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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환난전휴거 이유#3 재림의 절박성
재림의 절박성(The Imminent Return)
교회의 환난 전휴거의 이유#3
본문:약5:7-9
환난전 휴거를 뒷받침 해주는 또 하나의 성경의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교회의 특징을 지적해 주고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는 이렇다.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면 어떤 면에서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하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다음 말씀에서 분명한 뜻을 알수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지금 주님께서 문밖에 서서 우리를 데릴러 오고 계시는 중이다.
어느 순간에 오셔서 우리를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려고 다시 오시고 있다.
교회의 보좌는 이 땅에는 없다. 주님이 계신 하늘 나라에 주님과 함께 올라가야 상급도 있고 기쁨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과 운명은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주님이 오시면 이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모으고 건축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웨치며 바쁘게 뛰다 보면 어느세 떠날 준비를 하기 보다는
세상의 명예와 물질의 보좌가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50명 목회를 하다보면 100명이 그 다음 목표이지 성도를 30명 20명으로 줄인다는 것은 목회 실패요
죽기보다 싫은것이 오늘날 기독교 문화의 대세적인 흐름이다.
이같은 세상적 목회관을 주님의 목회관으로 바꾸는 길은 교회가 이 세상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기 보다는 주님을 날마다 기다리며 속히 임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을 믿고
이땅에 무서운 환난이 임하기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서 성경은 휴거를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부른다. (딛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교회의 환난전 휴거의 교리는 주님의 재림이 절박할 경우만이 가능하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긴박한 것이 아니라
칠년 환난이 긴박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마땅하다.....
그렇게 되면 휴거는 복스러운 소망이 되지 못한다.
첫째: 초대교회의 역사적 증거 최근에 성경을 연구하는 신실한 일꾼들에 의하여
교부들의 신앙생활을 기록했던 중요한 문서들의 먼지를 털고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긴박한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같은 발견은 재림의 긴박성을 공격하고 환난을 통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다.
왜냐하면 재림의 긴박성은 1800년대 몇몇 사람들이 주장했던 교리라고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발견된 중요한 교부들의 문서를 보면 이런 내용들이 기록되어있다
“모든 성도들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환난 전에 같이 모여 주께로 데려감을 당할것이다.
그 목적은 그들이 이땅에 남아서 죄의 관영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혼동으로 압도 당하는 때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AD 374-627 Pseudo-Ephraem문헌) 성경에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7) 말씀데로 진실로 그의 뜻은 속히 그리고 갑자기 성취될 것이다”
(글레멘드 1서 23 {빌립보서 4:3절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동역자 중의 한 사람으로 추정되며
로마의 교회 지도자로서 AD 96년 경에 기록한 서신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우리 주님의 오심의 사건은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으며, 지금 높임을 받고 있으며,
지금 승리의 주님을 보게되는 것이 얼마나 큰 장관일까”
(Tertullian 155-245 AD) 1500 년대 제네바에서 개혁자로서 또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죤 칼빈은 그의 성경 주석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매일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준비하라, 아니 오히려 매 순간 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기에 우리들은 당연히 주님을 영접하도록 매 순간마다 준비해야한다”
1600 년대에 영국의 청교도 퓨리탄에 의해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고백에서 이렇게 선언되고 있다.
"이땅의 모든 육적인 안전을 떨어 버리고 항상 깨어있으라 주님께서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회의 교부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재림의 긴박성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왜 오늘날 이 교리가 공격을 당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중의 하나는 450년대부터 1600년대 사이 즉 종교 암흑시대 기간동안
교회의 배교로 말미암아 모든 재림의 절박성에 관한 문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천년 왕국이 시작되 전에 지상재림 하신다는 전천년(Premillennialism)의 교리도
AD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면서부터 사라졌다.
그러나 17세기 초 개혁운동가들의 회개 운동으로 또한 1900년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오순절 성령체험의 은사로 환난 전 휴거의 신앙의 강력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둘째: 성경적 증거 1.예수님의 비유 주님 께서는 여러번 그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날 임박할 사건임을 강조하셨다.
그의 재림의 절박성을 얼마나 강조하셨으면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 는 도적이 오는 비유를 사용하셨겠는가?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막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막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막 13: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막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2. 신약성경의 서신 만약 교회가 칠년 환난을 통과 한다면 휴거는 위로의 말씀이 될수 없다 .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휴거의 계시를 전해줄때
"그러므로 이 여러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는 말씀으로 권면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고전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3. “마라나타”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의 절박성 때문에 그들이 만나서 인사할때마다
“마라나타”라는 말을 사용했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여기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의 뜻이 "Maranatha 마라나타" 이다
. Mar 는 “주”이며 ana는 “우리들의”라는 뜻이며 tha는 “오신다”의 말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아람어 말이다.
