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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당의♡산행스토리 스크랩 여수 금오도 비렁길 (2코스~1코스)
와룡당 추천 0 조회 213 14.09.28 21:3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8. 일요일 직포교회

  숙소는 4일이 일실이다. 옆자리에 있는 회원이 간간이 거친 숨소리를 하더니 코를 곤다. 그래도 참을 만하다가 더 거칠게 골면 베개를 잡아 당겨 본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 직포 교회로 향한다. 어제 위치를 확인한곳으로 향한다. 교회는 마을 뒤 도로를 따라 300m 교회에 도착하니 마침 실내에 불이 들어온다. 직포에서는 가장 큰 건물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두 줄로 있다. 십여 명이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성경도 없이 앉아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 성도가 성경과찬송가를 내 앞에 놓는다. 아마 목사 부인으로 보인다. 시작 전 요한 일서부터 삼서 까지 낭독이 끝나니 목사가 나와 새벽 예배를 집전한다. 성경 구절은 에스라 인데 쉽게 찾지를 못하니 성경을 준 여자가 에스라 구절을 찾아 준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용은 성전건축에 대한 내용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이다. 우리교회도 새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지 어언 10년이다 되나 아직 완공치 못하고 있는데, 이곳 금오도 직포교회에서도 성전 건축에 대한 논의가 있는가 보다.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건축에 대한 설교가 머릿속에 남아 맴돈다. 여객선 선착장 쪽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밀물시간인가보다. 방파제 주변에서 비박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낚싯대를 준비하여 방파제로 향한다. 부부가 같이 온 부지런한 농부 대야 임회장이 나와 아침산책중이다. 아침인사를 한다. 시간이 나면 꼭 부인과 같이 산행을 즐긴다. 인생은 60부터란 말이 어떤 것인가를 음미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살만치 살고 자식들도 다 여우고 건강할 때 많이 놀러 다니고 기회 있을 때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임사장의 생활 철학이다. 임사장과 직포 해변을 거닐어 본다. 어제 비박을 위해 소나무 아래에 자리한 익산부부는 벌써 자릴 떠나고 없다. 파란 잎으로 삭막함을 치료하는 담장이가 시멘트담장을 어루만진다. 해변 중앙쯤 소나무 아래는 조약돌로 재단을 만든 곳이 있다. 이곳에서 직포섬사람들은 해마다 어부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 하였을 것이다.

9. 금오도 비렁길 2코스(직포에서두포까지)

  아침식사는 7시에 시작된다. 출발시간은 8시이다. 대장이 출발 전 안내를 한다. 오늘 점심은 일 코스 중간 산 정상에 있는 아빠와아들 팬션에서 한다고 안내한다. 배낭을 챙기는데 어제 갈아입는 속옷 보따리가 없다. 숙소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나올질 않는다. 혹시 하며 샤워장에 가니 그곳에 있다. 대야 부부임사장이 선두로 출발이다. 시간은 7시 30분 한여사와 동행이 되어 직포를 출발하여 두포로 향한다. 이정표는 두포신선대 2.8km 함구미절터 8.8km 우학선착장 3.5km를 알린다. 비렁길은 지나온 포구같이 만을 끼고 돌아 나간다. 세아 베스틸에 다니는 회원이 해안을 벗어나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피부는 가꾸어야 하는 것인가? 요즈음은 남자들도 화장을 하는 시대라 그런지 피부에 많이 신경을 쓴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들도 간단히 화장을 하여 주는 곳도 있다. 나의경우는 어떠한가? 집사람이 남들 앞에 가면 냄새가 나니 외출할 때는 양치는 물론 얼굴에 무얼 바르라고 하나 마이동풍이다. 얼굴은 항상 번들거려 그런 것을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난다. 그러나 아침 세면 시 면도하면 그만이다. 얼굴이 당기는 현상도 없다. 햇빛을 받으면 곧장 타는 피부라 시커머스이다.

