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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관심은 "언제인가?"였다.
그러나 바울은 종말의 날짜보다 종말을 준비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② 주의 날은 도둑같이 온다 (2절)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
하나님은 일부러 날짜를 감추신다.
그래야 모든 시대의 성도가 항상 깨어 있게 된다.
③ 세상은 평안을 외칠 때 멸망을 맞는다 (3절)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
세상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때 심판은 시작된다.
문제는 심판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이다.
II. 성도의 정체성 (4-5절)
핵심: 성도는 어둠에 속하지 않는다.
①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않다 (4절)
도둑같이 오는 날도 빛의 자녀에게는 예상 밖의 재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준비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바울은 종말의 정보를 주기보다 성도의 신분을 먼저 말한다.
행동은 신분에서 나온다.
② 빛의 자녀, 낮의 자녀 (5절)
두 표현은 같은 의미이다.
빛 = 하나님
낮 = 구원의 영역
어둠 = 죄와 심판
성도는 심판을 피하려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다.
III. 깨어 있는 삶의 권면 (6-8절)
핵심: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세 개의 명령으로 진행된다.
① 자지 말자 (6절)
"잠자지 말고"
여기의 잠은 4장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영적인 무감각이다.
신앙생활은 무관심해지는 순간부터 무너진다.
② 깨어 있으라 (6절)
"깨어 있다"(γρηγορέω)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사용하신 단어이다.
항상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를 의미한다.
③ 정신을 차리자 (6절)
"근신하자"(νήφω)
원래는 술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확장되어 절제, 분별, 자기 통제를 의미한다.
④ 밤과 낮의 대조 (7절)
잠자는 사람도 술 취하는 사람도 밤에 활동한다.
이는 죄의 영역을 상징한다.
⑤ 영적 군사의 무장 (8절)
믿음
사랑
구원의 소망
여기서는 군인의 갑옷으로 묘사된다.
이 삼중 구조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믿음, 소망, 사랑과 연결된다.
깨어 있음은 불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무장하는 삶이다.
IV. 권면의 신학적 근거 (9-10절)
핵심: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가 아니라 구원으로 정하셨다.
① 하나님의 예정 (9절)
"우리를 세우심은"
구원의 목적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진노가 아니라 구원이다.
여기서 진노는 최후 심판을 말한다.
② 그리스도의 죽으심 (10절)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종말 신앙은 십자가 위에 세워진다.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성도는 살든지 죽든지 주와 함께 있게 된다.
③ 살아도 죽어도 함께 (10절)
여기의 "자든지"는 4장의 죽음을 다시 의미한다.
따라서 생존한 성도, 죽은 성도, 모두가 주와 함께 산다.
V. 공동체적 결론 (11절)
핵심: 서로 세워 주라.
바울은 종말 교리를 공동체의 격려로 마무리한다.
"권면하다" (παρακαλέω)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이다.
"덕을 세우다"(οἰκοδομέω)
집을 세우듯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것을 뜻한다.
종말론의 목적은 공포가 아니다.
계산도 아니다.
서로를 굳게 세우는 것이다.
종말 신앙은 공동체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단락은 교차적인 논리 전개를 이룹니다.
A (1-3절): 주의 날은 세상에 갑작스럽게 임한다.
B (4-5절): 그러나 성도는 빛의 자녀이므로 그날을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다.
B′ (6-8절):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깨어 있고 믿음·사랑·소망으로 살아야 한다.
A′ (9-11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가 아니라 구원으로 정하셨고,
그 결과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 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전서 5:1-11의 핵심 주제는 "주의 날의 시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말론을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교리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신앙의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의 삶
본문 : 살전5:1-11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언제 큰일이 일어날까?",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까?"와 같은 질문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의외의 답을 합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날짜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준비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온다고 말합니다.
도둑은 언제 오는지 미리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날짜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성도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라."
우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은 공포의 날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소망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무뎌지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과 사랑을 흉배로,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키는 힘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이며, 사랑이며, 소망입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권면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에 우리는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를 위해 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
종말 신앙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게 만듭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실 날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빛의 자녀답게 깨어 있으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하고,
서로를 세워 주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