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강해(14)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본문 : 살전 3:6-9
급하게 데살로니가를 떠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안위를
늘 걱정하였습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있는지.....
아니면 해체되고 말았는지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그들이 잘못되어 지금까지 한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그들에게 돌아가
그들을 다시 돌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즉 사탄이 가로막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참다못하여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앞서 살펴본 2-3절에서는 그를 보내는
분명한 목회적 목적을 설명 하였습니다.
디모데를 통해 그들의 약해진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여 새로운 소망 가운데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겨울이 시작되면 독감 백신을
예방접종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환난과 고통이라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백신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3절).
3절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예수님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일이요(4절),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겨울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처럼....
환난이 올 때 믿음으로 이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덴에서 디모데를 보낸 후
바울은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소식을 가져올 디모데를 기다렸습니다.
디모데가 얼마 만에 소식을 가져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오기까지 바울의 마음은
그야말로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아버지의 심정으로 밤 낮 수고하고
애쓰면 세운 교회입니다.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아버지의 심정으로 -
살전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오래전 이야기입니다(95년 10월 7일 중앙일보).
외국에 나간 아들이 8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자 70이 넘은 노모가 자살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유서에 “아들만 믿고 살았는데...”하며
아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들의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이
그 할머니에게는 생명의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자 외국에 나간
아들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신문에 그 사연이 실렸습니다.
사실은 그 아들이 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면서도
어머니가 충격 받을까봐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좀 더 자세한 기록을 담고 있지 않지만....
사도 바울은 온통 신경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염려하는 것에 쏠려있었습니다.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누워도 편치 않고 도무지 살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서 속히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디모데의 보고>
그러던 중 드디어 디모데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고린도로 돌아왔습니다.
6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예,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디모데가 돌아와서 하는 말인즉 ...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도 급히 떠나 간 바울을
원망하지 않고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이것보다 더 기쁜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요삼1:3-4>
3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과 같은
‘복음’ 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잠25:25)고 말했습니다.
디모데의 보고는 답답하고 불안했던
바울의 심령에 시원한 냉수와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위로>
바울은 디모데의 보고를 받았을 때의
자신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7-8절>
7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든든히 서서
환난 가운데에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은...
바울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살맛이 났습니다.
지금 고린도에 있는
바울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예,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삶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궁핍했고, 여전한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로 떠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행18장에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당시의 바울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6절>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실라가 디모데와 같이 오기는 했어도
데살로니가에 함께 파송되었다가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합류하여
온 것인지 분명치 않다).
<11-13절>
11절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절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절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예, 바울 사도가 일 년 육개월을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열매도 있었지만
(회당장 그리스보가 믿음)지만,
많은 대적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고전4:10-13>
10절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절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절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절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궁핍과 환난과 싸우면서
바울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곤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든든히 서서 환난 가운데에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은
바울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살맛이 났습니다.
<내 속에 눌리는 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여기에서 바울의 삶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시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복음 사역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고후11에서 바울은 자신이 당한
육체적 고통을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고후11:23-27>
23절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절 3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절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절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런데 육체적인 고통 보다
더 바울의 마음을 누르고
괴롭히는 것이 있습니다.
<고후11:28-29절>
28절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절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사도 바울은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끔직한 돌 세례도 받았습니다.
옥에 드나들기를 밥 먹듯이 하였습니다.
고후11:23-27을 읽으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너무 너무 고생한 사도 바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사도 바울처럼
이처럼 혹독한 환난과 고난을 당한
사람이 이 지구상에 몇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한
육체적 환난은.....
자기 자신이 내면에서 겪는 고통과
고생에 비할 데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아무개 성도의 믿음이 행여
약하여지지는 않을까? ....
이번 환난에서 믿음이 떨어지고
주저앉지는 않을까?
낙담하지는 않을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이것이 사도 바울을 참으로 힘들게 합니다.
육체적으로 당한 고난과 환난이
바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다른 교우들의 믿음에 대한
염려로 눌려서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에 이해가 가십니까?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교우들이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외친 것입니다.
‘마음의 무거운 짐을 벗었다’라는 표현입니다.
‘마음에 눌리는 것으로부터
자유을 얻었다’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에서 해방되니....
이제는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교회 지도자의 마음입니다.
특히 속회를 맡고 있는 속장의 마음입니다.
<맺는 말씀 - 감사하는 바울>
사도 바울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2과 2:13에 이어 세 번째로
아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도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역사)
때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씨를 심고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공로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참 신앙인의 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서로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이 믿음 안에 거함으로 피차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라나는 우리의 믿음으로
(서로의 믿음을 바라볼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고.....,
서로에게 큰 기쁨이 되고......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