높다란 돌담을 지나 이정표는 숲길로 안내한다. 오르막 비렁길은 쉬 지치게 한다. 자연 뒤를 돌아보니 직포의 소나무가 아침햇빛에 부연한 모습이다. 해안절벽에는 통통거리며 낚싯배가 서성인다. 촛대 전망대에 이르니 직포만의 아늑한 전경이 들어온다. 바람도 없어 바다는 유리같이 잔잔하다. 사방을 두러보아도 촛대같이 생긴 바위를 보지 못하고 돌아선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렁길을 돌아 오르니 조그만 빈집들이 스레이트 지붕을 밧줄로 동여매고 있다. 태풍에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가 흙을 넣어 쌓은 헛간의 돌담은 한쪽이 무너져 내려 돌보지 않고 있다.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짐을 옮겼을까? 생각하는데, 집 위쪽에 시멘트포장길이 나온다 길에 올라서니 이정표는 굴등전망대를 알린다. 한여사는 다녀오라며 먼저 간다. 굴등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직포만과 저 멀리 서쪽의 고흥반도가 손짓을 한다. 통통거리며 고요한 해변을 잠 깨웠던 낚싯배는 갯바위에 낚싯꾼을 내려놓고 이제는 조용히 쉬고 있다. 갑자기 지나온 집 쪽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민가는 비어 있었는데, 고개를 연신 기웃거리게 만든다. 회원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한 회원이 말한다. 산속에 오골계가 있었다고 키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잡으려고 하니 도망을 가더란다. 사육하던 것이 야생이 되었나 보다.

두포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길 정상에는 팬션이 있고 조그만 슈퍼도 있어 간식거릴 팔고 있다. 두포까지는 시멘트 포장길 계속된다. 길가 숲에는 검은 주름관이 지나고 있는데, 아마 위쪽 팬션에서 나오는 오수를 모으는 관인가보다. 두포에 도착한 시간이 9시 2코스 종주시간이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이정표는 함구미 선착장 6.1km를 알린다. 두포 민박집 담장 밑에는 가스통을 반으로 잘라 바비큐 통이 뻘건 몸통을 하고 피곤한 듯 몸을 부리고 있다. 최신식 버스정류장 벽 유리에는 버스시간표가 부착되어 있다. 일호 차 이호 차 버스 두 대가 운행되는가 보다. 시간표 및 에는 버스운임표와 택시운임표가 같이 쓰여 있다. 택시 기본(2km)이 3,800원이다. 포구에 마련된 평상에는 대야 하나로 점포장 일행이 막걸리를 목을 축이며 쉬고 있다. 한 잔 하고 가시란다. 오늘은 주일이니 절제이다.

10. 금오도 비렁길 1코스(두포에서 함구미까지)

  두포마지막 민가에는 방풍 전복 칼국수집이 멋진 간판을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방풍잎과 전복을 겸한 칼국수인가보다. 때가 되었으면 한 그릇 먹어보고 싶게 입간판만 보아도 구침이 된다. 돌담의 흔적은 집터자리임을 알린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빈집이 늘어간다. 자식은 고향을 떠나 객지로 가고 시골에 홀로 남은 노인들이 저 세상으로 가면 빈집으로 남아 있다. 농촌어촌을 살리고자 정부에서는 귀농귀어 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각 지자체에서 운영한다. 농어촌 총각들의 결혼문제 동남아 및 외국여성들이 이주하여 이세를 낳아 기르지만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농촌의 앞날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에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할 사람이 없어 문을 닿아야 할 지경이다. 몇 년 전 제주도 올레길을 트래킹 하던 중 추자도에서 본 외국인 여성들 산간오지나 어촌 농촌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은 오래전부터 이들이 아니면 장가를 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버스정류장은 두포마을분무골이라 이름을 달고 유리벽에는 비렁길 해안 절벽 사진이 풍광을 자랑한다. 포구를 지나 숲길로 접어드는 비렁길은 현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 옆으로 이어져 함구미포구로 향한다. 넓적넓적한 돌이 깔린 비탈면을 지나는 곳에는 칡덩굴이 자라 다른 식물들은 번접을 못하고 있다. 신선대에 이리니 많은 트레킹 족들이 절경에 빠져 감탄사를 연발한다. 임회장과 한여사를 신선대 앞에 세워 기념을 남기며, 배낭을 벗어놓고 쉬어 간다. 서쪽으로 고흥반도가 더 가까이 보인다. 이제는 누구나 카메라맨이 되어 소중한 추억을 스마트폰에 간직한다. 머리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계가 대신하여 오감의 즐거움을 일회성으로 날려버리고 기계 앞에서 추억을 생각한다. 나의 스마트폰은 아직도 전화기일 뿐 컴퓨터 노릇은 아직 멀었다.

