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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 본문 주해와 적용
하나님 나라의 비밀
허주/교려신학교 신약학 교수
오늘날 설교자로서 마태복음 13장의 독자들은 현재 설교자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 공동체의 삶의 정황과 함께 이 본문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설교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중심의 역사- 신앙적 문맥에 정초해서 ‘그 때 그 말씀의 비밀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나가면서 ‘오늘의 이 말씀의 의미’를 제시해야 될 것이다.
하늘 나라 비밀들의 보화 창고
‘하늘 나라(천국/하나님 나라) 비유의 장’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13장 은 모두 7~8개의 예수님의 비유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하늘 나라의 비밀을 의미있게 계시하고 있는 본문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는 마태복음 전체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데, 리델보스(Ridderbos 1990: 394)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한 천국 비밀에 대한 가르침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현재의 단계에서는 감추어진 독특한 방식으로) 이미 도래했다는 이 큰 하나의 비밀에 전부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예수님의 비유와 하나님 나라, 그리고 이 두 관계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위해서는 불름버그(Blomberg)의 「비유해석학』과 리델보스 (Riddebos)의 『하나님 나라」를 참고할 것). 마태복음 13장에는,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13:1~9, 막4:1~9, 눅8:4~8)와 겨자씨 비유’(마13: 31~32, 막4:30~32, 눅13:18~19)가 있기도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없는 누룩 비유(마13:33, 눅13:20~21)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막4:26~29의 씨 자라는 비유와 비교), 감취진 보화 비유, 값진 진주 비유 그물 비유 그리고 새 것과 옛 것의 비유가 나오고 있다. 이 비유들을 종합적으로 연관시켜 고려해 본다면, 결국 마태복음 13장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예수님의 하늘 나라 증거가 그 시작은 미미하게 보이지만, 이미 도래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 종말론적 실재와 함께 이 하늘 나라의 엄청난 가치가 장차 예상치 못한 커다란 영적 결실로 나타나 마지막 때에 그 하늘 나라에는 거짓 백성들과 구별된,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 가운데 깨닫게 되는 참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거하게 될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교를 위한 마태복음 13장의 단락 구분
마태복음의 전체 구조 속에서 13장의 위치는 베이컨(Bacon)의 견해와 특히, 엘리스(Ells)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학자들의 견해에 따른 교차대칭구조의 차원에서 볼 때(허주, “마태복음의 문학적 성격”, 「그말씀』 2001년 2월호, pp. 58~59 참조할 것), 마태복음 전체 이야기의 중앙에 속하는 핵심적 문매일 뿐 아니라, 마11장에서부터 더욱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아울러 13장 끝 단락에 서도 언급되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의 거절(11:19,21, 23, 12:2, 24, 38, 13:53~58)의 주제 안에서, 예수님의 하늘 나라 비유들이 샌드위치 되어 소개되어 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마태복음 안에서 하늘 나라에 대한 중요성뿐 아니라, 이 하늘 나라의 비밀이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깊은 상관 관계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 13장 1~52절의 물리적 구분은 다음과 같이 되어진다. (1) 씨 뿌리는 자 비유(1~9절: 비유1), (2) 비유 목적에 대한 설명(10~17절), (3) 씨 뿌리는 자 비유 해설 (18~23절), (4) 곡식과 가라지 비유 (24~30절: 비유2), (5) 겨자씨 비유 (31~32절: 비유3), (6) 누룩 비유(33절: 비유4), (7) 비유 목적에 대한 부연 설명 (34~35절), (8) 곡식과 가라지 비유 해설 (36~43절), (9) 감취진 보화 비유(44절: 비유5), (10) 값진 진주 비유(45~ 46절: 비유6), (11) 그물 비유(와 해설) (47~50 절: 비유7), (12) 새 것과 옛 것의 비유 (51~52절: 비유8). 마태복음 13장의 이런 내용에 있어, 킹스베리(Kingsbury 1991: 27~34)는 1~35절과 36~52절을 나눔으로써 크게 두 단락으로, 데이비스와 알리슨(Davies & Allison 1991: 370~ 372) 21~23절, 24~43절, 44~52절의 세 단락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외에도 게르하드슨 (Gerhardsson 1972~73), 웬함(B. D. Wenham 1978~79) 등의 학자들은 13장에서의 조직적 또는 대칭적 구조를 다르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다소 무리 있는 고안들이라고 판단된다(헤그너 1993: 362~ 64). 따라서, 필자는 13장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청중과 그 배경이 36절부터 전이되고 있음에 주의하면서도(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1~2절과 비교할 것), 37절부터 43절까지가 앞에서 언급된 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절)에 대한 해설임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마태복음 13장 1절에서 52절까지의 본문을 아래와 같이 편의상 적절하게 나누어 비유들 중심으로 해설하고자 하는데, 그 내용은 지면의 형편상 제한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서 구분되어질 비유 단락들은 각각 한 편의 설교 본문으로 사용되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설교자는 각 비유 설교에 있어 그 비유를 사용하시는 목적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증언(10~17절; 34~35절)과 두 비유들에 대한 해설(18~23절; 37~43절)을 함께 고려하면서, 설교 본문으로서의 각 단락을 소화해야 될 줄로 안다.
