권사님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신다면 멸망치 않고 어떻게 될까요?” 여기까지 대화하다가 갑자기 권사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생을… 멸망치 않네요! 그렇다면 저는 천국 가는 거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 16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것,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히 6:18>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신 7:9>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민 23:19> 말씀하신 바를 분명하게 실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세상은 모두 거짓투성입니다. 거짓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가짜 참기름, 가짜 두부, 가짜 고춧가루, 가짜 메주, 가짜 꿀,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요즘은 가짜 후춧가루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빵가루, 밀가루, 값싼 옥수수 전분을 섞어 만들고 대장균이 득실거립니다. 이렇게 가짜가 많은 것은 가짜 인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경건은 영생으로 인도하여 주며 영생에 대한 소망과 확고한 기대를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고 속임수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또한 이 사실은 그의 신실한 약속에 전 소망을 두고 있는 믿는 자들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거짓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영생의 복을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십니다. 성도들에게 주신 영생이 약속의 확실성과 그 약속이 오래 전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즉 영원 전에 이미 약속하신 것입니다.
3.영생을 세상에 전하라. (3절)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영생은 자기 때에 전도의 말씀을 통해 나타내십니다.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에 약속하시고 이루셨으나 우리 개개인은 복음을 듣고 거듭 날 때 영생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오래 전에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습니다. 자기 때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 생애를 통해서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계시 하신 결정적인 때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방식은 바로 그의 사도들을 통한 전도였습니다. 소위 미련한 방식으로 일컬어지는 복음 선포로 구원의 진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명사가 아닙니다. 전도는 동사입니다. 평신도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흔히 낯선 사람들을 접촉하여 진리로 인도하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대부분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인도로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전도를 성경말씀과 구원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의 행위와 좋은 관계 그리고 결정적인 전도의 말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흔히들 어떤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인해 회개한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불신자가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은 일상의 과정이며 때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맺어 전도하는 것을 ‘관계 전도’라고 합니다. 절대로 세상 친구는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전도를 위한 친구는 사귀십시오. 즉 이미 형성된 관계를 기초로 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관계전도에서 효과적인 복음전도의 핵심은 결국 구체적인 복음을 전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창의적인 접촉점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 하에 있었을 때 평양 네거리에 매일 같이 나타나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처럼 "예수 믿고 천당"을 외쳤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최봉석 목사로 어떤 날 서문통 거리에서 찬송을 부르며 전도하는데 교통순경이 "왜 밤낮 떠들고 야단이냐?" 하며 전도를 제지하려 했습니다. 이때 최목사는 "나만 떠듭니까? 자동차들도 떠들고 있지 않소?" 하며 맞장구 쳤습니다. 그러자 교통순경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동차는 사람들 치지 않으려고 경적소리를 내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목사님은 "나는 사람들 지옥가지 말라고 전도하는 거요"라고 했습니다. 교통순경은 그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으나. "귀찮고 시끄럽고 할 수 없는 영감이니, 속히 내보내라"고 하는 상관의 말에 따라 그냥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결론입니다. 주님의 백성은 영생의 소망으로 삽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생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