비렁길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절경이 계속되는 곳이나 이곳 신선대는 더욱 전망이 뛰어나다. 함구미 포구에서 그리 먼지 않아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상한 부부도 많다. 시선대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점심 하는 곳 까지 시간이 넉넉하여 신선대에서 한껏 아름다움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고요한 천상의 세계가 신선대이련만 이름과 같이 신선한 자리가 아니라 장터속이다. 여기저기에서 눌러대는 셔터 소리와 눈의 즐거움을 소리로 표현하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로 신선대 주변이 이름과 고요하지 못하다.

직포에서 받아온 찜질한 물을 마신다. 바닷가 지하수라 소금끼가 있나 보다. 건건한 물을 마시고 배낭을 챙긴다. 하늘을 가리는 숲속에는 비자나무 한그루가 몸통에는 파란 콩란을 입고 나이를 자랑한다. 내장산 원적암 언저리에 있는 비자림의 무성함과 해남 고산 윤선도의 생가가 녹우당이란 이름이 이 비자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기억이 스친다. 우리 집 마당에도 화단을 가꾸며 심어놓은 비자나무 몇 그루가 요즈음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옛조상들은 이 비자나무 열매를 뱃속의 기생충을 구제하는 사용 하였다지 아마 대부산(매봉산) 삼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우측으로 가면 매봉산 정상을 향하는 곳이다. 한여사가 이정표을 넣고 기념을 남겨 달란다. 조금 가니 초분을 설명한 안내문이 있다. 임회장이 초분을 보고 가야 한다며 길 아래로 내려간다. 초분이 있는 돌담과 이엉을 한 곳에서 기념을 남긴다. 우리나라 서해안 일원에서는 장례 방법 중 풍장(風葬) 이란 것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동내 어구 외지거나 한적한 곳에 시신을 안치하고 풀을 덮어 육탈이 될 때까지 3년을 기다려 유골을 수습하여 땅에 묻는 제도이다. 이런 문화가 특히 섬 지방에서 더욱 많이 행했다. 가묘를 하고 시신이 회손 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을 시묘 살이 라고 하며 이 기간이 삼년이라 삼년상을 지른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이 지나야 상을 마쳤다고 하여 일상생활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장례문화의 영향이라고 생각 된다. 그러나 지금은 장례식에 문상을 하고 제사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 예전에는 초상 때 문상을 하고 제사 때도 인사를 가는 것이 관례였다. 옛날 교통통신이 발달되지 못 한때의 우리의 장례 문화였다. 한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베조각을 옷깃에 달고 다녔다. 요즈음 세월호 사건이 나고 노란색 리본을 달고 다니며 애도를 나타낸다. 그전의 풍습이 서양식으로 되살아 난 것인가? 추모배지까지 나왔다. 방을 같이 사용한 회원 한 분이 되돌아온다. 초분을 보기위해서 라고 말한다. 설명글이 2011년에 세운 것이니 삼사년 전에 시행한 초분이라고 하니 최근까지 이곳에서는 이런 장례문화가 시행된 것이다.

