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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풍속화 중에는 요샛말로 섭민들의 레크레이션을 주제로 삼은 그림들이 더러 있다. 순박한 서민사회에서 즐길 수 있는
이러한 놀음이라 하면 우선 간편해야 되고 또 짧은 여가에 어느 곳에서라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했으므로 기껏해야
씨름이나 고누 정도의 소박한 주제로 되어 있다. 이 <고누놀이> 그림은 그러한 서민 오락의 본바탕을 허식 없이 관찰한 작품의
하나로, 더벅머리 총각 머급들을 둘레로 한 서민 ㄴ생태의 한 단면이 생생하게 사실되어 있다.
어느 동구 밖 나무 밑에서 기약 없이 벌어진 이 고누 놀이의 정경은 무거운 지게를 방금 벗어 놓고 잠시 숨을 돌리는 후련한
심정과 하찮은 승부지만 그런대로 한곳으로 쏠리는 흥겨움이 있어서 고누를 두는 사람이나 훈수를 하는 둘레의 열띤 감정을
자못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겉부시시한 총각머리의 흐트러진 모습들이나 앞가슴을 풀어헤쳐서 배꼽까지 드러내놓고
희희낙락해 하는 그들의 자세 속에는 과거 한국 사회의 밑바닥 길을 보이기도 한다.
단원의 풍속화에서는 세상을 이렇게 어설피 살아간 서민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밝고 뜬세상을 살아가는 흥겨움 같은 아련한
즐거움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된다. 이것은 작가 단원의 인생관에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무렵의 사회상을 반영한 어질고 너그러운 서민 생활감정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가난 속에서
그렇게 너그러운 표정들이 신기롭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많다.
장죽을 물고 노송 그루에 비스듬히 기대어 젊은이들의 자태를 묵묵히 바라보는 맨상투 차림의 어른과 턱없이 희희낙락해 하는
젊은이들의 감흥도 매우 대조적이지만, 길가에 벗어놓은 나무지게의 맵시는 한국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울 사회가 어서 이 지게
신세를 벗어나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게의 영상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산촌에 가면 지금도 이러한 나무제게의 대열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흔히 볼 수있다. 지난겨울 지리산 화엄사에 갔을 때
보고 놀란 일리지만 아침마다 수십 명의 소년들이 지게를 지고 장장행렬을 이루고 산곡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년들의 머리와 복장이 변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 산촌의 연료 조달 수단은 예나 지금이나 산을 헐벗겨 먹는
자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단원의 풍속화에는 목수, 미장이, 기와장이, 도부꾼, 머슴살이, 대장장이, 주모, 마부, 뱃사공, 어부 등에 이르기까지 가지
가지 생업을 즐기는 서민들이 너그러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이 머슴살이 소년들의 인상은 그중에서도 출중한 표현을 보여준 것
이라고 느껴진다. 마치 단원의 신선도神仙圖에 나오는 선동들의 얼굴처럼 천진하고 태평스러워 보여서 땀내가 몸에 절어 있는 머
슴들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 즐겁다.
말하자면 머슴살이 초동들의 풍모와 행색을 가장 잘 사실한 이 그림에서 오히려 선동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것은 작가 단원의 사
람됨과 그 덕기의 힘으로 땀에 젖은 초동의 뭇 얼굴 솔에서 천진한 맘씨와 소밗한 모습을 간추린 까닭이라고 하고 싶다.
-정설촌 옮김
첫댓글 등 따시고 배 부르면 만족인 것을....범사감사의 지혜를 그림으로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