1. 예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심(1~35)
1.1. 배경과 상황(1~2)
1.2. 씨 뿌리는 비유와 그 해설 (3~9; 18~23)
1.3. 비유의 목적: 드러냄과 숨김 (10~17; 34~35)
1.4.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그 해설 (24~30; 37~43)
1.5.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31~33)
2.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심(36~52)
2.1. 배경과 상황(36)
2.2. 감춰진 보화 비유와 값진 진주 비유(44~46)
2.3. 그물 비유와 그 해설(47~507
2.4. 새 것과 옛 것의 비유: 하늘 나라
서기관들을 위한 결론적 서술(51~52)
하늘 나라 비유의 두 청중
마태복음 13장은 ‘그 날에(Ἐν τῇ ἡμέρᾳ)’라는 표현과 함께 시작함으로써, 13 장의 비유가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마12:46)’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이시며, 그 분의 뜻을 깨달아 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제자들(13:49)’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참 하늘의 가족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신 바로 그 날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강론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마태복음 13장 1~52절 가운데 비유 밖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유를 직접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13:1,2,3,10,24,34,36,52)과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두 그룹, 즉 무리/저희/그 들 (13:2,3,10,11,24,34,36)과 제자들/너희(13:10,11,16,17,18,36)로 구분되어진다(개역성경). 예수님의 제자들은 13장 1절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비유의 주된 청중은 35절까지 무리(34절 참조)인 반면(이에 비해 10~ 23절의 비유의 목적과 그에 따른 그 해설은 제자들에게만 하 는 것으로 비쳐짐), 36절부터는 제자들 임을 보게 된다. 이와 함께 그 장면 배경은 전자의 경우,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것(마8:14 참조)으로 추측되는 그 ‘집에서 나와(τὴν οἰκίαν)’ 바닷가와 해변을, 후자의 경우는 무리를(말하자면, 바닷가와 해변을 떠나 그 ‘집에 들어가시는(ἐλθὼν εἰς τὴν οἰκίαν)’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말해주는 것은, 하늘 나라 비유를 듣고 있는 예수님의 청중들로서 무리/저희와 제자/너희가 갈라지고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 전자는 하늘 나라 밖의 사람들로서 그 비밀에 닫혀있어 듣고 보아도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들로(거절), 후자는 하늘 나라 안의 백성들로서 이 비밀에 열려져 있어 듣고 보아서 깨달 아 결실을 맺어야 할 자들로(영접)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13:11~17, 35). 이런 면에서 2절에 ‘큰 무리(ὄχλοι πολλοί)’가 예수님께 모여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사 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감 동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다(마 8:10~ 12 와 비교해 보라). 그렇다고 예수님께서는 자 신에게 몰려온 수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좀 더 효과적으로 큰 무리를 향해 하늘 나라 에 대해 강론할 작정으로 배 에 올라가 앉으셨다.