11. 함구미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팬션에서 점심을

  초분이 있는 곳을 돌아 나오니 앞이 탁 트이는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저 아래 에는 송신소 중계소가 있고 컨테이너 박스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우측으로 함구미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조금 더 내려오니 우리가 점심을 할 아빠와아들 팬션이 현대식 이층건물을 하고 북쪽의 함구미 포구를 향해 서있다. 마당에는 많은 트레킹 족들이 성시를 이룬다. 화단에 심어진 빨강색 칸나가 강열한 태양을 받아 더욱 붉게 피어 있어 파란 바다와 조화를 이룬다.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선두 그룹은 탁자에 앉아 벌써 노란색 양재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한잔을 권 하나 오늘은 주일이니 사양이다. 팬션은 에이치 빔으로 지어진 최신건물 아래층은 식당 위층이 방이다. 간판은 아버지와 아들이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엄마와 아들이 손님을 받는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는데, 연신 도착하는 회원들은 시원한 전경에 취해 막걸리 맛이 좋은가 빈대떡과 함께 주문을 연발한다.

12시가 점심 예약시간이나 조금 일찍 식사가 나온다. 함구미 앞 바다를 자라보며 차려진 점심상 경치를 반찬 삼으니 밥맛이 절로 난다. 점심을 과반 한다. 함구미 포구에는 카케리선이 도착하여 버스를 싣고 하얀 물감을 뿌리며 사라진다. 팬션 마당가운데 있는 항아리는 장식용인가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화단의 장미 한 송이가 칸나와 누가 더 붉은가 내기하고 있다. 직포에서 선두로 나선 임사장 부부가 나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다. 함구미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고 한다. 부지런한 것도 피곤하다. 아직도 힘이 넘쳐서 일까?

배낭을 챙겨 1코스 마지막 구간을 향해 나선다. 일부 회원들은 함구미 포구로 바로 내려가기도 한다. 중계소 앞에 있는 콘테이너 박스의 간이매점은 한산하다. 배가 도착하면 반짝 성시를 이룬다. 금오도의 바다는 잔잔하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가 있지만 은빛을 발하며 반짝 거린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서 조금 가니 우측으로 밭이 나온다. 한패의 트래킹족이 반대편에서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 백야도에서 11시에 출발한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인것 같다. 밭에는 보라색과 흰색이 어우어진 도라지 가 심어있고, 고구마와 방초가 바다의 에머랄드빛과 조화를 이른다. 절벽이 보이는 곳에는 송광사란 절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아빠와아들팬션을 출발한지 30여분 만에 수달피비렁 전망대에 이른다. 서쪽의 고흥반도 끝부분이 마치 저 제주도 삼방산 근처에 있는 용머리 해안같이 보인다. 뒤따르던 희남이 아빠와 한여사를 세워 기념을 남긴다. 수달피비렁 전망대에서 10분을 더 가니 솟대마냥 조형물이 세워진 전망대에 이른다. 미역널방 바위가 넓게 자리한 전망대 이다. 포고가 90미터가 된다고 하며, 저 밑 해안에서 지게로 미역을 져 날았을 것을 생각하니 어부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이곳에 설치 미술가가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금오도의 바람, 햇살, 바다 란 작품명이다. 이곳에는 저 고흥반도에 있는 우주선 발사대를 볼 수 있게 망원경이 두 대 설치되어 어린이들이 매우 반기는 곳이기도 하다. 함구미 포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부모님을 따라 올라온 초등생들이 보인다. 십여 년 전 현직에 있을 때 상사 한분의 자제가 이곳에 와서 공사를 한다고 하여 해남에 갔을 때 공사 중인 곳을 보고 퇴직 후 집사람과 같이 가본 기억이 새롭다.

미역널방 전망대에서 수달피전망대 절벽을 돌아나가는 배 꽁무니의 흰 물결이 마치 무슨 일을 저지르고 들킬세라 도망치는 어린아이같이 쏜살같이 꼬리를 감추며 달아난다. 미역널방에서 한동안 서성이며 돌아온 비렁길을 바라본다.

