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원 박아람 옮김, 민음인 출판사, 2012.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느껴져서 누군가에게 자꾸 소개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비록 지구 반대편(호주에서도 서쪽 끝 퍼스)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였지만 바로 나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였기에 실감이 팍팍났다.
이 책은 저자가 세 아이들과 함께 6개월 동안 화면이 나오는 전자기기들, TV PC 스마트폰 게임기를 사용하거나 보지 않기를 작정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어느덧 이러한 전자기기들에게 중독되어 이것들이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은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들과 결별하겠다니 얼마나 커다란 모험인가??? 저자는 이 모험을 그 당시(18450년)에 미국의 최첨단의 문명사회를 뒤로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월튼>이라는 명작을 남긴 소로우를 본받겠다는 각오로 단행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찌나 감칠맛 나게 썼는지 읽는 내내 참으로 유쾌했다.
이것은 실험이었다. 온갖 기기를 다 이용하다가 끊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현대 생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일시적으로만 끊겠다고 작정하고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실험은 실험이 끝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소로우도 그랬듯이. 이 가족들도 다시 그 기기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실험 전과는 다르게 덜 사용하고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전철을 타고 가노라면 10에 8~9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나는 마지막 최후까지 그러지 않고 책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불과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자기기의 범람과 남용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동안 많이도 즉흥적이게 되고 사고가 얇아지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된 느낌이다. 미디어 기기에 중독된 어른이나 아이들은 모두 그것들에 몰두하여 사용하고 있을 때는 행복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 때가 가장 게으르고 수동적이며 소모적이며 집중력과 생산성도 최악이 된다. 또한 다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이어폰의 악영향으로 난청難聽인구가 많아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정도 상황까지 되다 보니 이러한 기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여 인간의 가치와 품성을 더 높였다고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 기기들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보통 4인 가족으로 치면 (초기에 전자기기들의 구입비용은 빼고도) 스마트폰 4개 사용료, 집전화 비용, 집인터넷 접속료, 케이블 TV이용료 등으로 한 달에 약 30여만원이 들어갈 것인데, 이 비용은 한 가구의 지출비용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알고 통신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한 예로 직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저자는 집에 있는 아이들과 통화를 많이 할수록 자녀 양육의 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통화했는데, 나중에 결산을 해 보니 불안은 줄어들었겠지만 이는 오히려 휴대폰과 엄마에 대한 의존증만 심화시켰다고 본다. 그 때는 왜 이것을 몰랐을까?
전자기기의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많다. 우선 이 기기들을 통하여 각자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가능하여 대화와 소통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된다. 우리 집처럼 밥 먹으면서 TV를 시청하는 보니 어쩌다 만나는 가족 간의 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한 가족이 승용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더라도 좁은 한 공간에 모여 있을 뿐 각자 다른 기기들과 접촉하면서 각자의 세계에서 빠져 있다 보니 가족공동체의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요즈음 아이들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어 부모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잘 안 듣는다. 저자가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더 잦아진 가족간의 모임과 대화를 꼽았다.
이 책에 나온 저자의 가족은 나름대로 의식 있는 집안인데도 이렇게 저렇게 전자기기에 매몰된 경우였는데, 그래서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는데, 문제는 더 가난하고 형편이 안 좋은 집의 아이들은 더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경우는 아마도 사정이 더 안 좋을 것이다. 저자도 직장을 가진 바쁜 한부모(싱글맘)이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먹는 것 중에 단 것이나 기름진 것은 통제하면서) 아이들이 전자기기에 빠져드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통절히 자책을 하고 있다.
‘기술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의 약속은 언제나 부담이 따르는 거래이며 종종 모순적인 거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는 특히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현격하게 줄여 주었지만 깨끗함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높아져서 더욱 많은 빨래를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환경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청결하고 깔끔해졌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노고와 자원과 비용의 낭비는 심각하다. 또한 집의 유선전화와 흑백TV만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에 비하여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더 많은 지출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 여유가 없고 바쁘게 생활하게 되니, 그 때에 비해 행복의 총량이 더 늘어난 것 같지도 않다.
전자기기의 목적은 정보전달에 있는 것인데, 문제는 점차로 이러한 비용증가를 부담할 수 있는 계층과 그러지 못하고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계층으로 나누어진다는 데에 있고 이 계층의 분화 현상은 사회의 정보접근성에 대한 격차로 벌어지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부와 신분의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정보통신 기술의 시대에서 다시 예전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종이위에 필기도구로 글을 쓰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진 기능이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을 겨우겨우 뒤따라가는 나에게도 이제 필기도구로 (간단한 메모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물 건너갔다. 사고자체가 컴퓨터 자판에 맞게 바뀌어져서 생각이 나는 것과 자판을 두두리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그러기에 이제는 컴퓨터 자판 앞에서만 글이 쓰여진다는 얘기다. 저자도 그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전자타자기가 나올 무렵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생각의 속도에 따라 글자를 쳐낼 수가 있었다...자판이 글쓰기의 도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또 하나의 감각 기관이나 다름없었다”(251쪽)
컴퓨터를 통한 편집은 정말로 환상이다. 글쓰기 속도는 늘었고 책도 많아지고 정보도 많아졌다. 세계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뉴스와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저자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뭐를 할 수 없는 짜투리 시간에 나는 수시로 인터넷 포털싸이트를 들락거리며 뉴스와 정보를 찾으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제목이 자극적인 연애인들 기사와 사진들은 지나치기 힘들다. ‘하의실종’ ‘칼힐’ ‘명품 몸매’ ‘연애설과 이혼기사’. 내가 보기에도 내가 한심스러운데... 저자도
“우선 나는 수많은 지식인 성인들이 그러하듯 ‘뉴스’를 다이어트 콜라처럼 소비했다. 하루 종일 실속없이 마셔댔다는 얘기다... 식사를 하고 30분 동안 낮잠을 자다가 바로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고 묻는다. ‘새로운 소식 있나?’.. 우리가 마치 열혈팬이나 스토커라도 되는 것처럼 ‘쫓아다니는’ 뉴스의 ‘효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 저널리즘에서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118쪽
저자는 세 남자와 살았었고 그 중 두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이 책을 쓸 때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 공지영과 비슷하다). 한창 민감한 아이들을 설득하여(아마도 돈도 쥐어준 것 같다) 이러한 실험에 참가하게 한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있고 의식있는 엄마의 아이들이니까 나름대로 수준이 있는 애들이겠고 그래서 잘 견디어 낸 것이 아닐까! (남편들은 이러한 부인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여성은 또한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남편을 싫어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러한 사생활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솔직담백한 글이 되었고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대단히 궁금해 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지금은 호주를 떠나 23년 만에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 저자가 돈도 많이 벌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이 많이 저술해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세상을 품위있게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봐 보시라! 책이 좀 두껍지만 유쾌하고 유익하다!
첫댓글 일전에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라는 다큐도 있었는데 의미는 다르지만 범람하는 것에 대한 경고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팟캐스트 듣느라 출퇴근시 거의 이어폰을 끼고 사는데 혼자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출근이나 퇴근 둘 중의 하나는 이어폰을 벗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