주렁주렁 맺혀질 하늘 나라 말씀의 씨앗들 : 3~9절, 18~23절
배에 올라 타신 예수님께서는 정성껏 여러 가지 교훈들을 비유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비유를 뜻하는 단어 파라볼레(παραβολή)는 마태복음 13 3절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 해서 본 장에서만 11번(10, 13, 18, 24, 31, 33.34 - 2회 -, 35, 36, 53)이 더 사용되 고 있는데(마 15:15: 21:33, 45: 22:1 24:32 - 마태복음에서 모두 17번, 마가복 음에서 13번, 누가복음에서 18번 그리고 히 브리서에서 2번 합하여 신약성경에서 모두 50번 발견됨) 이것은 본문의 경우 예수님께 서 깊은 영적 진리 즉 하늘 나라 (19, 24, 31, 33, 44, 45, 47)의 세계를 일상 생활의 평범한 소재들을 가지고 설명하기 원하실 때, 그 전달 수단으로서 이용하시던 일종의 수사 적 어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르 침은 그 당시 청중들의 대부분이었던 유대인 들에게, 예수님은 그 당시 랍비들과 같은 율 법 교사로 간주되면서도 그들의 권세와 능력 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로서 비춰지게 되었던 것이다(13:54; 7:28~29: 21:45~46).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며 하나님 의 아들로서, 그리고 자신들의 경전에 예언 된 그 메시아임을 깨닫고 알아보기에는 그들 의 영적 눈과 귀와 마음'이 너무 닫혀 있었 던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라는 이름으로 알려 진 이 비유는 그 처음 시작하는 3절 "씨를 뿌 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Ἰδοὺ ἐξῆλθεν ὁ σπείρων τοῦ σπείρειν)와 함께 예수님 자신의 해설인 18절의 표현 "씨 뿌리는 비유를" 더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보는데, 이 비유는 그 주된 내용뿐 아니라, 비유 후에 주어진 예수님 자신의 해설의 경향에 기초해 볼 때 '땅들의 비유'로도 명명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실제로 헤그너 1993: 365」는 이 비유 를 후자의 이름으로 제목화 하였다; 불름버 그 71996: 286~91」는 이 비유가 다소 복 합적인 세 요점을 담고 있는 (씨 뿌리는 자/ 열매 맺는 씨/열매 맺지 못하는 씨) 비유들 속에 범주화 시켰다). 따라서,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자 (3, 18절)의 주체적인 행위를 일차적으로 고려하면서(그리고, 이 씨 뿌리는 자'에 대한 해설이 없는 것도 역시 고려하면 서), 씨가 떨어진 네 가지 땅들을 또한 주 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네 가지 다른 토양은 결국 두 가지 땅으로 구별할 수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열매 맺지 못하는 땅(씨)' 과 열매 맺는 땅(씨)'이다. 전자는 (1) 길 가에 떨어진 씨로서 새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토양으로 말씀은 들었으나 (19절의 τὴν ὁδὸν σπαρείς은 4절의 '씨가 떨어지매' 의 해설) 깨닫지 못한 자에게 악한 자가 그 뿌려진 씨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 (2)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흙이 깊지 아니하여 싹이 빨리 나왔으나 해가 돋은 후에 말라 버리는 토양으로서, 말씀을 듣고 (20절의 τὸν λόγον ἀκούων은 5절의 씨가 떨어지 매의 해설) 즉시 기뻐하였지만, 그 말씀의 이해와 깨달음의 깊이를 더 해 주는 뿌리가 없어,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 때에 신앙을 버리는 자로, (3)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그 씨가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로 인해 방해 가 되어 성장을 멈추게 되는 토양으로서, 말 씀을 듣기는 (22절의 τὸν λόγον ἀκούων은 7절의 씨가 떨어지매 의 해설) 하였지만 이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이 영적 성장을 질식시킴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토양이다.