비렁길 조금 생소한 이름이다. 벼랑길을 이곳 여수 사투리로 비렁길이라 한다. 우리나라 슬로우시티 를 처음 대한 곳이 완도에서 배를 타고가본 청산도이다. 영화 임권택 감독이 만든 판소리영화 서편제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던 청산도, 이름도 조금 감성을 자극하는 섬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산악회를 따라 섬 산행을 하였지만 이렇게 벼랑길만을 걸어본 것이 처음이다. 이 벼랑길은 섬사람들이 다니던 마을과 포구를 잇는 지금 길이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밭으로 그리고 이웃마을로 그리고 포구로 이어지는 우리선조의 소통의 길 여기에는 때로는 종종거리면 달려가는 발걸음도 있었을 것이고, 농주한잔에 취해 세월을 노래하며 걷은 갈지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걸음은 어떤 발걸음 이었나 일박이일의 비렁길이 나에게는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늙어가는 인생의 길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고흥반도의 우주선 발사대에 있는 세 개의 깃대처럼 지구 밖 미지를 향해 날아오를 차비를 하는 우주선처럼 나의 후반 인생이 길이 순탄하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주일성수도 못한 엉터리 신자의 기도이다.

11. 함구미 포구

  함구미 포구에 도착하니 옛 포구의 선착장은 바닥을 들어내도 있어 썰물 때임을 알린다. 돌담이 높게 쳐진 옛 초등학교 터에는 매점이 있고 운동장이었던 곳은 건설자재들이 쌓여 있다. 백야도로 향할 배편은 2시30분배이다. 함구미포구를 두러본다. 비렁길시작점에 함구미경로당이 자리하고 있고 경로당 지붕에는 비렁길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경로당 앞에는 포구에 접하여 육모정이 깔끔하게 단장된 모정에 회원들이 피로를 풀고 있다. 포구 선착장에는 커다란 고정 크레인이 빨간 몸체를 자랑한다. 예전에는 이러한 크레인이 없이 방파제 끝에는 철재 구조물이 세워져 양식장에서 기른 미역 등을 이곳에 도르래를 달아 배에서 육지로 내리곤 했다. 크레인 옆에는 FRP 재질로 만든 패선박이 선착장에 올라와 있다. 이름은 방주8호란 이름과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기독교 선교용 배이다. 안의 기관들은 모두 뜯기어 없고 껍데기만 남아 선교선임을 알린다. 이름도 좋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이름을 빌린 것 같다. 오늘아침(일요일) 직포교회에서 새벽예배로 대신하였는데, 이제는 포구와 포구를 잇는 도로가 연결되어 배가 필요 없는가 보다.

함구미 포구를 막 출발한 나룻배를 본다. 나룻배 앞에는 붉은 모자로 햇빛을 가린 것으로 보아 할머니 같고 뒤에 노를 젓는 사람이 할아버지인 것 같다. 요사이 웬만하면 실외선 엔진을 달고 쌕쌕거리며 물살을 가르는 선박이 대부분인데, 나룻배로 어장을 향해 노 저어 가는 두 내외를 보니 느림의 미학이 생동감을 더한다. 그러나 구부러진 허리를 하고 노를 젓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게 울려오는 것은 어인 일인가?

예전에 건설된 방파제 에는 물양장으로 이용한 곳에는 시멘트 포대에 모래와 자갈을 넣어 굳게 만들 시멘트 포대 모양의 인공 돌을 사용한 곳도 있다. 임기응변의 극치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는 몇몇 사람들 있다. 썰물 시간에 낚시가 되려나 궁금하다. 한사람이 닐을 감아올린다. 꽤 큰 것이 물은 것 같이 끝이 조금 휘어진다. 그러나 나온 것은 커다란 굴 껍질이다. 에이 구경꾼 모두가 실망이다. 뒤에서 보고 있던 내게 “왔다 금자라 나온다” 하니 모두가 함박웃음이다. 모정 앞 그늘에서 다릴 펴고 쉬는데, 희남이가 다가와 초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초분을 보았냐고 물으니 못 보았다고 한다. 카메라를 돌려 화면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 준다.

