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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질문 3가지
즉 권위의 출처에 대한 질문
6:3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평범성 강조
언급되는 것
고대 사회에서 이는 “우리가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
문제의 핵심:
친숙함 → 경멸
헬라어
“ἐσκανδαλίζοντο”
= 걸려 넘어지다, 실족하다
즉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6:4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예수의 예언자적 자기 이해가 드러난다.
세 범주
점점 더 가까운 관계로 좁혀지는 구조.
의미
→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구약 선지자 전통과 연결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신학적으로 중요한 구절
그러나 의미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믿음의 부재 때문
마가는 두 사실을 함께 말한다.
즉 완전한 부재는 아님
6:6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놀라는 장면은 매우 드물다.
예수께서 놀라는 두 경우
마가는 불신앙의 심각성을 강조.
4. 신학적 메시지
① 친숙함이 믿음을 방해할 수 있음
사람들은 예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믿지 못했다.
② 불신앙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한다
기적은 믿음과 깊이 연결
③ 예수는 선지자적 사명을 가짐
구약 선지자들과 동일한 거절의 패턴을 경험
④ 거절은 사역의 끝이 아니다
6:6b에서 예수는 다른 마을로 계속 사역
5. 마가복음 전체 구조 속 위치
이 사건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앞부분
이 사건 이후
즉 메시아 거절의 시작을 보여주는 장면.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 불신앙은 예수의 사역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믿음의 문제
본문 : 막6:1-6
본문 말씀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왜 예수를 믿지 못할까요?”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랍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지혜를 얻었지? 어떻게 이런 능력을 행하지?”
그런데 곧 분위기가 바뀝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니야? 마리아의 아들이잖아. 우리가 어릴 때부터 보던 사람 아니야?”
결국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배척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몰라서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그저 “동네 목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친숙함이 믿음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오래 다니면 예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게 됩니다.
성경 이야기, 기도, 예배… 모두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거 다 아는 이야기야.” “이미 많이 들은 말씀이지.”
하지만 문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닫힌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예수님의 진짜 정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놀라운 말을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놀라는 장면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불신앙을 보고 놀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새롭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예수를 너무 익숙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신앙은 “많이 아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열린 마음으로 예수를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수를 정말 믿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익숙하게 알고 있는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예수님을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익숙함이 믿음을 가로막을 때
본문 : 막6:1-6
우리는 종종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멀리 있는 것은 귀하게 여기고, 늘 곁에 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늘 가족과 함께 살다가 직장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에 집중하느라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집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때로는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혼자 생활하게 되자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함께 먹던 밥 한 끼, 아무렇지 않게 나누던 대화, 늘 들리던 가족의 목소리.
그때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는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공기의 소중함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숨쉬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비로소 공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할 때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병을 겪고 나서야 건강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놓쳐 버리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신앙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성경 말씀, 예배와 기도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익숙함이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미 아는 이야기야.”
“그 본문은 많이 들어봤어.”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새롭게 듣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셨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릴 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그저 익숙한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믿음의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익숙하게 알고만 있는가?”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1.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회당은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마다 모여 말씀을 읽고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여러 곳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놀랐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지혜를 얻었지?”
“이 사람의 손으로 이런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 질문만 보면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믿음을 찾는 질문이 아니라 의심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닫을 수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믿음은 단순히 많이 보고 많이 듣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음의 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으면 작은 말씀에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아무리 큰 기적을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설교를 듣습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평가하고 있는가?”
말씀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을 때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본문2. 익숙함이 믿음을 가로막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보다 예수님의 배경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이 말 속에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잘 안다.”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을 새롭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익숙함의 위험성입니다.
익숙함은 때로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더 이상 깊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우리는 성탄절 이야기도 알고, 십자가 이야기도 알고, 부활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함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경외심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예배도 익숙해집니다.
기도도 익숙해집니다.
말씀도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생깁니다.
“이건 이미 아는 이야기야.”
“또 그 말씀이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모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미 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본론3. 불신앙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합니다
본문은 매우 놀라운 사실을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몇몇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신 것 외에는 큰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을까?”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때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가 됩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음이 열려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지만 불신앙이 가득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라는 장면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장면은 매우 드뭅니다.
그만큼 불신앙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더 큰 일을 하시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 일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예수님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라온 환경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목수로 일했던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아는 그 사람 아닌가?”
그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익숙한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익숙함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예수님을 찾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익숙하게 알고만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십자가도 알고 있습니다.
부활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많이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어제의 이야기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시며 우리 삶 속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늘 새로워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 마음이 익숙함에 묶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을 새롭게 보게 해 주십시오.”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익숙함 때문에 예수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도 새롭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때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