이에 비해, 이 비유의 마지막 끝 부분은 매우 극적으로 종결되어진다. 그것은 바로 열매 맺는 땅으로서의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큰 결실을 하게 된 것으로, 말씀을 듣고 그 리고 깨닫는 자가 결실을 하여 (23절의 τὸν λόγον ἀκούων καὶ συνιείς, ὃς δὴ καρποφορεῖ는 8절의 떨어지매·••결실을 하 였느니라'의 해설) 각각 100 배. 60 배. 30 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길가. 흙이 얇은 돌밭 그리고 가시떨 기에 떨어진 씨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씨 뿌리는 자 가 씨를 떨어뜨려, 각각의 땅에 그 씨가 떨어졌음에도, 그 씨의 결실이 맺어지 지 못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땅 은 씨가 뿌려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씨의 결실을 보아야 하는 땅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해설 부분에서 의례적으로 그 설명이 없는 씨 뿌리는 자'는 유대인 청 중들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 (18 절의 첫 단어는 강조적 표현으로 되어있는 '너희들은 그러므로 들으라 (Ὑμεῖς οὖν ἀκούσατε)로, 이 비유 해설의 청중이 11절 의 저희들(ἀκούσατε)과 대조를 이룬다) 일차적으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 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사 55:6~ 13, 특히 10~ 11절과 에스드라 2서 4:26~ 32와 후대 유대 랍비 문헌 아보트 랍비 나단 8: 2가 고려 될 수 있음). 그러나 여기서 뿌리는 자의 씨가 그 (하늘) 나라의 말씀 (ToU Noyov Tis Baauleias' 19절)이라는 것은 씨를 뿌리는 자 가 하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오 신 예수님 자신을 또한 의미한다(마 4:17: 5:1~20, 45~48; 6:9~13, 33: 9:35. 10:7: 11:4~6: 10:28: '하늘 나라의 말 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 복음 「마 4:23; 9:35: 24: 14」으로 이해할 수 있 유)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또한 알곡과 가 라지 비유 에서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 람 (24절)을 인자 (37. 41절)로 해설하는 것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이것은 또한 초대교회와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인 씨 뿌리는 자를. 예수님과는 물론 구분되는 차원에서,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는 모든 신실한 증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여 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열매 맺지 못한 각각의 땅에도 그 씨가 떨어졌다'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한 사 람들도 '하늘 나라의 말씀'을 들었다(19. 20, 22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복음 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는 자는 중요하고 축복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 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늘 나라 말씀 과 복음을 들은 자들은 그것을 깨달아야 하 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자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23절의 OUULLs는 19절 th ouveros와 대조를 이루는데, 이것은 19~22절에 나오는 자들 역시 모두 말씀을 받고 하늘 나라 비밀'을 깨닫지 못했음을 시 사하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마태복음 13장 의 7지 비유들을 다 끝마치고서, 예수님께 서 제자들에게 묻는 질문에서도 증거 될 수 있다(아래를 참조하라). 그리고 그 하늘 나 라비밀을 깨닫게 되면(비교, 막 4:20 말씀 을 듣고 받아 : 눅 8:15 말씀을 듣고 지키 어), 그는 반드시 결실을 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자(마 7:16, 20: 12:33; 21:43 참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말씀을 받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관련 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하늘 나라 복 음의 말씀들이 뿌려지는 이 세상에 악한 자 (0 monpos 19절 ~ 38절의 '악한 자는 39절의 마귀와 같은 의미임을 참조: 막4:15은 6 MaTavas로, 눅 8:12은 6 olaBolos 로 기록)가 있다는 사실과 이 악한 자(들)의 방해가 말씀을 받은 자들에게도 미 쳐, 어떤 이에게는 말씀 자체를 빼앗아가 버 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환난이나 핍박의 환 경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세상의 염려와 재 리의 유혹을 통한 인격적인 시험으로(눅
8:13 참조) 말미암아, 받았던 말씀을 결실하 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악한 자 (들)의 방해와 시험이 있다 할지라도, 이 비 유와 그 해설의 강조점은 역시 마지막 부분에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늘 나라 말씀 을 듣고, 깨달은(회개한) 자에게 따라오는 당연한 결 실이다. 키스트메이커(Kistemaker 1986:38~39)는 이 비유의 하이라이트가 그 당시 평균작인 십 배의 수확을 훨씬 능가하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를 예수님께서 말씀 하 심으로써, 하늘 나라의 (종말론적) 풍성한 수확에 있다고 하였다(누가는 단지 백 배의 결실만을, 마가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순서로 증언하고 있는데, 여기서 순서의 차 이는 큰 신학적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그 강조점은 역시 큰 결실/수확 에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 비유의 핵심은 씨 뿌리는 자 와 씨가 뿌려진 토양 의 성격과 함께 뿌려진 씨'의 마지막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다. 말하자면, 뿌려진 씨는 실패(죽음)와 성 공(생명/구원)의 결과 양쪽에 모두 열려져 있는데, 씨가 성장하고 결실하게 되는 경우 는 씨와 함께 씨를 뿌린 자가 있었기 때문이 라는 당연한 이유('하나님의 은혜 )와 함께 그 뿌려진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 말씀을 받은 자의 깨달음을 통한 인내와 헌신의 반응 )의 중요함에 있다. 이것은 바로 천국 의 비밀과도 연관된다.