이말은 핍박받던 초대 교회 성도들이 사용했던 암호였다.
당시 헬라말을 쓰던 성도들에게는 이말이 그들의 신앙을 표시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만약 교회가 환난을 통과 한다고 믿었다면 이 인사는 적절한 뜻을 지닌 인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딤전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 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10: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4. "이른비"와 "늦은비" 를 기다리며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야고보는 세 번이나 “주의 강림”을 반복하여 강조하고있다. 이 것은 우리들에게 복스러운 소망이기 때문이다. (딛2: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또 세 번이나 “길이 참으라”고 권면 하고 있다. 주님의 긴박한 재림을 참고 기다리도록 농부의 비유를 사용하고있다. 열매는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농부도 날씨를 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날씨에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한다. “이른비”는 땅을 촉촉하게 적셔서 씨가 잘 뿌려지는 것을 도와준다. “늦은비”는 추수의 숙성을 도와주는 비이다. 본교회 늦은비 교회의 이름은 이같은 뜻에서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마지막 때 휴거의 숙성을 준비하도록 깨어 있는 말씀을 전파하고 증거하는 사역이다. 왜 농부가 오래동안 길이 참고 기다리는가? 열매가 너무 귀하기 때문이다. 추수는 정말 기다릴 만 하다. 성도들이 휴거되어 올라가 주님 앞에 서게되는 열매는 천하보다 귀하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우리들은 휴거의 영적 추수를 기다리는 영적 농부들이다. 구원의 완성인 휴거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 날까지 길이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마음을 굳게하라"는 권면을 받아 드려야 한다.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마지막 때의 교회의 사명중에 하나가 말세 성도들의 “마음을 굳게 하는” 사역이다. (롬 1:11)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우리교회가 재림의 긴박성을 웨치는 이유도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며 또 서신을 기록한 것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굳게 하기 위함이다. (살전 3:2)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살전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한가지 주목 할 것은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는 놀면서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 하면서 기다리는 종이 복된 종이다. (눅 12: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직이가 되어 주인 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주님을 기다리는 종은 원망 불평을 하지 않는다. 원망 불평은 심판자로부터 심판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5.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벧전 1: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유 1: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6. “내가 속히 임하리니” (계 3: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19: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22: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피터 럭크만 목사님의 요한 계시록 주석에 소개된 말씀이다. 독일의 헤른후트에서는 1933년까지 야경꾼이 시내를 돌아 다니며 밤중에 매 시간마다 “고함”을 질렀다. 이 습관은 마르틴 루터 시대부터 시작 된것인데 독일의 나치 시대가 시작되면서 끝났다. 그 고함소리의 내용을 보면; 자정 : “형제 여러분, 자정을 알리는 시간은 한 밤중에 허밍 소리를 듣는 것이요, 우리의 위대한 신랑이 오신다오” 한시경 : ”한 시가 지났으니 날이 어두움 속에서 밝는다오. 샛별이 나타나니 우리의 완악함을 버립시다” 두시경 : ” 두 시라오. 예수님은 이 고요한 계절에 기다리신다오. 형제들이여 의지와 이성 두 개를 속히 복종 시키시오. 세시경 : ”세 시를 알리오 축복된 셋은 몸과 혼과 영으로 부터 최고의 찬양을 받을지라” 네 시경 : ”네 시가 되었오 셋이 간구하여 주께서 그 시기의 네 번째에 오시라고 하는 때요” 다섯시경 : ”다섯 시를 알리오 결혼 예복을 입은 다섯 처녀가 보상 받았을 때 다섯은 버림 받았다오” 여섯 시경 : ” 여섯 시를 알리오 나의 위치를 떠나리라 자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 깨어 있으시오” 7. “주 예수의 은혜가 …” (계 22:20)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서 주어진 마지막 말씀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절박성이 맨 마지막 말씀에서 강조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 할려면 주예수의 은혜가 절박하게 요청된다. 그 중에 필요한 은혜중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의 교리이다. 이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드린다. 마라나타!!! 전윤근목사-씨애틀 늦은비교회www.nujunbi.org 이메시지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글쓴분의 승락없이 복사나 도용이 않되나 단 복음전파 차원에서 복사를 허용하되 ‘전윤근목사 씨애틀늦은비교회www.nujunbi.org‘ 를 반드시 명기해야 됩니다 성함을 지우는 행위나 무법 복사는 믿는자의 신앙 양심상 도리가 아니고 법적으로 위법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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