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곡해를 예방하는 길
오래된 유머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열탕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라고 말하자 아들도 얼른 열탕에 들어갔다가 너무 뜨거워서 펄쩍 뛰쳐 나오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고 중얼 거렸다는 말이다. 이는 아버지가 물이 정말 시원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물은 뜨겁지만 그 물로 인해 긴장과 근육이 풀리면서 몸이 이완되기에 시원함을 느낀다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 뜨거운 물이 어떻게 시원하냐고 따진다면 우매한 따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실상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의도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오해와 곡해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속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상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은 평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사람이 서로 친하고, 평소 소통이 잘 되면 눈빛만 보아도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상대가 애써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상대의 마음을 알아 치리고 상대의 불편함을 채워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소통과 대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고차원적인 소통이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듣기 전에 미리 판단하고 이런 저런 훈수를 들려고 할 때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 말을 할 때 그 사람이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들어 주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중에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을 풀어 갈 때가 많이 있고, 듣는 사람은 충분히 들을 때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당하게 할 말이 잘 정리되게 된다.
지난 금요일 말씀 나눔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고백한다. 그동안에는 말하기에 바빴는데 이제 내가 듣다보니까 들으면서 많은 것이 정리가 되고, 생각지 못했던 많은 소스들과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그렇다 오해와 곡해를 예방하는 것은 깊은 경청에서부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