하늘 나라의 말씀을 뿌리며 그 나라의 비 밀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과 그 은혜가, 인간 차원에서의 책임과 무관할 수 없는 신비로움 속에서 - 한 편으로는 그 말씀을 받는 자('좋은 땅 )들의 깨달음(회개 와 믿음)이 또 다른 한 편으론 그 말씀을 거 부하는 자('좋지 못한 땅)들의 깨닫지 못함 (교만과 인내치 못함)이- 진행된다. 현재 거절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 미 시작된 하늘 나라의 운동이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의 제자/증인들이 모여 교회를 통해 계속 전파되어지고 있는 하늘 나라' 복음 운 동이, 장차 놀라운 (종말론적) 결실로 열매 맺혀질 것을 약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끝이 좋을 수밖에 없는 하늘 나라 자녀들: 24~30절, 37~43절
마태복음에서만 소개되고 있는 이 비유(막4:26~29의 씨가 자라는 비유와 비교)는 앞에 서술된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와 같이 씨를 뿌리는 자와 그 뿌린 씨의 결과에 대한 언급, 그리고 이 비유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 접 해설(여기서 36절 이하로부터 나오는 이 해설은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무리를 떠 나 제자들을 향하여 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 할 수 있다) 을 하신다는 점에서 앞에 서술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공통된 요소를 가지 고 있다.
그러나, 그 비유의 핵심은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비유가 시작되는 24절에는 다 음에 나오는 비유들의 첫 구절에서 공통적으 로 발견되는 표현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 은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신 것이 무엇보다 드러낸과 감종 (11~17절: 34465점)의 의도를 가진 비유라는 사실과 이 비유는 바로 하늘 나라 비밀로서의 그 무엇에 초점이 있음 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가(예수께 서) 그들에게 다른 비유를 베풀면서, 가라사 Neyou - 24, 31, 33절): "하늘 나라는 마치 ..과 같으니"(apowen bOlatori h Baauela ray oipavav - 24, 31, 33, 44, 45, 47절: 52절 참조).
이 비유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과 단어들 의 풍자적 의미는 37~39절에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1)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 (24절)은 집 주인' (27절; 마 10:25, 20:1, 21:33 참조)으로서 인자 (37절). (2) 밭 (24절)은 세상 (38절), (3) 좋은 씨/곡식' (24절/29~ 30절)은 하늘 나라의 아들들 (38절) (4) 가라지' (25절)는 '악 한 자의 아들들' (38절). (5) 가라지를 심은 원수 (25절)는 마귀 (39절), (6) 추수 때 (30절)는 세상 끝 (39절), (7) 추수 꾼 (30절)은 '천사들' (39절). 이 비유는 예 수님의 복음 사역을 통해 이미 하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심 판이 있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하늘 나라 운 동이 벌어지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 들과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자녀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종들의 생각과는 다른) 집 주인 그 분의 주권적 뜻 안에서(28~ 29절) 허락하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하늘 나라에 이미 4역 이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적지 않 은 고난과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악한자(들)로 인한 이 세상에서 당 하는 지금의 고통이나 어려움은 오히려 장 리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안전을 더욱 확고 하게 하기 위한 역설적 과정임을 보게 된다(29~30절).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보다 이 같은 두 부류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 그 끝이 분명히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마치 추수 때에 다 자란 알곡과 가라지처럼, 종말의 마지막 풀무불 심판 때(단 3:6: 말 4:1 참조)에 하나님의 사람들과 마귀의 사람들이 온전히 구별될 뿐 아니라, 마커의 자녀들은 심판으로, 하나님 의 자녀들은 그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된다(단 12:3: 말 4:2 참조)는 것에 있다.