12. 귀가

  이번 추석에 정읍조카가 숙제를 한다며 조상 찾기라는 제목을 한 종이를 내민다. 본관, 시조, 몇 대손, 조부모이름, 진조부모이름, 고조부모의 이름과 외갓집 에 관한 것도 같이 있어 알려준 것이 생각나 희남이 한테 물어본다. 그러나 본관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기에 설명하니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한테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인데,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가 알려 주었으련만 관심이 없다. 희남이 에게 아빠한테 여쭈어 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희남이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즉석에서 한 장 찍어 본다. 배가 도착시간이 되어 선착장 부근으로 나선다. 여객터미널 앞에 강씨 문패를 하고 있는 집에서는 슈퍼도 함께 하는가 보다. 철재대문이 달린 일반 가정집 형태이다. 희남이가 생각이 나 주인 인 듯한 70대 가량의 촌장에게 주인 인 것을 확인하고 본관을 묻으니 진주 강 씨 은열공파라고 한다. 나도 은열공 25손이며 호부사공 19대손이라 말하고 몇 대손이냐고 물으니 잘 모르는가 딴 이야기를 한다.

어른도 이렇게 자기 조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끝 글자가 수(洙) 강 이름 수 물가수자를 쓴 것을 보면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에서 수 학렬 이다. 지금에 와서 씨족을 논하고 촌수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개인별로 나누어진 배표를 주민증과 확인하고 배에 오른다. 버스기사도 같이 금오도로 건너와 비렁길 일부를 탐방했다. 백야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창 확장 공사 중이다.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다. 완주 화심에 들러 순두부백반으로 저녁을 먹는다. 식당에서 파는 뜨끈한 두부를 사들고 차에 오른다. 함께한 군정농(군산정보화농민회) 회장인 한 여사에게도 두부를 선물로 전한다. 차에 오르기전 버스앞에 하얀고무신을 신고 있던 송선생이 신발을 한손에 들고 머리를 숙인체 앉아있다. 처음에는 조그 의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차에 올라 생각하니 송선생의 행동이 단지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이 아님을 알았다. 다시 내려가 적선을 한다. 출발전 송선생이 보고를한다. 부가세 일백원을 재한 나머지 3만5천원 이틀동안 수고한 기사의 팀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박수다. 이번주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강릉엘 다녀왔고, 토요일 일요일 이틀 또 외출을 하니 집일이 밀려 있다. 누가 말한다. 놀면 더 몸이 아프다고, 내가 말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일이 밀려 있으니 그러하다고 하니 공감한다. 일주일에 4일을 비웠으니 농사일이 밀려 있다. 가을채소도 속아내고 웃거름을 주어야 하고, 하우스 고추밭도 매어야 하며, 시금치도 출하하여야 한다. 소득은 미미하지만 농촌에서의 생산은 내가 먹을 것을 하다보면 남아 팔아야 하는 것이 농산물이다. 로컬푸드, 새벽시장, 농협청과물공판장을 이용한다. 그러나 소득이 얼마나 되랴? 노력에 비해 농산물이 너무 헐값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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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9.29 08:38

    첫댓글 와룡당님 멋 있습니다. 좋은 글 아름다운 경치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작성자 14.09.29 22:21

    김회장님 건강하시지요. 용운이는 지금 학교는 졸업하였나요. 어른스러워진 용운이 놈이 어떻게 자랐나 궁금합니다.

  • 1부의 조회수를 보며 금오도 비렁길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다녀온듯 즐감했습니다

  • 작성자 14.09.29 22:24

    다 지김님의 노고이지요.
    이렇게 카페를 활성화 하여 대화의 광장과 소식을 주고받는
    소통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지기님의 열성에 감사 합니다.

  • 14.09.29 11:51

    건강을 유지하고 인생을 즐기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구경 잘 하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 14.09.29 22:25

    회장님의 격려에 힘이 더욱 납니다. 항상 즐거움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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