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로운 문장작법
’쌀은 곡식의 하나다. 밥을 지어 먹는다.‘
선생이 이런 예를 주면
’무는 채소의 하나다. 김치를 담가 먹는다.‘
이런 문장을 써놓아야 글을 잘 짓는 학생이었다. 자기의 감각이란 사용될 데가 없었다. 양쯔강(揚子江) 이남에서 “서리 맞은 잎이 2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라 한 것을 2월달에 꽃이라고는 냉이꽃이나 볼지 말지 한 조선에 앉아서도 허턱 “온산 가득한 단풍이(滿山紅樹) 오히려 2월의 꽃다운 계절보다 낫구나(猶勝二月花辰)”하였다. 뜻이 어떻게 되든, 말이 닿든 안 닿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글만 지으면 된다. 자기 신경은 딱 봉해두고 작문(作文)이란 말 그대로 문장의 조작(造作)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장작법이란 글을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첫째,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
글짓기가 아니라 말짓기라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이요 생각이요 감정이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글보다 말이다. ‘글 곧 말’이라는 글에 입각한 문장관은 구식이다.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문장작법은 글을 어떻게 다듬을까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는 수가 많았다. 이제부터의 문장작법은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 데, 감정을 살려놓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자신만의 문장작법이어야 한다.
말은 사회에 속한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소유인 단어는 개인적인 것을 표현하기엔 원칙적으로 부적당할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의식의 개인적인 것을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가진 학자도 있다.
아무튼 현대는 문화 만반에서 개성을 강렬히 요구한다.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사상의 교환을 현대인처럼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정과 사상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문장처럼 편리한 것이 없을 것이니, 개인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은 현대 문장연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 생각한다.
전화로 말소리를 그대로 들을 뿐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저쪽의 표정까지 마주보는 시대가 되었다. 어찌 문장에서만 의연히 척독대방식(尺牘大方式), 만인적(萬人的)인 투식문장(套式文章)에다가 현대의 복잡다단한 자기 표현을 맡길 수 있을까.
셋째, 새로운 문장을 위한 작법이어야 한다.
산 사람은 생활 그 자체가 언제든지 새로운 것이다. 고전과 전통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오늘‘이란 ‘어제’보다 새것이요 ‘내일’은 다시 '오늘'보다 새로울 것이기 때문에, 또 생활은 ‘오늘’에서 ‘어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서 ‘내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의식적은 아니라도 누구나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자꾸 ‘새것’에 부딪쳐나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보수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생활 자체가 무한한 새날을 통과해나가는, 그 궤도에서 역행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나날이 새것을 표현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 만다. 그러나 흔히는 새것을 새것답게 표현하지 못하고 새것을 의연히 구식으로 비효과적이게 표현해버리고 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언어는 이미 존재한 것이다. 기성의 단어들이요 기성의 토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전 처음으로 부딪쳐보는 생각이나 감정을, 이미 경험한 단어나 토로는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 회화에서처럼 제 감정대로 절대의 경지에서 선을 긋고 색을 칠할 수는 없지만, 제3자에게 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새로운 용어와 새로운 문체를 쓸 필요가 있다.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비전통적인 문장으로 비난을 받는 뽈 모랑(Paul Morand)은 자기가 비전통적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는데 그 답변은 어느 문장계에서나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완전한, 전통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프랑스어로 무엇이고 쓰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무엇이고 그런 것을 쓰기 전에 먼저 나에겐 나로서 말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나로서 말하고 싶은 그런 것은, 유감이지만 재래의 전통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프랑스어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전통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말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것이 뽈 모랑 한 사람에게만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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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턱 이렇다 할 이유나 근거 없이 함부로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3.1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