이 비유의 대상과 의도는, 그 당시 예수님을 거절하는(교만하여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초점은 오히려 예수님이 거절 당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따르고 있는 또는 따라야 하는 제자들(그리고 장차 모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비중이 있는 것 같다(해설 부분들 참조). 따라서, 내용의 포인트는, 하늘 나라에 속한 자녀들이 심판의 때까지 악한 마귀의 시험들을 인내하고 이겨냄으로써, 마지막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 세상에 이미 펼쳐진 하늘 나라 시작과 과정, 그리고 특히 그 마지막 때에 펼쳐질 한 비밀을 드러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믿음의 눈으로 미리 보아야 할 하늘 나라: 31~33절
세 번째로 소개되는 겨자씨 비유(막4:30~32: 눅 13:18~19 병행구) 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소개하는 데 있어 앞의 비유들과 유사한 소재들( 밭, 심은', 씨)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형식의 간결성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이 겨자씨 비유는 네 번째로 소개되는 누룩 비유와 한 짝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싶 다(눅 13:18~21에서도 이 두 비유들은 함 께 소개되고 있다). 즉, 겨자씨 비유는 하늘 나라 도래의 시작이 외형적으로 볼 때 보잘 것 없고 초라하다는 점, 하지만 그 나라의 마 침은 역시 외형적으로 매우 강력하고 풍성한 결과를 낳음으로써. 그 시작과 마침의 차이 가 비교될 수 없는 하늘 나라의 속성을 보여 준다(겨자씨가 큰 나무로 장성한 묘사의 구 약적 배경이 될 수 있는 단 4:10, 12, 21 ; 겔17:23: 31:6: 시 104:12, 16~17을 참조 하라). 이에 비해, 누룩 비유(눅 13:20~ 21 병행구)는 역시 적은 양의 보잘 것 없어 보이 는 누룩이 가루 서말(oaTa Tpla는 약 50 kg으로 성인 150 명 가량을 먹일 수 있는 많은 양) 속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늘 나라 의 나타남이 내부적으론 미미하게 보이고 은 밀하지만, 이 나라의 영향력은 그 힘이 미치 는 곳(사람)마다 분명하고도 풍성하게 나타 난다는 것(마 16:6, 11~ 12; 고전 5:6: 갈5:9 참조 및 비교)에 그 초점이 있다(겨자씨 비유에서의 모여드는 '공중의 새들과 누룩 비유에서의 여인'의 나타남은 그 당시 유대 인의 집 안팎의 자연 환경과 부엌 상황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단순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비유들은 하늘 나라의 외적이고 내적인 두 역설적 속성을 하 나의 짝으로 보여줍으로써, 결국 하늘 나라 의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비밀스러운 시작(과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마침은 그 처음과 감 히 비교할 수 없는 장성함과 풍성함에 큰 강 조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의 보화, 우리 마음의 진주: 44~46절
36절 이후로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 해설 (37~43절)뿐 아니라, 44~ 52절까지의 비유들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또는 천국 백 성들)에게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는 이 다섯 째와 여섯 째의 감춰진 보화 비유' (44절)와 값진 진주 비유 (46~47절)는 앞에서 보았던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와 마찬가지로 그 비유의 모티브와 주된 핵심에 있어서 하나의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모티브와 관련해서, 우리는 감춤'(hiddenness)과 작음' (smallness)을 언급할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누룩과 보화의 비유에, 후자의 경우에는 겨자씨와 진주의 비유에 각각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이 두 비유에는 5가지 공통된 요소들이 발견되는데, (1) 매우 가치있는 것에 대한 실재(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가 있으며(enpaupo와 ToAtTuoy uapyap (Tnu), (2) 그것을 발견하게 되고(eipov 44, 46절), (3) 돌아가서(UTdyeL 44절/ &TeAdiy 46절), (4)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팔아(TavTa ood EfeL. ElSev 44절, 46절), 결국 (5) 그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 게 된다(ayopilker 44절/hydpaceu 46절)는 것이다(헤그너 1993: 396) 한편, 밭에 감취진 보화를 발견한 자의 기쁨은 우연한 경우에 그리 되었음을 암시하는 반면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난 상인은 계속해서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것임을 다소 대조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보화(잠 2:4: 시락 20:30 참조)와 진주(욥 28:18; 잠 3:15: 8:11 참조)의 두 비유는 그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짝을 이루며 핵심적인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다. 즉, 이 두 비유들은 하늘 나라의 엄청나고 기가막힌 가치와 이 가치를 깨달은 하늘 나라의 백성들만이 과감한 결단과 희생을 (너무나 당연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늘 나라 비밀을 발견한(깨달은) 자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나라의 가치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 가치를 바로 깨달은 자는 이것의 존귀함으로 인해, 자신이 그 동안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팔고(버리고) 천국의 절대적 가치와 바꾸게 되는 새로운 삶 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남아야 될 하늘 나라 의인들: 47~50절
그물 비유로 알려진 이 비유는 네 개의 절들로 구성된 짧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유와 함께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비유(그물 어부/ 좋은 물고기/나쁜 물고기)를 불름버 그(1996: 256~ 58)는 앞에서 보았던 '알곡와 가라지 비유 (농부/알곡/가락지)와 마친가지로(251~56) 단순한 '세 요점 비유'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서, 그는 그물을 하나님이 말세에 모든 사람을 모으는 것에 대한 주권적 행위의) 상징"(256)으로, 각종 (TauTOS Yevous) 물고기는 서로 다른 민족 내지 종족을 대표하는 것(257)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비유의 핵심은 마치 두 종류의 좋고(정결하고) 못된 (부정한) 물고기들을 따로 구별하여 나누어서 못된 것은 버리고 (심판), 좋은 것은 그릇에 담듯이(구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세상의 마지막 어느 한 때에 "의인 중에서도 악인을 따로 갈라내어"(apoplovalv Tous TOPOiS EK HÉOOUTÔV SIKaÍOv) 7991 그들이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비유는 또한 가라지 비유와 마찬 가지로 그 마지막이 비극적 이어서, 그물 비유와 함께 소개되고 있는 해설의 마지막 부분 50절은 가라지 비유의 마지막 해설 부분인 42절의 그것과 헬라어 원어가 동일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이 있으리라" (그러나, 43절과 같은 의인들의 소망에 대한 해설 구절이 그물 비유에는 없다). 이 비유는 하늘 나라가 이미 도래한 이 세상에도 '의인들과 악인들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 하지만 이 세상 마지막 때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악인들은 의인들의 자리인 하늘 나라에 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라지 비유의 교훈처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가라지 비유 해설과 그물 비유가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목도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풀무불에 던져진 자 들이 '울며 이를 갊이 있음'은 '악인들로 판명된 자들이 자신들의 그런 신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인들로' 착각하고 있다가,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의인들의 자리인 하늘 나라에 들지 못하게 되자, 그들 나름대로의 억울함과 분을 삼키지 못하는 형편을 빗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이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의 마7:21~23절과 8:10~13절을 참조해 보라). 결국, 의인들은 악인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들은 그 마지막 심판 때 나타날 불가피한 갈라짐 속에서도 악인들과 달리 하늘 나라에 끝까지 남아있게 될 자들이다.
하늘 나라의 비밀을 전할 자들: 51~52절
51~52절에는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짧은 대화와 함께 새 것과 옛 것의 (보물 창고)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앞에서 살펴본 7가지 비유들처럼 실제적으로 하늘 나라의 그 무엇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이 마지막 비유는 예수님께서 이제 하늘 나라의 비밀들을 듣고, 깨달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신분과 사명을 새롭게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그 교훈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5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질문,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our KaTE TOUTa mdvTd;)는 일차적으로 36~50절까지의 해설과 비유들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실상 3절부터 시작되는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과 해설들을 모두 다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보여진다. 예수님께서 비유들을 통해 하늘 나라 비밀들을 설명하신 후, 그가 최종적으로 자신의 제자들이 깨달았는지에 (13, 14~15, 19, 23절; 마 16:12: 17:13 참조) 대해 묻고 있음은, 하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하늘 나라'의 비밀(특히,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시작된 종말론적 현재로서의 하늘 나라와 이 세상 마지막 심판 때에 온전하여질 하늘 나라, 그리고 이 구속사적 과정 속에서 의 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의 잠정적인 하늘 나라)을 깨달아, 그 나라에 속하는 은혜를 입어('좋은 땅, 알곡 , 좋은 물고기') 그 나라의 가치( 감춰진 보화와 값진 진주'를 소유한 자로서의 결단과 헌신을 통해 장차 따라올 풍성한 영적 결실(좋은 땅, 겨자씨 , 누룩)을 맺고 마지막 심판 때에 영광의 자리(알곡, 좋은 물고기')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의 긍정적 답변에 따라 52절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는 '그러므로 (6ld ToiTo)'로 시작함으 로써, 위의 논의가 타당함을 입증해 준다.
이 비유는, 하늘 나라 비밀을 깨달은 예수님의 제자들(그리고 후에 예수님의 일반 증인들)은 이제 하늘 나라 비밀에 대한 가르침과 교훈을 받은 진정한 서기관들(YPAMATEUS MaOnTEVELS TÂ BaGIlEia Tor oipavav)로서, 마치 '새 것과 옛것'을 그의 보화 창고로부터 꺼낼 줄 아는 집주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은, 하늘 나라 서기관으로서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그들의 보화 창고'(마6:20~21: 19:21 참조)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Ridderbos 1990: 417).
그리고 이들은 바로 이 보화 창고 로부터 (exToo, enoaupoi atTob) 하늘 나라의 계속되는 가르침과 교훈을 주어야 할 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화 창고는 '하늘나라의 비밀, 하나님을 깨닫는 지식과 믿음'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옛 것(TaNala)'은 이 하늘 나라 또는 하나님을 계시해 주던 율법(옛 언약)으로. '새 것(kalva)'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통해 그의 새롭게 하시고 더 온전케 하시는 가르침(새 언약)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마5~7장 참조). 그리고 이제 이 하늘 나라 복 음을 전파할 자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 언약의 시대에서 옛 언약의 시대를 다시 바라보면서, 하늘 나라 증거에 있어 좀 더 능동적인 주인 의식을 갖춘 집주인(olkoSeOTOTn 27절 참조)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즉, 보물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집주인으로서의 특권과 새 것과 옛 것을 꺼내어서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지혜 로운 집주인으로서 말이다. 이런 면에서, 마태복음 13강의 하늘 나라 비유들은 그 일차적 대상이 하늘 나라를 증거해야 될 예수님의 제자들(그리고 후에 다른 예수님의 증인들)에게 있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또한 이 비유들 속에 나타난 '마지막 심판 때의 의인과 악인의 갈라짐'은, 하늘 나라에 이미 속한 제자들(과 오늘날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사역의 현장 가운데서 신령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목해야 될 자신들을 위한 경계의 메시지라 할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말
오늘의 설교자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비유들이 하늘 나라의 비밀들을 계시하는 것에, 그리고 이 계시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인격과 사역)에 대한 구속사적 메시지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비유들을 해석하고 적용할 경우, 설교자가 또한 주의 깊게 실펴보아야 될 것은 비유 속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예, 좋은 씨를 뿌린 사람, 원수, 일하는 종들, 추수꾼, 의인화된 사물들인 곡시고가 가라지)들을 잘 고려하면서, 비유의 일차적 핵심을 문맥에 따라 파악하면서 그 적용을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을 나누면서, 예수님의 이 땅에서 보여주신 인격과 사역은 그 당시 유대인들뿐 아니라 오늘 날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유 그 자체’로서 하늘 나라를 여전히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말하자면, 오늘의 비유를 깨닫지 못하고 그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그 비유’이신 예수님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하늘 나라의 드러냄과 감춤의 신비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주권적 은혜와 회개치 못하는 인간의 자율적 교만함과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 속에서 오늘날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신적 비유, 교회'를 통해 여전히 그 신비를 더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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